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99
098화 전쟁을 피하고 싶다면 (1)
퍼퍼펑!
포탄이 날아가며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안다.
이런 전투에서 대포는 효율이 매우 구린 사치품이라는 것을.
하지만 인간의 감정은 계산할 수 없는 영역이다.
대포가 뿜어내는 굉음과 사람이 한순간에 고기 파편으로 변하는 모습은 엄청난 공포를 자아낸다.
처음 겪는 사람에겐 그 자체로 충격과 공포.
적이 충격으로 넋이 나갔을 때, 호아냐족 전사를 비롯한 원주민 전사들이 앞으로 뛰어 들어갔다.
“방진을 세우고, 그 뒤에 궁수와 총병을 배치해서 쏘는 게 최고인데.”
일본군과 다르게 대만 원주민들은 갑옷을 입지 않는다.
만약 내 생각대로 했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복수할 기회도 없이 우리가 끝내버리면, 분명 돌발행동을 하는 놈이 튀어나올 테니까.”
“하긴. 조선에서도 부모의 원수를 갚는 건 인정하지 않습니까.”
조선에서 살인은 사형이다.
하지만 부모의 원수를 갚는 살인이었을 경우 곤장과 유배로 감형해 준다.
유학이 충효를 중요시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복수는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 중 하나기 때문이다.
복수를 허용하지 않으면 불만이 쌓이고, 불만이 쌓이면 반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나도 이렇게 허용해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원주민 전사의 숫자를 줄여 통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함도 있었고.
“전하. 옆쪽에 기습입니다!”
“기습은 개뿔. 대놓고 오는구만.”
시야가 훤히 트인 곳에서는 기습이라는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
멀리서 적이 오는 걸 봤으면 대응하면 된다.
척찬궁은 말하지 않아도 곧바로 창병을 나누어 옆쪽을 대비케 했다.
“총병들 솜씨 좀 보자.”
“예. 전하.”
새로 만들어진 수석총은 그리 많이 생산되지 않았다.
총병은 정확히 100명.
기본이 총병인 현대 군과는 다르게, 수석총병은 우리 군에서 최정예다.
화약값이 비싸므로 실사격은 최소한으로만 연습시켰고, 대신 사격술 예비훈련(PRI)만 죽어라 시켰다.
“궁수가 있긴 한데 굉장히 적네.”
“왜구들의 활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저래서야 잘 날아가기나 할지.”
“그래도 육체적 능력만 보면 저쪽이 더 위인 것 같아.”
죄다 근육이 상당하니까.
운동이야 누구나 한다고 치고, 대체 어디서 단백질을 섭취하는 걸까.
“와아아아아!”
원주민 전사들이 일제히 달려왔다.
그들의 용맹과 사기는 무척 높았다.
하지만.
“1번 조 사격 개시.”
두두두두두!
아무리 단련해도 몸에 납탄이 박히면 죽는 건 마찬가지다.
33명이 일제히 사격했다.
일선에서 달려오던 전사 다섯 명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2번 조 사격 개시.”
두두두두두!
잠시 멈췄던 탓에 이번엔 열다섯 정도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이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쫓아갈까요?”
“내버려 둬라. 공포를 퍼뜨릴 사람도 있어야지.”
기분 더럽네.
어떻게든 이번 한 번으로 끝을 봐야겠다.
다 같이 잘 살고 싶은데, 정복자가 이런 말을 해봐야 위선이겠지.
그 사실이 입맛을 씁쓸하게 했다.
“전하. 제압이 완료되었습니다.”
“가지.”
우리가 지원군을 격퇴하는 사이, 우리 쪽 전사들은 적 전사들을 죽이고 마을 제압까지 완료했다.
수만 대 수만의 싸움이 아니라, 250대 50 정도의 소규모 전투다 보니 전투는 빠르게 끝났나 보다.
마을로 향하는 길.
곳곳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고, 대지는 붉게 물들었다.
축축한 대지를 밟고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 안에는 다친 전사, 그리고 노인과 여자, 아이가 모두 한데 모여 있었다.
“나는 기분이 굉장히 좋지 않다.”
역관이 곧바로 통역했다.
그 말을 듣자 마을 사람들이 벌벌 떨었다.
“이 섬 전체는 공식적으로 나의 영토. 그대들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변하지 않을 사실이다.”
확실하게 해야 한다.
내가 어중간하면 이런 비극은 계속 일어난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내 백성인 그대들이 이렇게 서로 싸우고, 소중한 사람을 잃고, 피눈물을 흘리며, 복수의 칼을 가는 모습은 심히 불쾌하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누구냐! 누가 습격을 주도했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족장을 데려와라!”
