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47
647화. 그리고 우리의
혈마의 전신에서 시커먼 어둠이 풀려 나와 역천신공과 뒤섞이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악-!
붉고 검은 기운이 밤하늘에 어지럽게 섞여들며 혼돈이 펼쳐졌다.
역천흑야마경(逆天黑夜魔經).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난 마인(魔人)이 집념과 광기로 이루어 낸 역천신공의 아종(亞種)이었다.
“좀 닥치고 있지? 지금은 내 차례니까.”
육신의 통제권을 되찾은 흑야마제가 한쪽 입꼬리를 삐뚜름하게 올리며 중얼거리자, 들끓으며 반발하던 역천의 기운이 서서히 잠잠해졌다.
백수룡은 그런 흑야마제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잠시 내상을 다스렸다.
“다행히 아주 병신은 아니었네.”
그 순간 흑야마제가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백수룡을 노려봤다.
흑안으로 변한 왼쪽 눈동자는 빛조차 빨아들일 만큼 새카맸다. 그 안에서 끔찍하리만치 거대한 악의가 꿈틀댔다.
“크크크큭…… 반겨 줘서 고맙기는 한데.”
혈마가 육신을 차지하고 있었을 때와는 또 따른 존재감이 느껴졌다. 역천흑야마경. 단순히 아종이라고 하기에는 끔찍하리만치 패도적이고 거친 기운이 꿈틀댔다.
“너, 설마 내가 만만해서 불러낸 건 아니지?”
“……그걸 이제야 알았나?”
그 순간, 흑야마제가 떠 있던 자리에 흐릿한 어둠만이 남았다. 역천흑야마경의 기운이 밤하늘을 잠식하며 녹아내리듯 존재를 감췄다.
-쩌어어어엉!
백수룡은 곧바로 혈마검과 적월을 교차해 공격을 막았다. 미리 알고 대비했음에도 허공에 파문을 남기며 수십 장을 튕겨 나갔다.
“내가 경고 하나 할까?”
다시금 흐릿해진 흑야마제가 이번에는 백수룡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검붉은 어둠을 전신에 휘감은 괴물이 목을 물어뜯을 기세로 덮쳐들었다.
“저 안에서 네가 펼치는 모든 무공을 지켜봤거든. 네 밑천이 모조리 드러났다는 뜻이지.”
키득거리며 웃는 흑야마제의 입매가 비틀렸다. 지독한 마기와 끔찍한 살기가 뒤섞인 웃음이 밤하늘에 아득하게 울려 퍼졌다.
“본다고 뭐가 달라지나?”
백수룡은 몸을 회전시키며 춤추듯이 혈마검과 적월을 휘둘렀다. 보석처럼 빛나는 혈마안이 상대가 움직이는 궤적을 좇았다. 그의 입가에도 섬뜩한 조소가 맺혔다.
카가가가각!
사방으로 사나운 칼바람이 휘몰아쳤다.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무시무시한 귀곡성 같았다. 강기의 파편들이 불티처럼 튀면서 밤하늘을 붉은 꽃잎으로 물들였다.
크하하하하하!
흑야마제는 혈마와 달랐다. 전신에 역천흑야마경을 갑주처럼 두르고 짐승처럼 덤벼드는데, 거칠고 사나우며 형식에 구애가 없었다. 난폭하고 살기 어린 모습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귀처럼 보일 정도였다.
“큭…….”
백수룡은 이를 악물고 흑야마제의 맹공을 견뎌 냈다. 핏물이 번진 몸은 혈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특히 몇 개의 상처는 치명적이었다. 백수룡은 벌어진 복부의 상처로 흘러나오려는 내장을 다시 안으로 욱여넣고 삼매진화로 지졌다.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는데, 전신에 비슷한 흔적이 이미 여럿이었다.
“그 꼴을 하고도 죽지 않다니. 심상 세계가 좋기는 한가 봐?”
흑야마제의 빈정거림에, 백수룡이 창백한 얼굴로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는 네 꼴도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
흑야마제의 모습 또한 피투성이였다. 싸움이 길어지면서 역천흑야마경의 갑주가 부서지고 회복되길 반복했다. 한 번씩 드러난 육신에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은 상처들이 파여 있었다.
그러나 흑야마제는 마치 고통을 즐기는 듯했다. 싸우는 내내 키득거리던 그가 불쑥 백수룡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언제 알았지? 우리 둘 모두 혈마의 안배였다는 걸 말이야.”
“……이제 와서 그게 중요한가?”
흑야마제가 자신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꾸욱 찌르며 으르렁거렸다.
“당연히 중요하지. 이 빌어먹을 새끼가 나를 갖고 놀았다는 거니까.”
고금을 통틀어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난 두 사람.
흑야마제는 전대 오장로에게서 받은 혈교의 마공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무학을 완성한 후 역천신공을 받아들였다.
