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72
472화. 무사해서 다행이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녹의수사가 염려 가득한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형산을 떠난 일행은 무림인들이 몰려오기 전에 빠르게 이동했다. 벽안귀와는 반나절이 채 지나기 전에 헤어졌고, 녹의수사와는 며칠 더 동행했다.
그러나 정강산 초입에 도착하면서 그들의 동행도 막을 내렸다. 녹의수사는 장걸, 구길과 함께 염라채로 돌아가고, 백수룡은 곧바로 청룡학관으로 갈 예정이었다.
“오는 동안 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못했는데……. 부디 며칠만 쉬다가 가시지요.”
녹의수사는 백수룡에게 염라채에 들러 쉬었다 가기를 청했다. 그의 부상이 일행 중에서도 가장 심한 탓이었다.
내상과 외상은 말할 것도 없고, 창룡신검에 관통당한 상처는 흉터가 선명하게 남았다. 핏물이 번진 무명천을 몇 번이나 갈아 주었던가. 그럼에도 이곳까지 오면서 백수룡은 신음 한번 흘리지 않았다.
지금도 백수룡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몹시 창백한 얼굴이었다.
“염라채에 가도 내 마음이 급해서 편하게 못 쉴 거야. 잠은 집에 도착해서 자면 돼.”
“사형…….”
녹의수사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지금은 옷을 갈아입어서 깔끔한 모습이었지만, 그가 겉으로 보기에만 멀쩡할 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토록 고집을 부리니, 사제 된 입장에서 억지로 염라채로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이곳에서 잠시만 쉬고 계십시오. 제가 서둘러 산채로 올라가, 청룡학관까지 사형을 호위할 녀석들을 내려보내겠습니다.”
“괜찮다니까 그러네. 곁에 이 녀석들도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백수룡이 옆으로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자, 은호가 고개를 치켜들며 가슴을 한껏 부풀렸다.
캬앙!
마치 자기가 안전하게 백수룡을 데리고 돌아가겠다며 호언장담하는 듯했다. 그러곤, 은호는 앞발로 발밑의 푹신푹신한 털을 툭툭 두드렸다.
크르르르…….
대호가 샛노란 눈동자를 빛내며 으르렁거렸다. 한때 거령채주가 가장 아끼는 맹수였으나, 지금은 말을 대신해 백수룡의 탈것 역할을 하는 녀석이었다. 다른 맹수들은 모두 흩어졌다.
“염라채에서 이 녀석이 뛰는 속도를 따라올 수 있겠어?”
“……어렵겠지요. 알겠습니다.”
결국 녹의수사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백수룡의 고집을 꺾는 것은 그로선 무리였다.
“은호야. 사형을 잘 보필해다오.”
녹의수사가 손을 뻗어 은호의 등을 쓸어 주자 기분이 좋은 듯, 은호가 갸르릉거렸다.
“그럼 이쯤에서 헤어지자. 인사가 길어져 봤자 아쉬움만 커지지.”
백수룡이 대호의 등에 훌쩍 올라타고, 은호가 그 앞에 자리를 잡았다.
장걸, 구길도 백수룡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형님! 가르쳐 주신 무공은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다음에는 수혁이랑 같이 놀러 오십시오! 제대로 대접하겠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백수룡의 지도로 몰라보게 강해진 두 사람이었다.
백수룡이 보기에는 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꾸준히 정진한다면 염라채를 넘어 녹림을 대표하는 고수들로 성장할 터였다.
백수룡은 창백한 얼굴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희도 잘 지내고.”
캬앗!
은호가 대호의 등을 톡톡 두드리자, 대호가 땅을 박찼다. 그러자 커다란 신형이 단숨에 쏘아졌다.
장걸과 구길은 작아지는 백수룡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수룡 형님은 철인인가 봅니다. 부상이 제대로 낫지도 않았는데, 오면서 표정 한번 구기시는 걸 못 봤다니까요?”
“괜히 십존이겠냐. 저만한 체력과 인내심이 있어야 절세고수가 되는 거지.”
“저 정도면 고통을 못 느끼시는 것 아닐까요?”
그저 경탄만 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녹의수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형도 사람이시다. 어찌 사람이 고통을 느끼지 못할까. 다만…….”
