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65
465화. 왜 나를?
“네 번째 사도? 대체 저런 괴물이 몇이나 더 있는 게야…….”
귀령왕이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품에서 방울을 꺼내 흔들었다. 그러자 주변에서 그를 호위하는 강시들의 잿빛 근육이 거대하게 부풀고 손톱이 길게 튀어나왔다.
그르르르…….
그르르르…….
철가면으로 가려진 강시들의 입에서 음산하고 불길한 울음이 흘러나왔다.
“오늘 원수를 여럿 만나는구나.”
벽안귀는 두 자루 단검을 뽑아 양손에 하나씩 쥐었다. 그의 새파란 눈동자에서 진득한 살기가 흘렀다.
벽안귀가 익힌 청안마공은 본래 혈마의 그림자 호위들이 익히는 무공이었다. 언젠가 돌아올 혈마의 귀환에 대비해 키워졌던 소년은, 이젠 누구보다 혈교를 증오하는 사내가 되었다.
“저자의 무공은 설마…….”
녹의수사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사사도를 바라봤다.
녹림투왕의 무공을 계승하고, 백수룡에게 맹호투까지 전수받았기에 느낄 수 있었다. 상대가 자신과 동류의 무공을 익혔음을.
심지어 자신보다 훨씬 더 높은 경지의 고수였다. 사람의 육체를 보고 완전무결하다고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맹호투를 익히기 전이었다면, 상대의 격을 가늠조차 못 했으리라.
“……자존심 상하네. 다섯이서 사도 하나를 상대하자고?”
추혼궁귀는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차면서도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그녀의 눈은 사사도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았다.
“…….”
백수룡은 사파 종주들의 선두에서 옛 제자를 바라봤다.
아직 사사도는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무덤덤한 눈길로 적들을 살필 뿐이었다.
‘강해졌구나.’
백수룡은 옛 제자에게서 초월적인 존재감을 느꼈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 주변의 대기를 일그러뜨리는 듯했다.
‘사호.’
답답할 정도로 우직한 녀석이었다.
단 한 번도 스승의 훈련 방식에 반항하지 않았던 유일한 제자.
정해진 수련을 묵묵히 수행하고, 방으로 돌아가서야 소리 없이 쓰러지던 소년.
비록 무공에 대한 자질은 넷 중에서는 가장 떨어졌으나, 인내심과 끈기로 훗날 대성하리라 예상했었다.
그 예상은 정확했다.
‘지금이라면…… 전성기의 맹사부 이상이겠어.’
오십 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겉모습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앳된 기가 남아 있던 청년의 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풍화되어 온 돌처럼 시선이 고요했다.
모두가 투기를 피어 올리던 그 순간, 사사도의 왼쪽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조심해.”
백수룡은 모두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며 공력을 끌어올렸다.
사파의 종주가 셋, 그리고 십존이 둘이다.
일부러 모으기도 어려운 막대한 전력. 웬만한 문파도 하루아침에 멸문시킬 수 있는 힘이 모여 있었다.
그럼에도 다섯 고수는 거대한 벽을 앞에 둔 것처럼 막막한 기분을 느꼈다.
후우-
느리게 호흡을 내뱉은 사도가 움직였다. 일순간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쩌어어어엉-!
간신히 검을 들어 주먹을 막아 낸 백수룡이 십여 장을 튕겨 날아갔다. 분명 비껴가도록 흘려냈음에도 손아귀가 찢어질 것처럼 얼얼했다.
동시에 추혼궁귀의 화살이 빛살처럼 쏘아졌다. 정확히 사도의 미간을 향해서였다.
우직!
사사도는 날아오는 화살을 손으로 붙잡아 눈앞에서 으스러뜨렸다. 무림의 고수라면 누구나 펼칠 수 있는 기예. 하지만 그 화살을 쏜 무인이 추혼궁귀라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미친 새끼.”
씹어뱉듯 중얼거린 추혼궁귀가 연달아 시위를 당겼다. 인간의 몸으로 벼락 줄기를 내뿜는 듯했다. 쏘아진 수십 개의 화살이 사도의 전신을 두드렸다.
콰콰콰쾅!
빠르게 연달아 쏘아낸 화살이라 온전한 힘을 싣지는 못했어도, 하나하나가 충분히 바위를 부수고 철판을 꿰뚫을 힘을 가진 화살이었다.
그러나 사사도의 몸에는 상처 하나 낼 수 없었다. 반투명한 호신강기가 그의 전신을 보호하는 탓이었다. 피할 가치도 없다는 듯, 사사도는 몸으로 화살을 튕겨 내며 추혼궁귀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화아악!
간발의 차로 사사도의 주먹이 추혼궁귀의 얼굴을 스쳐 갔다. 극쾌의 보법으로 뒤로 물러난 추혼궁귀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녀가 외쳤다.
“지금!”
