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45
645화. 명령이다
매극렴은 검신에 맺힌 피를 후드득 털어 냈다. 그는 다소 거칠어진 호흡을 정리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무사한가?”
청룡학관의 모두가 싸우고 있었다. 강사들은 물론이고 천무제에서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학생들까지 손을 보태야 할 정도로 도시의 상황이 혼란스러운 탓이었다.
“예. 괜찮습니다!”
“충분히 버틸 만합니다.”
“밖에 나가서 싸우고 있는 선생님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강사들은 애써 태연한 얼굴과 목소리로 대답했다. 핏물로 젖은 무복이 그들이 험난한 싸움을 겪었음을 증명하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약한 소리를 하는 이가 없었다.
크하하하하하!
죽여라! 전부 죽여!
광대하게 펼쳐진 윤회연옥진의 영향은 도시에까지 미쳤다. 도시까지 밀려온 붉은 운무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괴력난신들, 군중들 틈에 섞여 있다가 갑자기 날뛰기 시작한 마인들이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해치기 시작했다.
허나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청룡학관은 신속하고 일사불란하게 대처했다. 그들이 수학여행에서 겪은 일들이 강사들은 물론이고, 학생들까지도 전장에 익숙한 무인으로 성장시킨 덕분이었다.
“청룡학관! 대혈교전 모의전투 대형으로-!”
독고준을 중심으로 청룡학관 학생들이 순식간에 대형을 갖췄다. 그들은 섣불리 적들과 맞서는 대신 스스로를 지키고, 무공을 익히지 않은 양민들을 보호했다.
청룡학관 학생들의 침착한 대처는 다른 오대학관에도 본보기가 되었다. 청룡학관 다음으로 가장 발빠르게 움직인 주작학관을 시작으로 천무, 백호, 현무학관 학생들도 정신을 차리고 대형을 구축했다.
“주작학관은 청룡학관 좌측으로 대형을 갖춰라!”
“천무학관은 청룡학관의 우측에 서겠습니다!”
그렇게 오대학관의 후기지수들이 하나로 뭉친 동맹이 결성되었다. 그 중심에는 청룡학관 학생들이 있었다.
“녀석들…….”
매극렴은 그런 학생들이 대견하고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저 아이들이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많은 것을 상실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잠시 학생들을 살피던 매극렴은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콰콰콰콰콰콰콰-!
먹구름이 거세게 소용돌이치는 하늘은 곧 천하가 멸망할 징조처럼 보였다. 일흔이 넘는 노인의 인생에서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괴이한 현상이었다.
“수룡아. 너는 괜찮은게냐.”
매극렴은 전장으로 떠난 손자를 생각했다.
-할아버님은 이곳에서 학생들을 지켜 주십시오. 아버지도요.
그 말만 아니었다면, 매극렴은 결코 이곳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무림은 백수룡을 무림십존이라며 추앙하지만, 매극렴에게는 그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한 손자일 뿐이었다.
“……야속한 녀석 같으니.”
어째서 천하에서 가장 무거운 책임을 혼자서만 짊어지려 한단 말이냐.
고작해야 일 년이었다. 함께 가고픈 곳도, 해 주고 싶은 이야기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기억에 거의 없을 제 어미의 말썽꾸러기 시절 일화도 들려주고, 사위 놈의 망나니 시절 이야기도 들려주며 함께 흉을 볼 것이다.
가끔은 술잔도 함께 기울이고, 성가시겠지만 이 늙은이의 넋두리도 들어줘야 할 것이다.
수룡아. 그것이 이 늙은이의 유일한 소원이니라.
“허니 무사히 돌아와야 한다. 이 할애비에게 혼쭐이 나기 싫으면.”
매극렴은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전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손자가 싸움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더 이상 슬퍼할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다.
“부상당한 학생들은 무리하지 말고 안쪽으로 물러나거라!”
전장에 나서지 않은 구파일방과 무림맹, 관군, 오대학관의 무인들이 힘을 합쳐 적들과 맞서 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혼란을 진정시키기란 쉽지 않았다.
