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8
47화. 다음 차례요!
“아이고 우리 일오 형!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골 아프니까 흔들지 마라…….”
온몸에 고약을 붙이고 붕대로 둘둘 만 명일오가 침상에 일자로 누워 있었고, 그 옆에 악연호가 곧 눈물이라도 쏟을 것 같은 얼굴로 명일오의 몸을 마구 흔들어 댔다.
“잠깐 뒷간 다녀온 사이에 산송장이 되다니이! 형님! 형니임! 복수는 제가 꼭 해 드릴게요!”
“……백 형. 이 자식이 지금 저 약 올리는 거 맞죠?”
“그러게 아까 뒷간 자주 간다고 적당히 놀리지 그랬냐.”
“…….”
“아이고, 우리 일오 형! 장가도 못 가 보고 이대로 총각 귀신이 되면…….”
“……그만해, 이 자식아! 너 때문에 화병으로 죽겠다!”
결국 울컥한 명일오가 벌떡 일어나 팔을 휘둘렀고, 악연호가 후다닥 도망치면서 한바탕 난동이 벌어지려는 찰나.
“두 분 다 얌전히 못 계시겠습니까! 붕대에 피가 배어나지 않습니까!”
“죄송합니다…….”
“예…….”
결국 의원에게 한마디 듣고 나서야 둘이 얌전해졌다.
나는 철없는 둘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다 큰 놈들이 하는 짓 하곤…….”
다시 침상에 누운 명일오가 고개만 들어 나를 바라봤다. 녀석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기껏 도와주셨는데 면목이 없습니다.”
“됐다. 거기서 천뢰검법이 나올 줄 누가 알았겠냐.”
“재수 없는 면상에 한 방 크게 먹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제가 꼴사납게 져 버렸네요.”
“저쪽은 그렇게 생각 안 할걸.”
나는 피식 웃으며 명일오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명일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남궁수에게 명일오는 안중에도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 상대에게 잠시지만 쩔쩔매고 가문의 신공인 천뢰검법까지 사용했으니, 그 대단한 자존심에 금이 쩍쩍 갔을 것이다.
“지금쯤 이를 갈고 있을 거다. 입사하면 너나 나나 앞으로 고생 좀 할 거야.”
내 말에 명일오가 히죽 웃었다. 우리와 어울리다 보니 이 녀석도 조금은 변한 것 같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우리 둘이 마주 보며 씩 웃고 있으니, 악연호도 싸구려 악당 같은 미소를 지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흐흐흐…….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너 뒷간은 이제 안 가도 괜찮은 거냐?”
“……조금만 더 있다가 가려고요.”
악연호가 헛기침을 하며 엉덩이를 들썩일 때였다.
“우와아아아아!”
건물 밖에서 학생들의 우렁찬 함성이 들려왔다.
아직 실기시험 대련이 끝나지 않았으니, 아마 지원자와 강사 간의 대결 중에 명승부를 펼친 모양이었다.
명일오가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곧 형님 차례도 돌아올 텐데, 안 가 보셔도 됩니까?”
“때 되면 부르겠지.”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상대가 남궁수가 아닌 이상, 누구와 붙더라도 큰 의미는 없었다.
‘상대가 부관주나 매극렴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노군상이 그럴 것 같지는 않고. 아마 그놈이겠지.’
나는 내 상대를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
대련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 날 노려보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 그쪽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고.
끼이익.
그때 의원의 문이 열리고 내가 아는 얼굴이 안으로 들어왔다.
두 팔로 커다란 서책을 안고 의원 안을 둘러보는 여자, 제갈소영이었다.
“앗.”
곧 나를 발견한 제갈소영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환자분은 좀 괜찮으세요?”
“괜찮소. 대련은 어쩌고 여길?”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제갈소영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조금 전에 끝나서 바로 왔어요.”
잠깐만. 조금 전에 끝났다면…….
“조금 전에 학생들의 함성이 장난 아니던데……. 혹시 제갈 소저의 대련이었소?”
“아, 그게. 운이 좀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갈소영은 쑥스러운지 귀밑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내 시선을 피했다.
천무학관을 졸업하고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겼다고 들었는데, 그 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어린 학생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건 제갈소영의 얼굴이 아니었다.
‘어떻게 싸우는지 한번 보고 싶군.’
아무리 관찰력이 좋아도, 겉모습을 살피는 겉만으로 상대의 무공을 다 알 수는 없다.
제갈소영은 명문세가 출신답게 몸의 중심이 잘 잡혀 기본기가 튼튼해 보였지만, 그 외엔 어떤 무공을 익혔고 어떤 무기를 사용하는지 추측하기가 어려웠다.
