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47
547화. 역시 넌
쿠구구궁……!
바깥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진동에, 비밀통로로 빠져나가던 학생들이 움찔하며 뒤를 돌아봤다. 동굴 천장에서 우수수 떨어진 먼지가 그들의 머리와 어깨에 내려앉았다.
“토, 통로 입구가…….”
“무너졌어!”
“선생님들이 아직 다 못 들어오셨는데!”
행렬의 뒤쪽에 있던 학생들에게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비밀통로의 입구가 무너지고 있었다. 당황한 학생들의 움직임이 지체되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그들을 진정시켰다.
“당황하지 마! 추격자들이 붙지 못하게 하려고 선생님들이 직접 무너뜨린 거다!”
거상웅이었다. 천으로 둘둘 감긴 허리 부근이 피로 흠뻑 젖어 있었는데, 안색이 창백한 모습임에도 후배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가 빨리 빠져나가야 선생님들도 안심하실 거다. 그러니까 꾸물대지 말고 서둘러 움직여!”
그 곁에는 청룡오망이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학생들 중에서는 거의 마지막으로 비밀통로로 들어와, 자처해서 후방을 경계하는 임무를 맡았다.
모두가 크게 다쳤다.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은 자상, 독에 당했다가 간신히 해독한 흔적 등이 피부에 울긋불긋하게 남았다. 호흡이 거칠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청룡오망은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다친 편에 속했다. 몇 번이나 사선을 넘나든 그들의 몸에서는 짙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래서 더 청룡오망은 평소처럼 행동했다.
“수학여행이 이렇게 끝나 버리다니. 장기자랑에서 원강이 너 여장한 거 보고 싶었는데.”
“내가 미쳤어? 그딴 건 옥면음랑한테나 시키라고.”
“상웅 선배는 노래 부를 거라고 하지 않았수?”
“한 곡조 제대로 뽑으려고 했지. 아쉽게도 무산됐다만.”
“……주작학관이랑 승부도 못 가렸는데.”
“뭐, 천무제에서 다시 붙으면 되지.”
태평하게 떠드는 청룡오망의 모습에, 독고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학생회장으로서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시시덕거리는 그들의 모습을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다. 홱 돌아선 독고준이 청룡오망을 노려봤다.
“너희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농담이나…….”
“그냥 둬.”
목형우였다. 청룡오망을 꾸짖으려는 독고준의 어깨를 짚은 그가 고개를 저었다.
“선배님?”
“쟤들 표정을 봐. 저게 시시덕거리는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독고준은 청룡오망의 표정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전혀 농담을 하는 얼굴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불안해 보였고, 초조해 보였으며, 분한 감정을 꾹 누르고 있었다.
목형우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전장에서 많이 봤거든. 아무렇지 않은 척,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화나고 불안한 마음 달래는 거.”
“그런…….”
“아직 싸우고 있을 사람들이 무사히 돌아오라는 기원 같은 거기도 하고.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기다리고 있으면, 왠지 그들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올 것 같거든.”
“…….”
청룡·주작학관의 학생들과 강사들 대부분이 비밀통로로 대피했다. 협곡 안에는 이제 백수룡과 남궁수만이 남아서 혈교와 싸우고 있었다.
청룡오망은 누구보다 스승을 걱정하고 있을 터였다. 백수룡의 몸에 난 숱한 상처와 지친 모습을 직접 맞닥뜨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은 불안해하는 기색을 일절 내비치지 않았다.
‘우리가 불안해하면 다른 학생들은 더 불안해할 거야.’
‘선생님은 분명 무사히 돌아올 거야.’
‘그 인간이 쉽게 당할 리가 없잖아.’
청룡오망은 필사적으로 태연함을 가장하고 떠들었다.
이제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모두에게 말하려는 것처럼.
“허어. 누가 청룡신협의 제자들 아니랄까 봐……. 저런 모습까지 꼭 닮았구나.”
부관주의 부축을 받아 걷던 노군상은 그 모습을 보고 씁쓸하게 웃었다.
학생들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 어린 아이들이 너무 빨리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너무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곽철우의 말에 노군상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냥 어두운 표정은 아니었다.
