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73
573화. 아무리 봐도
흑도맹(黑道盟).
용사비등한 필체로 적힌 깃발이 바람에 세차게 펄럭였다.
정파무림의 무인들로 가득한 장소에 돌풍처럼 들이닥친 자들이 높게 치켜든 깃발이었다.
“흑도맹이라니…….”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오. 어느 식견 높은 고인께서 저치들이 누구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하늘 아래 스스로를 맹(盟)이라 일컫는 집단은 우리 무림맹 외엔 없소이다! 감히 사파 종자 놈들이…….”
뒤늦게 성벽과 담장, 건물 지붕 위로 올라온 무인들도 흑도맹의 병력을 바라보며 당혹스러운 음성으로 웅성거렸다.
그만큼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흑도맹이라 자처하고 나타난 자들 중에 고수가 아닌 자가 없는 듯했다.
특히 선두로 나선 사내가 방금 전 보여 준 신위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고수일수록 충격이 더 컸다.
“대체 저자는 누구입니까?”
“무시무시한 공력이 담긴 사자후였습니다.”
“능히 절세지경에 오른 고수인 듯한데…….”
천하를 혼자서 감당할 듯한 오만한 눈빛으로 좌중을 훑어보는데, 분명 아래에서 위를 올려봄에도 모두를 내려보는 듯했다.
그때,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입가에 느긋한 미소를 매단 채였다.
“문을 열라는 말을 못 들었나? 아니면 단체로 귀가 먹었나?”
“……!”
사납게 웃는 사내와 눈이 마주친 이들은 하나같이 몸을 움찔했다. 솜털이 주뼛 서는 감각에 저도 모르게 팔뚝을 쓸어내리며,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아미타불. 어찌 사파에 저만한 고수가 또…….”
“허어. 삼흉으로도 모자라 괴력난신이 또 하나 등장하였구나.”
불존과 검성이 거의 동시에 하늘에서 내려오며 탄식했다.
“대사. 저자가 용두방주가 말한 사파연맹의 맹주입니까?”
“아무래도 그런 듯합니다. 천하의 도마 소지광이 대체 어떤 자에게 자리를 양보했나 궁금했건만…….”
“기도를 숨길 생각조차 않는구려. 실로 패왕(覇王) 같은 기운이로다.”
정파의 절대자들이 기막을 펼친 채 대화를 나눴다.
심유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흑도맹을 이끌고 온 사내를 가늠하는 듯했지만, 동공만은 경악으로 흔들렸다. 크게 동요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두 사람보다 뒤늦게 내려온 천무학관주는 희열 어린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봤다.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소를 매단 채였다.
“놀랍군…….”
그렇게 모두가 흑도맹의 등장으로 큰 충격을 받은 가운데, 남궁수만은 전혀 다른 의미로 심마와 싸우고 있었다. 그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저, 뻔뻔한……!”
“남궁 소가주. 자네 표정이 왜 그런가?”
어느새 남궁수의 곁으로 다가온 개방주가 염려가 담긴 표정으로 물었다. 남궁수는 급히 표정을 관리하며 포권을 취했다.
“용두방주를 뵙습니다.”
“그래. 오랜만일세. 헌데 방금 전에 뻔뻔한, 이라고 하지 않았나? 안색도 영 좋지 않아 보이고…….”
개방주의 예리한 질문에 남궁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어지는 변명에는 본심이 절반쯤 섞였다.
“정파무림의 행사에 사파의 도당들을 몰고 온 저자의 작태가 참으로 파렴치하지 않습니까? 하여 저도 모르게 분기가 치밀었던 모양입니다.”
“허어. 그야 물론 맞는 말이네. 헌데 모르고 있었나?”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
개방주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기막을 펼치고 조용히 말했다.
“흑도맹주 맹룡휘를 천무제에 초대한 것은 다름 아닌 무림맹주라네. 자네는 이미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저자의 이름이 맹룡휘……입니까.”
들어 본 이름이었다.
호북에 도착한 첫날, 사파연맹의 맹주가 기존에 알려진 삼흉 중 하나가 아닌 낯선 자라며 불존, 맹주가 염려를 담아 맹룡휘라는 이름을 이야기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물론 그 자리에는 백수룡도 함께 있었다.
