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11
611화. 그곳에 가면
쿠구궁……!
멀리서 느껴지는 미약한 진동에, 한자리에 모인 혈교 팔대 가문의 가주들이 회의를 잠시 중단했다.
“갑자기 지진이라니?”
“저 방향은…….”
하나같이 안광이 섬뜩하고 사나운 기도를 지닌 자들이었다. 질식할 듯한 마기를 전신에서 내뿜는데, 그것이 숨 쉬듯이 자연스러웠다.
“뇌옥이 있는 방향이로군. 밖에 있느냐? 무슨 일인지 알아보거라.”
상석에 앉은 거구의 노인이 바깥에 대고 명령하자, 곧 알겠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거구의 노인은 혈교 팔대 가문 중 주(朱)씨 가문의 가주 주일천이었다.
대장로가 죽고 사도들마저 갑자기 종적이 묘연해진 지금, 주일천은 혈교의 최고명령권자이기도 했다.
주일천은 다시 가주들을 둘러보며 조금 전까지 하던 말을 이었다.
“사도들이 행적을 알리지 않고 종적을 감춘 지 벌써 열흘 가까이 되었소. 더 이상 지켜만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급하게 가주들을 소집했소이다.”
이제는 일곱만 남은 팔가(八家)의 가주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탰다.
“그렇지 않아도 대장로의 죽음으로 교가 어수선한데, 사도들마저 제멋대로…….”
“대체 뭘 하기에 행적을 알리지 않는단 말입니까?”
“위지가의 늙은이가 본교를 배신한 선례를 잊어선 안 될 것이오.”
“설마…….”
사도들에 대한 불만과 불신의 말들이 흘러나왔다.
지난 수십 년간 사도들이 무너진 혈교를 재건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나, 최근의 행보는 의심스러웠다.
막대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산동악가의 분가에서 일사도가 청룡신협을 죽이지 않고 돌아온 것도, 그때 데려온 사사도를 뇌옥에 가둬 두고 사도들끼리만 추궁한 것도.
그리고 어느 날 행적을 알리지 않고 모든 사도가 한 번에 자리를 비운 것까지.
최근 교의 계획들이 대부분 실패한 것까지 더해져, 사도들에 대한 믿음과 충성심이 근간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한동안 다른 가주들의 성토를 들어주던 주일천이 입을 열었다.
“사도들의 행적을 조사하던 중, 지하 뇌옥의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것을 찾아냈소이다.”
주일천이 손짓하자, 한쪽에 놓여 있던 관이 저절로 열렸다. 그 안에는 반쯤 썩은 시체가 말라비틀어진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그 흉측한 형상에 팔가의 가주들조차 혀를 찼다.
“망령은 몸을 일으켜라.”
주일천이 부르자, 관 속에 누워 있던 마뇌가 힘겹게 눈을 뜨며 대답했다.
……본교의 아랫것이, 감히 누굴 함부로 부르느냐.
혈마가 남긴 역천의 술법이 깃든 목소리였다. 상대적으로 무공의 성취가 낮은 가주들은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주일천은 아니었다. 그는 소름 끼치는 안광으로 마뇌를 내려보며 말했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괴물 주제에 아직까지 자존심은 남아 있구나. 지금부터 묻는 것에 대답하라.”
클클. 네놈이 똥오줌도 가리지 못하던 시절에 노부는 지존을 곁에서 보필하였느니라. 늙은 애송아. 우선 예의부터 갖추거라.
그 순간, 거대한 손이 마뇌의 목을 덥석 움켜쥐었다. 사곤에 의해 한 번 부러졌던 목이 힘없이 덜렁거렸다.
“이대로 먼지로 만들어 줄 수도 있다. 냄새나고 쓸모없는 몸뚱이를 목에서 떼어내 줄 수도 있고.”
주일천의 안광이 자색으로 물들었다.
혈교의 십대마공 중 하나인 자전마공을 극성으로 익혔을 때 나타나는 현상.
지금껏 연배에서 대장로에게 밀려 앞에 나서지 않았을 뿐, 그는 혈교의 절세고수였다.
그깟 협박으로 내 입을 열 수 있을 성싶더냐? 우습고 하찮구나. 푸흐흐……. 푸하하하!