“전부 다 죽을 거야……. 다 죽을 거라고!”
“흐히히히! 하늘이 노하셨다. 흐히히히!”
“혈교에게 항복합시다! 설마하니 항복하겠다는데 다 죽이겠소?”
공포에 질려 현실을 외면하는 자들이 속출했다. 바닥에 주저앉거나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혈교에 항복하자고 선동하는 자들마저도 있었다.
“혈마재림 만마앙복! 경배하라! 혈마께서 곧 천하통일을 이루실……!”
정신이 나가서 혈교도를 흉내 내던 사내 하나가 뒤통수에 큰 충격을 받고 고꾸라졌다. 그 뒤에서 나타난 노군상이 쓰러진 사내의 혈도를 짚으며 혀를 찼다.
“잠시 누워 계시게. 깨어나면 스스로 얼마나 부끄러운 짓을 했는지 알게 될 게야.”
노군상의 안색은 창백했다. 무공을 거의 잃은 그는 양민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지만, 여전히 청룡학관의 정신적 지주이기에 강사들을 지휘하고 겁먹은 학생들을 다독였다.
“관주님! 너무 앞으로 나서지 마세요. 상대가 마공을 익힌 놈이었으면 어쩌시려고요?”
“일초반식도 모르는 양민이었네. 불쌍하게도 정신이 나간 게지.”
그 뒤를 따라온 신연호가 걱정이 되었는지 잔소리를 했으나, 노군상은 허허롭게 웃을 뿐이었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싸우고 있었다.
가공스러운 기파가 소용돌이치는 전장에 나선 백수룡과 남궁수도, 이곳에 남아 학생들을 지키는 강사들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병기를 든 학생들도 전부 목숨을 걸었다.
“실로 끔찍한 지옥이구나.”
주위를 둘러본 노군상이 조용히 중얼거릴 때였다.
쿠르르르르릉―!
돌연 하늘이 찢어질 듯한 굉음이 성벽 너머에서 들려왔다.
대기가 부르르 요동치고, 직후 누구도 겪어 본 적 없는 대지진이 발생했다.
콰콰콰콰콰쾅-!
땅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면서 바닥이 꺼지기 시작하고, 건물들이 무너지면서 넘어지고 깔리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도시의 사방에서 비명이 난무했다.
“중심을 낮추고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물건이 없는지 경계하거라!”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던 백무흔은 문득 익숙한 기운을 느끼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쐐애애애애액!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한 자루의 검이 보였다. 그 익숙한 형태에 백무흔의 눈이 부릅떠졌다.
휘이익!
즉시 허공으로 뛰어오른 백무흔은 창룡신검의 검파를 낚아챘다. 그리고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수룡이는 어찌 되었습니까!”
[……혈마와 싸우고 있네.]백무흔은 창룡신검의 체념 어린 목소리에서 불안감을 느꼈다. 지상으로 내려온 그가 입술을 꽉 깨물곤 다시 물었다.
“대체 그게 무슨 뜻입니까? 혈마와 싸우는데 신병이기를 포기했다고요? 제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말씀을 해 주십시오!”
“선택이라니……. 그게 무슨…….”
그 단어에서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낀 백무흔이 다시 물으려고 할 때, 창룡신검의 탄식이 먼저 흘러나왔다.
[주변을 둘러보게. 이것이 수룡이의 선택일세.]스스스스슷…….
도시로 밀려오던 붉은 운무가 옅어지고 있었다.
그에 따라 날뛰던 마인들이 힘을 잃고, 괴력난신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혈교의 사술이 사라진다…….”
“살았다! 살았어!”
“우와아아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백무흔만은 창백해진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볼 뿐이었다.
그때 매극렴이 백무흔에게 다가왔다.
“무흔아.”
“……장인어른.”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백무흔은 매극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창룡신검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 주자 매극렴의 표정 또한 딱딱하게 굳었다.