남궁수는 조용히 이를 갈며 섬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벼락이 튈 듯한 금안이 맹룡휘의 모습을 가득 담았다.
“삿된 것으로 모자라 철면피까지 두른 망종이었군.”
“……자네가 그토록 사파를 싫어하는 줄은 몰랐네.”
남궁수가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맹룡휘를 노려보자, 오히려 개방주가 당황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하여간 인상착의는 들었던 것과 거의 일치하네. 머리 색만 다르군. 분명 담황색이라 들었거늘……. 어쩌면 익히고 있는 신공절학을 펼칠 때만 변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혈마의 역천신공처럼 말일세.”
“…….”
개방주가 예리한 눈빛으로 맹룡휘를 바라보며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물론 그는 상상도 못 할 것이다.
거지들의 형제이자 자신의 은인이 사파의 대마두로 변신해 저쪽에 서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남궁수가 위장이 쿡쿡 쑤시는 느낌에 미간을 찌푸릴 때였다.
“허! 요란하게도 몰려왔구나!”
정파 진영에서 무림맹주가 앞으로 나섰다. 거침없이 성벽 아래로 뛰어내린 그가 흑도맹의 병력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무림맹주의 거대한 존재감이 맹룡휘의 기세를 밀어냈다. 상대적으로 경지가 낮은 정파의 무인들은 비로소 숨쉬기가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보게, 흑도맹주. 아무리 내가 초대장을 보냈어도 손님이면 손님다운 예의를 갖추어야 할 게 아닌가?”
무림맹주와 흑도맹주.
두 사내는 초면이었다.
야율황은 소문으로만 들었던 맹룡휘라는 사내와 직접 마주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굉장하군. 너와 같은 자가 어째서 지금까지 한 번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
“무림맹의 정보망이 형편없는 것은 아니고?”
맹룡휘가 피식 웃으며 받아쳤다. 무림맹주이자 천하제일권이라 불리는 사내를 상대로도 조금도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
한편, 방금 전 무림맹주가 한 말을 들은 정파 진영에서는 혼란이 커졌다.
“들으셨습니까? 맹주께서 저자들을 직접 초대하셨다고 합니다!”
“허어! 대체 어쩌시려고 사파의 무뢰한들을 축제에…….”
“혈교에 대한 복수심이 지나쳐 총기가 흐려지신 게 아닙니까?”
“절대 들여보내 주어선 안 됩니다!”
무림맹주가 사파의 무리를 천무제에 초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주변이 또 한 번 어수선해졌다.
떠들기 좋아하는 자들은 무림맹주에 대한 신뢰를 흔드는 말을 시끄럽게 지껄이고, 흑도맹을 비난했다.
그 와중에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은 조용히 사태를 주시했다. 그들은 맹주로부터 미리 언질을 받은 터라, 지금 이 상황에는 끼지 않고 지켜보겠다는 심산이었다.
맹룡휘가 턱짓으로 무림맹주 뒤편에 있는 정파 무림인들을 가리켰다. 그들 대부분이 흑도맹을 도시에 들이지 않겠다는 결의를 내비치고 있었다.
“맹주의 권위도 별것 없군. 집안 단속 하나 제대로 못 하면서 혈교와 싸우겠다고?”
“……너희가 소란스럽게 몰려온 탓에 일이 커졌다. 얌전히 손님으로 왔다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터.”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맹룡휘는 같잖다는 듯 피식 웃었다.
“이렇게 몰려와도 푸대접을 하는데, 우리가 공손히 머리를 숙이고 왔으면 과연 너희의 태도가 달라졌을까?”
“…….”
무림맹주는 순간 말문이 막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맹룡휘는 문제의 핵심을 짚었다.
정파 진영에서는 갑자기 몰려온 흑도맹을 보고 충격을 받았지만 그뿐이었다.
멸시와 천대.
저 위에서 아래를 내려보는 많은 정파 무림인들의 눈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
‘혈교와 전쟁이 벌어진다 해도 지금과 다를 바는 없겠지.’
정파는 지금 아쉬울 게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혈교는 이미 약해져 있고, 자신들만의 힘으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여기고 있을 터.