백수룡은 살기 위해 역천신공을 익혀야만 했다. 타고난 천형(天刑)인 천음절맥을 극복해 요절할 운명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을 둘러싼 많은 것이 혈마의 안배임을 깨달았을 땐, 이미 어쩔 도리가 없을 만큼 많은 것이 진행돼 있었다.
백수룡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걸 깨닫고도 혈마에게 협력한 건 왜지? 몸을 내주지 않고 버틸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자 푸하하하하- 하고 흑야마제가 앙천대소를 터트렸다.
“내가 놈한테 협력했다고 생각해?”
눈물까지 흘리면서 웃는 모습이 기괴스러웠다. 한참을 웃던 흑야마제가 거짓말처럼 정색하더니 말했다.
“말했잖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보다, 받아들이고 빈틈을 노리는 게 쉽다고.”
“…….”
백수룡은 그 말에 여전히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면, 소중히 해야 할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훨씬 더 빠르게 결정을 내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단 너부터 죽여 줄게. 이 자식이 너를 꽤 탐내고 있거든. 여기까지 와서 갈아타면 나만 엿되잖아?”
흑야마제의 오른쪽 혈마안이 지옥의 겁화처럼 타올랐다. 백수룡은 그 눈동자 너머의 혈마를 노려보았다.
“좋지. 끝장을 보자고.”
지독한 살의가 다시 한번 충돌했다. 온몸에 역천흑야마경을 두른 흑야마제와 전신의 공력을 끌어 올린 백수룡이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꽈아아앙! 쩌저정-! 콰지직!
일격 일격이 백수룡이 만든 심상 세계를 부수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태풍이, 지상에는 지진이 발생해 천지가 뒤집힐 듯 흔들렸다.
콰콰콰콰콰콰콰!
파멸적인 기파를 뿌려대는 초월자들의 머리 위에서는 밤하늘이 종전보다 더 거세게 소용돌이쳤다. 그것은 곧 다가올 멸망의 징조처럼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너……?”
광기로 가득 찬 채로 하나의 목표만을 좇던 흑야마제의 눈동자가 점점 흔들렸다.
속세에 초탈한 듯 무심한 얼굴로 신공절학을 펼쳐 내는 백수룡의 움직임이, 점점 이질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와는 무언가 달랐다. 무인의 본능이 맹렬히 경고를 보냈다.
“내가 밑천을 전부 드러냈다고?”
잔잔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흑야마제는 깨달았다.
언제부턴가 백수룡은 역천신공을 펼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차분하게 검과 도를 내려 쥔 백수룡의 몸에서 역천신공의 파멸적이고 날카로운 기파 대신,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을 만큼 거대한 기운이 꿈틀대고 있었다.
“너의 근간이 음양마존에게 배운 흑야마경이듯, 나의 근간도 역천신공이 아니다.”
역천신공의 증거인 적발적안도 어느새 몸에서 사라졌다.
백수룡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흑야마제와 그 너머의 혈마를 응시했다.
‘아주 잠깐이라면.’
우우웅-!
손에 쥔 혈마검이 고통스럽다는 듯 부르르 떨었다.
무극검, 수라혈천도, 빙백신공, 녹림십팔식.
네 사부들의 무공을 하나로 합일시키는 것은 백수룡의 오랜 화두였다.
사부들의 신공절학이 지닌 각각의 오의와 의념을 총망라해 비로소 하나로 움직임으로 승화시키는 것.
“내 근간은 나의 사부들이다.”
백수룡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늘어뜨린 검과 도를 슬쩍 당기며 허공을 디뎠다.
느려진 시야에 경악한 흑야마제의 얼굴이 커지는 것이 보였다. 인지를 벗어난 속도로 육체가 쏘아져 나갔다. 그가 발을 디딘 허공에는 새하얀 서리가 눈꽃처럼 남았다.
“……미친.”
빛무리로 된 용오름이 백수룡의 몸을 휘황하게 감싼 찰나.
흑야마제는 백수룡의 움직임을 놓쳤다.
촤아아아악-!
뒤늦게 불어닥친 폭풍에 흑야마제의 적발이 미친 듯이 뒤로 펄럭였다.
그는 여전히 하늘 위에 오연히 떠 있었다.
하지만 좌측 상반신이 흔적도 없이 날아가고 없었다.
백수룡을 향해 천천히 몸을 돌린 그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물었다.
“……왜지? 그렇게까지 상처 입을 이유가 전혀 없었잖아. 처음부터 전력을 드러냈으면 쉽게 날 죽일 수 있었을 텐데…….”
백수룡은 대답 대신 왈칵 피를 쏟았다. 입과 코에서 쉬지 않고 핏물이 흘러내렸다.
그 창백한 얼굴과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한 몸을 본 순간, 흑야마제는 백수룡의 진정한 계획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하하, 하하하하……! 미친놈. 너야말로 진짜 미친놈이다. 크하하하하하!”
“시끄러우니까, 그만 닥치고 뒈져.”
