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34
634화. 지금 이런 모습이
흐느적거리며 비무대에서 내려온 위지천을 청룡오망이 달려가 맞이했다.
“지천아!”
“천아!”
“이 멍청아!”
“괜찮아?”
각자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불렀지만, 위지천의 부상부터 확인하는 모습은 똑같았다.
다행히 크게 걱정해야 할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 청룡오망은 위지천을 가볍게 쥐어박기 시작했다. 그들만의 애정 어린 축하 인사였다.
“그하하! 우리 막내가 해낼 줄 알았다니까!”
잠시 후, 거상웅의 겨드랑이 사이에 얼굴이 끼인 위지천이 힘없이 파닥거렸다.
“수, 숨 막혀요…….”
순진한 눈망울로 주변을 둘러보며 도움을 요청하는데, 다들 도와주긴커녕 웃음만 터트렸다.
소림신룡을 피투성이로 만든 검객과 괴리가 커도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다.
곧 다른 학생들도 다가와서 위지천의 승리를 축하했다.
“……감격적인 승리였다.”
“대단했어! 내가 다 짜릿했다니까?”
독고준과 당소소, 유이란, 목형우, 남궁석, 유건과 유곤, 조별 과제를 함께했던 학생들, 친분이 깊지 않던 학생들까지 우르르 몰려와 축하 행렬에 동참했다.
그만큼 의미가 큰 승리였다. 비무의 내용도 훌륭했지만, 그 결과가 상징하는 바는 더욱 컸다.
“우리가, 용봉비무에서 천무학관을 꺾고 결승에 오르다니…….”
지난 십 년 동안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순간.
그렇기 때문에, 위지천의 승리는 아무리 많은 축하를 받아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너도 가서 축하해 주지 않고?”
백무흔의 말에 백수룡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그는 많은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쑥스러워하는 제자를 멀찍이서 바라보며 웃었다.
“눈치 없는 선생이 되고 싶진 않네요.”
괜히 끼어들어서 위지천에게 향하는 시선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한발 물러나서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이 순간의 주인공을 말이다.
그때 위지천이 누군가를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백수룡과 눈이 마주쳤다.
큰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에게, 백수룡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잘 싸웠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스승과 제자는 마음이 통했다. 활짝 웃어 보인 위지천은 다시 곁에 있는 학생들과 떠들기 시작했다.
“크흡. 괜스레 내가 눈물이 나오려 하는구나.”
“아버지가 왜요?”
백수룡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소매로 눈가를 찍는 백무흔을 바라봤다. 애들도 안 우는데 왜 아버지가 주책이냐는 표정이었다.
“너도 늙어 봐라 이놈아. 별것 아닌 일에도 감정이 울컥해지고 그런다.”
“갱년기라서 그런 건 아니고요?”
“……갱년기에 접어든 애비한테 한번 시달려 볼 테냐?”
부자는 괜히 티격태격했다. 그러면서도 둘 다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청룡학관의 모든 강사가 마찬가지였다. 다들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웃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온화한 미소로 주변을 놀라게 하는 인물도 있었다.
“나, 남궁 선생님? 방금 웃지 않으셨습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위지천의 승리가 청룡학관에 가져온 효과였다.
관중들도 조금 전 비무의 여운이 긴 듯했다.
검재 위지천을 연호하는 외침, 비무에 대한 수많은 감상들, 청룡학관의 우승을 말하는 목소리도 종종 들려왔다.
“천무제 우승이…… 정말 눈앞까지 왔군.”
남궁수는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표정 변화가 드문 얼굴에 묘한 감흥이 떠올랐다.
청룡학관의 학생들과 강사들, 그리고 천무제를 보기 위해 모여든 수많은 군중들.
그들을 천천히 둘러보던 남궁수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에는, 백수룡이 있었다.
남궁수의 시선을 눈치챈 백수룡이 다가가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남궁수 선생님. 왜 안 어울리는 표정으로 주변에 위화감을 조성하십니까?”
“……백수룡. 너는 이것도 예상했나?”
“뭘?”
“지금 이런 모습 말이다. 천무제에 참가한 학생들이 이토록 즐거워하고, 서로의 승리를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하나가 된 모습.”