그러나 마뇌는 삶과 죽음을 초월한 존재였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느끼는 오욕칠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가 존재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곧 지존께서 돌아오실 것이다. 나는 알 수 있다. 역천의 기운이 천하에 퍼지고, 하늘의 눈이 혼탁해지면 괴력난신들이 횡행할 것이다. 아무도 막지 못할 것이야. 지존께서 돌아오시는 날, 나는 다시 그분의 옆에 설 것이다. 흐흐, 흐하하하……!
광기에 물든 시체가 쉼 없이 주절거리고 웃음을 터트렸다. 혈교의 가주들조차 질린다는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러다 거짓말처럼 뚝 웃음을 멈춘 마뇌는 잿빛 눈동자를 굴려 가주들의 면면을 훑었다.
오늘은 노부의 기분이 좋으니 특별히 말해 주도록 하마. 배교자들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한 것이지?
“……사도들이 배교를 했다는 것이냐?”
클클. 정녕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우매한 자들아. 너희가 사도라 부르는 자들은 지금…….
마뇌가 지하뇌옥에서 보고 들은 것을 가주들에게 이야기하려 할 때였다.
스스스슷…….
언제부터였을까. 어느새 스며든 어둠이 회의장을 잠식하고 있었다.
혈교 팔가의 가주들은 마기로 숨을 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자들.
그 탓에 마기와 비슷한 기운이 섞여들었음을 깨닫는 것이 늦었다곤 해도, 낯선 기운이 이토록 가까이 침범할 때까지 눈치채지 못한 것은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몇몇은 이미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감히 어떤 놈이냐!”
주일천이 문을 향해 장력을 날리며 일갈을 터트렸다. 회의장을 침범한 어둠을 밖으로 몰아내는 일수였다.
그리고 잠시 후, 산산이 조각난 문 너머에서 한 사내가 걸어 들어왔다.
“여기 다 모여 있었네?”
인세에 보기 드문 미공자였다.
완전히 하얗게 세어 버린 머리카락에 안색 또한 병자처럼 창백했다.
두 뺨은 홀쭉했고, 제대로 먹지 못한 듯 육신이 야위었다.
의복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대신 불길하게 일렁이는 어둠을 휘장처럼 몸에 두르고 있었다.
“늙은이들 쉰내가 지독하잖아.”
사내가 손으로 코를 막으며 말했다.
팔가의 가주들을 상대로 모욕 어린 언사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자.
그 자리에서 찢어발겨도 시원찮을 언행이었으나, 가주들 중 누구도 사내에게 화를 내지 못했다.
다들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상대를 바라볼 뿐이었다.
“오장로……!”
“흑야마제 저자가 어찌!”
“분명 지하뇌옥에 갇혀 있을……. 설마 아까 그 진동이…….”
팔가의 가주들이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교의 제일기재라 불릴 정도로 천고의 자질을 지닌 동시에, 극도로 위험한 자.
고위층 중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일사도가 흑야마제를 교의 후계자로 점찍어 두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나 그의 불완전한 정신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정 탓에, 결국 지하뇌옥에 반쯤 폐기한 채로 가두어 놓았다는 것도.
그 흑야마제가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은…….
“……설마, 대공(大功)을 이룬 것인가? 어떻게 저 미친 작자가…….”
공포와 혐오감을 동시에 담은 한 가주의 중얼거림에, 흑야마제가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왜? 그곳에서 얌전히 뒈질 줄 알았어?”
그 순간 심연을 품은 듯한 새카만 눈동자의 중심에서, 핏빛 기운이 번지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악!
극성에 이른 혈마안이었다. 붉은 보석안으로 변한 흑야마제의 눈에서 은은한 혈기가 일렁였다. 그는 자신을 미친 작자라고 칭한 가주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개가 주인을 봤으면 뭘 해야 하지?”
미처 손쓸 새도 없었다. 섬전처럼 뻗어 나온 어둠이 복부를 꿰뚫고 팔다리를 잘라 냈다.
“컥, 커헉……!”
흡사 어린아이가 곤충의 날개와 다리를 재미로 뜯어내는 듯했다. 바닥에 쓰러져 버둥거리는 가주에게 다가간 흑야마제가 싱긋 웃었다.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어야지.”
“사, 살려…….”
콰직!
쏟아진 뇌수와 핏물이 바닥을 적셨다. 죽은 가주는 강기를 다를 줄 아는 초고수였지만,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스스스슷…….
흑야마제가 몰고 온 시커먼 어둠과 핏빛 기운이 어우러져 회의장을 가득 채웠다. 그가 다른 가주들을 돌아봤다. 혈마안이 요사스러운 빛을 뿜어냈다.