“장인어른. 제가 수룡이에게 가 보겠습니다. 큰 싸움은 끝난 듯하니, 저 하나 정도는 자리를 비워도 괜찮을 겁니다.”
말린다고 들을 표정이 아니었다. 때문에 매극렴은 길게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손자에게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먼저 가거라. 이곳을 수습하고 나도 곧 따라가마.”
매극렴의 허락과 동시에 백무흔이 경공을 펼쳤다.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길게 늘어졌다.
그리고 그 뒤로 다섯 개의 그림자가 따라붙었다.
“이, 이 녀석들!”
청룡오망이었다. 언제부터 엿듣고 있었던 것인지, 헌원강을 필두로 그들은 백무흔을 뒤따라서 경공을 펼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붙잡을 틈도 없었다.
“당장 돌아오지 못하겠느냐!”
매극렴의 노기 어린 외침에도 불구하고, 스승을 닮아 천하제일의 고집을 지닌 학생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당장 학생들을 뒤쫓으려는 매극렴의 어깨 위로, 노군상이 손을 얹었다.
“검치. 그냥 보내 주시게.”
“하지만…….”
“붙잡으려고 하면 힘으로라도 뚫고 갈 녀석들인데, 우리가 그걸 막을 수 있겠소?”
“…….”
노군상의 설득까지 더해지자, 매극렴은 결국 체념 어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순식간에 점이 되어 사라지는 백무흔과 청룡오망을 보며 중얼거렸다.
“부탁하마. 수룡이를 지켜다오.”
* * *
혈마검을 쥔 직후, 백수룡을 중심으로 거대한 기운이 폭주하듯 휘몰아쳤다.
화아아아아아악!
혈마가 윤회연옥진을 펼칠 때와 흡사했다. 막대한 기운이 폭발하듯 번쩍이며 천지를 뒤덮는 순간, 그 기운을 견디지 못한 자들이 혼절하기 시작했다.
털썩. 털썩. 털썩…….
혈교도와 정사연합을 가리지 않았다. 전장에서 싸우던 무인들 태반이 의식을 잃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잠시 후, 죽음처럼 고요한 적막이 전장에 드리워졌다.
“…….”
백수룡은 무심한 눈으로 그들을 내려보면서 천천히 지상에 내려섰다.
툭.
발끝을 땅에 디딘 순간, 백수룡으로부터 번진 기파의 폭풍이 다시 한번 대지를 휩쓸었다. 거대한 지진이 발생하고 윤회연옥진의 기운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백수룡…….”
남궁수는 이를 악물고 백수룡을 노려봤다.
거듭된 싸움으로 입은 내상이 적지 않은 듯, 그의 입가를 타고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순간 백수룡이 남궁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힘을 아껴.”
남궁수는 흠칫했다.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목소리 탓이었다.
새빨간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기파에 흩날리는 머리칼은 여전히 흑단 같은 검은빛이었다.
……아직은 삿된 것에게 삼켜지지 않은 것일까?
남궁수가 일말의 희망을 품고 백수룡에게 다가갈 때였다.
“아직은 네가 나설 때가 아니니까.”
“……!”
굳어 버린 남궁수를 그대로 지나친 백수룡은 혈마를 향해 걸어갔다. 한 걸음마다 공간이 접히기라도 한 듯 순식간에 둘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비로소 이렇게 마주하는구나.”
혈마의 입가에 황홀한 미소가 맺혔다. 동시에 그를 둘러싼 역천의 기운도 점점 더 짙어졌다.
“나와 함께 개벽을 이룰, 역천의…….”
혈마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천무학관주가 먼저 백수룡에게 득달같이 덤벼든 탓이었다.
“크하하하하! 역시 숨기고 있었구나! 이토록 가공할 힘이라니! 능히 천하제일이라 할 만하다! 아니, 어쩌면 고금제일일지도 모르지. 내게도 나누어다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득해지는 너의 무(武)를…….”
