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00
099화 전쟁을 피하고 싶다면 (2)
그길로 왕궁으로 가서 영락제의 칙서를 받았다.
역시나 국호는 대만.
화가 나진 않았다.
어이가 없을 뿐.
이어 잔치를 준비했는데, 먼 곳에서 온 손님을 대접하는 하마연이다.
다행히 전승 축하연을 준비하고 있던 상황.
갑작스러운 부담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잔치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병필태감 문루와 둘이서 차를 마셨다.
“그런데 말이에요.”
“말씀하세요.”
“전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편의 위험성에 대해 말씀을 올렸사와요.”
“잘되었습니까?”
“폐하께서는 대명 내에서는 임시로 흡연용 아편을 금지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임시로요?”
“그 아편이 정말 해로운 것인지 확인되지는 않았으니까요.”
이해한다.
명나라라는 거대한 국가를 운영하는 데 한 사람의 의견만을 반영할 수는 없을 테지.
“그런데 아편이 정말 해로운지 아닌지는 어떻게 판단하죠?”
“두 가지 시험을 하기로 하셨습니다. 하나는 대월 정벌군에게 보내어 부상병에게 쓰도록 하셨어요.”
“음…….”
“전하는 이것도 위험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전쟁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지옥에서 살아남았다고 해도, 가벼운 부상만으로 골로 갈 수 있다.
이 시대의 의학은 처참하기 그지없으니까.
수천 년 동안 전쟁을 해오면서 이 시대 사람들도 감염에 관해 어느 정도 지식을 습득했다.
감염을 막는 방법은 잘 몰라도, 일부러 일으키는 방법은 안다.
그게 바로 똥이다.
1년 이상 묵힌 똥에 독을 섞고, 이걸 화살에 묻혀 쏜다.
사실 전쟁 역사를 보면 나오는 ‘독화살’의 독 중 상당수가 똥독이다.
이걸 맞게 되면 박테리아나 균에 의해 극심한 고통을 앓다가 죽는다.
대월에서는 이를 잘 활용하기로 유명하고.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병사를 위해 아편을 처방한다는 계획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었다.
현대에서도 전투에 참여한 병사의 극심한 고통을 가라앉혀주기 위해 모르핀을 처방하니까.
“위험하긴 합니다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폐하의 성지대로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겁니다.”
“다행이에요. 전하의 보증까지 있다면 확실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과찬이십니다. 다른 시험은 무엇입니까?”
“이건 기밀입니다. 누구에게도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예.”
설마 빈민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상인들을 통해 북원에 아편을 팔아넘길 생각입니다.”
“아…….”
“아시다시피 현재 북원은 크게 두 개로 분열된 상태입니다.”
“알지요. 서쪽의 오이라트와 동쪽의 타타르가 아닙니까.”
“오이라트와 타타르 각각의 결속도 그리 좋진 않습니다. 이 중 대명에 이빨을 드러낸 부족 위주로 아편을 팔아넘길 생각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라 불리는 아편 전쟁.
사실 이는 생각보다 어렵게 통과되었다.
그 나라의 의원 중에서도 상식인이 있었으니까.
이들은 세계 최고의 문명국에서 마약을 팔기 위해 전쟁을 한다는 걸 수치스럽게 여겼다.
……그 상식인들은 자국 성찰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이보다 잘 어울릴 수가 없는데.
아무튼 그 탓에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표결을 붙여 아주 근소한 차이로 주전파가 승리하여 전쟁을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시대다.
아편의 해악성이 드러나지 않았을뿐더러, 심지어 드러났다고 해도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이를 파는 것조차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미인계처럼 병법에 나오지 않을까?
‘적을 치기 전에 적 진영에 아편을 퍼뜨려라.’ 같은 내용으로.
자칫 명나라는 아편을 팔아 엄청난 재물을 모으고, 주변 나라가 아편으로 골골대는 사이 이를 정복하여 청나라급으로 강력해질 수도 있다.
“역시 걱정입니다. 폐하께서 금지하셨다고 해도, 손쉽게 근절되는 게 아닐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금지한다고 마약이 근절되었으면, 현대의 지도자들이 골머리 썩일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이 일은 육관을 담당하시는 한왕 전하께서 맡게 되었사와요.”
“맙소사.”
그 중요한 일을 부패하고, 욕심 많은 데다,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진 미친놈에게 맡긴다고?
