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64
464화. 진심 어린 경고
“약하다니? 저 사도라는 자가 흑사련주를 봐주고 있단 말이냐?”
귀령왕이 날 선 목소리로 백수룡에게 물었다. 옥가면 너머로 번득이는 눈빛에 불신과 노기가 어려 있었다.
비록 귀령왕의 무공이 십존의 경지에는 미치지 못한다 해도, 그 역시 천하에 보기 드문 고수이자 뛰어난 술법가였다. 안목이 극히 뛰어나다는 말이었다.
“흑사련주를 상대로 여유를 부릴 수 있다면 저자가 천하제일인이겠지. 헌데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만?”
지금도 두 절세고수는 전력으로 부딪치고 있었다. 어디에도 여유나 방심은 보이지 않았다. 둘 중 어느 쪽도 서로를 압도하지 못했고, 거듭된 충돌의 여파로 축융봉 일대가 점점 폐허로 변해 갈 뿐이었다.
“……동감이오. 저건 누가 누굴 봐주는 싸움이 아니야.”
귀령왕처럼 빈정거리지는 않았지만, 벽안귀도 백수룡의 말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다만, 사도를 노려보는 벽안귀의 푸른 눈에는 진득한 살기가 맺혀 있었다. 그가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혈교…….”
어린 시절, 벽안귀는 혈교의 실험실에서 강제로 청안마공을 익혔다.
이름 모를 소년의 도움으로 간신히 도망치는 데 성공했으나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었고, 살아남기 위해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결국 정착한 곳이 악인곡이었다.
그 끔찍한 실험실에서 죽어 나간 어린 친우들의 비명이 지금도 귓가에 맴도는 듯, 벽안귀는 이를 빠드득 갈았다.
당시에 수라혈천도를 익히는 아이들의 상태를 살피러 왔던 삼사도의 모습을 스치듯 본 적이 있었다. 워낙에 강렬했던 인상이라 오래된 기억 속에서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저, 저자가 혈교라고?”
귀령왕이 깜짝 놀란 목소리로 묻는 가운데, 녹의수사가 침중한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제 눈에도 봐주는 것은 아닌 듯한데…… 저자를 아십니까?”
돌아가는 상황이 급박한지라, 이제는 듣는 귀를 신경도 쓰지 않고 백수룡을 사형으로 대했다.
“……봐준다는 말이 아니야.”
백수룡이 처음보다는 차분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 옛 제자와 조우한 충격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이 상황에 적응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결국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다. 예상보다 빠르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차라리 지금 이렇게 만난 게 나을 수도 있어.’
삼사도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는 백수룡의 눈동자에서 조금씩 떨림이 줄어들었다. 그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사도는 아까부터 흑사련주의 공격을 막기만 하고 있어.”
수라혈천도는 살기가 지독하리만치 짙은 무공이다.
대부분의 초식이 공격에 집중되어 있으며, 자신의 안위조차 살피지 않고 사납게 몰아치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런데 지금 사도는 흑사련주의 칼을 막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백수룡이 아는 모습과 맞지 않았다.
‘어째서지?’
흑사련주도 백수룡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슨 속셈이냐고 물었다!”
일갈과 함께 흑사련주가 광폭하게 적월을 휘둘렀다. 수십 개의 궤적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데, 나중에는 그것들이 중첩돼 사나운 파도처럼 밀려왔다.
“…….”
사도는 그 거친 파도에 맞서 위태롭게 칼을 휘둘렀다. 하늘을 붉게 물들인 수라의 형상이 밀려드는 검은 파도를 향해 포효했다.
캬아아아아!
파도를 가르고, 헤집고,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그러다가도 적당한 순간에 물러나 호흡을 정리했다. 그 차분한 대응에 흑사련주의 눈썹이 사납게 꿈틀댔다.
“언제까지 미적거리는지 두고 보겠다.”
“……놀랍도록 강해졌군.”
흑사련주의 몸에서 펼쳐진 어둠이 더욱 사납게 날뛰었다. 두 절세고수가 벌이는 싸움의 여파가 축융봉을 폐허로 만들었다.
