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36
636화. 고맙다, 이 새끼야
쩌저저정-!
칼날이 부딪치는 소리가 맹렬했다. 도기가 스칠 때마다 핏물이 튀어 오르고, 묵직한 진각이 비무대 바닥을 깨트렸다. 사방에 튀어 오른 돌가루가 어지럽게 흩날렸다.
사납고 거칠기가 생사결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싸움이었다. 단순히 후기지수들이 무공의 고하를 가리기 위한 대결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서로 잡아먹을 것 같군…….”
“둘 다 도법의 성취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로구려. 후기지수의 연배로 가능한 일이 아니거늘.”
“말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러다 둘 중 하나는 크게 다치겠습니다.”
헌원강과 팽사혁이 서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서로를 베고 또 서로에게 베이는 모습에, 지켜보는 관중들마저 질린 얼굴이었다.
그나마 고수의 경지에 이른 자들만이 두 소년의 비무를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또한 연배가 높은 이들은 두 가문의 비화를 알기에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북팽가와 헌원세가의 관계를 생각하면, 저렇게 치고받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
검성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두 소년의 싸움을 지켜보며 말했고.
“참으로 묘한 것이 인연이지요. 자주 왕래하며 친교를 나누던 두 가문이 하루아침에 원수가 되고, 한 가문이 혈사로 인해 몰락하고, 그렇게 해묵은 감정들이 쌓이며 몇 대를 이어져 왔으니…….”
불존 또한 신중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일각마저 패배하면서, 구파의 후기지수는 용봉비무에서 모두 떨어졌다.
그럼에도 검성과 불존, 두 절세고수의 표정에는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의 패배를 덤덤히 인정하며 남은 비무를 지켜볼 따름이었다.
‘구파는 패배할 만했다.’
두 사람의 생각이 같았다.
천하무림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던 구파는 이번 천무제를 통해서 자신들의 부족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후기지수들의 실력이 부족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천무제가 진행되는 동안 구파의 오만함, 이기심, 안일함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이 일부 구파에 불과하다곤 하나, 경중에 차이가 있을 뿐 다 같았다.
검성이 문득 혀를 차며 말했다.
“상즉불리(相卽不離 :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도 맑지 않다.) 라 하였다. 구파의 어른들이 본을 보이지 못하니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웠겠나.”
검성의 말에 몇몇 장문인들이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도호를 외우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불존이 그들을 인자하게 바라보며 웃었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저희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깨닫고, 앞으로 변해 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본받을 만한 이들이 가까이에 있으니 더할 나위 없지요.”
불존의 시선이 청룡학관을 향했다.
청룡학관의 저 아이들은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해 왔을까.
한 명 한 명이 대회에서 분투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불존은 저 아이들이 지난 시간 흘렸을 땀방울을 엿볼 수 있었다.
“……구파는 고마워해야 할 것입니다. 오만에 빠져 길을 잃을 뻔한 저희를 계도해 준 청룡학관과 청룡신협에게.”
“나 역시 대사의 말에 동의하오.”
검성과 불존, 구파의 중심을 잡아 주는 두 절대자가 같은 말을 입에 담았다.
구파의 패배를 인정하고, 전쟁에서 청룡학관에게 구파의 지휘권을 양도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이 없었다.
반박은 없었다. 명명백백한 패배였기에 구파의 장문인 모두가 결과를 받아들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검성과 불존이 대화를 나눴다.
“대사. 올해 유독 뛰어난 후기지수들이 많은 걸 보니, 난세가 오려는가 보오.”
“아미타불. 부디 희생이 크지 않아야 할 터인데…….”
정파무림의 두 거인은 다가올 난세를 염려했다.
그러나 그것이 생각 이상으로 가까이 다가와 있음은 아직까지 짐작하지 못했다.
* * *
관중석에서 그 누구보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비무를 지켜보는 사내가 있었다.
“강아…….”
헌원세가의 가주, 헌원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피투성이가 되어 가는 아들을 바라보며 고통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의 옆에는 부인과 딸이 차마 못 보겠다며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늘 미안한 마음이 앞서는 아들이었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음에도 제대로 된 무공을 가르쳐 주지 못해서, 못난 아비와 영락한 가문이 발목을 잡는 것 같아서 그랬다.
