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57
657화. 살아서 갚거라
“마지막으로 단 한 번, 역천의 힘을 사용하겠다.”
자신을 위협하는 목소리에 진노한 듯, 쾌청하게 변한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쿠르르르릉-!
그러나 백수룡은 개의치 않았다. 하늘은 더 이상 그를 두렵게 할 수 없었다. 차라리 남궁수가 내리치는 벼락이라면 모를까.
“개벽을 막고 지옥이 될 뻔했던 천하를 구했다. 나 혼자서 한 일이 아니다. 이 아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헌데 고작 이 정도 보답도 받지 못한단 말인가?”
백수룡은 섬뜩한 목소리로 하늘을 겁박했다.
혈마를 연상케하는 그의 존재감에 제자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스승님……?”
“잠시만 기다리거라. 저것한테서 받아 내야 할 것이 있으니.”
백수룡은 손을 뻗어 제자들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다시 하늘을 노려보며 사납게 을러댔다.
“마지막이다. 내가 다시 마음을 바꿔 하늘을 찢어 놓기 전에, 단 한 번, 역천의 힘을 쓸 수 있도록 내놓아라.”
하늘을 찢어 버리겠다고 협박하는 스승의 모습에, 사도들은 잠시 할 말을 잃고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헛웃음을 터트렸다.
“스승님은 정말이지…….”
“그래도 되는 겁니까?”
“독종 같은 그 성격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군요.”
사도들의 주름진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제아무리 초연한 태도를 보이곤 있지만, 그들도 죽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럼에도…… 사도들은 끝이 다가오는 이 순간이 마냥 두렵지는 않았다.
곁에 함께 있는 친우들과 스승의 존재 덕분이었다.
“저희가 혈교에서 저지른 악행을 생각하면……. 이것도 나쁘지 않은 최후입니다.”
“천하의 멸망을 막는 데 일조했으니, 지옥에서 치를 죗값이 조금은 줄어들었겠지요.”
“언젠가 누군가의 칼날에 죽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늙은 모습으로 마지막을 맞이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사도들은 애써 덤덤한 표정으로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자신들은 마땅히 죗값을 치르는 거라고, 그러니 스승님이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전했다.
그러나 백수룡이 사도들을 살리려는 이유는 죄책감 때문이 아니었다.
“죽음으로 도망치는 것만이 죗값을 치르는 방법일까?”
그는 제자 한 명 한 명과 눈을 똑바로 맞추며 말을 이었다.
“너희가 진정 죗값을 치르고 싶다면 어떠한 은원(恩怨)이든 살아서 갚거라. 그게 내가 너희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다.”
“…….”
제자들이 멍하니 굳어 버린 그 순간, 하늘이 백수룡에게 단 한 번의 역천을 허락했다. 그의 전신에서 붉은빛이 아지랑이처럼 번졌다.
화아아아악-
그러나 그것은 이전까지의 역천신공처럼 붉고 섬뜩한 핏빛이 아니었다. 마치 노을처럼 따뜻한 주홍빛 기운이었다.
백수룡에게서 흘러나온 따스한 기운이 사도들의 몸으로 스며들자, 먼저 그들의 몸에 난 상처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건…….”
“신의(神醫)가 와도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닐 텐데?”
“스승님?”
사도들의 눈이 대번에 커졌다.
상처뿐만이 아니었다. 노화를 겪었던 그들의 육신이 다시 젊어지기 시작했다.
얼굴의 주름이 옅어지며 세월이 되감기고, 선천지기를 소모하며 쇠약해진 기력이 빠르게 돌아왔다.
단순히 부상을 치유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사도들의 육신이 싸움 이전의 과거로 회귀하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말하지 않았더냐. 하늘의 아량 따위에 기대지 않을 거라고.”
혈마가 자신의 몸에 난 상처를 시간을 거슬러 회복시키던 재생의 권능.
백수룡은 그것을 제자들의 몸에 펼쳤다. 그리고 단순히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그가 하늘을 겁박해 제자들을 위해 준비한 것은 따로 있었다.
“너희들은 한동안 기억을 잃을 것이다. 혈교의 사도로서 저지른 악행들, 나에 대한 기억, 결국에는 스스로가 누구인지도 완전히 잊게 되겠지.”
“……!”