역관이 통역하자, 호아냐족 전사 하나가 슬쩍 입을 열었다.
“족장은 앞장서서 싸우다가 목이 잘렸다고 합니다.”
그래도 전쟁을 지시하고 뒤에 숨는 녀석보다는 낫다고 해야 하나.
“나는 노예를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패자인 너희들을 노예로 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멋대로 습격한 대가로 호아냐족에게 충분한 배상금을 갚게 할 것이다.”
교육으로 인간을 교화한다.
그딴 거 믿지 않는다.
확실한 힘과 금융치료만이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
“눈물을 삼키고, 복수는 잊어라. 오늘 같은 재앙을 너희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그 말을 끝으로.
보복이자 정복은 계속 이어졌다.
***
2천이 넘는 군대와 많아야 30명인 전사.
게다가 무장도는 이쪽이 훨씬 위.
그야말로 일방적인 전투였다.
마지막으로 가오슝에서 마카타오족이 항복함으로써 단 하루 만에 습격 사건은 일단락 지었다.
“오늘은 이만 쉬고, 내일 왕궁으로 돌아간다.”
“포로들은 어떻게 할까요?”
“전부 데려갈 거야. 그러니 잘 보호해라. 특히 병사들이 함부로 손대지 않도록 군기를 철저히 다잡고.”
“예!”
그들은 불안에 떨고 있지만, 이는 그들을 보호하려는 조치다.
부족의 전사가 사라진 그들이 언제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으니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명나라군으로 그들의 자리를 지키게 한 후, 내 막사로 들어갔다.
석피가 곧바로 따라 들어왔다.
“한 건 없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피곤하냐.”
“전투를 연속으로 치렀으니 피곤하시죠.”
“내가 한 건 아니잖아.”
“익숙해져서 그렇지, 보통은 전쟁터에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피곤합니다.”
그건 그래.
“석피야.”
“예. 나리.”
“이 땅에 평화가 올까?”
이제 남은 부족은 파이완족와 루카이, 푸유마, 야미족.
이 중 파이완족은 가장 호전적인 부족이고, 야미족은 외딴 섬에서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굉장히 온화한 부족이라고 한다.
외딴 섬에 사는 야미족은 일단 뒤로 미루고, 파이완족과 루카이, 푸유마족에게는 사자를 보냈다.
얌전히 있겠다면 이쪽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나, 다른 부족처럼 습격을 일삼았다간 확실한 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겁주기 위한 사신이 아니었으니, 정중한 태도로 말했을 터.
별일은 없겠지.
“그야 저도 모르죠. 그런데 전에 젊은이들을 매수하시겠다고 한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제국주의 시대 때처럼 압도적인 문명의 격차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힘의 차이는 겪어보기 전엔 잘 모르는 법이니까.
이들에게도 그럴듯한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맞아보기 전까지는.
“게다가 부족은 가족 같은 느낌이잖아. 단순히 돈으로는 배신하지 않는 모양이더라.”
중앙 집권을 이룩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격차가 크지 않으니 그다지 불만을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고.
오늘만 해도 족장이 직접 선두에 서서 싸우지 않았는가.
“역시 그 나라는 참 대단한 것 같아.”
이런 곳이 참 많았을 텐데, 대체 어떻게 갈라 쳐서 지배한 걸까.
“그 나라가 어디입니까?”
“몰라도 되는 나라.”
“잘 모르겠지만, 나리는 나리의 방식대로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나라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옳다고는 할 수 없을 테니까요.”
“항상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항상 틀렸다고 할 수는 있어.”
“예?”
“아니야. 아무것도.”
역사는 나를 어떻게 기록하려나.
그 나라 대신, 그 녀석으로 할까?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리처럼 그들을 생각하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죠.”
“그건 우리 입장이고.”
저들 입장에선 침략자일 뿐이다.
“미워하고 배척하기보다는 분석하고 이해하려 노력해라. 밉고 싫더라도 배울 게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이해를 꼭 해야 합니까? 호아냐족 습격 같은 경우엔 이해하려 들다 보면 결국 누가 나쁜 놈인지 모르게 되지 않습니까.”
“이해라는 게 꼭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면서 받아들이는 것만 있는 게 아니야.”
“그러면요?”
“‘쟤들은 저래서 저러는구나.’를 파악한 후 확실한 약점을 찾는 게 목적일 수도 있지.”
잘은 모르겠지만, 현대의 민간군사기업은 분쟁 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할 때 인류학자를 대동한다 들었다.
현지인들의 문화, 특성 등을 이해하여 지휘관에게 조언해준다고.
