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05
605화. 보고 있었더냐
곤륜의 장문인은 제자들을 데리고 본산으로 돌아갔다.
“……곤륜은 돌아가겠소.”
그의 제자 옥진은 졸업까지 천무제의 모든 대회 출전 금지라는 중징계를 받았으며, 수백 년간 최전선에서 마교와 싸워 왔다는 사실을 자부심으로 삼았던 곤륜의 명예도 바닥으로 추락했다.
제자를 감싸려다가 두 번이나 망신을 당한 장문인의 고집 때문이었다. 도망치듯 현장을 빠져나가는 그들의 등 뒤로 군중들의 실망한 시선과 소리 없는 야유가 따라붙었다.
“저희한테 잘못을 떠넘기려고 몰아가더니, 결국 곤륜이 전부 덤터기를 썼네요.”
“꼴 좋다 저 자식들. 나는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백수룡 선생님이 제때 오시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위지천과 헌원강, 그리고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독고준의 대화였다.
자초지종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진 후, 청룡학관 측은 단호하게 나서 학생들을 변호했다.
“청룡학관은 더 이상 부당한 처사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오. 싸움에 참여한 학생 전원이 공평한 징계를 받을 것이 아니라면, 더 이상 천무제에 참가하지 않겠소이다!”
다 같이 죽든가, 아니면 다 같이 살든가.
청룡학관주 대리 매극렴이 서슬 퍼런 음성으로 경고했다.
“어찌 같은 징계를 받는단 말입니까? 옥진이 무례를 범한 것은 사실이나, 먼저 주먹질을 한 것은 명백히 청룡학관 학생이거늘…….”
구파일방에서 항의하고 나섰으나, 징계의 결정권자인 천무학관주 또한 구파일방의 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는 재능 있는 후기지수가 징계 따위로 무공을 선보이지 못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천무학관주는 구파의 장문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분명 설득임에도 묘한 압박감이 있었다.
“학생들이 서로 잘못을 사과하고, 사문에서 따끔하게 훈계하는 선에서 마무리하도록 하지요. 구파에서 끝까지 청룡학관에 징계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천하가 여러분을 비웃을까 염려됩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에는 적당히 넘어가자는 말.
여기에 구파의 최고 어른인 검성이 사납게 눈을 치켜뜨고 학생들에게 호통을 치자, 일은 일사천리로 마무리되었다.
“너희가 뭘 잘했다고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있는 게냐! 어서 잘못했다고 사과하지 않고!”
검성의 일갈에, 그제야 싸움에 참가했던 천무학관 학생들이 먼저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그 전까지는 누구도 상상 못 했던 일이었다.
천무학관 학생회장 일각이 합장을 하며 독고준에게 고개를 숙였다.
“옥진 시주를 제때 말리지 못한 점, 또한 청룡학관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저희의 입장만을 관철하려고 든 점.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저희도 성급했습니다. 그리고 아까 대머리라고 부른 것……. 죄송합니다.”
“……아미타불.”
천무학관이 사과하고 청룡학관이 용서해 주는 모양새였지만, 더 이상 그걸 이상하게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두 학관 학생들이 벌인 소란은 마무리되었다.
“……돌아가자.”
“따라오너라!”
“너희 모두 각오하는 게 좋을 것이야.”
천무학관 학생들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사문의 어른들 뒤를 따라갔다. 몇몇은 억울한 듯 이를 꽉 악물기도 했고, 청룡학관 학생들을 잠시 노려보기도 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구경꾼들도 하나둘 흩어지는 와중에, 백수룡은 침중한 표정의 불존에게 다가가 말했다.
“부서진 가게의 손실에 대해서는 소림에서 배상해 주시지요. 불존께서 지붕을 부수며 나타나셨으니 응당 그리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룡학관의 강사 동기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백수룡이 괜히 불존을 도발하는 게 아닌가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존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아미타불. 이곳뿐만 아니라 이 일로 피해를 입은 인근의 상인들이 있다면 소림을 찾아오십시오. 소림에서 마땅히 그 피해를 모두 배상하고 지원할 것입니다.”
자비로운 불존의 목소리에 민초들이 저도 모르게 불호를 외웠다. 백수룡은 그 모습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구파가 전부 썩은 것은 아닌데…….’
백수룡이 보기에 불존과 검성으로 대변되는 소림과 무당, 개방, 아미 등은 여전히 정파를 대표할 만한 능력과 협의(俠義)를 지니고 있었다.
반면에 곤륜과 청성 같은 오만한 특권의식에 젖은 구파도 있었다. 그들은 너무 오랜 세월 평화와 책임 없는 특권을 누려 왔고, 주변에서 떠받들어 주는 탓에 오만해지기에 좋은 환경에 있었다.