콰콰콰콰콰!
그들의 공력이 중간에서 섞여들면서, 두 사람을 중심으로 검붉은 소용돌이가 발생했다.
“죽기 싫으면 뒤로 물러나라!”
“공력을 끌어올려 호신기를 둘러라! 저 여파에 휘말리는 것만으로도 내상을 입을 수 있다!”
녹의수사와 벽안귀의 명령에, 함께 온 수하들이 해쓱해진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그들 모두가 세력의 정예들임에도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막대한 압력이 발생해 일대의 공간 자체를 짓누르는 탓이었다.
“저것이 정녕 인간의 싸움이란 말인가…….”
사파의 종주들과 백수룡 정도만이 불편함 없이 기파의 폭풍을 뚫고 경천동지할 싸움을 지켜볼 수 있었다.
“……저자가 혈마인가?”
귀령왕이 긴장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물었다. 모산파의 강시들은 주인을 중심으로 모여들어 진을 이룬지 오래였다.
수라혈천도의 공능으로 붉게 물든 하늘.
그리고 가공할 신위.
저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그런 오해를 할 법했다.
“……사도. 혈마를 보좌하는 절세고수들 중 하나다.”
백수룡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느새 많이 차분해진 표정이었다.
“저런 고수가 몇 명이나 더 있다는 말이냐?”
귀령왕은 경악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물었다. 백수룡은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채앵!
더 이상 분노를 참고 있지 못하겠는지, 벽안귀가 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나섰다.
“합공해서 죽입시다. 오늘 사도를 놓치면 천추의 한이 될 거요!”
새파란 눈동자에 살기가 가득했다. 녹의수사도 그 말에 동의하는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백수룡의 눈치를 살폈다.
“멈춰.”
벽안귀를 막은 것은 백수룡이 아니라 추혼궁귀였다.
그녀가 싸늘한 시선으로 벽안귀를 노려봤다. 아래로 내린 활에는 화살 하나가 걸려 있었다.
“아까 련주가 한 말 못 들었어? 누구도 이 싸움에 끼어들 생각하지 마.”
흑사련주가 폐관에 든 십 년을 곁에서 지켜본 추혼궁귀였다. 저 싸움이 저 사내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저자는 혈교의 사도요. 놓치면 흑사련에서 책임질 건가?”
벽안귀도 물러서지 않고 추혼궁귀를 노려보았다.
둘 사이의 거리는 고작해야 일장이었다. 추혼궁귀에게 크게 불리한 거리. 청안마공으로 극한의 안법을 단련한 벽안귀라면, 단 한 번만 화살을 피할 수 있다면 승산이 없지도 않았다.
“감히 누구에게 책임을 운운해?”
추혼궁귀의 몸에서 반투명한 아지랑이가 일렁이며 무시무시한 기파가 들끓었다. 동시에 활을 쥔 팔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일촉즉발의 설전에 귀령왕도 끼어들었다. 벽안귀의 편을 들려는 듯, 추혼궁귀를 향해 몸을 돌린 상태였다. 강시들이 주인을 따라 이빨을 드러냈다.
“당연히 기회가 있을 때 합공해야지. 사도가 부하들을 더 불러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사도는 혼자 움직여. 아마 련주의 행적을 알자마자 바로 추적해 왔겠지. 혈교에서 저자를 쫓아올 무인이 있을까?”
가만히 듣고 있던 녹의수사도 그 설전에 참여했다.
“내 생각은 좀 다르오. 합공을 하되 죽이지 말고 생포합시다. 혈교의 정보를 캐낼 수 있을 거요. 이 자리에 있는 고수들이 힘을 합친다면…….”
“……마지막 경고다. 아무도 움직이지 마. 대가리에 구멍 나기 싫으면.”
“당신 혼자서 우리 셋을 상대하겠다? 아무리 십존이라도 무리일 듯한데.”
“하! 이 새끼들이 진짜…….”
갑작스러운 사도의 출현에, 사파의 종주들끼리도 의견이 모이지 않고 충돌했다.
