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66
466화. 반드시 죽여
귀령왕은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촤아아악!
두 조각으로 찢겨 나간 육신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핏물과 함께 내장이 쏟아지고, 역겨운 혈향이 퍼져 나갔다.
“끅, 끄어억…….”
옥가면의 눈구멍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잠시 발작하듯 꿈틀대던 자줏빛 장포의 움직임이 멎자, 귀령왕이 부리던 강시들도 풀썩풀썩 쓰러졌다.
“……꼴좋다고 비웃기엔, 우리도 상황이 썩 좋지 않군.”
녹의수사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어질 사도의 공격에 대비했다.
귀령왕의 술법은 사사도의 움직임을 약간이나마 방해했고, 다른 무인들은 그 틈에 공격하거나 방어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었던 균형이 방금 전 귀령왕의 배신으로 무너졌다.
사사도가 곧바로 귀령왕을 죽여 버린 것은 놀라우면서도 다행인 일이었지만…… 자신들이 불리해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형께서 정상이 아니다.’
녹의수사의 시선은 좀처럼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백수룡을 향했다.
“허억……. 허억…….”
백수룡은 누구보다 힘겹게, 이를 악물며 싸움에 임하고 있었다.
콰앙! 콰아앙! 콰아아앙!
싸움이 시작된 이후로 사도와 정면에서 가장 많이 부딪치는 이는 백수룡이었고, 가장 많이 다친 것도 그였다.
위험한 공격의 대부분을 백수룡이 흘려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녹의수사와 벽안귀는 벌써 몇 번이나 도움을 받았다.
그럼에도 백수룡은 평소의 실력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었다. 몸은 천 근의 쇳덩이라도 짊어진 것처럼 무거워 보였고, 늘 자신만만했던 표정에서는 괴로움이 느껴졌다. 그 괴로움은 공격을 당할 때보다 공격을 할 때 더 짙어 보였다.
“다들 집중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백수룡은 손등으로 입가의 핏물을 슥 닦으며 모두에게 외쳤다. 사도의 무지막지한 공격을 막아 낸 여파로 몸이 덜덜 떨리고, 누구보다 위태롭게 버텨 내고 있음에도.
‘이곳에서 뼈를 묻어야 할 수도 있겠군.’
그 모습을 바라보던 녹의수사는 불현듯 어떤 사실을 깨닫고 깊이 반성했다.
‘……어느샌가 사형께 의지만 하고 있었구나.’
백수룡과 혈교 사이에 복잡한 은원이 얽혀 있다는 것 정도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혈교의 함정에 빠져 뇌옥에 갇힌 녹림투왕의 무공을 백수룡이 어떻게 계승했는지, 그 자세한 이야기는 알지 못했다. 굳이 묻지도 않았다. 언젠가 때가 되면 이야기해 줄 거라고 믿고 있었기에.
지금도 녹의수사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백수룡을 신뢰했고, 마음 깊이 의지했다. 또한 받은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고 싶었다.
“……계속 받기만 했으니, 한 번쯤은 보답해야지.”
녹의수사의 눈이 어떤 각오로 빛났다. 그가 맹호투의 기수식을 취하자, 사사도의 동공이 커졌다.
콰앙!
발 구름 한 번에 대지가 밀려났다. 순식간에 간격을 좁혀 온 사사도가 녹의수사에게 손을 뻗었다.
피하라는 백수룡의 고함이 사사도의 뒤에서 들려왔으나, 녹의수사는 차분하게 호흡을 가라앉히며 상대의 공격을 끝까지 지켜봤다.
‘단 한 번.’
녹의수사는 오래전에 녹림투왕이 남긴 무공을 수십 년 이상 수련했다. 그 세월이 녹림십팔식의 수련 시간을 경이적으로 줄여 주였다. 단숨에 요체를 꿰뚫고 달인의 지경에 이르게 할 정도였다.
그 말은 즉.
‘단 한 번이라면…… 빈틈을 노릴 수 있다.’
같은 무공을 익힌 사사도의 움직임을 조금이나마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휘익!
녹의수사가 과감하게 자신의 품으로 파고들자, 사사도의 표정에 희미하게 놀란 감정이 번졌다.
“…….”
