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133
제133화
“젠장, 이브이 총격 장소는 가게 안이야?”
– 예, 안에 총탄 흔적이 있을 겁니다. 여기서는 확인하기 힘듭니다.
“오케이. 老闆 有啲察察以後,就走啊. 好唔好阿. (주인장, 조금만 뒤져보고 바로 갈 거요. 괜찮죠?)”
주인장은 그것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래도 이진영이 이곳에 있는 것 자체가 불안한 모양이었다.
그는 별수 없이 통신기 3D 카메라 모듈로 사진만 찍고 바로 가게를 나왔다. 괜히 가게 주인장의 심기를 거스르면 가게 주인이 웡꺼에게 통보할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롱꺼 패거리에게 이진영은 요주의 대상이었다.
“이브이, 뭐 건진 거 있어?”
– 피해자는 앉아있다 당한 거군요. 핏자국을 치우긴 했지만, 의자 다리와 의자판을 제외한 마루 틈에 혈흔이 남아있습니다.
감식 로봇을 가져오지도 않았고 가게 안에서 루미놀 테스트를 할 수도 없었지만 EV-1은 이진영이 찍은 사진으로 멋지게 현장 상황을 재구성했다.
– 피해자의 위치를 중심으로 입사각을 계산하니. 나왔습니다. 탄착 흔적입니다. 탄착은 강선 흔적이 없고 탄자가 깨진 모양으로 보면 AK-E입니다.
AK-E는 AK 소총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레일식으로 작동되는 북중국군의 제식소총이었다. 배터리값이 꽤 비싸서 그냥 난민들이 들고 다닐만한 무기는 아니었다.
난민들은 호신용으로 값싼 화약식 리볼버 따위를 선호했다.
“러다이트 테러리스트. 혹은 웡꺼의 공격부대겠군.”
– 예, 그리고. 어…….
EV-1은 연산 능력이 굉장히 빨라서 어지간해서는 말을 더듬지 않는다.
– 팀장님 쪽에서 약 40미터 거리, AK-E를 장비하고 있는 사람이 보입니다.
“인상착의는?”
– 그걸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관광객의 몽타주와 78퍼센트 일치합니다.
이진영과 유인환은 서로를 쳐다봤다. 두 사람은 EV-1이 찍어준 곳으로 냅다 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인장은 망설이다가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 * *
용의자는 지금 먹자골목에서 로봇 세탁소와 가죽공장이 줄줄이 늘어선 곳을 지나고 있었다.
가죽공장의 화학약품 냄새가 코를 찌르고 로봇 세탁소의 다리미에서 나온 하얀 김이 안개처럼 시야를 가렸다.
이진영은 안경처럼 생긴 글라스모듈을 끼고 EV-1이 증강현실로 용의자의 모습을 찾았다.
용의자는 노란색 완장을 두르고 있었고 푸만추처럼 얄쌍하게 콧수염을 길게 기르고 있었다. 저 콧수염만 봐도 몽타주의 살해범과 똑같았다.
목격자는 다른 건 다 까먹어도 저 콧수염만큼은 제대로 기억했다.
“유인환 절대로 먼저 화약총을 쏘거나 소란을 피워선 안 돼. 여긴 웡꺼의 영역이다.”
중화대루의 붉은 네온사인 글씨가 빗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총이라도 쐈다간 웡꺼의 공격부대가 미친 듯이 몰려올 것이다.
“유인환, 너는 세탁소 뒤를 돌아. 나는 이쪽으로 갈게. 이브이 너는 위에서 상황관제를 해라.”
– 팀장님. 웡꺼의 공격부대 차량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뭐?”
이진영은 당황한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아까 그 주인이 신고한 거군. 제기랄. 유인환. 일단 숨자. 이브이 용의자 계속 추적해줘.”
– 재밍이 시작되었습니다.
“또 시작이군. 개자식들.”
세탁소 거리를 찍던 관광객들이 핸드폰 데이터가 끊기자 어리둥절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웡꺼의 공격부대는 한국군의 미사일 폭격을 막기 위해 반드시 군용 교란기를 작동시키고 이동했다.
웡꺼의 공격부대가 이동하자 경찰과 육군 공안은 즉각 틸트로터를 선회시키며 놈들의 움직임을 쫓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벌어지는 장면이었다.
– 본청 전임의 도움을 받아 틸트로터와 연결되었습니다.
“해킹한 건 아니지?”
– 하하, 적법절차를 준수했습니다.