역천의 기운을 받아들이며 완전히 미쳐 버린 사내는 자신의 본능과 욕망에 충실했다. 오직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찾아 싸움을 건다. 목표를 바꿔서 혈마를 등지고 백수룡에게 달려든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때였다.
“벌레 같은 것이.”
찰나의 순간, 혈마는 천무학관주의 인지를 벗어난 속도로 움직여 그의 뒤통수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처박았다.
콰콰콰콰콰쾅!
충돌이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수십, 수백 번 중첩된 충격파가 바닥을 부수며 파고들었다.
지하 수십 장 깊이까지 처박힌 천무학관주의 뼈마디가 잘게 부서지고 전신에서는 핏물이 배어 나왔다. 파르르- 떨던 육신이 이내 축 늘어졌다.
“네 쓸모는 이미 다했다고 하였다.”
천무학관주의 귓가에 속삭인 혈마가 몸을 일으켰다. 그다음 순간, 흐릿해진 혈마의 신형은 백수룡의 면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불과 몇 걸음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섰다. 검을 뻗으면 닿을 만큼 지척인 거리. 서로의 붉은 눈동자에 비친 모습이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아직도 속세에 미련을 가진 것인가?”
혈마의 나른한 시선이 백수룡의 머리카락을 향했다.
온전하게 적발적안을 이룬 혈마와 달리, 백수룡은 흑발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혈마는 그들을 둘러싼 반투명한 막을 둘러보며 말했다.
“기막까지 쳐 두었구나. 저들이 너를 나와 동일시하는 게 두려운 것인가? 어차피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니, 부질없는 걱정이다.”
“그건 네 생각이고.”
백수룡은 상관이 없어도, 살아남게 될 사람들에게는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적발적안은 천하에서 유일한 역천신공의 특징이었고, 청룡신협이 누구였는가라는 사실이 그들에게 전해질 테니까.
가족과 친우들, 학생들, 그리고 자신을 믿고 전쟁에 참가한 모두를 위해서, 백수룡은 적어도 이곳에서는 적발이 되지 않을 생각이었다.
“나는 너를 죽일 거거든. 그러니 뒷일도 생각해야지.”
“그래. 오직 너만이 나를 죽일 수 있다.”
백수룡의 선언에 혈마는 기쁘다는 듯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웃었다.
“사도들에게 명한다.”
싸움을 멈춘 채 흐리멍덩한 눈으로 혈마와 백수룡을 바라보고 있던 사도들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들을 돌아보며 입을 연 것은 혈마가 아닌 백수룡이었다.
머릿속으로 곧바로 전달되는 옛 스승의 목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다.
“사곤을 데리고, 이곳에서 최대한 멀리 떠나라.”
혈마를 죽이지 않는 한, 심장에 새겨진 술법을 완전히 푸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술법의 힘을 이용하는 것은 가능했다.
백수룡은 역천의 힘을 사용해 사도들의 심장에 걸린 술법에 닿는 데 성공했다.
“……명령이다.”
부탁이라면 듣지 않을 테니까.
너희가 끝까지 나를 용서하지 않더라도, 영원히 증오하더라도 괜찮다.
설령 그렇더라도 나는 너희를 이 지옥에서 밀어낼 것이다.
‘당신은 끝까지…….’
‘……떠나라고?’
‘싫어, 싫다고……!’
사도들의 마음 속에서는 의문과 반발심, 온갖 감정들이 소용돌이쳤지만, 그럼에도 명령에 저항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움직였다.
일사도와 삼사도가 함께 쓰러진 사곤을 부축하고, 이사도가 뒤를 지켰다. 그들의 모습은 순식간에 전장에서 멀어졌다.
‘너희가 정신을 차릴 때쯤엔, 모든 게 끝나 있겠지.’
백수룡은 멀어지는 옛 제자들의 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다행히 혈마는 멀어지는 사도들에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는 백수룡에게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다 되었는가? 내 길고 긴 인내심도 서서히 바닥을 보이는구나.”
“따라와라.”
스윽-
혈마검이 허공을 긋는 순간, 둘의 모습이 동시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