수십 년 만에 처음이었다. 자신에게 간격을 좁혀 오는 상대는. 같은 사도끼리도 멀리하는 것이 사호와의 간격이었다. 게다가 마냥 무시할 만큼 경지가 하찮지도 않았다.
사도와 눈이 마주친 녹의수사가 빙긋 웃었다.
“덩치가 큰 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드물지.”
휘리릭!
사호의 품에 파고든 녹의수사가 몸을 틀며 회전력을 가미했다. 전신 발경의 묘리가 어깨 일점에 응축되어, 사사도의 가슴에서 타점이 폭발했다.
터어어엉-!
맹호붕산격.
거령채주를 단숨에 날려 버렸던 맹호투의 절기가 이번에는 사도에게 적중했다.
“통했다!”
그 모습을 본 벽안귀가 시퍼런 청안에서 광채를 내뿜으며 사사도에게 달려들었고, 추혼궁귀도 벼락처럼 시위를 당겼다.
녹의수사가 목숨을 걸고 잡은 기회였다. 이번에는 반드시 사도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입혀야 했다.
그러나.
“…….”
사사도는 침착했다. 충돌의 순간, 전신의 근육을 이완시켜 충격을 흘리고, 손을 뻗어 녹의수사의 어깨를 잡았다.
동시에 왼발을 축으로 몸을 회전시켜 추혼궁귀의 화살을 얼굴 옆으로 스치듯 보냈고, 오른발을 차올려 벽안귀의 공격을 쳐 냈다.
그 모든 움직임이 찰나지간에 이루어졌다.
“크윽!”
어깨를 잡힌 녹의수사가 이를 악물며 저항했다. 그러나 사사도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녹의수사가 녹림십팔식을 달인의 수준으로 익혔다면, 사사도의 무공은 이미 녹림투왕의 것을 뛰어넘었다.
우드득!
“……!”
어깨가 탈골된 녹의수사가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미리 예상하고 방비하지 않았다면, 팔이 통째로 뽑혀 나갔을 것이다.
“…….”
미간을 모은 사도가 한 번 더 손에 힘을 줬다. 이번에는 완전히 뽑아 무력화해 버릴 작정이었다.
사아악!
그 순간, 새하얀 검광이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았다. 백수룡이었다. 손을 놓고 물러나는 사도의 눈에 아쉬움은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녹의수사는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상태였다.
“사제!”
백수룡은 녹의수사를 부축해서 뒤쪽으로 물러났다.
“사제. 괜찮아?”
“……괜찮습니다.”
녹의수사가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단순히 어깨가 탈골된 것이 아니었다. 그 짧은 순간 오른팔의 모든 뼈에 금이 갔고, 근육이 손상되었다.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영영 팔을 못 쓰게 될 수도 있을 만한 중상이었다.
“죄송합니다, 사형. 기회를 만들어 드리려고 했는데…….”
“여기서 쉬고 있어.”
백수룡의 표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괴로워 보였다.
그는 녹의수사의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빠르게 몇 군데 혈도를 점혈한 후, 다시 앞으로 나섰다.
귀령왕에 이어 녹의수사마저 전장에서 이탈했다. 그 사이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었다.
“사도-!”
벽안귀의 ?뻬횬?푸르다 못해 곤색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공력을 과도하게 끌어올리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오랫동안 혈교에 대한 원한을 가슴 깊이 새겨 둔 벽안귀였다. 혈교의 수뇌부인 사도를 만나자, 그 감정이 불붙은 화약처럼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촤악!
벽안귀의 검이 사사도의 팔뚝에 희미한 혈흔을 만들었다.
곧바로 뒤로 훌쩍 물러난 벽안귀가 킬킬 웃었다.
“너도 지치긴 하는 모양이구나. 호신강기가 처음보다는 약해진 걸 보니.”
“…….”
혈마의 그림자 호위들의 무공인 청안마공은 안법을 극한으로 단련한다. 벽안으로 변하는 것은 그 부작용이었다. 극한으로 발현된 안법으로 사사도를 살폈다.
놈도 결코 멀쩡하지 않았다. 추혼궁귀의 화살을 맞은 부위는 부어올랐고, 녹의수사와 벽안귀의 거듭된 공격이 두꺼운 근육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혔다. 백수룡의 검이 몇 번이나 피륙을 스쳤다.