사도들이 놀라서 부릅뜬 눈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짧은 순간, 스승이 자신들을 백치로 만들어서 나쁜 기억을 전부 없애 버리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그러나 백수룡의 계획은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너희들이 경험하지 못한 평범한 어린 시절을 돌려줄 계획이다.”
화아아아아악-
사도들을 감싼 주홍빛 기운이 점점 더 짙어졌다.
그러자 사도들의 육신은 전성기를 지나, 그보다 더욱 과거로 회귀했다.
스스스슷…….
일사도의 얼굴에 있던 흉터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이사도의 새하얀 백발이 검은색으로 서서히 변해 갔다. 살기 어린 삼사도의 눈매는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각자의 무공에 맞춰 완벽하게 단련된 근육들이 부드럽게 풀어지고, 팔다리가 짧아지며 체구 또한 줄어들었다.
“설마 이건…….”
“저희에게 뭘…….”
“하하…….”
백수룡은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제자들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너희가 다시 어른이 되기 전까지, 지금의 기억은 봉인될 것이다. 이게 내가 너희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구나.”
그리고 시간이 흘러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된다면, 전생의 기억을 깨닫듯 서서히 자신들의 업보를 떠올리게 되리라.
“…….”
“…….”
“…….”
사도들은 어려지는 자신들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의 반응은 조금씩 달랐다. 일사도는 굳은살이 사라진 자신의 손을 멍하니 바라봤고, 이사도는 눈물을 흘렸다. 삼사도는 체구에 비해 커져 버린 자신의 칼을 단단히 쥐었다.
그리고 그때, 다시 한번 스승의 음성이 들렸다.
“건환(乾歡). 하늘 아래에서 큰 기쁨을 누리며 살라는 마음으로 지었다.”
순간 일사도의 눈이 커졌다. 건환. 듣는 순간 자신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았다. 백수룡과 눈이 마주친 그가 조용히 그 이름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듯.
“감윤(坎潤). 나쁜 일들은 깊숙이 묻고 반짝이는 삶을 살라는 마음으로 지었다.”
이사도, 눈망울이 맑은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이름이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지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이신(離信). 과거의 은원에서 잠시 떠나 사람들과 신의를 맺어 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다.”
삼사도, 고집이 센 인상의 소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 든 도를 단단히 움켜쥔 채였다.
“건환. 감윤. 이신.”
백수룡이 제자들을 한 번씩 더 불러 주자, 열 살가량의 나이까지 어려진 소년소녀들이 그를 빤히 올려보았다. 백수룡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그들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었다.
“기억하거라. 너희들의 이름이다.”
파아아아앗-
비로소 이름을 갖게 된 소년소녀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순간, 그들의 몸에서 따스한 주홍빛이 폭발하며 동시에 의식을 잃었다.
“다들 한숨 푹 자두거라. 깨어나면 낯선 것들이 많을 테니까.”
제자들의 몸을 반듯하게 바닥에 눕힌 백수룡은 고개를 돌려 누구보다 고집이 센 제자를 바라봤다.
“사곤. 너는 끝까지 거부할 셈이냐?”
“…….”
사곤은 단호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유일하게 그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했다.
선천지기를 소모하지 않아 노화를 겪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친우들과 함께 추억을 만들고 싶지 않더냐?”
“…….”
물론 백수룡도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 이유가 궁금했기에, 하늘이 허락한 역천의 기운을 조심스럽게 뻗었다.
“부디 이것만은 거부하지 말거라.”
백수룡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따스한 주홍빛이 사곤의 목울대를 스치고 지나갔다. 사곤은 잠시 따끔한 감각을 느꼈다.
“아, 아아-”
육성으로 소리를 내 본 사곤은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활짝 웃었다. 술법의 기운이 다해 사라졌던 목소리가 이번에는 온전하게 돌아온 것이다.
“백수룡 스승님.”
“……너였구나. 심연에서 나를 끄집어 낸 그 목소리의 주인이.”
백수룡도 놀란 표정으로 사곤을 바라봤다.
그가 심연에서 빛을 따라 헤엄칠 때, 현실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준 결정적인 한 마디.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준 사람이 사곤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사곤이 그다음에 한 말도 백수룡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저는 이 녀석들에게 천하를 구경시켜 주고 싶습니다.”
“뭐……?”
과묵했던 제자는 입을 열 때마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사곤은 새근새근 고른 숨소리를 내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함께 명소를 유람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구경하면서 돌아다닐 생각입니다.”