잘못되었을 경우 한왕에게 죄를 다 뒤집어씌우고 쳐내기 위함인가?
“근데 아편이 대체 어디서 흘러들어 온 겁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창해 주식 상단의 화물을 불시에 점검하였지만, 아편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 점이 의아하여 파헤치다 보니, 잉와(미얀마)와 애뢰(라오스)에서 운남성을 통해 들어온 듯해요.”
“잉와와 애뢰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화인을 통해 들어왔다는 첩보도 있사와요.”
설마 건문제 쪽에서 보낸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화인 공소의 거상들은 창해 주식 상단을 따라서 제품을 개발하는 데 상당한 돈을 투자하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는 믈라카 술탄국을 통해 중동의 연금술사나 학자들을 섭외한다.
반면 화인 공소에서는 주로 도교의 연단술을 익힌 자들을 섭외하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전하께서는 어찌하실 생각인가요?”
병필태감 문루가 은근한 눈빛을 하며 물었다.
“폐하께서 그리하셨다는데 제가 어쩔 수 있겠습니까. 충실히 따르는 수밖에요. 적어도 제 힘이 미치는 곳에서는 아편을 철저하게 금지할 것입니다.”
“대만을 통일한 이후에는 어찌하실 생각이냐고 여쭌 것이와요.”
“원래의 목표대로 구라파로 향할 준비를 해야겠지요.”
“전하께서 직접 항해를 지휘하신단 말씀이세요? 위험합니다. 이제 직위도 있으니 다른 이에게 맡기셔요.”
“제 인생의 숙원입니다.”
“요호호. 정말 전하께서는 한결같으신 분이군요. 모든 이들이 전하와 같았다면 폐하께서도 무척 편하셨을 겁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단기 목표는 한타와디(남부 미얀마)의 달라(양곤), 그리고 벵골 술탄국입니다. 가능하다면 그 이남으로도 가보고 싶군요.”
이미 상인들을 보내어 허락을 구했고, 그들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오히려 빨리 와달라고 간청할 정도였다.
해적을 소탕하고, 현지에서 좋은 평판을 받는지라 그들도 나를 좋게 본 듯했다.
나는 서쪽으로 간다.
그사이 창해 주식 상단의 직원들을 계속 내려보내어 필리핀과 뉴기니섬의 부족들과 친분을 트게 하고.
제대로 된 항구가 지어져 거점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이후에 호주로 갈 생각이다.
인도를 먼저 목표로 설정한 이유는 간단했다.
대만 통일을 거치면서 확실한 무력만이 전쟁을 피할 수 있다는 걸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명나라에 의존하지 않고 화약의 재료인 초석과 유황을 확보해야 한다.
이 시대에 염초 밭을 만드느라 고생하느니, 차라리 초석 광산을 확보하겠다.
인도 대륙에는 초석 광산이 곳곳에 널려있다.
괜히 그 나라가 인도를 가리켜 왕관의 보석이라고 했던 게 아니다.
“해관을 담당하는 저로서도 전하의 성공을 바랄 수밖에 없겠군요.”
“제가 아니었다고 해도 제독 정화가 성공했을 것입니다.”
“요호호. 삼보 태감의 위대함은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생각하시는 것보다 더 대단할 겁니다. 사실 제가 이렇게 빠르게 성장한 건 제독 정화께서 조공·책봉과 해적 소탕으로 바다의 질서를 잡아주고 있기 때문이니까요.”
정화의 1차 원정은 인도 근처에 가지도 못하고 끝났는데도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 점이 의아하게 여겨졌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정화는 믈라카 술탄국, 팔렘방 등을 마자파힛 제국으로부터 독립시키고, 내전에 간섭하여 마자파힛 제국의 위세와 해상 패권을 끊임없이 떨어뜨리고 있다.
그 와중에도 영락제가 보낸 군대를 지원하여 필리핀 일부를 정복했다.
그사이 나는 창해 주식 상단을 곳곳에 보내어 무역로를 확보하고, 현지인들을 고용하여 세력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여기에 화인 공소의 지원까지 합쳐지니 그야말로 폭풍 성장 중이다.
“태감께서도 전하를 크게 칭찬하셨사와요. 덕분에 폐하께서 내린 임무를 쉽게 수행할 수 있었다고요.”
“어찌 제 덕이겠습니까.”
“전하께서 현지인들을 차별 없이 대하시니 어딜 가시든 민심이 좋다고 하더군요.”