덕분에 매우 효율적으로 작전을 수행한다고 한다.
“잠이나 자자.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고.”
“예. 나리.”
“근데 넌 왜 계속 나리라고 하냐?”
“아…… 이게 입에 붙어서요. 죄송합니다. 전하로 바꾸겠습니다.”
“평소엔 상관없지만, 높으신 분들 있을 때는 조심해라.”
“평소엔 상관없습니까?”
“권위를 세우는 게 매우 효율적이긴 하지만, 그건 높으신 분들 앞에서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거든.”
대표적으로 피휘.
나는 군주들이 피휘를 하라며 문자를 못 쓰게 탄압하는 것보다 킬방원처럼 당당하게 풀어주는 게 더 멋지다고 생각한다.
물론 킬방원이 멋있을 수 있는 이유는 피휘라는 권위를 만들어 놓은 사람들 덕분이긴 하지만.
“쓸데없는 예법이 많아질수록, 쓸모없이 소모되는 자원도 많아진다.”
“나리는 좋은 왕이 되실 것 같습니다.”
“그것도 성공한 다음 이야기지.”
“나리께서 꿈꾸는 국가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군사, 행정, 입법, 사법을 독점하고 자선활동도 하는 영리 법인 같은 나라.”
“예?”
“그런 게 있어.”
한마디로 사회적인 책무를 다하는 기업 국가를 말한다.
세계로 뻗어 나갈 때도, 그들을 정복하는 것이 아닌 그들에게 스며들고 싶다.
종교처럼.
“잠이나 자자.”
“예. 나리.”
***
다음 날이 되자 우리는 왕궁이 있는 타이중시로 돌아왔다.
노약자가 많은 걸 고려하여 배를 이용했다.
타이중시 앞 항구에는 거대한 배 한 척이 있었는데, 아마도 황궁에서 보낸 듯싶었다.
배에서 내리자 나를 제일 먼저 반긴 건 의외로 병필태감 문루였다.
“오래간만에 뵙사와요.”
“병필태감께서 이곳에는 어쩐 일입니까?”
“궁금하실 일이 있을 것 같아서 제가 직접 왔습니다. 저도 궁금한 점이 많고요.”
“일단 가시지요.”
항구에서 왕궁까지의 거리는 대략 10km.
딱 이 길만 닦아놓긴 했는데, 그래도 걸어갈 거리는 아니라서 준비된 마차를 타고 갔다.
“폐하의 칙서를 가져왔습니다.”
칙서를 가져왔다면 황제의 대리자, 칙사다.
“아이고. 칙사 대접을 해드려야 하는데, 미처 몰랐습니다.”
“괜찮아요. 전하께서 무척 바쁘시다는 점은 잘 알고 있으니까요.”
병필태감 문루는 사람 좋게 웃었다.
“칙사가 올 것이라는 예고는 받지 못했습니다만, 무슨 일입니까?”
“폐하께서 대두 왕국의 국호를 정해주셨어요.”
그게 왔구나.
드디어 이제 우리나라를 미합중국이라 부를 수 있는 건가?
줄여서 미국이라고 불러야지.
“폐하께서는 회의를 열고 대신들과 상의한 끝에 국호를 ‘대만’이라 결정하시기로 했답니다.”
“……예?”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내가 뭘 들은 거지?
“저는 미합중국이 낫지 않겠냐는 의견을 말씀드렸는데, 사대부들이 강력하게 주장하더라고요. 나라 이름에 무리 중(衆) 자가 들어가는 건 말이 안 된다고요.”
“그럼 원(元) 자가 들어간 건 말이 됩니까?”
“그래서 남보원은 빼고 대만이라고 정해주셨어요.”
“아…….”
그런 방법이 있었네!
창의적으로 엿 먹이시는구만!
설마 역사의 복원력 같은 게 작동한 건 아니겠지?
“역시 미합중국을 원하셨나요?”
“그…… 예.”
“사대부들이 워낙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어요. 폐하께서도 고민하시다가 ‘사대부는 사대부가 잘 알겠지.’라면서 어렵게 결정하셨답니다.”
정말일까?
아니면 이간책일까?
영락제와 환관들이 명 사대부를 싫어하는 건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믿을 수가 있어야지.
“이름이 뭐 중요하겠습니까. 폐하께서 고심해주셨다는 사실이 중요하지요. 이따가 왕궁으로 가면 정식으로 예를 올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두고 보자.
아메리카 대륙으로 헤엄쳐 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미합중국을 만들 테니까.
그때가 되면 대만 남보원을 선택한 걸 후회하게 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