이진영은 담벼락에 숨어 쓴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은 지금 우의의 광학위장을 작동시켰다. 움직이는 거라면 몰라도 이렇게 담벼락 밑 쓰레기봉투 옆에 있으면 잘 구분할 수 없었다.
컹컹.
이진영은 디젤트럭의 덜덜거리는 진동소음 사이로 개소리를 듣고 바짝 긴장했다. 개들이 트럭보다 먼저 길거리를 내달려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도 큰 덩치의 도베르만 한 마리가 나타났다.
윤인환이 슬며시 소총을 들었지만, 이진영은 총구를 내렸다.
개의 목에는 GPS추적장치와 카메라가 달려 있었다. 총성이 들리거나 개에 이상이 생기면 놈들은 바로 뛰어올 것이다.
두 사람은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그들 쪽으로 다가오는 개를 노려봤다. 도베르만은 한동안 광학위장에 빗물이 튀기는 걸 한동안 바라보다가 호루라기 소리를 듣고 다른 곳으로 뛰어갔다.
주변에 가죽공장이 있고 그나마 지금 비에 흠뻑 젖어있는 게 다행이었다.
웡꺼의 또 다른 사냥개가 이진영과 유인환을 스쳐 지나가고 공격부대의 트럭도 골목길을 스쳐 아까 광동 요리를 파는 노점으로 향했다.
저 멀리 트럭에서 내린 놈이 가게 주인과 이야기를 했고 가게 주인은 두 사람이 온 방향을 가리키며 대답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비를 맞으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 무전을 감청했습니다. 중화대루 근처로 이동한다는군요. 중화대루를 감시하는 육군 요원이라 착각한 것 같습니다.
주인장은 광학위장 우비 때문에 이진영을 경찰이 아니라 육공으로 착각했다. 그들이 쓰고 있는 우비는 군납용이라 군에서 더 많이 썼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한숨을 돌렸을 때 또 뜻밖의 상황이 터졌다.
– 팀장님, 용의자가 바로 앞에 있습니다.
두 사람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푸만추 수염을 한 그놈이 맞았다. 수염이 비에 젖어 턱에 달라붙어 있었고 가까이서 보면 꽤 웃기게 생긴 외모였다.
바로 그 웃긴 얼굴을 보고 관광객이 웃음을 터뜨렸고 그게 시빗거리가 되어 총에 맞았다.
용의자는 웡꺼의 공격부대였고.
주인장의 신고를 받고 AK-E 소총을 든 채.
하필이면 두 사람이 숨어있는 담벼락 근처로 혼자 다가왔다.
이진영과 유인환은 놈이 등을 돌리기를 침착하게 기다렸다.
역시나 또 운이 좋았다. 놈은 쓰레기가 쌓여있는 걸 보고 두 사람에게 등을 돌린 채로 바지춤을 내리고 오줌을 쌌다.
등려군의 옛날 노래를 흥얼거리며 지퍼를 올리는 용의자. 놈이 일을 보자마자 유인환은 놈에게 슬립초크를 걸었다.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이진영이 소총을 잡고 유인환은 축 늘어진 용의자를 어깨에 들쳐멨다.
“팀장님. 저 이러면 특진 아닌가요?”
“운도 억세게 좋구만? 어제는 테러 용의자를 한 방에 잡더니. 와오……. 너 요새 주식 투자나 복권 산 거 있냐? 나도 좀 사게.”
* * *
테러 사건도 최소 한 달은 넘게 파야 용의자가 나올까 말까고, 지금 관광객 총격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유인환은 이틀 사이에 너무나 간단하게 용의자를 잡았다.
두 사람은 용의자를 EV-1에게 넘겨 포박시키고 각각 다른 루트로 굴다리에서 빠져나왔다.
웡꺼의 사냥개가 성가시게 굴긴 했지만, EV-1가 그들과 멀지 않은 곳에서 상황을 관제해준 덕분에 두 사람은 중부서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중부서에는 미 대사관에서 파견 나온 사람이 항의하다가 그들이 잡아 온 용의자를 보고 벙찐 표정이 되었다.
“정말로 용의자를 잡아 오신 거에요?”
“예, 피해자의 검시보고서, 그리고 가게에 남겨진 탄착 흔적, 그리고오 해당 총기를 발사 시험해서 도출한 결과. 여기 있습니다.”
대사관 직원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죽은 사람이 꽤 높은 사람 아들이라. 저희도 조마조마했습니다.”
“높은 사람이요?”
