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86
586화. 내가 이기면
야수혁의 첫 승리로 청룡학관은 완전히 축제 분위기였다.
강사들은 그나마 체면을 차리느라 입꼬리만 씰룩이며 점잖게 기뻐하는 데 반해, 학생들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숨김없이 표출했다.
“청룡오망나니가 드디어 해냈다!”
“야수혁! 저 덩치가 뭔가 보여 줄 줄 알았다니까!”
“하하하하! 천무학관도 별것 아니구만?”
마치 벌써 천무제를 제패하기라도 한 것처럼 기세가 등등했는데, 타 학관 학생들은 그 모습을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면서도 함부로 무시하거나 깎아내리지 못했다.
‘이름도 못 들어 본 청룡학관의 일 학년이 천무학관 학생을…….’
‘그것도 소림 출신을 상대로 이겼다고?’
‘이게 말이 돼?’
첫날 첫 번째 경기부터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변이 발생했다.
청룡학관과 인연이 있는 주작학관 진영에서만 축하의 박수 소리가 들려올 뿐, 그 외 학관에선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천무학관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오히려 천무학관은 대체로 침착한 분위기였다.
천무학관 강사들은 방금 전 야수혁과 일성의 박투비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학생들은 조금은 당황한 기색일 뿐 분위기가 가라앉지는 않았다.
천무학관 학생회장 일각이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승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 했습니다. 비무를 하다 보면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일이지요.”
같은 소림의 제자가 첫 경기에서 패했음에도, 소림신룡이라 불리는 일각의 부동심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 듯 보였다.
“중요한 것은 패배를 반면교사 삼아 오만한 마음을 떨쳐 내고, 다음 경기를 잘 준비하는 것이겠지요.”
“맞습니다.”
“자자, 다들 제대로 긴장하자고!”
천무학관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를 독려했다.
비록 첫 경기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그들의 표정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바로 그때, 야수혁과 일성의 경기를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본 천무학관주가 자리에서 스윽 일어났다.
곧바로 모두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야수혁 학생.”
비무대에서 내려간 후, 청룡오망에게 둘러싸여 애정 어린 추궁과혈(?)을 받고 있던 야수혁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올해 천무제에 첫 출전인데, 별호는 없습니까?”
“그, 거상웅 선배랑 묶여서 흑백쌍웅이라고 불리긴 합니다만……. 저만 따로 불리는 별호는 없는데요.”
야수혁이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대답하자, 천무학관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리고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 관중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천무제에 첫 출전한 학생이 이변을 일으키거나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 준 경우, 상대방 측에서 별호를 지어 주는 것이 그간 천무제의 오랜 전통입니다.”
그 말에 관중석이 크게 술렁였다.
천무학관주의 말대로, 천무제에 처음 출전한 무명의 학생이 이변을 일으킬 경우 상대방 측에서 별호를 지어 주는 것은 천무제의 오랜 전통이었다.
하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상황이었다.
“……지난 십 년 동안, 천무학관이 별호를 지어 주는 쪽이 되었던 적은 없지 않았나?”
“반대인 경우는 많았지요.”
지금껏 구파일방 출신 후기지수가 천무제에 처음 출전해서 파란을 일으킨 적은 많았다. 그리고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촉망받는 후기지수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천무학관이 아닌 학관의 학생이, 그것도 청룡학관에서 나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놀란 관중들의 반응을 둘러본 천무학관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상대인 일성 학생이 의식을 잃은 관계로, 별호를 지어 주는 역할은…….”
“빈승이 그 역할을 대신해도 되겠습니까?”
그때, 소림의 진영에서 불존이 조용히 일어섰다.
그러자 관중들의 웅성거림은 더 커져서 이제는 거의 시장통에 가까워졌다.
“부, 불존께서 직접?”
“허어! 올해 천무제는 시작부터 놀랄 일이 가득하구나!”
“이렇게 부러울 데가…….”
무림십존, 그중에서도 명망 높은 소림의 최고수가 직접 별호를 지어 준다니.