“대신 아이들을 지키지 않았나.”
분명 청룡학관은 많은 것을 잃었다. 적지 않은 강사들이 회복 불가능한 부상을 입거나 전장에서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중 어떤 것도 의미 없는 희생은 없었다. 어른들의 목숨으로 지켜 낸 보물들이 이곳에 있었다.
“훗날 저 아이들도 다른 이를 구하고 도울 테지. 그것이 혈교와의 전쟁이든, 비정한 강호 무림에서든……. 그거면 충분하지 않겠나.”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통로를 빠져나가는 행렬의 속도가 빨라졌다. 그러자 청룡오망의 분위기도 점차 가라앉았다. 자신들의 역할을 다했다는 듯, 그들은 조용히 다른 학생들 뒤를 따라 걸었다. 종종 실없는 소리를 해 대면서.
“걸리적거리네. 확 짧게 잘라 버릴까.”
여민은 피와 땀으로 엉킨 머리카락이 무겁고 불편한지 대충 뒤로 넘겼다. 눈처럼 하얀 백발이 드문드문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불쑥 손을 내밀었다.
“이걸로 묶어.”
머리 끈과 빗이었다. 핏물로 조금씩 얼룩져 있었는데, 여민은 그것보다 그걸 건넨 사람에게 더 놀랐다.
“이런 걸 왜 가지고 있어?”
“…….”
헌원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한 번 더 빗과 머리 끈을 내밀었고, 여민은 엉겁결에 손을 내밀어 받아들었다.
“혹시 이거……?”
눈치가 빠른 여민이 묻자, 헌원강은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분위기 좋을 때 주고 싶었는데.”
비취색 머리 끈과 옥빗.
헌원강이 용돈을 모두 털어서 여민에게 주려고 산 선물이었다.
수학여행 내내 품 안에 넣어 둔 채로 계속 건네 줄 기회를 보고 있었지만, 혈교의 공격으로 엉망이 되어 버렸다.
특히 머리 끈은 장식마저 떨어져 버린 탓에, 헌원강의 눈에는 너무도 초라하게만 보였다.
“그래도 잘리거나 부서지진 않았으니까. 급한 대로 일단 쓰고 나중에 버려. 나중에 더 좋은 걸로…….”
“됐어. 이거면 돼.”
“어?”
헌원강이 당황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여민은 헝클어진 머리를 빗으로 깔끔하게 빗어 내린 후 머리 끈으로 질끈 묶었다.
붉은 얼룩이 점처럼 박힌 비취색 머리 끈과 신비한 분위기의 백발이 묘하게 잘 어울렸다.
“아깝게 버리긴 왜 버리냐? 잘 빨아서 쓰면 십 년도 더 쓰겠다.”
“…….”
그 순간 시무룩했던 헌원강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지더니, 급하게 뒤로 돌아서서 천장을 올려봤다.
여민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원강 선배. 설마 울어?”
“우, 울긴 누가 울어. 하, 하도 수전노처럼 구니까 어이가 없어서 그렇지.”
누가 봐도 눈물을 꾹 참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여민은 피식 웃으며 모른 척해 주었다.
그러자 헌원강이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준 선물을 평생 간직하겠다고……. 이건 분명…….”
“피를 많이 흘리더니 정신이 오락가락하지? 누가 평생 쓴대?”
그새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거상웅은 꼴같잖은 모습을 본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이 와중에 지랄염병을 떠는구나.”
“그러게 말이우.”
“…….”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세 사람은 피식 웃었다. 비밀통로로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보인 제대로 된 웃음이었다.
비밀통로의 긴 어둠이 끝나고, 저 멀리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깥이다……!”
비밀통로는 협곡의 반대편 산등성이로 이어져 있었다.
출구로 나오자 밝아 오는 아침햇살, 그리고 먼저 나와 있던 주작학관 강사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관주님. 괜찮으십니까?”
먼저 나와 있었던 사마영이 노군상에게 다가왔다. 처절한 사투를 증명하듯 그녀 또한 온 몸이 상처투성이였다.
“보다시피 썩 좋진 않네. 부관주는 어디 가고?”
