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41
440화. 기선 제압 (1)
형산.
중원오악 중 남악으로 불리는 명산으로, 과거에 구파일방과 비견되었던 형산파가 터를 잡고 성세를 이룬 곳이었다.
세월이 흘러 형산파는 역사 속에 이름만을 남기고 사라졌지만, 오악독수(五岳獨秀)라 불리는 형산의 경관은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지금 막, 녹의수사 일행이 형산의 초입에 도착했다.
“드디어……!”
“도착했다……!”
장걸과 구길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형산을 올려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고작 열흘도 안 되는 시간이 얼마나 길게만 느껴졌던가.
차라리 팔다리가 부러져 수련을 강제로 못 하게 되길 바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랄 맞게도 튼튼한 몸뚱이는 한숨 푹 자고 나면 쌩쌩해졌고, 백수룡의 절묘한 훈련량 조절은 그들이 점점 더 고강도 훈련에 적응하도록 만들었다.
즉, 나날이 새로운 지옥을 경험하며 이곳까지 왔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감격할 수밖에.
“으하하하! 우리가 왔다!”
“염라이걸(閻羅二傑)이 형산을 접수하러 왔다!”
장걸과 구길은 어깨동무를 하고 형산의 호연지기를 마음껏 만끽했다.
둘 다 염라채를 떠나기 전과 비교하면 몰라보게 해쓱해진 모습이었다. 불필요한 지방이 빠지면서 입고 온 무복이 헐렁해졌을 정도였다.
게다가 턱에 풍성하던 수염도 듬성듬성하게 남아 있었는데, 위생에 안 좋고 수련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백수룡이 밀어 버린 탓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녹림도가 아니라, 험한 산을 넘으러 온 서생을 호위하는 무사들처럼 보였다.
““으하하하……!””
“이것들이 빠져가지고.”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두 사람이 어깨를 흠칫 떨었다.
백수룡이 미간을 모으고 그들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고 있었다.
“형산에 도착하면 수련이 끝나? 그따위 정신머리로 염라채 돌아가서 애들 가르칠 수 있겠어? 대가리 박은 채로 산꼭대기까지 올라가게 해 줘?”
“아, 아닙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장걸과 구길은 대답과 동시에 차려자세를 취했다.
염라이걸이고 나발이고, 사파 회합이 끝날 때까진 계속 백수룡에게 시달릴 운명이었다.
하지만 백수룡도 괜히 그들을 갈구는 것은 아니었다.
백수룡은 표정을 굳히고 둘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사파의 거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곳이다. 모가지 잘 간수하고 싶으면 정신 똑바로 차려.”
““예!””
장걸과 구길이 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대답했다.
그 모습에 백수룡도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공손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사형.”
녹의수사였다.
그는 며칠 새에 몰라보게 달라진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특히 눈빛이 웬만한 사람은 마주보기도 힘들 만큼 형형했는데, 그 눈이 백수룡을 향할 때에는 공손해지며 깍듯하게 예의를 갖췄다.
“사형의 말씀대로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형산에 오르기 전에 식사를 든든히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럴까?”
백수룡도 녹의수사에게는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제관계이기도 했고, 그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워낙에 공손한 탓에 오히려 조금 부담스러웠다.
‘차라리 원강이 같은 놈이었으면 편하게 대했을 텐데.’
정파에서 얻은 제자들은 하나같이 말 안 듣는 망나니인데, 사파에서 얻은 사제는 이토록 예의가 바르다니.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 잠시 쉬고 계십시오. 곧 식사 준비를 하겠습니다.”
녹의수사는 형산까지 오는 내내 백수룡을 깍듯이 손윗사람으로 대했다.
단 한 번도 예의를 차리지 않거나 함부로 군 적이 없었고, 잠자리를 살피는 것부터 식사까지 모든 것을 부하들에게 시키지도 않고 직접 준비했다.
아무리 뻔뻔한 백수룡이라도 받기만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아니야. 오늘 점심은 내가 차릴 테니 사제는 쉬라고.”
“그것은……!”
백수룡이 오늘은 자신이 요리를 해 주겠다며 소매를 걷어붙이자, 녹의수사의 안색이 돌처럼 굳었다.
며칠 전 백수룡이 요리랍시고 해 준 잡탕을 먹은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사형만 아니었다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것은 식재료에 대한 모욕이오!’라고 성토했을 맛이었다.
“……어찌 사제가 있는데 사형께서 손수 요리를 하신단 말입니까. 그런 불경한 짓을 저지를 수는 없습니다.”
“불경은 무슨. 난 그런 거 신경 안 쓰니 편하게 있어도 돼. 기다려 봐. 금방 해 줄 테니까.”