백수룡의 지친 목소리에 흑야마제가 거짓말처럼 웃음을 멈췄다. 그는 끝까지 광인이었다. 자신을 죽인 상대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내가 했던 말. 잊지 말라고.”
“참고할 테니까 이만 지옥으로 꺼지도록.”
“크크크큭…….”
웃음소리가 천천히 잦아들며, 심연과도 같던 흑야마제의 눈동자가 흐릿하게 풀렸다. 어둠이 사라진 자리에는 텅 빈 잿빛만이 잔재처럼 남았다.
백수룡은 곧바로 추락하듯 지상으로 내려섰다. 죽은 후에도 밤하늘을 유영하듯 허공에 떠 있는 흑야마제의 시신을 일별한 뒤였다.
“……완전히 녹초로군.”
온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팠다. 시야는 사물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흐릿했고, 피투성이가 된 몸은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웠다.
하지만 백수룡은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이제야 우리 둘만 남았지?”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이다.
백수룡은 아무런 저항 없이 자신의 내면으로 침범하는 혈마의 존재를 느꼈다. 그 기운이 어느 때보다 선명했다.
이 모든 싸움이 무의미하다. 너는 결국 나를 받아들이게 될 것인데, 어째서 불필요한 고통을 자처하느냐?
흑야마제를 죽였지만 혈마는 사라지지 않았다.
놈은 숙주가 죽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백수룡의 영혼에 들러붙었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이 삐걱대는 육신에 혈마가 함께하고 있었다.
“뭐,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백수룡은 흐린 눈으로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완전히 초토화된 심상 세계가 보였다.
수십 년 전의 싸움으로 이미 폐허였던 곳은, 흑야마제를 죽이면서 더 이상 그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게 변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편안한 잠에 빠져들게 되리라.
스스스슷…….
저절로 재생의 공능이 발휘되고 있었다.
사부들의 무공으로 버텨 내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역천신공이 남아 있는 한, 혈마는 언제까지고 이 몸뚱이를 노릴 것이다.
백수룡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여기서 끝내야지.”
너는 나를 죽이지 못한다. 스스로 죽기라도 하겠단 것이냐? 너에겐 그조차도 허락되지 않았다.
백수룡은 피식 웃었다. 혈마가 자신의 육체의 통제권을 다급히 빼앗아 가고 있는 것이 느껴져서였다.
“나도 알아. 그리고 내가 죽어 봤자, 너는 새로운 영혼에 들러붙겠지. 저주받을 역천신공이 세상에 남아 있는 한, 너는 죽지 않고 기생충처럼 계속 부활할 테니까.”
혈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백수룡은 놈이 불쾌해한다고 느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하고 싶은 말을 계속했다.
산산조각이 난 지옥의 풍경을 눈에 가득 담으면서였다.
“그래. 네가 말한 대로 이곳은 나의 지옥이지.”
저 방향 어디쯤에 사부들과 함께 지냈던 뇌옥이 있을 텐데. 어디였더라. 잘 보이지 않았다.
눈에 들어온 핏물을 손등으로 닦아 낸 백수룡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의 무덤이 될 거다.”
백수룡은 아직 남아 있는 역천신공을 일으켰다. 지쳐 쓰러져 가는 몸이었지만 한 줄기 기운만 있어도 충분했다.
화아아악-!
그 힘으로 혈마의 영혼을 단단히 붙들었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했을 뿐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일이었으나,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무슨, 짓을……?
머릿속에서 혈마의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백수룡은 끊임없이 울컥거리며 올라오는 핏물을 뱉어 내곤 큭큭 웃었다.
“너만 영혼에 들러붙을 수 있을 줄 알았나?”
백수룡의 계획은 총 세 단계였다.
첫 번째는 혈마를 자신이 만든 심상 세계에 가두는 것.
두 번째는 흑야마제를 죽여서 혈마가 자신에게 넘어오도록 유도하는 것.
“아무래도 두 번째가 가장 힘들었지. 못 이겨도 문제지만, 너무 쉽게 이겨도 곤란했거든.”
혈마의 기운을 소모시키면서 자신도 만신창이가 될 필요가 있었다. 자신의 몸으로 넘어올 혈마를 쉽게 죽여야 하니까.
“마지막이야 쉽지. 어차피 이 안에서 네 선택지는 나 하나뿐이잖아?”
그리고 세 번째는 혈마의 영혼을 붙들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 안에서 나를 죽이겠다는 것이냐? 불가능한 일이다. 이곳은 심상 세계다. 허락이 없으면 누구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백수룡은 당황이 느껴지는 혈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싸늘한 조소를 지었다.
“허락은 이미 해 뒀으니까 걱정할 것 없어.”
그리고 그 순간, 백수룡과 혈마는 멀지 않은 곳에서 다가오는 익숙한 기척을 느꼈다.
쿠르릉!
한 줄기 벼락이 밤하늘을 가르며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