불존과 검성도 이번 일로 그것을 느꼈는지, 표정들이 썩 좋지 않았다.
“……아미타불. 그럼 빈승은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내일 보세나.”
두 사람이 떠나고, 천무학관주도 묘한 눈으로 백수룡을 바라보다가 알 듯 말 듯 모호한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곤륜의 장문인을 겁먹게 한 눈빛. 무척 인상 깊었다네.”
관주를 마지막으로 천무학관과 관련된 이들이 전부 떠나고 난 후에야, 청룡학관 학생들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다들 요리점에서의 싸움으로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병사들처럼 의기양양했다.
“그 자식들. 조금만 더 있었으면 전부 바닥에다가 때려눕히는 건데.”
“우리가 이긴 것 맞지? 저 자식들이 먼저 내뺐잖아.”
“감히 우리 학생회장과 귀여운 일 학년을 건드려?”
“아까 노려보고 가는 눈빛들 봤어? 선생님들만 아니었으면 콱 그냥……!”
그러나 애매한 판정승에 기뻐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천무학관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자마자, 매극렴의 불호령이 청룡학관 학생들에게 떨어졌다.
“뭘 잘했다고 시시덕거리는 게냐! 숙소로 돌아가면 한 명씩 면담할 테니 그리 알도록 하거라!”
천무학관과 떼거리로 치고받을 때도 당당하던 청룡학관 학생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창백해졌다. 학생주임 시절부터 학생들 사이에선 공포의 대상이었던 매극렴의 개별면담이었다.
“둘 다 괜찮냐?”
백수룡은 헌원강과 위지천에게 다가갔다. 누구보다 무복이 엉망이었지만, 둘 다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헌원강은 손등으로 코피를 스윽 훔치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씨익 웃었다.
“당연히 괜찮죠. 중간에 말리지만 않았어도 저 자식들 전부 피떡으로 만드는 건데……. 끄악! 왜 때려요!”
백수룡은 뒤통수를 부여잡고 주저앉은 헌원강을 바라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
“뭘 잘했다고 으스대? 하마터면 징계받아서 용봉비무에 못 나갈 뻔한 녀석이. 일만 크게 키우면 다냐?”
“……저도 다 계획이 있었다고요. 설마 어른들이 나서서 그런 식으로 몰아갈 줄은 몰라서…….”
헌원강이 금세 기가 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칫했으면 위지천과 독고준까지 징계를 받아 용봉비무에 나가지 못할 뻔했다고 생각하니, 헌원강은 무모했던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죄송합니다……. 너희한테도 미안하다.”
백수룡은 고개를 푹 숙인 제자의 뒤통수를 한 대 더 때려 주었다.
이번에는 장난치듯 가볍게 툭.
“그래도 어디 가서 맞고 다니는 것보다는 낫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도 알겠고. 원강이 너, 이제는 머리도 제법 쓸 줄 안다?”
“……정말요?”
웬일로 칭찬을 해 주냐는 표정으로 헌원강이 되묻자, 백수룡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헌원강의 계획은 좋았다. 판을 크게 키워서 싸움에 참여한 모두가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 다음, 오히려 그것으로 아무도 징계를 받지 않게 상황을 유도하는 것. 크게 보면 백수룡이 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마무리가 조금 어설펐다. 상대가 먼저 선을 넘었다는 빼도 박도 못할 증거를 확보한 후에 행동에 나섰다면, 변수가 발생해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음부터는 판을 엎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라. 예를 들면 아까 전에…….”
어느새 헌원강과 위지천에게 어깨동무를 한 백수룡이 어떤 식으로 계략을 짜야 상대를 꼼짝 못 하게 할 수 있는지 속삭이기 시작하자, 독고준과 당소소, 다른 학생들도 슬금슬금 다가와서 듣기 시작했다.
“…….”
남궁수가 그 모습을 미간을 가늘게 모으고 못마땅한 기색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곤 다른 학생들에게 말했다.
“숙소로 돌아간다. 내일 있을 대회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니, 모두 면담이 끝난 후 바로 수면을 취하도록.”
내일 천무제에서 겨룰 종목은 다수와 다수가 부딪치는 모의전투(模擬戰鬪)였다.
어찌 보면 오늘의 연장전이라 할 수 있었기에, 학생들의 눈에 남다른 각오가 새겨질 수밖에 없었다.
“예!”
그리고 그때, 제자들과 함께 숙소로 돌아가던 백수룡은 자신을 향하는 강렬한 시선을 느꼈다.
‘음?’
그러나 뒤로 돌아선 순간, 거짓말처럼 기척들이 사라졌다.
표정을 굳힌 백수룡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설마…….”