“…….”
오직 백수룡만이 설전에 끼지 않고 고민을 거듭했다.
삼사도에게는 분명 다른 의도가 있다.
이곳에 모여 있는 사파의 종주들이 신경 쓰여서 전력을 다해 싸우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지원군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일 가능성도 있었다.
‘만약 혈교의 지원군을 기다리는 거라면?’
백수룡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저기서 싸우고 있는 사도는 자신의 옛 제자였다.
뿐만 아니라, 지금 혈교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수뇌부 모두가 그의 제자들이었다.
특히 일사도.
과거에도 일호는 제자들의 중심이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일호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삼사도가 노리는 상대는 무림십존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흑사련주이며, 과거에 한번 놓친 경험이 있는 상대였다.
똑같은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려면?
“……혼자만 보내진 않았겠지.”
확신에 가까운 직감이었다. 백수룡은 그 즉시 강하게 진각을 밟았다.
콰앙!
말다툼을 벌이던 종주들이 일제히 백수룡을 돌아봤다.
“모두 싸울 준비해.”
동시에 백수룡은 내공을 거침없이 끌어올렸다. 더 이상 정체를 감추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콰콰콰콰콰-!
흑의무복이 미친 듯이 펄럭이고, 풍성한 담황색 머리칼이 하늘로 치솟았다. 역천신공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무지막지한 기세가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갔다.
“……!!”
“……!!”
귀령왕과 추혼궁귀는 물론이고, 백수룡의 진짜 정체를 아는 녹의수사와 벽안귀마저 경악한 표정이었다.
심지어 흑사련주와 삼사도도 맞댄 칼을 잠시 떨어뜨리고 백수룡을 바라봤다.
“…….”
삼사도의 무표정에는 미세한 균열이, 흑사련주의 표정에는 호승심과 경계심이 어려 있었다.
흑사련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설마 내 싸움을 방해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마치 그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백수룡은 모두에게 말했다.
“삼사도는 흑사련주에게 맡긴다.”
상대가 사파의 종주들임에도 하대에 거침이 없었다. 오히려 그 태도가 몹시 자연스러워, 듣는 자들도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우리는 다른 쪽을 맡는다.”
“다른 쪽?”
추혼궁귀의 질문에 백수룡은 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까마득히 먼 거리. 희미한 기척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미약했던 존재감이 한 호흡마다 수십 배씩 거대해지면서.
휘익!
구름이 흩어지고 무언가가 높게 솟구쳐 올랐다. 점처럼 몹시 작은 형상이었다. 그러나 한 번씩 도약할 때마다 산봉우리를 하나씩 건너뛰며 급격히 커졌다.
“저건……!”
“설마……!”
사파의 종주들도 그 존재감을 느끼고 눈을 부릅떴다. 가까워지는 기운이 흑사련주와 싸우고 있는 사도와 비교해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가장 먼저 상대의 정체를 눈치챈 백수룡이 덤덤한 목소리로 뇌까렸다.
“혈교의 네 번째 사도.”
백수룡의 말이 끝나고 한 호흡도 지나기 전에, 축융봉이 거대한 충격으로 들썩였다.
콰아아아아앙!
사납게 휘몰아친 흙먼지가 흩어지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살짝 굽힌 사내가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들었다.
“…….”
거령채주만큼의 거구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어떤 생물보다 거대하고 무거운 존재감을 뿌리고 있었다.
사내를 떠받친 대지가 무겁다고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늦었군.”
삼사도의 말에, 사내는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호…….’
백수룡은 또 한 명의 옛 제자와 마주했다.
그러나 처음 삼사도를 만났을 때와 달리, 흔들리던 눈빛은 오히려 침착하게 가라앉았다.
“다들 정신 바짝 차려.”
백수룡은 앞으로 나섰다. 수십 년 만에 마주한 제자의 가공할 기파를 살갗으로 느끼며, 다가올 싸움에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임했다.
“절대 정면에서 막지 마. 그 자리에서 몸이 터져 버릴지도 모르니까.”
그것은 진심 어린 경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