그래서 삐뚤어지고 엇나가도 혼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했는데…….
‘어느새 이토록 멋진 무인이 되었구나. 장하다. 내 아들.’
헌원수가 울컥하는 감정으로 아들의 싸움을 지켜볼 때였다.
“잠깐 옆에 앉아도 되겠소?”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헌원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옆에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여긴 어쩐 일이신지?”
돌아보며 묻는 헌원수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하북팽가의 주인.
무림 오대세가의 가주이자, 헌원세가를 자신들의 방계처럼 취급하던 사내가 그곳에 있었다.
하북팽가주가 표정이 없는 얼굴로 말했다.
“허락하지 않는다면 돌아가리다.”
“……앉으시오.”
하북팽가주와 헌원세가주가 나란히 앉아 아들들의 비무를 바라봤다.
육 년 전, 헌원수는 아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이 사내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죄송합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제 아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그런 짓입니다.
그날의 일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평생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영락한 가문의 가주라고 해도 무인이었다.
또한 한 아이의 아버지였다.
하지만 그날의 하북팽가주는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절대자였고, 자신은 그에게 자비를 구걸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때, 한동안 비무대만을 바라보고 있던 팽가주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하북팽가는 혈사로 무너진 헌원세가를 지원했소. 무사들을 보내 지켜 주고, 가문을 재건할 자금도 원조했지. 본가가 아니었다면 헌원세가의 명맥은 끊겼을 거요.”
“그 대가로 많은 것을 가져가지 않았소? 본가의 자존심, 강호인들의 칭송, 허드렛일을 해 주는 방계도 하나 늘렸으니 말이외다.”
최근 들어 다시 가문의 이름을 알리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 헌원세가의 취급은 하북팽가의 방계나 다름이 없었다.
하북팽가가 직접 나서기엔 사소하고 잡스러운 일에 헌원세가의 무인들이 동원되었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두 사람은 그것이 당연한 시절을 보냈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
팽가주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에 오히려 헌원수가 조금 놀란 표정이 되었다.
당연히 화를 내거나 은혜도 모르는 자라고 비난할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팽가주의 표정은…… 묘하게 회한이 어린 것처럼 보였다.
팽가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아들놈이 그러더군. 가문의 일은 이제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선대의 악연을 강요하지 말라고. 내 아들이지만 후레자식 같은 놈이오.”
“……팽사혁의 성정은 당신을 닮은 게 확실하오. 아니, 후기지수 시절의 팽진군은 더하면 더했지.”
헌원수의 코웃음에 하북팽가주, 팽진군이 피식 웃었다.
그들의 아들들처럼 두 사람도 같은 연배였다.
천무학관에 다닌 팽진군과 달리 헌원수는 학관조차 다니지 못했지만, 후기지수 시절을 함께 보냈기에 종종 마주쳤었다.
그때마다 헌원수는 항상 팽진군을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봤었다.
그리고 그런 헌원수를, 팽진군은 간혹 묘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쳐다보곤 했었다.
“내가 사혁이 저놈보다 더했다고?”
“물론이지. 그 지랄을 내가 몇 번이나 목격했는데. 당신 열여덟 생일잔치에서 지금의 남궁가주와 주먹다짐한 것 기억하시오?”
“내가 이겼지.”
“그때도 서로 이겼다고 주장하더군.”
두 가주는 서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대화를 나눴다.
그들의 시선은 비무대 위에서 치고받는 아들들에게 고정돼 있었다.
잠시 말이 없던 팽가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들이 둘만 되었어도 저놈을 쫓아내고 가문의 위신을 세우련만……. 그리하기엔 너무 늦었겠지.”
“지금이라도 양자를 고민해 보시오. 저 인성이면 가문을 말아먹고도 남을 거요.”
“남의 아들을 흉보기 전에 댁의 아들부터 살펴보시길 권하겠소.”
“우리 강이는 천성이 착한 녀석이오.”
“한때는 나도 그렇게 믿었었지.”
두 사내는 여전히 얼굴에 웃음기 하나 띠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들의 목소리가 처음보다 많이 부드러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는 헌원수가 툭 내뱉었다.
“선대의 악연이 없었다면……. 어쩌면 우리도 친우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
“…….”
팽가주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맺혔다.
