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92
492화. 다른 방법 (3)
콰아아아앙!
진각 한 번에 지면이 터져 나갔다. 이름 모를 야산을 뒤흔드는 절세고수의 발 구름. 더욱이 경악스러운 점은, 그것이 오로지 육신의 힘으로 만들어 낸 지진이라는 점이었다.
“큭……!”
한 차례 비틀거린 거상웅이 자세를 바로잡았을 땐, 사호의 신형이 이미 그의 눈앞에 도착해 있었다.
‘이게 내공을 안 쓴 사람의 움직임이라고?’
경악할 시간조차 없었다. 이미 코앞까지 짓쳐든 주먹을 보며 거상웅은 이를 악물었다. 피하기엔 너무 늦었다. 두 팔을 교차해 막는 것이 최선이었다.
콰앙-!
두꺼운 근육으로 뒤덮인 그의 두 팔은 언제나 든든한 방패가 되어 주었으나,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사호의 주먹이 두 팔을 교차한 거상웅의 몸을 그대로 날려 버렸다.
“커헉!”
이백 근이 가뿐히 넘는 거구가 주먹질 한 번에 허공을 날았다.
콰지지직!
거상웅이 나무를 몇 개나 부러뜨리며 날아가는 순간, 야수혁은 사호의 뒤를 노렸다. 먹이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기척을 죽였다가 폭발적으로 쇄도했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전신의 근육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댔다. 야수혁은 상대를 백수룡과 동격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젖먹던 힘까지 다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촤아아악!
통나무 같은 다리가 사호의 목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공기를 찢는 파공성이 무시무시했다. 두꺼운 철판도 우그러뜨릴 수 있는 힘이 담긴 발차기였다.
그러나 전력을 다한 야수혁의 공격은 사호의 손에 너무나 쉽게 붙잡혔다.
턱!
백수룡이었어도 피하거나 힘을 역이용해 흘려냈을 공격이었다. 자연스럽게 그다음 수를 계산하고 있던 야수혁은 처음 겪는 상황에 판단이 조금 늦었다.
“미친…….”
야수혁이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는 순간, 그의 발목을 움켜쥔 사호는 몽둥이라도 휘두르듯 그를 옆으로 휘둘렀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덤벼드는 거상웅을 향해서.
퍼어억!
근육질의 두 거구가 부딪치자 바위끼리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났다. 뒤엉켜 쓰러진 그들이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끄으윽……!”
“젠장! 다시 해!”
애초에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은 그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예 싸움이 성립되지 않을 정도일 줄이야.
거상웅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사호를 바라봤고, 야수혁은 분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를 갈았다.
“…….”
사호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둘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눈빛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웃옷을 벗어던진 거상웅과 야수혁의 몸은 훈련을 시작하자마자 흙투성이가 되었다. 다시 일어난 그들이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부릅뜬 눈에 오기가 가득했다.
“……한 번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만두 사형! 이번엔 각오하쇼!”
다시금 달려드는 두 사람을 보며, 사호는 조금 더 강도를 높여도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이번에는 야수혁의 눈앞에 나타났다.
“크허어엉!”
야수혁은 호랑이처럼 울부짖으며 주먹을 휘둘렀다. 구릿빛 근육이 폭발적으로 꿈틀댔다. 그러다 갑자기, 손가락을 맹금류의 발톱처럼 구부렸다.
순간적으로 권법을 중간에 조법으로 바꾼 임기응변이었다. 사호의 목울대를 노리는 손가락이 공기를 찢어발겼다.
“…….”
사호는 똑같이 조법으로 대응했다. 손가락과 손가락이 부딪칠 때마다 야수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고작 몇 합을 나누지도 않았는데 뼈가 저릿저릿했다.
우드득!
결국 손가락이 뒤로 꺾인 야수혁이 피가 나도록 이를 악물었다.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것만으로도 칭찬받을 만한 일이었지만, 사호는 훈련 중에 칭찬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
오히려 빈틈이 드러난 야수혁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커헉!”