벽안귀와 녹의수사가 사사도의 뒤에서 동시에 달려들었다. 각자 절기를 준비한 듯 검과 손바닥에 맹렬한 기운이 맺혀 있었다.
“…….”
사도는 몸을 홱 돌리며 손을 크게 휘저었다. 순간 대기가 일그러지고, 거대한 와류가 발생하면서 녹의수사와 벽안귀의 공격이 살짝 흐트러졌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사도는 쌍장을 휘둘러 녹의수사와 벽안귀를 쳤다. 두 사람 역시 이를 악물고 공격을 받아쳤다.
퍼어어어어엉!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녹의수사와 벽안귀가 뒤로 튕겨 날아갔다. 호흡이 쉽지 않은 듯, 둘 다 안색이 창백했다.
백수룡의 경고를 떠올리며 최대한 힘을 흘렸음에도 몸 내부가 진탕되는 기분이었다. 직접 부딪친 손이 덜덜 떨렸다.
휘익!
사도는 곧바로 녹의수사에게 따라붙었다. 그의 눈에 의구심이 깃들었다. 그 역시 같은 무공을 익힌 무인을 알아보았다. 조금 더 확인해 볼 가치가 있었다.
그때, 음산한 진언과 함께 안개가 펼쳐졌다. 귀령왕이 펼친 모산파의 술법이었다. 오감이 멋대로 날뛰고 귀신들의 환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사사도는.
콰아아아아앙-!
발 구름 한 번으로 잡스러운 기운을 모조리 날려 버렸다.
“괴물 같으니…….”
굳어 버린 귀령왕을 향해 사도의 주먹이 날아왔다. 전면을 가득 채운 주먹에 귀령왕이 황급히 물러나며 강시들을 부를 때였다.
콰아앙-!
그 공격을 대신 받아서 옆으로 비껴낸 백수룡과 사사도의 눈이 마주쳤다. 그 사이 귀령왕은 멀찍이 물러났다.
백수룡은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무겁군. 대체 얼마나 무식하게 수련을 해 온 건지…….”
“…….”
사사도는 잠시 백수룡을 바라보다가 힘껏 떨쳐냈다. 녹의수사와 벽안귀가 다시 달려들고 있었다. 추혼궁귀는 활을 겨눈 채 빈틈을 노렸고, 귀령왕은 방울을 흔들며 중얼중얼 진언을 읊었다.
“…….”
자신을 둘러싼 고수들을 돌아보며 사사도는 미간을 찌푸렸다. 만만치 않다는 듯. 그러나 그 눈에 두려움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쿠르르릉! 쿠르르릉!
사도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대기가 요동치고, 발을 구르면 산이 흔들렸다. 가공할 신위를 떨치며 초고수들을 압박했다.
반대로, 사사도의 공격을 받아 낼수록 백수룡의 표정은 점점 더 일그러졌다.
단순히 옛 제자의 주먹이 견디기 버거워서만은 아니었다.
* * *
쩌저저저정!
쩌저저저정!
어둠이 장막처럼 하늘을 가렸다. 새카만 기운이 갈라질 때마다 붉은 혈흔이 속살처럼 비치고, 그 틈새로 두 사람의 모습이 비쳤다.
두 절세고수는 완전히 다른 영역에 존재했다. 주변으로 사납게 휘몰아치는 기파가 형산을 폐허로 만들었다. 오랜 고목들이 쓰러지고, 땅에는 용의 발톱이 할퀴고 간듯한 흔적들이 새겨졌다.
“동료를 기다린 거였나? 내가 또 도망칠까 봐?”
“…….”
흑사련주의 질문에도, 삼사도는 대답하지 않았다.
천하제일도.
과거에는 우습다고 여겼던 별호의 주인이었다.
혈교가 사라진 작은 강호에서, 약자들끼리 서로를 추켜세워 주며 만든 광대 같은 칭호.
“그럼 동료가 왔으니 이제는 전력을 볼 수 있겠군?”
“…….”
십 년 전, 흑사련주는 삼사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제법 귀찮고 성가신 적이 되어서 나타났다.
삼사도가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때 죽였어야 했는데.”
“하하! 최고의 극찬이로군.”
흑사련주가 기뻐하며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삼사도는 억눌렀던 살기를 단숨에 폭발시켰다.
푸화아아악!
하늘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흑사련주의 어둠이 가리고 있던 하늘의 절반을 단숨에 자신의 영역으로 가져왔다.
캬아아아아!
그 하늘에서 혈천의 수라가 포효했다. 무공의 심상(心象)이 구현된 형태가 놀랍도록 선명했다. 그 가공할 살기에 닿은 피부가 베인 것처럼 따끔거렸다.
“역시……!”
흑사련주는 이를 드러내며 하얗게 웃었다.
그래. 저 모습이야말로 진짜 사도다.
대적 불가의 괴물.
도무지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절망적인 존재와 다시 만난 것이다.