가문의 악연이 쌓이며 어긋난 관계.
서로에게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두 사람은 처음부터 대등하지 못한 관계로 만났다.
가문의 어른들이, 그들을 둘러싼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이야.
팽가주가 처음으로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들도 우리처럼 지낼 이유는 없겠지.”
“말을 들어 먹을 놈들도 아니고 말이야.”
“……말을 놓으시겠다?”
“자네도 놓든가.”
팽진군은 기다렸다는 듯 말을 놓는 헌원수를 잠시 노려보다가, 이내 큭큭 웃었다.
그들의 대에서 앙금이 다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가주들뿐만 아니라, 가문의 구성원들 각자에게도 해묵은 감정들이 남아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오랫동안 서로에게 쌓인 감정이 조금씩 희미해지도록 노력한다면.
저 아이들의 대에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무는 내 아들이 이길 거다.”
“헛소리가 심하군.”
천하제일도가를 두고 다투던 그 시절로 말이다.
* * *
촤아아악!
또 한 번 핏물이 치솟았다. 이번에는 왼쪽 어깨였다. 헌원강은 개의치 않고 몸을 회전시키며 흑도를 휘둘렀다.
쩌어엉!
도를 옆으로 세워서 막아 낸 팽사혁의 몸이 살짝 흔들렸다가 중심을 잡았다. 자세가 무너지길 기대하고 한 공격이었는데 끄떡도 하지 않았다.
헌원강이 뒤로 물러나며 작게 투덜거렸다.
“새끼. 뭘 처먹는지 힘만 더럽게 세네.”
“비리비리한 게 자꾸 빠져나가긴.”
속도와 감각은 헌원강이 앞서지만, 완력에서는 팽사혁이 확실한 우위였다.
두 소년은 서로의 장단점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어쩌면 자기 자신보다도 더.
‘예상은 했지만…….’
콰앙!
헌원강은 비무대 바닥을 밟아 부수며 무지막지한 기세로 덤벼드는 팽사혁의 칼을 끝까지 주시했다.
힘이 센 상대와 싸우는 것은 익숙했다. 거상웅이나 야수혁과 매일 함께 수련을 해 왔으니까.
팽사혁의 완력이 흑백쌍웅보다 강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헌원강은 팽사혁과의 싸움이 훨씬 더 힘들었다.
‘저 자식. 나한테 완전히 맞추고 나왔어.’
상대가 어떤 수련을 해 왔는지, 얼마나 지독하게 노력해 왔는지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것보다 알기 쉬운 방법은 없었다.
헌원강은 팽사혁의 모든 움직임이 자신을 쓰러뜨리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돼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친 새끼! 소름 돋는다고!”
헌원강은 기합을 넣으며 마주 흑도를 휘둘렀다. 두 소년의 신형이 교차하면서 칼날이 번뜩이고, 한 번 더 핏방울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푸화악!
쓰라린 통증에 헌원강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피를 많이 흘렸는지 시야가 잠시 어지러워졌다.
피를 흘린 것은 팽사혁도 마찬가지였으나, 그는 상황이 조금 더 나아 보였다. 팽사혁이 돌아서며 헌원강을 도발했다.
“슬슬 지치는 모양이지?”
비무대는 더 이상 수리가 힘들 정도로 초토화돼 있었다. 부서지고 박살 난 바닥에 핏물이 후두둑 번졌고, 판석은 멀쩡한 것이 없었다.
두 소년의 비무가 그만큼 과격했음을 보여 주는 광경이었다.
“……누가? 네가?”
헌원강은 상처를 대충 점혈로 지혈하곤 애써 씨익 웃었다. 하지만 창백한 얼굴은 언제 쓰러져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하여간 천재란 놈들은…….”
팽사혁은 그런 헌원강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 역시 전신이 피투성이였다. 헌원강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상처만 보자면 팽사혁이 더 수두룩했다. 피도 더 많이 흘렸다.
그럼에도 팽사혁은 굳건하게 서 있었다.
정신력 따위의 차이가 아니었다.
“헌원강. 네 재능으로도 따라오지 못하는 게 뭔지 아냐?”
“개자식이 뭐래.”
“내가 너보다 몇 년 이상 성실하게 쌓아 온 체력, 힘, 그리고 열등감이다.”