“그게 문제이긴 합니다. 저는 천자를 중심으로 중화 질서를 다시 세우길 원하는데, 아직은 사람 간에 뿌리 깊은 차별 의식이 남아있어 그것이 걸림돌입니다. 모두가 폐하의 백성인데 말입니다.”
이건 아마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부분이니까.
심지어 같은 나라의 부족들끼리도 그런 일이 수없이 발생한다.
대만 역시 내가 철저하게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데도 계속 발생하지 않는가.
“전하께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심은 저도 잘 알고 있사와요. 저 같은 환관도 사람으로 대접해주시지 않습니까.”
“제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폐하고, 그다음이 제독 정화인데 어찌 환관이라고 차별하겠습니까.”
“요호호. 그래서 저도 전하를 무척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고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최대한 납작 엎드려야지.
적어도 힘을 얻을 때까지는.
사실은 힘을 얻은 이후라도 별로 싸우고 싶진 않다.
명나라의 체급은 그만큼 넘사벽이니까.
하지만 그 명나라가 여러 개로 나누어지기만 한다면…….
나는 역사대로 영락제가 20년은 멀쩡하리라 생각했다.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아편을 퍼뜨린 자는 아마도 건문제 주윤문.
이에 홀라당 속아 넘어가 그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는 야망 가득한 한왕 주고후.
이를 견제하고 유학을 중시하는 황태자 주고치.
아편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영락제 주체.
미래인이자 제삼자의 시각에서 보건대 매우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만약 여기서 영락제가 일찍 죽는다면 세상은 급변한다.
이건 순전히 감이지만.
어쩐지 그날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전쟁을 준비하는 수밖에.
***
드라마는 지루한 부분을 잘라낸 인생이다.
역사는 인류에 큰 영향을 미친 액기스만 모은 드라마다.
내가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고.
지루한 일상으로 낭비하기엔 내 지식과 능력이 아깝다.
따라서.
나는 액기스만 즐기겠다.
“이제부터 나는 다시 항해를 떠난다.”
왕궁에 간부들을 모아놓고 입을 열었다.
“먼저 부인.”
“예. 전하.”
정식 혼례는 2년 뒤에 하기로 했지만, 약식으로 혼례를 마쳤기에 이제 부인이 된 허신애.
내가 바다로 향하는 사이 혹시라도 위험할 수 있으니 허가장으로 가길 권했지만, 그녀가 극구 사양하여 남기로 했다.
“부인은 창해 주식 상단 대만 지부의 지부장입니다.”
“염려 마시옵소서. 전하께서 뜻을 펼칠 수 있도록 확실하게 관리하겠습니다.”
허가장에서의 수완을 봤을 때 그녀는 상재에 일가견이 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총리.”
“예. 전하.”
파포라족의 족장이자, 대만 원주민 중 개화파의 선두주자인 마이상 가오궈이.
그는 강력한 부족 태생으로 타 부족으로부터 위협을 받은 경험이 거의 없는 탓인지 타 부족에 대한 원한도, 차별 의식도 적었다.
“내가 없을 땐 그대가 일인자다. 각 족장가의 권위를 무시할 생각은 없으나, 나에겐 모두가 평등한 백성들이다. 무슨 뜻인지 알겠지?”
“전하의 뜻을 받들어 이 땅에 평화와 발전, 그리고 번영을 가져오겠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가 보여준 실력과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보았다.
조선이나 명나라처럼 사람이 너무 많아서 통제하는 데 엄청난 실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
“척찬궁 장군.”
“예. 전하.”
“나라의 모든 것은 안보 위에 세워진다. 즉, 명나라군이야말로 대만의 울타리이자 핵심이라는 뜻이다.”
개개인의 실력으로 보자면 원주민 전사들이 뛰어나다.
하지만 명나라군은 숫자와 무장이 압도적이고 늘 군사훈련을 받기에 대만에서는 가장 강력한 무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차차 원주민 전사로 이루어진 군대를 만들면서 이를 견제하겠지만, 지금은 이들의 힘이 필요하다.
“전하께서 이룩하신 위업을 본받아 이 땅에 평화를 유지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똑똑하다.
그러니 재미없는 부분은 그들에게 맡기자.
“그럼 맡기겠다.”
“예. 전하.”
드디어 시작이다.
조선인 최초의 인도양 진출.
나는 가장 재미있는 부분을 즐기고, 이를 통해 세상에 변화와 문명의 진화를 가져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