장담컨대, 이 정도 거리에서 자신의 기감을 속일 수 있는 고수는 천하를 뒤져도 열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순식간에 기척을 감추고 사라진 이들의 존재감은…… 희미하지만 익숙했다.
“……보고 있었더냐.”
그들이 누구인지 짐작한 백수룡은 조금은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잠깐이지만 기도가 흔들렸구나. 너희들답지 않게.”
백수룡은 잠시 제자리에 서서 기척이 사라져 버린 어둠 속을 바라봤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앞서가던 헌원강이 고개를 돌려 그를 불렀다.
“선생님? 빨리 안 오고 뭐 해요!”
“…….”
지금 당장 흔적을 쫓는다면, 어쩌면 붙잡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백수룡은 그러지 않았다.
그의 품 안에는 옛 제자가 돌려준 청룡패가 있었다.
천무제가 끝난 후에, 친우들과 함께 스승님을 찾아가겠습니다.
그곳에 적힌 글귀를 떠올린 백수룡은 고개를 돌려 헌원강에게 말했다.
“그래. 금방 간다.”
이내 완전히 몸을 돌린 백수룡은 청룡학관의 제자들과 함께 밤거리를 걸었다. 벽에 비친 그림자가 아쉬움을 남기고 길게 늘어졌다.
* * *
아침이 밝았다.
관중들이 가득 들어찬 경기장에 오대학관 학생들이 입장하는 가운데, 지난밤 있었던 싸움으로 청룡학관과 천무학관의 분위기는 한층 더 날이 서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각 학관의 학생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마지막 작전회의를 했다.
목형우가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헌원강. 독고준. 위지천. 너희들은 오늘 출전명단에서 제외다.”
목형우는 더 이상 청룡학관에서 유일하게 전장을 경험한 학생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전장 경험이 많고 노련했다. 또한 대부분의 조별 과제에서 조장으로 우수한 성적을 거둬 모두에게 통솔력을 인정받은 학생이었다.
그러한 점들을 감안해, 목형우가 이번 모의전투에서 청룡학관의 대장으로 선발되었다.
“제외라고? 설마 어제 좀 다친 것 때문에 그래? 이 정도는 침만 바르면 낫는다니까!”
“선배님. 출전명단에서 저희들만 빼시는 것은 부당합니다!”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셋 다 강하게 반발했으나, 목형우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 또한 전략적인 판단이었다.
“너희는 내일부터 있을 용봉비무 예선을 위해 체력을 아껴 둬. 그리고 어차피 오늘은 너희가 나설 자리 없다.”
“진심이야? 우리를 빼고 천무학관 자식들이랑 붙겠다고?”
“선배님! 다시 생각해 주세요!”
헌원강과 위지천은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지만, 곧 거대한 손이 그들의 어깨를 뒤로 잡아당겼다.
“원강아. 천아. 너희는 뒤에서 얌전히 구경이나 해라.”
어느 정도 부상과 체력을 회복한 거상웅이 그들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그 옆에서는 야수혁이 목을 좌우로 꺾고 있다.
여민도 가볍게 몸을 풀었다. 경공 비무가 끝나고 푹 쉰 덕분에, 몸이 가벼워 보였다.
짜악!
그때 등짝을 때리는 찰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 손바닥의 주인공은 여민이 아니었고, 등의 주인공도 헌원강이 아니었다.
“부, 부회장? 왜 나를?”
독고준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당소소를 바라봤다. 당소소가 독고준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말했다.
“회장. 이번 종목은 저희를 믿고 맡기세요.”
“……그래.”
비로소 얌전해진 셋을 일별한 목형우는 모의전투에 참가하는 학생들을 돌아봤다.
그중에는 당소소, 유이란, 청룡쌍걸처럼 이름과 별호가 제법 알려진 학생들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같았다.
모두의 눈빛에서, 지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들 어제 들었지? 천무학관이 청룡학관을 얼마나 무시했는지. 출신이 천박하고, 수준이 낮고, 더러워서 냄새나는 촌뜨기에, 청룡오망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삼류들이라며 모욕했다!”
몇몇은 천무학관에서 한 적이 없는 말이었지만, 목형우는 아군의 사기진작을 위해 기꺼이 선의의 거짓말을 만들어 선동했다.
그 효과는 굉장했다.
“전부 밟아 버리자!”
“일 년간의 지옥 수련의 성과를 보여 주는 거다!”
“청룡학관의 망나니가 다섯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고!”
잠시 후, 목형우를 필두로 당소소, 유이란, 그리고 청룡학관의 많은 학생들이 앞으로 나섰다. 부상에서 회복한 거상웅, 야수혁, 여민도 합류했다.
“가자! 청룡학관!”
그들 모두가 백수룡의 수업 를 수강한 학생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