녹의수사는 벌써 작은 점이 되어 버린 백수룡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육신의 고통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으신 것 같아 걱정이구나.”
지난 며칠, 녹의수사는 백수룡이 짧은 수면을 취할 때마다 뒤척이는 모습을 보았다.
그가 온몸에서 식은땀을 흘리는 이유가 단순히 부상 때문은 아니었다. 잠결에 희미하게 중얼거리던 속죄와 사과의 말들. 녹의수사는 그 말들을 자신의 가슴 깊은 곳에 묻었다.
‘사형께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녹의수사는 백수룡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꽤 오랫동안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부디 이 모든 싸움이 끝난 후에, 사형이 행복해지시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짧은 말을 전한 후, 녹림왕은 형제들과 함께 염라채로 복귀했다.
* * *
“……서두르자.”
청룡학관으로 돌아가는 내내, 백수룡은 대호의 등 위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그러면서도 대호를 재촉했다.
캬앗!
대호의 등에서 떨어질 뻔한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그때마다 은호가 작은 몸으로 받쳐 주지 않았더라면, 꼴사납게 떨어져 바닥에 굴렀을 것이다.
“…….”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이었다.
백수룡의 의식은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의 경계에 있었다.
눈을 감으면, 충혈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던 사호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우어어어어!
망가진 성대에서 갈라져 나오던 짐승과도 같은 울부짖음. 고함인지 비명인지 알 수 없던 그 무엇.
수십 년 만에 마주한 옛 제자의 모습은 그만큼 강렬하게 뇌리에 남았다.
-날 알아보겠느냐?
어쩌면, 잊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한 질문이었다.
옛 교관 따위는 새카맣게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고.
백수룡이 자신의 전생을 떠올린 것은 고작해야 일 년도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옛 제자들은 오십 년이 넘는 세월을 고스란히 살아왔으니까.
끔찍한 과거를 잊어버리기엔 충분하지 않았을까, 하고 감히 바랐었다.
“……기억하고 있었어.”
사호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서로의 무공을 부딪치고 얼마 되지 않아, 녀석은 백수룡의 정체를 깨달았다. 의심조차 하지 않는 눈빛이었다.
훈련을 하는 데는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감정이 말살된 눈으로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던 앳된 얼굴이 떠올랐다.
사실은 말살된 것이 아니라 꾹꾹 감춰 두어야만 했을 수많은 감정들.
-나를 원망하나?
그때 솔직하게 대답해 주었다면, 미래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래. 내가 헌원세가를 몰살시켰다.
조소를 짓던 삼호의 얼굴도 여러 번 나타났다.
수라의 화신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불길한 모습. 끔찍한 살기를 전신에서 뿜어내던 옛 제자는 스승을 알아보지는 못했다.
-너, 다시 만나길 바라지.
백수룡은 그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때는 누구도 물러나지 않으리라는 것도.
“…….”
그날 이후로 많은 꿈을 꾸었다.
그것은 혈마의 술법으로 만들어진 꿈은 아니었다.
큰 싸움으로 인해 누적된 피로와, 오랫동안 마음속에 쌓여 온 죄책감, 과거와 현재의 기억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꿈들이었다.
꿈의 내용은 대부분 불행했지만, 종종 행복하기도 했다. 살아보지 못한 나날이었다. 그곳에는 일호와 이호도 있었다. 꿈에서 다시는 깨어나고 싶지 않은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백수룡은 억지로 눈을 떴다. 가슴에 난 상처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서두르자.”
한 번씩 온전히 현실로 돌아올 때마다 풍경이 바뀌어 있었다. 목적지를 향해 확실히 나아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역천신공과 녹림십팔식이 백수룡이 자는 동안 몸을 회복시켜 주었다. 천하에서 가장 괴이한 기운을 가진 역천신공이 내상을 저절로 회복시키고, 신체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천하제일인 녹림십팔식이 육체에 기력을 북돋워 주었다.
물론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려면 제대로 된 휴식이 필요하겠지만, 가만히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백수룡의 몸 상태는 조금씩이나마 나아졌다.
끼잉. 끼잉.
백수룡이 죽은 듯이 선잠에 들 때면, 은호가 낑낑대며 그의 뺨을 핥았다.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할까 걱정하는 듯했다.