후기지수, 아니 무림인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천무학관주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요. 대사께서 직접 지어 주신다면 야수혁 학생도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녹의수사는 거의 혼절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눈을 부릅뜨고 입을 떡 벌린 채로 야수혁과 불존을 번갈아 보는데,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겨우 한 경기 이긴 거 가지고 민망하게 무슨 별호까지…….”
정작 당사자는 얼떨떨해하는 가운데, 불존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야수혁을 바라봤다.
“빈승은 야수혁 학생의 움직임을 보면서 산을 호령하는 대호를 떠올렸습니다. 또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지로 끝내 승리를 쟁취하였으니, 그 투지가 별호에 담겼으면 합니다.”
불존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여 야수혁 소협에게 맹호권(猛虎拳)이라는 별호가 어울릴 듯한데, 어떻습니까?”
맹호권, 맹호권……. 야수혁은 그 별호를 몇 번 중얼거리다가 씨익 웃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녹림투왕 맹호악의 이름, 그리고 그가 창안한 녹림십팔식의 정수인 맹호투를 연상시키는 별호를 얻게 되다니.
야수혁은 불존에게 힘껏 포권을 취하며 외쳤다.
“아주 마음에 듭니다! 감사합니다!”
맹호권(猛虎拳) 야수혁이 처음으로 자신의 별호를 천하에 알리게 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나란히 앉아 비무를 관전한 네 사람의 손에는 차갑게 식은 만두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
“…….”
“…….”
세 사람은 주변의 열광적인 분위기에 조금도 동화되지 못했다. 유일하게 한 사람만이 흐뭇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내 사제다.”
사곤은 만두를 한입 크게 베어먹으며 말했다. 식었지만 따뜻할 때만큼이나 맛있었다. 야수혁과의 추억이 깃든 음식이라서 더 그럴지도 몰랐다.
-만두도 얻어먹었는데 통성명이나 합시다. 난 야수혁이오.
-어? 만두 형씨다!
-만두 사형! 저희한테도 무공 좀 가르쳐 주십쇼!
별것 아닌 만두 하나로 시작된 관계였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나중에는 질투가 나서 일부러 엄하게 가르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그 큰 덩치로 졸래졸래 따라다니며 ‘사형!’이라고 부르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강해졌구나.’
사곤은 씨익 웃으며 야수혁을 바라봤다. 비무대에서 내려간 소년은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기분 좋게 활짝 웃는 모습이 그저 보고만 있어도 좋았다.
그는 야수혁에게 다시 전음을 보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건, 스승님에게는 아직 비밀이다.]그 순간, 야수혁의 어깨가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사곤을 돌아보거나 티를 내지는 않았다.
백수룡과 사곤 사이에 복잡한 사정이 있음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야수혁에게, 백수룡이 다가가선 수고했다며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때, 뒤늦게 다른 사도들이 한 명씩 입을 열었다.
“저거……. 네가 가르쳤어?”
이사도의 말이었다. 평소와 같이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사곤은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르치는 게 가능하다고?”
삼사도도 똑같은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비무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흑도맹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멀쩡히 살아 있는 도마 소지광 때문이었다.
하지만 비무가 시작되고 야수혁이 녹림십팔식을 펼치는 것을 본 순간, 삼사도의 시선은 야수혁에게 못 박힌 듯 고정됐다.
‘그렇다면 우리의 무공도?’
지금껏 혈교의 누구도 사도들의 무공을 제대로 익혀 내지 못했다.
그들이 어렸을 때 걸린 금제로 구결을 직접 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옛 스승이 남긴 무공이 잘못된 것을 알고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무공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과거에는 그 사실이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묘한 아쉬움 같은 것이 생겼다.
사도들 또한 오랜 세월 자신만의 무공을 완성한 절세고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곤에게 무공을 배운 것으로 보이는 야수혁을 마주한 순간, 다들 큰 충격을 받은 것과 동시에 복잡한 심경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맞다. 내가 가르쳤다.”
사곤은 자랑하듯 고개를 살짝 치켜들고 말했다.
일성과 박투를 벌이던 야수혁의 움직임에는 그가 전한 것들이 확실하게 녹아 있었으니까.
“기본은 이미 익히고 있어서, 내 깨달음을 담은 맹호투를 가르쳤다.”
“……!”
“……!”