“사도여.”
너와 다시 싸우기 위해, 나는 지난 십 년을 백 년처럼 살았다.
“지난번에 너에게 맡기고 간 것을 돌려받을 때가 된 것 같구나.”
“……무슨 소리지?”
“천하제일도(天下第一刀). 내가 다시 가져가겠다.”
“…….”
그 광오한 선언에 삼사도의 미간이 불쾌한 듯 꿈틀거렸다. 그 어떤 도발에도 무심하던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헛된 꿈을 꾸는군.”
그러나 삼사도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도객은 다른 것에 신경 쓰며 벨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아까부터 사호와 싸우고 있는 자들 중 하나가 신경을 몹시 거슬리게 하지만, 일단은 눈앞의 생사대적(生死大敵)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죽여 주마.”
“아무렴. 그렇게 나와야지.”
두 절세도객이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칼의 궤적이 사납게 뒤얽히며 하늘이 몇 번이고 갈라졌다.
* * *
“뭐, 저런 괴물이…….”
귀령왕은 질린 눈빛으로 사사도를 바라봤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옥가면 너머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사파의 종주들은 한 명 한 명이 한 지역의 패자로 군림하는 초고수들이었다. 즉, 강기마저도 다룬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공격도 혈교의 사도에게는 거의 통하지 않았다.
전설 속의 경지인 금강불괴(金剛不壞)가 떠오를 만큼 혈교의 사도의 육체는 강건했다.
일정 수준 이하의 공격은 아예 통하지 않았다. 그나마 강기가 맺힌 공격은 되어야 타격을 줄 만했는데, 그마저도 전신을 빈틈없이 두른 호신강기에 막혔다.
“……호신강기가 저토록 단단하다니. 들어 본 적도 없소.”
“내가중수법도 전혀 통하지 않아. 육체를 대체 어떻게 단련했으면…….”
녹의수사와 벽안귀가 지친 목소리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추혼궁귀는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때때로 흑사련주 쪽에 시선을 주었다. 가공할 충격파가 연달아 터져 나오고 있었다.
“…….”
아까부터 말이 없는 맹룡휘는 마치 표정이 없는 시체 같았다. 정면에서 사도의 공격을 받아내는 것이 무척이나 버거운 듯했다.
전황을 빠르게 살핀 귀령왕은 결심을 내렸다.
[본좌는 모산파의 문주인 귀령왕이오. 사도. 그대에게 제안할 것이 있소.]사도에게 전음을 보내며, 귀령왕은 조금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다.
결국 이해관계에 의해서 맺어진 관계였다. 상황이 바뀐다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누가 먼저 배신하기 전에 선수를 치는 것이 나았다.
[모산파는 혈교에 협력하겠소. 당장 이자들을 죽이는 것을 도와드리지. 대신, 몇 가지만 약조해 주시오. 우선 이자들의 시체를 가능한 한 온전히 남겨서…….]사사도가 공격을 잠시 멈추었다. 분명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인 것 같았다. 귀령왕의 옥가면 뒤에서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동의한 것으로 알겠소. 그럼 가장 성가신 맹룡휘부터 죽입시다.]휘익!
계속 후방에 있던 귀령왕은 갑자기 앞으로 달려들었다. 얼핏 사도를 공격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백수룡의 등을 노린 것이었다.
“……!”
그 순간, 백수룡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옆으로 움직였다.
촤아악!
귀령왕의 손톱이 허공을 할퀴고 지나갔다. 아슬아슬하게 백수룡의 어깨를 스쳤다.
“귀령왕! 무슨 짓이냐!”
그 모습을 똑똑히 지켜본 녹의수사가 노기 띤 얼굴로 소리쳤다. 벽안귀와 추혼궁귀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배신인가?”
“진작 죽였어야 했는데…….”
귀령왕이 사사도를 등지고 돌아서며 혀를 찼다.
“쯧. 눈치가 빠르구나. 하지만 본좌가 마음을 돌린 이상, 너희는 이곳에서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방울을 흔들자, 귀령왕을 호위하던 강시들이 흩어져서 사파의 종주들에게 덤벼들었다.
강시 자체는 그들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문제는 그 뒤에서 괴소를 흘리는 귀령왕과 사사도였다.
귀령왕은 이미 승리를 확신하며 킬킬거렸다. 다섯이서 사도 하나를 상대할 때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는데, 이제 전력은 명백히 이쪽이 압도했다.
“사도여. 내 공을 잊지 마시오. 참고로 본좌는 평소에 혈교의 술법에도 관심이…….”
덥석.
큼직한 손이 귀령왕의 어깨를 붙잡았다. 무지막지한 힘에 기겁한 그가 뒤를 돌아보며 말을 더듬었다.
“왜, 왜 나를……!”
귀령왕은 대답을 듣지 못했다.
대답 대신, 사도는 그를 종이 찢듯 둘로 찢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