백수룡이 솥을 꺼내고 그 안에 육포와 푸성귀를 뭉텅이로 집어넣는 순간, 녹의수사가 벼락처럼 손을 뻗어 사형의 손목을 낚아챘다.
덥석!
백수룡이 놀란 표정으로 녹의수사를 돌아봤다. 새삼 사제의 금나수 실력에 감탄하면서.
“왜?”
“……꿈에서 뵌 스승님께서 사형을 스승처럼 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자 된 도리로 어찌 스승께서 하찮은 일을 하도록 지켜보란 말씀입니까. 부디 식사는 제가 준비하도록 해 주십시오.”
“아니, 이 정도는 내가…….”
“사형.”
그 눈에서 느껴지는 비장한 결의에, 백수룡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사제가 맹사부를 정말 많이 존경하는구나.
“그래. 정 하고 싶으면 사제가 하든가.”
“감사합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녹의수사는 백수룡에게 식재료를 빼앗아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장걸과 구길은 처음에는 이런 둘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본인들 수련이 힘드니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너희도 수련 그만하고, 이리 와서 먹거라.”
““예!””
형산에 오르기 전의 마지막 식사는 평화로웠다.
백수룡은 녹의수사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사형께서는 네 명씩만 참석한다는 약조를 지킨 세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뿐이라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지.”
피식.
백수룡은 냉소적으로 웃으며 형산의 빼어난 절경을 바라봤다.
아직 산을 오르지도 않았지만, 벌써부터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사파의 종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데, 갈등이 없을 리 없어. 분명 싸움이 일어날 거야.”
“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기선 제압을 위해서라도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려 하겠지요.”
녹의수사의 눈빛도 백수룡 못지않게 차가웠다.
평소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그 역시 십대악인이라는 악명을 얻은 사파의 거두 중 한 명이었다.
“다들 싸움을 각오하고 왔겠지. 각자 어떤 전력을 숨겨왔을지 꽤나 궁금한데.”
“그 싸움에서 끝내 이기는 자가 사파연합의 맹주가 되겠군요.”
둘 다 외모는 싸움 한번 해 보지 않았을 백면서생처럼 생겨서, 입에서 나오는 말에는 음모와 모략으로 가득했다.
“크크크…….”
“후후후…….”
이럴 때는 죽이 참 잘 맞는 사제지간이었다.
시선이 마주친 두 사람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우리가 전부 밟아 버리자고. 사제.”
“물론입니다. 사형.”
두 사형제의 음산한 웃음소리에, 얌전히 밥을 먹고 있던 장걸과 구길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래도 오늘 점심은 체할 것 같았다.
* * *
결과적으로 백수룡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래도 설마, 이런 식으로 대놓고 나타날 줄은 몰랐는데…….”
형산을 오르고 얼마 되지도 않아, 일단의 무리가 그들을 가로막은 것이다.
크르르…….
먼저 나타난 것은 늑대였다.
십여 마리의 늑대가 수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면서 일행을 포위했다.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모습에 흉포함이 가득했다.
‘피 냄새.’
늑대들에게서 사람의 피 냄새가 났다.
이어서 수풀 속에서 산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숫자가 열은 족히 넘었다.
“으하하하!”
어깨에 커다란 도끼를 걸친 털북숭이 거한이 징그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거 봐라. 이쪽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손님들이 올 거랬지.”
“…….”
“으하하하! 겁을 먹어서 말도 안 나오는 모양이구만!”
녹의수사 일행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길을 가로막은 산적들을 바라봤다.
‘뭐 하는 놈들이야?’
사람이 너무 어이없는 일을 당하면 잠시 말문이 막히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털북숭이 산적은 그걸 자기 좋을 대로 해석했다.
“저어, 형님…….”
그때, 털북숭이 옆에 있는 산적이 불안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채주님이 여기서는 영업하면 안 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얌전히 숨어서 연락을 기다리라고…….”
작게 수군거렸다고 하지만, 백수룡과 녹의수사 정도의 고수에게는 사자후나 다름이 없었다.
‘이거 봐라?’
‘호오라…….’
두 사람의 눈이 동시에 가늘게 좁혀지는 순간이었다.
털북숭이가 부하의 머리통을 주먹으로 후려치며 말했다.
“이런 멍청한 새끼. 그건 여기 올 사파 놈들한테 들킬까 봐 조심하라는 거지, 딱 봐도 세상 물정 모르게 생긴 저런 샌님들을 그냥 보내란 말이냐?”
“하지만…….”
“한번 봐라. 네 눈엔 저놈들이 고수로 보이냐?”