“…….”
스스로의 입으로 열등감을 언급했다.
팽사혁은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어린 시절부터 칼을 부딪쳐 온 사이니까.
그래도 진심으로 헌원강에게 이기고 싶었다.
-천재를 이기는 법? 범재라면 아예 불가능하지. 너같이 애매한 재능이라면…….
천무학관으로 편입한 후 유일하게 스승이라고 불러 볼 만한 사내가 알려 준 방법.
-몸을 들이밀어라. 죽지만 않으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한 칼을 맞고서라도 한 칼 놓겠다는 의지로. 운이 따라 준다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과격하지만 그래서 마음에 더 쏙 드는 방법이었다.
팽사혁은 그렇게 했다.
몸에 날 상처를 감수하고, 상대의 칼을 맞아 가면서 싸우는 방식을 배웠다.
피하면서 이길 자신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체력을 갉아먹으면서 피를 흘리는 싸움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저 잘난 천재 놈은 자신의 방식에 어울려 주었다.
“헌원강.”
이것이 내가 찾아낸 최선의 싸움이다.
“더 다치기 싫으면 기권해라. 나는 죽일 각오로 할 거니까.”
그러니까 너도 너의 최선을 다해라.
스스스슷.
팽사혁의 도에 도기가 들끓었다. 맹호의 발톱처럼 날카롭고 치명적인 기운이 칼날에 맺혔다.
“미친 새끼…….”
헌원강은 손등으로 얼굴의 핏물을 닦으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여전히 거대한 바위처럼 서 있는 팽사혁이 진절머리나도록 고집스럽게 보였다.
그 모습 뒤로, 어린 시절의 소년이 겹쳐 보였다.
-다음엔 내가 이길 거야!
만날 때마다 그 소리였다.
지더라도 분한 표정을 한번 짓고는, 벌떡 일어나서 다음에는 꼭 이길 거라고 또 대련을 하자고 귀찮게 굴었다.
청룡학관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어이. 헌원가의 망나니.
-또 대낮부터 술이나 처먹고 있었나?
-평생 그렇게 한심하게 살 거냐?
처음에는 왜 청룡학관까지 따라와서 자신을 조롱하고, 괴롭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돌이켜 보니, 백수룡을 만나기 전까진 팽사혁이 유일했다.
“네가 유일했다.”
헌원강이 도를 단단히 움켜쥐며 말하자, 팽사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개소리지?”
“틈만 나면 나한테 와서 시비 걸고, 귀찮게 하고, 짜증 나게 하고……. 네가 유일했다고. 개새끼야.”
네가 날 포기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헌원강은 그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전부 퉁명스러운 시비조의 말이었다.
그럼에도 팽사혁은 큭큭 웃었다.
“네가 괴롭히는 맛이 좋거든.”
팽사혁의 몸이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낮아졌다. 전신의 근육을 강하게 수축했다가, 단숨에 튀어 나갔다.
“마지막이다.”
상대의 서슬 퍼런 눈빛을 본 헌원강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지막이다.”
그 순간, 도를 아래로 늘어뜨린 헌원강의 신형이 돌연 흐릿해졌다.
비무를 지켜보던 무인들 대부분이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놓쳐 눈을 부릅 뜬 순간.
거짓말처럼, 비무대가 일직선으로 갈라졌다.
한 줄기 도격이 비무대를 일직선으로 질주했다. 소리가 뒤늦게 터져 나왔다.
콰콰콰콰콰콰!
간신히 모양만 유지하고 있던 비무대가 완전히 뒤집히고, 그 끝에는 도를 세우고 비무대 끝자락까지 밀려난 팽사혁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래서 천재 놈들이란…….”
털썩.
도를 놓치고 쓰러진 팽사혁이 그대로 드러누웠다. 헌원강이 그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용봉비무에서 이기면 꼭 이 말을 하고 싶었거든. 그러니까…….”
머리를 벅벅 긁던 헌원강이 조금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고맙다, 이 새끼야.”
“……놀리냐. 개새끼야.”
“다음에 또 하자. 비무.”
“그래. 앞으로 얼마든지.”
팽사혁은 가슴을 몇 번 들썩이며 웃더니 그대로 기절했다. 의식을 잃은 소년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