‘무기는 판관필 하나만 다루는 건가?’
때마침 그녀가 가슴에 안고 있는 커다란 서책이 들어왔다.
살인적인 두께나 질겨 보이는 가죽으로 된 표지를 보니, 웬만한 병기보다 무겁고 튼튼할 듯했다.
‘설마 책을 둔기처럼 휘두르는 건 아니겠지?’
책을 향하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제갈소영이 두 팔로 책을 더 꽉 끌어안으며 경계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렇게 빤히 보세요?”
“혹시 모서리에 피가 묻어 있나 해서…….”
“……네?”
“아무것도 아니오. 그래서, 병문안을 온 거요?”
“그것도 있지만…….”
이때는 몰랐다.
제갈소영이 이렇게까지 눈치가 없는 여자라는 사실을.
어떻게 생글생글 웃으면서 이런 걸 물어볼 수 있단 말인가.
“우리 내기는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해서요.”
“……내기?”
“무슨 내기요?”
낯선 여인의 등장에 그때까지 숨소리조차 죽이고 있던 명일오와 악연호가 동시에 고개를 홱 돌려 나를 바라봤다.
나는 남궁수와 마주 섰을 때도 나지 않던 식은땀이 등에 흐르는 것을 느꼈다.
“내, 내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나는 겉으로는 모른 척하는 동시에 제갈소영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보시오, 소저. 그 얘긴 나중에 따로…….]하지만 내 전음보다 빠르게, 눈을 동그랗게 뜬 제갈소영이 그걸 기억 못 하냐며 친절하고 빠르게 다 설명했다.
“오십 합 안에 명일오 지원자가 남궁 오라버니를 쓰러뜨리는 거로 내기했잖아요! 벌써 잊으셨어요?”
“…….”
어색한 침묵이 의원 안에 감돌았고, 잠시 후 명일오가 배신당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형님……. 그래서 절 도와준 거였습니까?”
“그, 뭐냐……. 겸사겸사…….”
명일오가 상처 입은 표정으로 나를 외면했고, 악연호가 그 옆에서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와, 어쩜 그래. 그러니까 일오 형님이 목숨을 걸고 싸울 때, 수룡 형님은 그걸로 내기했다는 거잖아요?”
“솔직히 목숨까지 걸진 않았지.”
“와, 이 형님이 아직도 반성은 안 하고…….”
“…….”
나는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고, 두 녀석은 신이 나서 나를 물어뜯었다.
내 표정이 썩어 가는 것을 본 제갈소영이 소심하게 물었다.
“혹시 제가…… 뭔가 실수한 건가요? 그, 그렇다면 죄송해요. 평소에도 뭔가 하나에 빠지면 눈치가 없어진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서…….”
제갈소영이 작은 어깨를 움츠리자, 나를 비난하던 악연호와 명일오가 당황해서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소저는 잘못 없습니다! 잘못이 있다면 전부 수룡 형님 잘못입니다!”
……내가 이런 것들도 동생이라고.
어쨌든 제갈소영이 움츠러든 덕분에, 이때다 싶어서 실컷 날 놀리던 두 녀석도 더 이상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했다.
“다음부턴 조심할게요. 그런데요. 그 내기 말인데요…….”
조심하겠다고 하면서도 할 말은 끝까지 하는 여자.
그것이 제갈소영이었다.
그 집념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알겠소. 오십 합 안에 남궁수를 쓰러뜨리지 못했으니 내기는 내가 진…….”
“제가 졌어요.”
“……음?”
나는 입을 다물고 제갈소영을 바라봤다.
그러자 제갈소영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남궁 오라버니가 마지막에 사용한 초식. 그건 신입 강사 지원자의 실력 확인이 목적인 이 대련에선 사용해선 안 될 초식이었다고 생각해요. 하마터면 지원자가 크게 다칠 뻔했으니까요.”
제갈소영은 고개를 돌려 명일오를 바라봤다.
그의 몸에 난 수많은 상처를 본 그녀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 순간 남궁 오라버니가 천뢰검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분명 뒤로 넘어졌을 거예요. 그걸 몰랐다면 모를까, 알면서도 제가 이 내기에서 이겼다고 말할 정도로 염치가 없진 않아요.”
“음…….”
사실 나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주장이었다.
남궁수가 어떤 행동을 했건 그건 그쪽 사정이지, 넘어지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제갈소영은 얼마든지 자신이 이겼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기만의 소신이겠지.’
어쨌든 나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내기에 걸린 상품이…….
“제가 졌으니 내기 내용대로 소원을 한 가지 들어드릴게요. 제 능력으로 들어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음.”
제갈소영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 순간 동시에 양쪽에서 전음이 들려왔다.