심지어 눈앞에 있는 무림맹주조차도 흑도맹의 전력이 꼭 필요한지 의구심을 갖는 기색이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맹룡휘가 이곳에 직접 온 이유였다.
“……어쩔 생각이지?”
뭔가 심상치 않은 기색을 눈치챈 무림맹주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묻자, 맹룡휘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어쩌긴. 정신을 차리게 해 줘야지.”
쿵!
맹룡휘가 가볍게 발을 구르자, 그의 뒤에서 흑립을 쓴 채 대기 중이던 자들 가운데 몇 명이 앞으로 나섰다.
“정파는 손님 대접을 이렇게 형편없이 하나?”
그중 한 명이 흑립을 뒤로 젖히자, 시리도록 푸른 눈동자를 지닌 사내가 얼굴을 드러냈다.
곧 정파 진영에서 사내를 알아본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자는…… 악인곡주 벽안귀!”
청룡신협에게 혈수귀옹이 죽은 후, 사분오열이 될 뻔했던 악인곡을 수습한 자가 바로 벽안귀였다.
강력한 무공과 지도력을 보이며 악인들을 하나로 규합한 후, 벽안귀는 죄질이 끔찍한 자들은 본보기로 목을 베어 관아로 보내고, 억울하게 악인으로 몰린 자들은 직접 그 원한을 해결해 주었다.
그 과정에서 정파의 위선자들이 저질렀던 여러 악행이 알려졌으며, 벽안귀가 다스리는 악인곡은 과거보다 더 큰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사파의 거두가 등장하자 군중들이 술렁였다. 그러나 벽안귀는 시작에 불과했다.
“그러게 말이오. 손님을 초대해 놓고 문조차 열어 주지 않는 경우는 처음 보는군.”
훤칠한 키의 중년인이 흑립을 뒤로 넘겼다. 서늘하면서도 깊은 눈매, 걸음과 음성에는 선비다운 격조가 묻어났다.
“……녹의수사!”
“최근에는 녹림왕이라 불린다는…….”
이번에는 군중들뿐만 아니라 구파일방 쪽에서도 반응이 있었다.
특히 청성파와 점창파의 고수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 술렁임이 컸다.
녹의수사 주표.
염라채의 채주이자 녹림칠십이채 녹림도들을 다스리는 녹림의 절대자였다. 그의 등장에 구파의 장문인들도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언제까지 올려봐야 하지? 점점 짜증이 나는데, 본보기로 한 놈 쏘아서 떨어뜨릴까?”
등에 활을 멘 큰 키의 여인이 흑립을 젖히며 짜증을 드러냈으며,
“궁귀. 아무리 그래도 동맹을 맺으러 와서 냅다 활부터 쏘아서야 되겠나?”
그 옆의 사내가 흑립을 슬쩍 들어 올리며 웃는 순간, 불존과 검성이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추혼궁귀, 도마 소지광까지…….”
“예상은 했지만, 흑도맹의 전력이 생각 이상이구려.”
사파의 삼흉이자 무림십존의 일원인 두 절세고수의 등장으로 흑도맹의 존재감은 화룡점정을 찍었다.
흑도맹주 맹룡휘의 좌우로 사파의 거두들이 날개를 펼치듯 늘어섰다. 자신들의 맹주보다 한 걸음 뒤였다.
“이래도 문을 열지 않을 건가? 아니면…….”
맹룡휘가 땅에서 오른발을 살짝 들어 올리자, 다른 네 명도 함께 발을 들었다. 그리고 다섯이 동시에 강하게 진각을 밟았다.
콰콰콰콰쾅―!
막대한 충격파가 발생해 정면을 휩쓸었다.
갑자기 발생한 진동에 성벽, 담장, 지붕 위에 서 있던 무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휘청거렸다. 일부는 망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으허억!”
“조심, 조심하시오!”
“이게 무슨 짓이냐!”
그 촌극을 느긋하게 지켜본 맹룡휘는 황망한 표정의 무림맹주의 곁을 지나쳐, 경악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정파의 무인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직접 열고 들어가길 바라나?”
숫제 협박이나 다름없는 도발에, 뒤에서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던 도마 소지광이 흡족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아무리 봐도 저 녀석은 천생 사파가 틀림없다.”
나란히 선 사파의 거두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