“난 또 뭐라고.”
피식 웃은 백수룡은 주변을 스윽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전혀. 그때의 나는 천무제 우승에만 관심이 있었지, 이런 광경은 상상도 해 본 적 없었어.”
“…….”
“너는?”
“마찬가지다. 십 년 연속 최하위에서 벗어나 천무제에서 성과를 내는 것. 지난 몇 년 동안 오직 그것만이 내 목표였다.”
학생들이 한 경기 한 경기에 이렇게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모습은 애초에 두 사람의 계획에 없었다.
“…….”
“…….”
둘 다 잠시 말이 없었다.
지난 일 년 동안, 강사들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청룡학관에서 가장 뛰어난 두 강사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면, 지금 이런 모습이 천무제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
천무제를 준비해 온 지난 모든 시간과 과정들이, 두 사람에게 그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남궁수가 불쑥 입을 열었다.
“천무제가 끝나고 내년 학기가 시작되면.”
“음?”
“그때는 널 일타강사로 인정하지.”
청룡학관 일타강사에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
백수룡은 잠시 멍하니 남궁수를 바라보다가 씨익 웃었다.
“그냥 지금부터 인정하지?”
“인사고과를 평가하기엔 이른 시점이다.”
여전히 이상한 데서 깐깐한 그 성격에 백수룡은 그냥 한번 웃고 말았다.
두 후기지수의 대결로 손상된 비무대의 판석을 다시 교체했다.
위지천과 일각의 비무에서 느낀 여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지, 천무학관주가 한껏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청룡학관 삼 학년 헌원강 학생과 천무학관 삼 학년 팽사혁 학생은 다음 비무를 준비하게!”
가볍게 몸을 풀던 헌원강이 벽에 기대어 놓았던 흑도를 등에 멨다.
“원강아. 팽사혁한테 이기기 전까진 비무대에서 내려올 생각도 하지 마라.”
“그 성질머리만 죽이면 허무하게 지진 않을 거요.”
“……제발 부끄러운 짓만 하지 마.”
도대체 이게 응원인지 구박인지 모를 청룡오망의 잔소리에, 헌원강은 성가시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꺼!”
“선배. 힘내세요.”
유일하게 위지천만이 정상적인 응원을 보내자, 헌원강은 후배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씨익 웃었다.
“넌 운기조식 열심히 하고 있어라.”
조금 전까지 위지천의 승리를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준 헌원강이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지금 위지천을 바라보는 눈은 단순히 후배를 걱정하는 눈이 아니었다.
“이따가 결승에서 나랑 붙어야 하니까.”
마찬가지로 헌원강을 빤히 올려보는 위지천의 눈도, 단순히 선배를 바라보는 눈이 아니었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이후로, 제 머릿속에서 용봉비무의 결승 상대는 늘 원강 선배였어요.”
“……그랬냐?”
“꼭 이기세요. 저도 진심으로 선배랑 싸워 보고 싶으니까요.”
헌원강은 말없이 한 번 씨익 웃어 준 후 비무대로 향했다.
* * *
휘이이이이잉-
세찬 겨울바람에 흑의장포가 거세게 펄럭였다.
십 층이 넘는 전각 위.
까마득하게 높은 건물의 지붕 끝단에서, 일사도는 도시를 굽어보고 있었다.
“…….”
군중들이 뭉쳐 있는 모습이 개미보다도 작게 보였다. 그럼에도 지상의 환호성이 이 높은 곳까지 닿았다.
와아아아-
용봉비무의 열기가 아직도 식지 않은 듯했다.
식기는커녕, 끝을 향해 갈수록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위지천과 일각의 비무가 끝난 후, 일사도는 더 이상 지켜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 그곳에 있다간, 평정심을 유지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혼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운명이란 것이 있다면, 내 운명은 너희를 다시 가르치는 것이겠지.
옛 스승과 나눈 마지막 대화가 머릿속을 어지럽게 맴돈다.
마치 심마(心魔)와 같았다.
수십 년간 지켜 온 신념을 흔들고, 생애를 바쳐 달려온 삶의 목적에 파문을 던진다.