눈을 뜬 백수룡이 안절부절못하는 은호의 머리를 쓸어 주면, 그제야 겨우 안심한 듯 은호는 꼼지락거리며 백수룡의 품에 치댔다.
[……괜찮은 것이냐?]창룡신검이 부르르 진동하며 백수룡에게 온기를 전해 줬다. 원기를 보호하는 술법의 기운이 그를 따스하게 감쌌다.
백수룡은 힘없이 웃었다.
“둘한테 보살핌을 받으니, 갑자기 어린애라도 된 기분이군.”
[힘든 싸움이었지. 조금 더 응석을 부려도 괜찮다.]“응석이라…….”
백수룡이 다시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그런 걸 해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네. 어쨌든 몸은 점점 나아지고 있으니, 서두르자.”
[이렇게까지 서둘러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냐?]“……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몇 날 며칠을 그렇게 몽롱한 상태로 이동했을까.
남창에 도착한 것은 새벽이 다 되어서였다.
대호의 거대한 덩치로는 도시에 들어갈 수 없었다.
나중을 기약하며 가까운 산에 풀어 준 후, 백수룡은 곧바로 경공을 펼쳐 백룡장으로 향했다.
휘이익!
백룡장 앞에 도착한 그는 기척을 죽이고 조용히 담을 넘었다. 이 시간에 곤히 자고 있을 제자들을 깨우고 싶지 않아서였다.
드르렁~ 피유우-
문이 살짝 열린 방이 보였다. 안을 들여다보자, 대자로 드러누워 있는 헌원강의 모습이 보였다. 몹시 피곤했는지 세상 모르게 자고 있었다.
“…….”
백수룡은 문밖에서 헌원강의 잠든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방으로 들어가 아무렇게나 걷어찬 이불을 가슴께까지 끌어올려 주었다.
“원강아.”
백수룡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헌원강이 자신이 시킨 것 이상으로 미련하게 수련했음을.
그는 제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헝클어진 머리칼을 가볍게 쓸어 주며.
“……미안하구나.”
희미한 속삭임에 헌원강이 잠시 뒤척거렸지만, 깨어나지는 않았다.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와 손길이라서 전혀 경계하지 않는 듯했다.
백수룡은 조심스럽게 방을 나섰다. 열려 있던 방문을 닫고, 소리를 내지 않고 마당으로 나와 주위를 둘러봤다.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백룡장의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거상웅과 야수혁, 위지천도 잘 자고 있었고, 방 밖으로 느껴지는 여민의 숨소리도 편안해 보였다.
“……다들 무사했구나. 아무 일도 없었어.”
제자들이 모두 무사한 모습을 확인한 후에야, 백수룡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혹시나 이곳에도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 노심초사했던 것이다. 지치고 부상당한 몸으로 계속 서두르자고 대호를 재촉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
은호가 백수룡의 품에서 폴짝 뛰어내려 지붕으로 올라가고, 창룡신검이 허리춤에서 우우웅-! 하고 울었다. 반대편 허리춤에서는 적월이 조용히 달빛을 머금었다.
[너는…… 평소에는 놀랍도록 영리하다가도 어떨 때는 한없이 미련하구나. 어서 쉬러 들어가거라!]피식 웃은 백수룡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안 그래도 이제 쉴 거야. 내일부터는 다시 출근도 해야 하니…….”
그러나 온몸의 긴장이 탁 풀림과 동시에.
휘청.
백수룡의 몸이 옆으로 무너져 내렸다.
“아…….”
백룡장으로 돌아온 후에야, 백수룡은 자신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에 달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다행히 그의 몸이 바닥에 닿기 전에, 누군가의 손이 백수룡을 부드럽게 받쳐 주었다.
“선생님!”
하고 부르는 소리들도 들려왔다. 워낙에 많은 꿈을 꾼 탓에 헷갈릴 법도 했지만, 백수룡은 눈을 감고도 다가오는 기척들이 꿈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다.
“조금 피곤해서 그런 거니까, 법석 떨 것 없어…….”
“…….”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백수룡은 천 근은 되는 것처럼 무거워진 눈꺼풀을 들어 올리지 못하고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다음 날, 한낮에 눈을 뜬 백수룡은 자신을 내려보는 무시무시한 시선과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