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87
587화. 이제 내 차례다
내 체중만큼의 황금을 걸겠다.
거상웅이 그 말을 내뱉는 순간, 관중들은 근육으로 이루어진 저 거구의 몸이 대체 얼마나 무거울지 상상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화, 황금이 저만큼이면…….”
“적어도 삼대는 평생 놀고먹어도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저 학생이 돈이 그렇게 많은가? 어지간한 문파도 그렇게 많은 황금은 마련하지 못할 텐데.”
“딱 보면 모르겠소?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기선제압을 하려고 허세를 부리는 게지!”
수군대는 관중들 사이에서 의심하거나 비웃는 목소리들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거상웅이 내건 조건이 워낙에 비현실적인 탓이었다.
하지만 그때, 흑도맹의 귀빈석에서 거구의 중년인이 벌떡 일어났다.
“본인은 금룡상단이라는 작은 상단을 이끄는 거일산이라는 장사치이외다!”
지나가는 사람이 보아도 거상웅과 혈연관계임을 알아챌 만한 체형을 지닌 거일산이었다. 그의 정체를 알게 된 군중들이 놀라서 웅성거렸다.
“금룡장주!”
“저, 저 학생이 금룡장주의 아들이라고?”
“금룡상단이면 천하십대상단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대상단이 아닌가!”
주변의 반응을 확인한 거일산은 울림통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비무대 위에 있는 녀석은 내 하나뿐인 외아들이오. 갑자기 황금을 걸어서 모두 놀라셨을 것이오. 저 녀석의 근수가 얼마나 나갈지 생각하면 애비인 나도 아찔하긴 합니다만…….”
금룡장주의 가벼운 농담에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황금으로 곳간 몇 개를 가득 채울 수도 있는 금룡장주에게, 그 정도 황금은 아무것도 아님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거일산은 비무대 위에 선 아들을 똑바로 바라봤다. 마주친 시선에서 자신을 믿어 달라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녀석.’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무공에 뜻을 두고, 천하제일권이 되겠다는 꿈을 가슴에 품었던 아들이었다.
그랬던 아들이 이 년 전, 천무제에 다녀오자마자 폐인으로 변했다.
총기가 가득하던 눈은 퀭하게 변했고, 도박장을 수시로 드나들기 시작했으며, 지나칠 정도로 식탐이 많아져 무인으로서 몸을 관리하지 않았다.
‘천하의 모든 돈을 주무를 수는 있어도, 자식 문제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지.’
정신 차리라고 무섭게 혼을 내기도 하고, 무엇이든 해 줄 테니 다시 무공을 익혀 보라며 애원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절망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지금 비무대 위에 오른 거상웅은 이 년 전보다 훨씬 더 헌앙한 청년이 되었다.
모두 다 백수룡이라는 은사를 만난 이후에 일어난 변화였다.
거일산이 고개를 돌려 백수룡을 바라보자, 백수룡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 보십시오.’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마주 고개를 끄덕인 거일산이 배에 힘을 주고 관중들에게 선언했다.
“나 금룡장주 거일산이 보증하리다! 만약 내 아들이 박투비무에서 진다면, 천무학관의 초일 학생에게 약속한 만큼의 황금을 내어줄 것이오!”
제 체중만큼의 황금을 판돈으로 걸다니, 누구 아들인지 배짱이 제법이지 않은가.
가진 것은 돈뿐인 아비로서 도와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아직 거일산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또한 이번 비무의 결과와 상관없이, 오늘 하루 이곳에 계신 모두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겠소이다! 인근의 객잔에 가서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기시길 바라오! 계산은 전부 금룡상단에서 할 것이니!”
우와아아아!
금룡장주가 화끈하게 전낭을 풀자 관중석에서 열화와 같은 함성이 터졌다. 누구든 공짜 음식과 술을 마다할 사람은 없었으니까.
거일산은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를 느끼며 자리에 앉았다. 그는 아들의 방황과 권패 초일이 관련돼 있음을 알고 있었다.
“내 아들이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하리라 믿는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제대로 설욕하고 오너라.”
마치 아버지의 응원을 듣기라도 한 듯, 거상웅이 씨익 웃으며 두 주먹을 가슴 앞에서 강하게 부딪쳤다.
* * *
“누가 그 스승에 그 제자 아니랄까 봐…….”
남궁수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손가락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의 시선은 편을 갈라서 열띤 응원전을 펼치는 관중들을 향하고 있었다.