“그렇진 않습니다요.”
털북숭이에게 얻어맞은 산적이 고개를 저었다.
고작해야 네 명.
그중 한 명은 중년의 서생이었고, 나머지 셋은 그나마 무기를 찬 것이 호위무사로 보였다.
하지만 호위무사로 보이는 자들도 그다지 강해 보이진 않았다.
특히 덩치가 큰 둘은 안색도 창백한 것이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는데, 고작 이 정도 높이까지 올라와서 지친 거라면 별 볼 일 없는 실력이라는 의미였다.
털북숭이가 그것 보라며 히죽거렸다.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손님을 그냥 보내 주면 우리가 거령채의 호걸들이라 할 수 있겠냐?”
“헤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형님.”
“새끼. 앞으로도 나만 믿고 따라와라.”
부하의 아부에 히죽 웃은 털북숭이의 시선이 다시 손님들을 향했다. 그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그리고 전부 죽여서 없앨 건데, 우리가 여기에 있는지 누가 알겠어?”
늑대들이 포위망을 유지하는 동안, 산적들만 슬금슬금 거리를 좁혀 왔다.
증거를 남기지 않을 생각인 듯, 하나같이 눈에 살기가 충천했다.
“전부 죽여!”
털북숭이의 명령에 산적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본 백수룡은 피식 웃으며 장걸과 구길의 등을 앞으로 떠밀었다.
“수련의 성과를 보여 줘라. 대신, 아직은 죽이지 말고.”
““예! 형님!””
기다렸다는 듯 장걸과 구길이 목을 좌우로 꺾으며 앞으로 나섰다. 창백한 얼굴들이 씨익 웃자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벌어진 싸움은 일방적인 폭행에 가까웠다.
빠악! 빠악! 빠바박!
완전히 물 만난 고기였다. 장걸과 구길은 그전에도 염라채에서 손에 꼽히는 고수들이었는데, 여기까지 오는 동안 백수룡의 지도가 더해졌다.
그 성과가 지금 눈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으하하하! 거령채도 별것 아니네!”
“체기가 싹 가시는구나!”
상대가 거령채의 산적들이라고 해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단둘이서 열 명이 넘는 적들의 팔다리를 가뿐히 분질렀다.
“비, 빌어먹을. 고수였잖아…….”
생각했던 것과는 상황이 너무나 다르게 흘러가자, 털북숭이의 얼굴이 샛노랗게 질렸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멋대로 영업했다는 사실이 거령채주에게 알려진다면, 정말로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그 순간, 털북숭이의 눈에 뒤쪽에 느긋하게 뒷짐을 지고 서 있는 중년의 서생과 호리호리한 도객이 보였다.
“저 늙은 서생 놈을 인질로 잡아! 도객 놈은 죽여 버리고!”
삐이이익-!
산적들이 호각을 부르자, 포위만 하고 있던 늑대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때.
캬앗?
백수룡의 행낭 안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은호가 졸린 얼굴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바깥의 시끄러운 소리에 깬 듯했다.
은호는 피 냄새를 풍기며 달려오는 늑대들을 발견하더니, 이를 드러내며 낮은 울음을 터트렸다.
크르르르…….
그것은 백수룡도 지금껏 들어 보지 못한 맹수의 울음이었다.
영물의 분노가 깃든 울음소리에, 달려들던 늑대들이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똥오줌을 질질 흘리는 놈들도 있었다.
끼잉……. 끼이잉…….
“이놈들아! 가서 물어! 물으라고!”
믿었던 늑대들까지 전부 주저앉자, 털북숭이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주위의 눈치를 보더니 슬금슬금 뒷걸음질쳤다.
물론 그걸 지켜만 볼 백수룡이 아니었다. 그가 턱짓으로 털북숭이를 가리켰다.
“저 새끼 잡아 와.”
““예!””
잠시 후,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산적들이 굴비처럼 줄줄이 묶여서 꿇어앉았다. 전부 뼈가 하나 이상은 부러져서 아프다고 끙끙거렸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저희가 고인을 몰라뵙고…….”
거령채의 산적들이 바들바들 떨며 제발 살려 달라고 빌었고, 늑대들은 그 곁에서 전부 배를 발라당 드러내고 있었다.
“너희들. 거령채 놈들이냐?”
“그, 그건…….”
백수룡은 대답을 망설이는 털북숭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어깨에 손을 얹으며 친절하게 웃었다.
“괜찮으니 솔직히 말해 봐. 니들이 키운 늑대밥으로 던져 주기 전에.”
그 친절한 눈빛과 미소에, 털북숭이는 자기도 모르게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