“무슨 장관 아들이라던가? 아무튼 수고하셨습니다. 대사님에게 보고서 올리고 저도 이제 한숨 돌리겠네요.”
대사관 직원은 미국인이었지만 깔끔한 한국어로 그렇게 말하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중부서를 나갔다.
용의자 푸만추는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읍읍거리며 애벌레처럼 바닥에서 발광했다.
“유인환씨? 네가 처리해라. 어이 매트. 광동어 번역 도와줘.”
행정로봇 매트가 유인환과 함께 취조실로 들어가고 이진영은 물이 흥건한 우비를 벗었다.
“으으으, 비 오는데 이게 뭔 지랄이래?”
이진영은 유인환의 자리에 앉아 두 사람의 우의를 패트에게 건네줬다.
– 팀장님, 말씀드리는 게 늦었는데, 윤숙희 경사의 보고입니다.
“어? 뭔데?”
– 성폭행 피해자 조사를 하는 와중에 김민지와 접점이 있습니다. 같은 업소에서 일했다고 하는군요.
“아, 강간 피해자가 윤락녀였어?”
– 예, 서로 아는 사이였다고 합니다.
“윤숙희는 어딨지?”
– 용의자 몽타주를 작성하러 인천시경 쪽에 갔습니다. 중부서 로봇보다 성능이 좋다고 합니다.
“알았으. 김대혀이~~ 업소 이름 나왔댄다. 니가 갈래? 아니면 내가 갈까?”
김대현은 뭔가 문서를 정리하다가 한숨을 쉬었다.
“은행강도 사건 보고서 정리하랍니다. 부장님 명령이에요.”
“뭐? 임은혜는 어디 가고? 그거 걔가 하기로 되어 있지 않았나?”
“은혜는 시경에 갔습니다. 행사요.”
김대현은 턱끝으로 진돗개 모양의 경찰 마스코트 인형을 가리켰다. 오늘은 시에서 주관하는 어린이 방문 행사가 있는 날이었고 임은혜가 안내 경찰로 뽑혔다.
“아 쫌 우리서만 해도 경리부나 총무부에 여경 썩어나는데 왜 하필 임은혜야?”
“카이스트 출신에 귀여우니까요.”
이진영은 말없이 김대현을 바라봤다.
“뭐야, 니네 정분났냐?”
“아니이……. 높으신 양반들이 봤을 때 그렇다는 거죠. 뉴스도 나왔고. 또 간부 경찰이 아니라 일선 경찰로 지원했으니 또 이야깃거리로 좋잖아요.”
이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상영 선배는.”
“또 개 찾으러 나갔습니다. 아까 서장님이 직접 와서 개 보고 갔어요.”
전상영이 가져온 포메라니안은 헥헥대며 이진영에게 장난감 인형을 물고 왔다. 이진영은 개의 머리를 쓰다듬고 장난감 인형을 휙 던졌다. 개는 천진난만하게도 목걸이의 방울을 딸랑거리며 강력전담부 안을 뛰어다녔다.
“얘는 어떡하고?”
“모르죠? 주인이 안 나타났는데. 아 그리고 상현 형님은 병원으로 사건 청취하러 갔어요.”
“또 뭔 사건인데?”
“서장님이 개 보러 내려왔을 때 던져준 사건이에요. 폭행 시비가 붙어서 누가 차에 깔렸다던가?”
이진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오케이. 그럼 밥 먹고 내가 업소에 갔다 올게. 아, 김대현, 넌 밥은 먹었냐? 사주까?”
“오오오 인천의 태양이시며…….”
이진영은 픽 웃으면서 칼국수 배달을 시켰다.
* * *
“월미도에 맛집이 많긴 하지만 역시 비 오는 날에는 칼국수야? 그지이?”
“뜨끈한 게 좋네요. 하 이제 살 것 같다.”
두 사람은 산더미만 한 칼국수에 만두까지 다 먹어 치우고 각자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때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EV-1은 회선을 확인하고 매니퓰레이터암으로 바로 이진영에게 수화기를 내밀었다. 영문을 모르는 이진영은 입 모양으로 ‘누구?’라고 말했고 바로 수화기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 어 이진영이 수고한다. 어제 한 건 잘 보내줬다 야. 덕분에 고구마 줄기처럼 이름이 두두둑 나오더라.
“아아, 국장님. 잘 지내셨어요? 안 그래도 연락드린다고 했는데 저도 바빠서요? 국장님은 서울대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