“거상웅! 맹호권처럼 너도 상대의 콧대를 눌러 줘라!”
“초일! 이번에야말로 천무학관의 실력을 보여 주는 거다!”
“나는 청룡학관에 전부 걸었소!”
“초일이 일성과 같은 줄 아시나? 작년에도 용봉에 든 후기지수라고!”
마지막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첫 경기보다 오히려 훨씬 더 열광적인 반응이었다. 자리를 뜬 관중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거상웅이 깔고, 그 부친인 거일산이 불을 지펴서 커다랗게 키운 판.
어찌나 소란이 커졌으면, 안전을 위해 무림맹에서 경기 시작을 잠시 늦췄을 정도였다.
“……도박판이 따로 없군.”
남궁수의 예리한 기감에 곳곳에서 판돈을 거는 것이 포착됐다. 전낭이 쩔그렁거리는 소리, 승자를 예측하고 액수를 말하는 외침 따위가 사방에서 들렸다.
심지어.
“거상웅의 승리에 저희 이거 전부 걸게요!”
“이 자식들아. 너희까지 돈을 걸면 어쩌자는 건데?”
“아아악 왜요! 거저먹는 건데!”
남궁수는 헌원강의 귀를 붙잡고 질질 끌고 오는 백수룡을 바라봤다. 그 곁에는 은근슬쩍 도박판에 끼려다가 한 대씩 쥐어박힌 다른 학생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백수룡. 이것도 네가 꾸민 짓인가?”
“뭔 소리야?”
백수룡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남궁수를 바라봤다.
생활지도부 담당으로서 학생주임인 부친과 함께 도박판에 끼려는 학생들을 적발하고 돌아오는 참이었는데, 남궁수가 난데없이 시비를 걸어 왔으니까.
“너는 무슨 일만 생기면 전부 내가 한 짓인 줄 알아?”
“왜 그런 의심을 받는지, 네 양심에게 한번 물어보도록.”
“……흠흠. 아무튼 내가 한 거 아니다.”
양심에 찔리는 게 많은지 잠시 헛기침을 한 백수룡은 고개를 돌려 비무대 위의 거상웅을 바라봤다.
“전부 저 녀석이 직접 꾸민 거야. 덩치를 보면 뭐든지 힘으로 해결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아주 영리하거든.”
실제로 청룡오망 중에서 여민과 더불어 가장 눈치가 빠르고 머리 회전이 빠른 제자가 거상웅이었다.
외공을 주로 익혔지만, 필요한 순간에는 계략도 꾸밀 줄 아는 문무겸비의 무인이 그였다.
“지금도 봐. 거상웅이 분위기를 몰아간 덕분에 초일은 난감한 입장이 됐거든.”
“난감한 입장?”
제자의 속셈을 진즉에 눈치채고 있었던 백수룡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초일은 제안을 수락한 적이 없어. 그런데도 분위기가 비무에서 이기면 황금을 받는 것으로 흘러가 버렸지. 금룡장주가 확언까지 해 줬으니까. 즉…….”
남궁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안다는 듯 뒷말을 받았다.
“반대의 경우, 권패라는 별호를 확실하게 빼앗긴다는 의미이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맞아.”
백수룡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비무대 위 초일을 바라봤다. 그의 입가에 싸늘한 조소가 맺혔다.
초일은 애써 무심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당황한 기색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했다.
“어마어마한 황금에 놀라서 바로 거절하지 못하고 굳어 있는 동안, 자연스럽게 내기가 성립돼 버린 거야.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거지.”
반면, 거상웅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아주 흡족한 감정이 담겼다.
“누구 제자인지 참 잘 배웠다니까.”
“근묵자흑이란 건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쉰 남궁수가 말을 이었다.
“초일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쉽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거상웅도 알고 있어. 그렇게 무모한 성격은 아니거든.”
“그런데도 이런 판을 만든 건…….”
“그만큼 반드시 설욕하고 싶다는 거겠지. 너도 짐작하고 있잖아. 이 년 전의 천무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실패한다면?”
남궁수는 초일에게 마음이 꺾이고 이 년간 폐인처럼 살았던 거상웅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그 과거가 되풀이되진 않을까 염려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백수룡이 남궁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되물었다.
“실패할 것 같아?”
“…….”
남궁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거상웅을 바라봤다.