[……소원이라고요?] [무엇이든 들어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한다고…….] [그, 그 어떤 것도…… 그렇다면…….]고개를 돌려보니, 둘 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악연호와 명일오가 붉어진 얼굴로 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었다.
……이 자식들이.
[이런 배신자!] [혼자서 저런 어여쁜 소저랑!]이 자식들 머릿속에 들어 있는 끈적끈적한 망상 때문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니들 적당히 좀 해라 진짜. 내가 제갈 소저 앞에서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겠다.”
“네? 부끄럽다니 뭐가요?”
순진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는 제갈소영의 시선을, 나는 감히 똑바로 마주할 수 없었다.
“흠흠. 소원은 나중에 말하겠소. 사실 지금은 생각해 둔 것도 없고.”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자리에서 말할 만한 종류의 소원은 아니었다.
“아, 네! 그럼 언제든지 생각나면 말해 주세요!”
“고맙소. 그 말을 하러 굳이 여기까지…….”
“사실 그 말만 하러 온 건 아닌데……. 물어보고 싶은 것도 조금 있고요.”
“물어볼 것?”
제갈소영은 책을 꼭 껴안은 채 맞닿은 두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내게 물었다.
“외공 강사에 지원하신 거로 아는데, 혹시 무림사 쪽에도 조예가 깊으신가요?”
“무림사라면?”
“아까 모용세가의 검과 곤륜파의 검을 비교해 주실 때, 양쪽 역사에 모두 해박하신 것 같아서…….”
“뭐…… 기본은 안다고 생각하오. 예전부터 관심이 조금 있어서.”
혈교의 무공교관으로서, 언젠가 무너뜨려야 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무공, 그리고 역사를 공부했으니까.
내 말에 제갈소영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그렇군요! 요즘엔 다들 무공만 익히지, 그 유래나 역사에는 관심이 없다니까요? 제가 천무학관에서 전공한 무림사 수업들도 수강생이 거의 없어서 몇 번이나 폐강했어요.
정말 관심 있는 학생이나 학점이 필요해서 듣는 학생들이 아니면 아무도 들으려고 하질 않아서……. 이게 말이 되나요? 그들에게 이런 말을 해 주고 싶어요. 역사를 잊은 무인에게 깨달음은 없다!”
숨 쉴 틈도 없이 빠르게 쏟아내는 말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 뭐, 그렇지.”
“저처럼 무림사에 관심이 있는 선생님이라니! 정말 너무 반가워요! 사실 기대도 안 했는데…….”
얼마나 흥분했는지, 제갈소영의 얼굴이 붉게 상기돼 있었다.
내가 여자였으면 두 손을 마주 잡고 폴짝폴짝 뛰었을 기세였다.
“저희 다음에 또 대화할 기회가 있겠죠? 그땐 지금보다 더 깊이 있는 대화를…….”
잔뜩 기대하는 얼굴에 대고 차마 귀찮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음. 우리 둘 다 신입 강사에 합격한다면 그렇겠지?”
“그럼 걱정 안 해도 되겠네요.”
제갈소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조금 더 나와 대화하고 싶은 눈치였으나, 명일오와 악연호를 슬쩍 보고는 얼굴을 붉혔다.
“또 저 혼자서 너무 신나서 떠들었네요. 환자분도 계신데……. 전 이만 가 볼게요.”
“살펴 가시오.”
“네! 다음에 또 뵐게요.”
선생님에게 인사하는 학생처럼 꾸벅 고개를 숙인 제갈영이 몸을 돌려 의원을 나갔다.
그 발걸음이 가볍고 쾌활해서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졸업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어쩐지 강사라기보다는 가르치는 학생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내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데, 내 옆에서 으스스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형님.”
“형니임…….”
제갈영이 있을 땐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하던 두 녀석이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
“뭡니까 혼자! 저희도 좀 친해집시다!”
“저렇게 아름다운 소저랑 언제 친분을…….”
“내가 뒷간에 가고 일오 형이 쥐어터지고 있을 때? 그때 수작을 부린 겁니까?”
“될 놈은 된다더니. 항상 남자 셋이 모여서 청승맞게 술을 마셨는데 어느새 혼자…….”
“앞으론 저분도 같이 먹자고 해요!”
……이놈들은 글렀어.
내가 혀를 차며 질척하게 달라붙는 놈들을 밀어낼 때였다.
“백수룡 지원자! 여기 있습니까?”
제갈소영이 나가며 닫혔던 의원의 문이 열리고, 청룡학관에서 근무하는 일반 무사 중 한 명이 들어왔다.
그가 날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 있었군. 서둘러 준비하시오! 다음 대련 차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