“저희 부관주님은 부상자들과 함께 아래에 있는 마을로 가셨습니다. 뒤에 있는 학생들이 마지막인가요?”
“청룡학관 학생들 전원일세.”
“다행입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사마영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혹시, 저희 할아버님은…….”
“나보다는 백 선생에게 듣는 게 나을 것 같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미 염왕의 죽음을 짐작하고 있었던 듯, 사마영은 표정을 살짝 굳힐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슬픈 이별의 순간도 있었지만, 기적 같은 재회의 순간도 있었다.
“……천아! 천아!”
통로를 빠져나오는 동안 거의 말이 없던 위지천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고개를 홱 돌리고 어딘가로 달려갔다.
“할아버지-!”
그곳에는 염왕의 시신을 업은 위지열이 비틀거리며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멀리서 인파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찾아온 듯했다.
덥석!
전장에서는 누구보다 소름 끼치는 검을 휘둘렀던 소년이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선 뺨을 부비며 엉엉 울었다.
“천이 저 녀석. 저럴 땐 영락없이 어린애라니까.”
“살아 계셨구나. 다행이다…….”
할아버지와 재회한 위지천의 모습에, 청룡오망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운명이란 것이, 참으로 짓궂구나.”
노군상은 조부와 재회한 위지천과 하루아침에 조부를 잃은 사마영을 번갈아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할아버님…….”
사마영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위지열이 가져온 조부의 시신을 수습했다. 곤히 잠든 염왕의 표정은 다행히도 편안해 보였다. 사마영이 그 해쓱한 뺨을 한번 어루만졌다.
그 순간 철혈의 여인으로만 보였던 사마영의 눈에서는 한줄기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그러나 사마영은 금방 눈물을 그치고 강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주작학관의 모두가 염왕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학생들의 안전을 지킬 수 있었다.
“다들 정신 바짝 차리세요! 염왕께서도 본인 때문에 우리가 흔들리기를 원치는 않으실…….”
그때였다.
두두두두-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산을 올라오는 일련의 무리가 보였다. 속도가 평범하지 않았다. 경공을 펼치는 무인들이 틀림없었다.
“전투 준비!”
“학생들은 안쪽으로 들어가!”
“혈교의 후발대가 벌써 여기까지…….”
강사들이 고함을 지르며 진형을 이뤘고, 학생들도 이를 악물고 무기를 빼 들었다.
혈교의 후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었다. 그들을 피하기 위해서 비밀통로로 나왔던 것이니까.
하지만 새로운 적이 등장한 지금, 이제는 모두가 죽음을 각오하고 마지막 싸움을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그때, 달려오던 무리의 선두에서 깃발이 번쩍 치켜올려졌다.
“……무림맹이다!”
“적이 아니야! 아군이다!”
“사, 살았다…….”
산 아래에서 달려오는 무인들이 아군임을 확인한 순간.
털썩. 털썩. 털썩.
긴장이 풀린 사람들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일부는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의 시야에 하늘이 보였다.
길었던 밤이 끝나고, 비로소 아침이 찾아온 하늘이었다.
* * *
아래로 늘어뜨린 두 자루의 검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지독하게 덤벼들었던 혈교도들의 시체가 언덕을 이뤘다. 등을 맞댄 백수룡과 남궁수는 그 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더 이상 살아 있는 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백수룡.”
남궁수가 피곤이 묻어나는 음성으로 말했다. 백수룡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남궁수는 상관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방금 전까지 멀리서 느껴지던 기운들이 사라졌다. 혈교의 후발대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아는 게 있나?”
“……글쎄.”
“적들이 비밀통로로 빠져나간 학생들의 흔적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음.”
“내상이 심각한가? 운기가 필요하다면 호법을 서 주지.”
“……그럼 부탁 좀 할까.”
그 순간, 남궁수는 몸을 돌려 백수룡을 노려봤다.
“역시 넌.”
백수룡의 눈동자가 붉은색으로 변했다가 원래 색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백수룡이 아니군.”
한 걸음 뒤로 물러난 남궁수가 뇌굉을 들어 백수룡을 겨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