벽안귀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사도를 도발했다.
“궁금하군. 과연 팔다리가 잘리거나 심장에 칼이 꽂혀도 지금처럼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있을까?”
“…….”
사사도는 벽안귀의 도발에도 대꾸는커녕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태산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그 무심함에 벽안귀의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그가 원한을 절절히 담아 스산한 목소리로 물었다.
“청안마공을 아나?”
“…….”
“너희가 혈교의 실험실에서 강제로 익히게 한 무공 중 하나다. 열 살도 안 된 어린아이들을 데려다가, 매질을 해 가며 강제로 익히게 했지. 그중 태반은 죽을 걸 알면서도……. 설마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
“대답할 가치조차 없다는 건가?”
벽안귀의 눈이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혈교에 대한 원한과 분노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벽안귀의 어린 시절은 비명과 고통으로 점철돼 있었다.
“하긴, 네놈들에게도 인간다운 감정이란 것이 있었다면, 애초에 그런 짓을 벌이지 않았겠지.”
벽안귀는 클클 웃었다.
애초에 그가 원하는 것은 거창한 승리가 아니었다.
그저 복수를 원했다.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그리고 죽어 간 수많은 친우들의 원수를 찢어 죽이는 상상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
“크크크…….”
벽안귀는 이 순간 자신이 악인곡의 곡주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우득, 우드득!
청안마공을 전력으로 끌어올린 벽안귀의 몸에 핏줄이 불거지더니,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푸른빛의 강렬한 기가 그의 몸을 휘감았다.
콰콰콰콰!
마공의 폭주였다. 전신의 혈도를 무리하게 내달리는 내공이 평소의 배 이상의 힘을 가져다주지만, 그 후유증은 며칠 요양한다고 해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폐인이 되거나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눈앞에 있는 원수를 죽일 수만 있다면.
“내 곁을 떠도는 친우들의 원혼이 보이나? 이 녀석들이 너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라고 외치는구나!”
킥킥 웃은 벽안귀가 벼락처럼 달려들었다. 양손으로 나눠 든 단검에 곤색의 강기가 톱날처럼 맺혔다.
“벽안귀! 멈춰라!”
백수룡이 함께 사도에게 달려들며 소리쳤으나, 벽안귀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죽어-!”
한계 이상으로 내공을 끌어올린 청안에서 피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동귀어진을 각오한 절초.
그 각오와 위력은 십존이라고 해도 감히 경시하지 못할 수준이었으나, 사도들 중에서도 호신강기가 가장 뛰어난 무인을 쓰러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쩌어억!
사사도는 왼쪽 팔뚝으로 벽안귀의 공격을 막아 냈다. 공격과 동시에 반격이 이루어졌다. 오른손을 벼락처럼 뻗어 벽안귀의 가슴을 가격했다.
콰드득……!
벽안귀의 가슴이 함몰되며 입에서 피를 토했다. 충돌의 순간, 백수룡이 그의 뒷덜미를 낚아채 뒤로 당긴 덕분에 그나마 즉사는 면할 수 있었다.
“쿨럭! 쿨럭! 고작 이 정도인가…….”
벽안귀는 눈과 입에서 피를 쏟아 내며 사사도를 노려봤다.
퍼버버벙!
사도는 연이어 쏟아지는 추혼궁귀의 화살을 막고 쳐 내는 중이었다. 그런데 전과 달리, 사도가 움직일 때마다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
벽안귀가 사도에게 남긴 상처는 결코 얕지 않았다. 뼈가 드러난 팔뚝의 상처. 호신강기와 질긴 근육을 끊고, 처음으로 유의미한 상처를 입힌 것이다.
“백수룡…….”
벽안귀가 손을 뻗어 백수룡의 옷깃을 꽉 붙잡았다. 그가 처절하고 독기로 가득한, 그리고 울분에 찬 얼굴로 백수룡을 올려봤다.
“반드시, 놈을 죽여…….”
“……쉬고 있어라.”
백수룡은 벽안귀의 수혈을 짚었다. 그리고 응급조치로 부러진 뼈를 맞췄다. 다행히 당장 목숨이 위험한 수준은 아니었다.
“……빌어먹을.”
백수룡은 나직이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