“안 그래?”
살아남은 팔가의 가주들이 동시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처박았다.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었다.
“혈마재림 혈세천하! 존엄하신 지존을 뵙습니다!”
고개를 처박은 가주들은 안쓰러울 정도로 몸을 덜덜 떨었다.
그것은 본능에 새겨진 두려움이었다.
혈교의 마공을 익힌 자들은 그 누구도 역천신공의 기운을 거역할 수 없었다.
절세지경에 든 주일천만이 고개를 겨우 들 수 있었다.
“역천신공의 대성을 이룬 것을 감축드립니다…….”
흑야마제는 검은 마기와 혈기가 뒤섞여 혼돈을 이루는 모습을 바라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역천신공이 아니야.”
“……예?”
“역천흑야마경(逆天黑夜魔經)이다. 역천신공과 흑야마경을 하나로 엮은 고금제일의 무공이지.”
스스로 고금제일을 논했다.
광오하기가 짝이 없는 발언이었으나, 누구도 그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전생의 혈마를 기억하는 자들조차도.
자신 앞에 무릎 꿇은 가주들을 둘러보던 흑야마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사도는 어디 있지? 누구보다 먼저 만나고 싶었는데. 못 찾겠더라고.”
가주들이 눈치를 보며 침묵하는 가운데, 눈을 부릅 뜬 채 흑야마제를 바라보던 마뇌가 입을 열었다.
“지존, 지존이시여……!”
관에서 빠져나온 마뇌가 필사적으로 흑야마제에게 기어 왔다.
흑야마제는 살아서 움직이는 시체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봤다.
마뇌는 간절하게 주인을 부르며 온몸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오직 지존을 보필하고, 천하를 지존의 품에 안겨 드리기 위해 기다렸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수백 개의 계책이 있습니다. 저를, 저를 기억하시겠지요……?”
마뇌는 자신의 몸에서 역천의 술법이 남긴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흑야마제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기운이 급속도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흑야마제는 피식 웃으며 시체를 불러주었다.
그의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 수많은 기억의 파편들 중 하나를 떠올리면서.
“이장로더냐?”
감격한 마뇌가 부르르 떨었다. 몸이 빠르게 썩어 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깨닫지 못했다.
“맞습니다! 속하 이장로 마뇌입니다! 제 충정을 알아주십시오! 지존을 기다리며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기약 없는 삶을 연명해 온…….”
“내가 안배한 사도들은 어디에 있느냐?”
“……그 불충한 무리는 천무제를 보기 위해 떠났나이다. 지존이시여. 부디 저에게 배교자들의 단죄를 맡겨 주십시오!”
“천무제?”
마뇌가 희열에 들뜬 얼굴로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곧 지존의 옆에 설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듯했다.
“저를 부활시켜 주십시오. 지존의 광대무변한 능력이라면 능히 하실 수 있겠지요. 이 낡은 육신으로는 단죄하기 어렵나이다. 제가 준비해 둔 탈혼마인들의 육체가 있습니다. 그곳에 제 혼을 옮겨 주신다면 제 충심을 증명……. 지존이시여?”
바닥에 이미가 닿을 듯 엎드려 있던 마뇌는 고개를 든 순간, 멍한 표정이 되었다.
흑야마제가 웃음을 참으며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푸흡……. 아까부터 뭘 착각하는 모양인데. 난 네가 기다린 지존이 아니야.”
“예……?”
“그리고 하나 더 알려 주자면.”
흑야마제는 몸을 숙여 자신의 발치에 엎드린 마뇌와 눈을 맞췄다.
이제는 거의 다 썩어서 허물어지기 직전인 얼굴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네가 기다려 온 지존은 너한테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데?”
“무, 무슨 소리십니까. 지존이시여. 어째서 그런 말을……. 이 꼴로 당신만을 기다려 온 저에게……. 내게, 내게 이럴 수는 없어……!”
마뇌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허물어졌다.
그 끔찍한 최후를 지켜본 팔가의 가주들은 고개를 바닥에 처박고 몸서리를 쳤다. 그들은 흑야마제가 밖으로 나간 이후에도 한참 동안을 꼼짝하지 않고 그렇게 있었다.
“천무제라……. 그곳에 가면.”
밖으로 나온 흑야마제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봤다.
“저 하늘을 찢어발길 수 있다는 거지?”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듯한 혼잣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