마뇌가 걸어 둔 술법의 기운이 아직까지는 사곤의 몸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말을 하면 할수록 그 속도는 더 빨라졌다.
결국 다시 말을 못하게 되는 때가 올 것이다.
때문에 말을 최대한 아끼는 것이 좋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친우들에게 자신의 사제를 더 자랑하고 싶었으니까.
“내가 떠난 이후에도, 열심히 수련한 모양이다.”
“그래서.”
계속 말이 없던 일사도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사곤을 바라봤다.
“우리한테 이걸 보자고 한 이유가 뭐지?”
언뜻 아무런 감정도 깃들지 않은 눈. 하지만 사곤은 그 눈을 마주하며 알 수 있었다.
일사도가 누구보다 온 힘을 다해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격랑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도 냉정함을 가장하고 있음을.
“…….”
일사도가 아까부터 옛 스승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곤은 한동안 그와 눈을 맞추다가 말했다.
“계속 보다 보면 알게 될 거다.”
“…….”
일사도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정파의 고수들이 득시글거리는 용담호혈 한복판에 있었다.
섣불리 어떤 행동에 나서기보다는, 조금 더 정보를 모을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합리적이고 냉정한 판단이리라.
다른 사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복잡한 심경을 한쪽에 밀어 둔 채, 천무제를 계속 지켜보았다.
우와아아아아!
박투비무가 진행되면서 열기는 점점 뜨거워졌다. 승자와 패자가 나뉘고,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때론 실망한 관중들의 야유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사도들의 흥미를 끄는 대결은 없었다. 거의 마지막 순서가 되었을 때에야 사곤이 입을 열었다.
“나온다.”
사곤에게 무공을 배운 또 한 명의 사제가 나올 차례였다.
쿵.
박투비무에 출전한 학생들 중 가장 거구인 거상웅이 비무대에 올라갔다.
반대편에서는 천무학관의 유명한 후기지수, 권패 초일이 비무대 위로 걸어 올라왔다.
“권패 초일이다!”
“이번에야말로 천무학관의 명성에 걸맞는 실력을 보여 줘라!”
권패는 천하에 그 명성이 널리 알려진 후기지수였다.
천무제의 꽃이라 할수 있는 용봉비무에서 두 차례나 용봉에 들었던, 미래가 보장된 것과 다름없는 무인.
천무제 첫날인 외공 종목에서 대부분의 관중들이 그의 우승을 점쳤으며, 권패 정도 되는 실력자가 첫날부터 나온 것을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반면에 청룡학관 친구는 무명이지? 덩치 하나는 기가 막히는군.”
“혹시 또 알아? 맹호권처럼 대단한 실력을 보여 줄지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권패를 이기는 건 힘들겠지만…….”
대부분의 관중들이 일방적인 예측을 하는 가운데, 거상웅이 갑자기 관중석을 돌아보며 포권을 취했다.
“청룡학관 사 학년 거상웅입니다. 제가 고학년임에도 천무제에는 첫 출전인지라, 달리 별호는 없습니다.”
당당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거상웅의 모습에 관중들이 호기심을 느꼈다.
“그래서, 강호의 동도들께서 지켜보시는 가운데 비무 상대인 초일에게 한 가지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제안?”
초일은 싸늘한 표정으로 거상웅을 노려봤다.
그는 이 자리에서 거상웅을 끝장낼 생각을 하고 나섰다.
물론 보는 눈이 많으니 죽이진 못하겠지만, 다시는 무인으로서 재기하지 못하도록 망신을 줄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설마 거상웅이 먼저 뭔가를 제안할 줄은 몰랐다.
“그래. 제안이다. 받아들이지 않아도 뭐 상관은 없다만, 이왕이면 뭘 거는 쪽이 더 재미있지 않겠나?”
주제도 모르는 놈.
초일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어디 한번 들어 보지.”
거상웅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권패라는 별호. 내가 이기면 오늘부터 내가 쓰겠다.”
“……뭐라고?”
“대신, 네가 이기면 내 몸무게만큼의 황금을 주지.”
“……!”
대상인의 아들답게, 거상웅은 초일이 자신에게 빼앗아간 것을 전부 되찾아올 생각이었다.
물론 이자까지 제대로 계산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