허리를 꺾은 야수혁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격렬한 기침 사이사이에 피가 섞여 나왔다.
그러나 사호는 무심하게 돌아서며, 뒤에서 달려드는 거상웅을 상대했다.
“우어어어-!”
지면을 쿵쿵 울리며 달려오는 모습이 흡사 성난 곰을 보는 듯했다. 체중을 실어 어깨로 들이받는 공격은 단순하면서도 위력적이었다.
“…….”
사호는 피하지 않았다. 두 발을 적당히 벌리고, 허벅지에 힘을 줬다. 근육이 성난 것처럼 부풀었다. 한 자리에 천 년 동안 뿌리박은 거목처럼 버티고 선 채, 두 손을 뻗어 거상웅의 돌진을 막아 세웠다.
콰드드득……!
위압감에 움츠러들긴 했으나, 거상웅은 사호보다 머리 반 개가 더 컸다. 체중은 말할 것도 없었다. 천하를 다 뒤져도 보기 드문 용력을 타고난 육체. 단순히 힘 대결로는 야수혁조차 한 번도 그를 이겨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 순간 거상웅의 자부심은 산산조각이 났다.
“끄으윽……!”
“…….”
사호는 투명한 눈동자로 거상웅을 바라봤다.
자신을 조금이라도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거구의 무인을, 개미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꾸욱.
두 손이 거상웅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거상웅은 그 힘을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콰아아아앙!
바닥에 처박힌 거상웅은 몸에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썼다. 평소에 깔끔을 떠는 성격이지만, 지금은 흙먼지를 뒤집어써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반쯤 몸을 일으킨 거상웅은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선배! 정신 차리쇼!”
야수혁이 다가와 거상웅을 일으켜 세웠다. 사호는 그들을 공격하지 않고 잠시 기다렸다.
“…….”
흑백쌍웅.
청룡학관의 학생들이 거상웅과 야수혁을 묶어 부르는 별호.
서로를 제외하면 적수가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과 우월한 신체능력을 갖춘 둘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흑백쌍웅은 철저하게 약자로서 농락당하고 있었다.
부닥치고, 깨지고, 넘어지고, 주저앉고.
사호는 그들을 어린아이처럼 가지고 놀았다.
무위를 쌓아 올린 시간, 강적과 싸우며 생사를 넘나든 경험, 모든 것이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한 번 더…….”
“부탁드리겠수다!”
호기롭게 몇 번을 덤벼도 결과는 같았다. 압도적이고 처절한 패배. 그들이 아무리 전력을 다해도 사호의 미간조차 찌푸리게 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의 표정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통증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는 빈도도 잦아졌다.
백수룡에게 단련되었다 해도 견디기 힘든 끔찍한 훈련 강도.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공격은 지도가 아니라 일방적인 폭력처럼 느껴졌다. 숨 쉴 틈 없이 몰아쳐서 금세 한계에 도달했다.
“자, 잠깐만…….”
“조금만 쉬었다가…….”
그러나 사호는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무표정한 얼굴에는 일말의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건 잘못된 방법이었다.
“…….”
잘못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자신은 이 방법으로 지금과 같이 강해졌으며, 전성기의 녹림투왕조차 능가하는 무위를 손에 넣었다고.
그러니 자신들을 부정하지 말라고, 옛 스승에게 보란 듯 증명하고 싶었다.
“커허억!”
“쿨럭!”
사호의 무자비한 훈련 방식에, 거상웅과 야수혁은 점점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전신에 시퍼런 멍이 들고, 찢어지고 쓸린 상처에서는 피가 흘렀다. 목구멍에서 넘어오려는 핏물을 억지로 삼켰다.
그럴 때마다 몇 번이고 내공을 끌어올릴 뻔했다. 특히 아주 조금씩 반응이 늦어 공격을 허용할 때, 그런 유혹에 강하게 시달렸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사호는 귀신같이 알아채고 바위에 새겨진 글귀를 가리켰다.