“……그건 내가 해도 될 일이다. 굳이 네가 해야 할 필요는 없어.”
그러자 사곤은 어림도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바쁘신 스승님과 열흘에 한 번이나 겨우 외출할 수 있으면 다행일 텐데. 어느 세월에 천하를 다 둘러보겠습니까?”
“이 녀석이……. 말문이 한번 트이니 아주 청산유수구나.”
백수룡은 허탈하게 웃으며 사곤을 바라봤다.
그는 사곤이 진정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깨달았다.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스승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살아 보겠다는 선언이었다.
백수룡의 눈을 똑바로 마주한 사곤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친우들과 함께 자유롭게 천하를 구경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몰랐던 것들을 경험하고, 추억도 많이 만들 겁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그래. 알겠다.”
결국 백수룡은 제자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다만 한숨을 길게 내쉬곤 신신당부할 뿐이었다.
“대신 어떻게 지내는지 종종 서찰이라도 붙여야 한다.”
“예.”
“허투루 듣지 말고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보내야 한다! 연락 없으면 어떻게든 찾아갈 테니 그리 알고…….”
백수룡은 언젠가 부친에게 들었던 잔소리를 제자에게 그대로 쏟아 내고 있단 사실을 깨닫고는 그만 피식 웃어 버렸다.
푸스스스…….
그들을 둘러싼 심상 세계가 꽃잎처럼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 * *
천하를 멸할 것처럼 소용돌이치던 하늘이 잠잠해지고, 거짓말처럼 맑은 하늘로 돌아왔다.
“……결착이 난 모양이구려.”
검성은 검을 아래로 늘어뜨리며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늘이 닫히면서 조금 전까지 날뛰던 괴력난신들도 모두 스러졌다. 혈교도는 최후의 한 명까지 절멸시킨 지 오래였다.
스아아악-!
남궁수와 청룡오망이 심상 세계의 균열을 열고 빠져나왔다. 그 모습을 본 많은 고수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싸움이 드디어 끝났다는 의미였기에.
“참으로 일장춘몽 같았던 전쟁이었소. 죽여도 죽여도 계속 나타나는 괴력난신들이 오늘 밤 꿈에도 나올 것 같구려. 안 그렇소 불존?”
검성은 대답이 없다는 사실에 뭔가 의아함을 느끼고 옆을 돌아봤다.
“불존? 어찌 말씀이 없으신…….”
선 채로 열반에 든 소림의 고승을 목도한 검성은 잠시 말이 없었다. 하늘이 닫힌 순간 불존의 싸움도 끝이 난 것이다.
“……고생하셨소. 참으로 질기게도 버티셨구려.”
끝내 승리했지만 정사연합의 피해 또한 막심했다.
수많은 고수들이 전장에서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으며, 모두가 적지 않은 부상을 입었다. 신체 중 한 곳이 절단된 자들이 허다해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그만한 희생이 있었던 만큼, 모두의 간절한 시선이 혈마와 함께 사라졌다가 돌아온 이들을 향했다.
“혈마는……?”
“청룡신협과의 싸움에서 패사했습니다.”
뇌신 남궁수가 청룡신협이 혈마를 쓰러뜨렸노라고 증언한 순간, 정사연합의 무인들이 저마다 고함과 함성을 질렀다. 벅찬 감정에 서로를 껴안고 눈물을 흘리는 자들도 있었다.
우와아아아아!
그렇게 전장에서 살아남은 승자들이 서로를 부축하며 돌아가려 할 때였다.
어디선가 나타난 신선과 같은 풍모의 노인이 전장을 가로지르며 걸어왔다. 가볍게 걸음을 딛는 것만으로도 한 번에 몇 장씩 움직이는데, 느껴지는 기운이 사람이라기보다는 신령에 가까웠다.
“그대는……!”
나이가 지긋한 무림의 고수들 중 몇몇이 노인을 보고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 되었다.
“쯧쯧. 많이도 죽고 다쳤구나.”
시체로 가득한 전장과 다친 이들을 둘러본 신선 같은 풍모의 노인이 소매를 허공에 떨치자, 그 안에서 수백 개가 넘는 금침과 은침이 쏟아져 나와 허공으로 둥실둥실 떠올랐다.
“부상자들은 모두 내게 오너라. 명줄만 붙어 있다면 치료해 줄 터이니.”
노인은 무림에서 생사신의(生死神醫)라 불리며 오랫동안 경외한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