관중들의 소란이 다소 진정되자 사회자가 비무를 곧 시작하겠다고 알렸다.
비무대 중앙으로 걸어온 두 소년이 마주 섰다.
잔뜩 굳은 표정의 초일과, 그 앞에 덤덤히 선 거상웅이 보였다.
“권패 거상웅이라……. 나쁘지 않군.”
“그렇지?”
남궁수의 중얼거림에 피식 웃은 백수룡이 두 손을 모아 제자를 응원했다.
“그간의 성과를 보여 줘라, 거상웅! 단숨에 패대기쳐 버리는 거다!”
거기까지만 하면 좋았을 텐데, 백수룡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기어이 더했다.
“선생님도 너한테 전부 다 걸었다! 그러니까 지면 어떻게 될지는 상상에 맡긴다!”
“……백수룡!”
청룡학관 일타강사의 노호성이 터져 나왔지만, 곧 경기가 시작되면서 관중들의 함성에 묻혀 버렸다.
* * *
‘빌어먹을…….’
초일은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표정을 굳혔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했다.
거상웅이 어마어마한 황금을 제안한 순간, 곧바로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그깟 황금에 무인의 명예를 걸라는 건가? 일고의 가치도 없이 거절하겠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누구든 망설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황금이었으니까.
잠시 갈등하는 사이에 내기를 받아들인 것처럼 상황이 진행되었다.
이제 이 비무에서 이긴다고 해도, 명예보다 황금을 좇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덩치에 안 맞게 잔머리를 썼군.”
초일의 빈정거림에 거상웅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무슨 잔머리?”
“비무에서 질 것을 예상하고, 내게 모욕이라도 주려고 황금을 제안한 것이겠지. 내가 모를 것 같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 같은데.”
거상웅은 팔을 돌려 어깨를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통나무 같은 팔이 부웅- 하고 공기를 갈랐다.
“그깟 거 푼돈이긴 하지만 너한테 줄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러니 헛물켜지 마라.”
“푼, 돈……?”
비무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들은 서서히 원을 그리며 돌면서 서로의 빈틈을 탐색했다.
이번에는 초일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거상웅을 도발했다.
“내공 없이 겨루는 비무라면 승산이 있다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초일도 충분히 큰 편이었지만, 거상웅의 육체는 하늘의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크고 튼튼했다.
하지만 초일이 보기에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피식.
“이 년 전에도, 내공이 없어서 나한테 두들겨 맞은 건 아니었잖나?”
와아아아아아아!
관중석의 열띤 응원 소리에 두 사람의 대화는 서로에게만 들렸다. 거상웅의 눈꼬리가 사납게 휘었다. 초일은 낄낄 웃으며 도발을 계속했다.
“뭐, 시간이 오래 지나서 잊어버렸을 수도 있지만…….”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초일의 눈에 섬뜩한 살기가 어렸다.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지 마라. 돼지.”
콰앙!
거상웅이 강하게 진각을 밟으며 달려들었다.
단순한 발 구름 한 번이 비무대를 흔들 정도로 강렬했다.
하지만 초일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드는 거상웅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옛일을 건드리니 쉽게 넘어오는군.’
절혼마장으로 심어 둔 마기는 없앨 수 있었을지언정, 상대에게 처절하게 박살나고 짓밟힌 기억은 없애지 못할 터.
그걸 적당히 자극하면, 이성을 잃고 덤벼들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일단 한 방 먹여 주마.’
초일은 큰 동작으로 달려드는 거상웅의 품으로 파고들며, 비어 있는 옆구리를 노리고 주먹을 휘둘렀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웃어?’
거상웅은 주먹을 막거나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을 활짝 열며 거리를 더 좁혔다.
흥분해서 도발에 걸려든 것은 전부 연기였다고 말하듯, 그의 표정은 아주 평온했다.
퍼어억!
둔중한 소리가 울려 퍼졌으나, 초일이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다 했냐?”
초일은 고개를 들어 거상웅을 바라봤다.
의도적으로 맞아 준 일격(一擊).
첫 경기에서 일성이 야수혁에게 했던 것과 같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너, 설마 일부러…….”
“모기가 물었나. 간지럽네.”
거상웅은 초일의 주먹에 맞고도 단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았으니까.
“이제 내 차례다.”
터억.
거상웅의 커다란 손이 초일의 어깨를 붙들었다. 그리고 곧 무시무시한 악력이 뼈를 부러뜨릴 듯 옥죄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