내공을 쓰면 죽이겠다.
‘저건…… 진심이야.’
‘우릴 죽이고도 남을 거야.’
거상웅과 야수혁의 마음에 서서히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분노가 자라났다.
지금 내공을 사용한다면, 저 사내는 정말로 자신들을 죽일 것이다.
사호는 눈에 독기를 품는 그들의 시선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 눈빛이다.
-나를 원망하느냐?
원망하였다.
죽거나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 버텨 내야 했던 날들.
옛 스승은 항상 자신들을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독해지고 강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러니 다른 방법은 모른다.
“……만두 사형.”
비칠거리며 다시 일어난 야수혁이 사호를 도발하듯 이죽거렸다.
사호는 더 이상 자신을 부르는 호칭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뭐라고 부르건, 그는 이 훈련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 손등으로 입가에 피를 대충 닦아 낸 야수혁이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고맙수다.”
“……!”
사호의 주먹이 멈췄다. 그의 의아한 시선을 느낀 야수혁이 두 주먹을 맞부딪치곤 자세를 다시 잡았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까지 죽일 듯이 몰아붙이나 성질이 났는데, 이제야 조금씩 알겠거든.”
“…….”
조금 전까지와는 미묘하게 다른 자세.
사호는 그 차이점을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저건 분명히…….
“맹호투(猛虎鬪). 이렇게 하는 거 맞지?”
그 옆에서 거상웅도 다시 자세를 잡았다. 야수혁보다는 조금 더 무게중심이 아래로 내려간, 상대적으로 단단하고 무거운 자세를 취한 그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께서 저희는 아직 배우기 이르다고 하셨는데……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사형을 따라 해 보려니 엄청 어렵군요.”
“…….”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다.
훈련 과정 중에 스스로 깨우쳐야만 완전하게 자신의 것으로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단순히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처럼 보였을 테지만, 사실 사호는 정교하게 계산해서 두 사람을 한계 직전까지 몰아붙이고 있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깨닫도록 유도하는 혹독한 훈련.
저 둘의 수준으로 그 사실까지 알아차렸을 리는 없었다. 진짜로 죽일 것처럼 살기를 피워올렸으니까.
그러니 설령 훈련 중에 무언가 깨닫는 바가 있다고 해도, 자신에게 고마워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왜?’
“쓰읍. 원래 무공은 다치면서 배우는 맛 아니우?”
“자식아. 코피나 닦고 허세를 부려라.”
“하? 선배나 눈탱이 부은 것 좀 어떻게 하쇼.”
야수혁과 거상웅은 서로 농을 지껄이면서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어설프기 짝이 없는 맹호투의 자세를 흉내 내면서,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기꺼이 다시 싸울 준비를 했다.
“…….”
문득, 사호는 자신의 팔뚝에 소름이 돋아난 것을 보았다.
과거의 자신과 닮은 어린 무인들이 자신을 따라 하면서 맹호투를 습득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었다.
과거 혈교에서 녹림십팔식을 가르쳐 보려 했었지만 전부 다 실패했기에 더더욱.
-분명 더 나은 방법이 있었다. 너에게 꼭 그걸 알려주고 싶었다.
“…….”
그것은 사호가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 본, 성취감이라는 특별한 감정이었다.
“……왜 공격 안 하지?”
“선배님. 저희는 아직 더 할 수 있습니다.”
사호는 다른 사람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일에 서툴렀다.
심지어 평범한 사람들처럼 말로 조언을 해 줄 수도 없었다.
다만, 자신과 같은 무공을 익힌 옛 스승의 제자들에게, 몸으로 직접 보여 줄 수는 있었다.
끄덕.
고개를 끄덕인 사호가 다시 발을 굴렀다. 지면이 터져 나가며, 그의 신형이 둘에게 쇄도했다.
콰아아앙!
처음과 다르지 않은, 그러나 사실은 많은 것이 달라진 움직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