-나는 혈마가 되지 않을 것이다.
사도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
혈마지존이 되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그는 천하를 발아래에 두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사도들은 목숨을 바쳐 그의 명령을 따를 것이다.
설령 사도들에게 그가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스러운 존재라고 할지라도.
하지만 옛 스승은 혈마가 되지 않겠노라 말했다.
-용서받고 싶은 생각 따윈 없다. 이건 그냥 내 이기심이니까.
그것은 옛 제자들의 깊은 증오와 원한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겠다고 말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물어보았다. 당신은 우리를 용서했느냐고.
-무엇을?
옛 스승은 오히려 되물었다. 내가 너희의 무엇을 용서해야 하느냐고.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을 리는 없을 텐데…….
그따위 대답을 들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일사도는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날 내 검에 묻힌 피에…….”
낮게 갈라진 목소리가 세찬 겨울바람 속에서 덧없이 흩어진다.
일사도는 가만히 눈을 감고 서서 검술을 펼치던 위지천의 모습을 복기했다.
절세의 검객은 무극검의 검초만이 아니라, 거기에 깃든 옛 스승의 가르침까지도 엿볼 수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일사도가 눈을 떴다. 그리고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
“제대로 배웠더군. 그렇지 않나?”
어느새 일사도의 옆자리에 내려선 사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일사도는 친우의 웃는 얼굴이 이제는 제법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있던 칠 일 동안, 너는 내가 평생 기억하는 것보다 많이 웃더군.”
씨익.
사곤은 보란 듯이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은 마치 제대로 웃을 줄 모르는 친우를 약 올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미간의 주름이 깊어진 일사도가 다소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잘난 척까지 할 일인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인 사곤은 간단한 수어로 대답했다.
-즐거우니까.
“뭐가 그렇게 즐겁지?”
-너희들과 함께 이곳에 와서 한 모든 것이.
“적진 한복판이다. 본교의 원수인 청룡신협과 정파무림의 전력을 살펴보기 위해서 나온 정찰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쯧쯧.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찬 사곤이 다시 수어로 말했다.
-그냥 웃어라.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너처럼 속 편한 입장이 아니다.”
화를 참듯 작게 한숨을 내쉰 일사도는 고개를 돌려 다시 지상을 바라봤다.
절세고수의 안법은 이 거리에서도 비무대를 살필 수 있었다.
등에 도를 멘 후기지수들이 비무대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옛 스승에게 수라혈천도를 전수받은 도객이었다.
지금쯤 객석에선 삼사도가 눈을 크게 뜨고 있을 터였다.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렇게 차일피일 미루는 것은 자신의 성미와 맞지 않았다. 천무제가 끝나기 전에 청룡신협이자 옛 스승인 사내에게 어떠한 태도를 취할지 결정해야 했다.
어느새 시작된 두 도객의 비무를 멀리서 지켜보며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때였다.
두근!
일사도의 몸이 휘청이며 앞으로 기울었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가슴을 움켜쥔 탓이었다.
“……!”
사곤이 놀라서 비틀거리는 일사도를 부축했다.
그와 같은 절세고수가 잠시 중심을 잃었다고 지상으로 추락하지는 않았겠지만, 잠시나마 휘청거린 것만으로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갑자기 왜…….”
일사도가 힘겹게 호흡하며 중심을 다시 잡았다.
그러나 가슴의 통증은 멈추지 않았다. 뾰족한 것으로 쿡쿡 쑤시는 듯한 감각에 일사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심장의 술법이 갑자기 반응할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설마?”
일사도는 자신의 심장에서 느껴지는 술법의 기운에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 기운의 흔적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내공을 두 눈에 집중했다. 절세고수의 안법으로도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먼 거리. 부릅뜨고 노려보자 서서히 무언가가 시야에 잡히기 시작했다.
붉은 운무가 일렁이고 있었다.
아직은 먼 거리였다. 하지만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럴수록 심장의 통증도 선명해짐을 느꼈다.
심장의 통증과 멀리서 다가오는 붉은 운무.
무언가를 예견한 일사도가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사곤을 돌아봤다.
“사호. 전부 불러와라.”
사곤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 그의 신형이 아래로 뚝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