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10
109화 혼돈을 원하는 자 (2)
말라리아는 빠르게 잦아들었다.
하지만.
콜레라는 더욱 빠르게 퍼져나갔다.
손쓰기 힘들 정도로.
“이 정도 수준이면 역학조사가 의미 없을 정도인데.”
“아직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퍼뜨리고 있다고 생각함?”
무함마드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아마 강이나 지하수가 오염된 것 같아.”
“그게 가능해?”
“가능하지.”
드문 일이지만, 오염된 바다에서 잡힌 해산물을 먹고 콜레라에 감염되는 일도 있으니까.
“말도 안 돼! 강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건, 어떤 나라든 망가뜨릴 수 있다는 뜻이잖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기후 같은 환경적인 요인도 필요하니까.”
하지만 우연히 아귀가 맞아떨어지면 흑사병 같은 대재앙으로 발전한다는 게 문제다.
자칫 팬데믹이나 바이오하자드와 같은 인류의 역사를 바꿔 쓸 정도의 재앙이 일어날 수도 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스스로 번식 및 진화, 변이하니까.
생물학 무기를 사용한 사람도 정확하게 제어할 수가 없다.
이것이 생물학 병기의 진짜 무서운 점이지.
“원하는 대로 성공했다고 해도 문제다. 나라 하나가 작살날 정도면 주변 나라로 빠르게 퍼져나갈 테니까. 결국 역병을 퍼뜨린 사람도 위험해져.”
특히나 믈라카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 감염되면 주변국은 더더욱 위험해질 테고.
“지금 말할 내용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긍정적인 소식은 있어.”
“뭔데?”
“용왕차와 용왕주, 용왕수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어.”
“뭐야, 그건?”
용왕차는 우리 상단이 취급하는 홍차를 말한다.
딱히 브랜드명을 짓지는 않았는데, 다들 그렇게 부르더라.
어느 나라든 전부.
근데 나머지는 모르겠다.
“용왕주는 개똥쑥으로 담근 술. 용왕수는 소금과 설탕을 적당한 비율로 녹인 물.”
“아…….”
“용왕차는 만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고, 용왕주는 학질을 조기에 치료하는 효과가 있고, 용왕수는 곽란에서 살아남으려면 꼭 마셔야 하는 생명수래.”
좋게 생각해주니 다행이긴 하다.
과학적으로 효과가 있으니까.
“약을 먹는 것도 중요하고, 음식이나 물을 끓여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손을 씻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비누 없이 손을 씻어봐야 큰 의미가 없다는 게 고민이야.”
비누는 비싸서 팔기 힘들다.
원료인 기름이 귀하니까.
기름이라는 기름을 죄다 쓰면 어떻게 될 법도 한데.
종교적인 이유로 돼지기름이나 소기름은 못 쓰기도 하고.
닭이나 오리 기름은 양이 적다.
현시대 닭과 오리는 품종 개량이 안 돼서, 알도 잘 못 낳고 살도 그리 많지 않으니까.
조선인 누구나 1인 1닭을 할 수 있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도 있다.
아시아에 퍼져있는 진짜 토종닭은 몸집이 작고, 살이 적으며, 성장 속도가 느리다.
결국 콩기름이나 유채 기름을 써야 하는데, 현대처럼 화학을 이용해 추출하는 게 아니라 어렵다.
압착해서 기름을 짜내는 만큼 극소량만 나오니까.
향후 600년 동안 기술이 얼마나 발전하는지 새삼 알 것 같네.
“내가 이것저것 실험해보다 보니까 괜찮은 재료가 있던데.”
“음?”
“코코넛 열매로 기름을 짜내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아.”
“아? 코코넛이 있었어?”
무심코 남미가 원산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난 왜 못 봤지?”
“전하가 다니는 길에는 없으니까.”
“그래도 시장 같은 곳에서 보지 않았을까?”
관심이 없었나?
아니면 품종 개량이 안 돼서 보고도 지나쳤나?
“이상하네.”
“뭐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존재한다는 것도 모르는데, 코코넛이란 게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거야?”
그러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긴 하다.
“남해에 있는지 몰랐다는 뜻이지. 파사국 사막 오아시스에 있다고 봤었어.”
“그건 코코넛이 아니라 대추야자. 무슬림에겐 매우 신성한 나무지.”
“왜 신성한데?”
“예언자 무함마드가 쫓기고 있을 때, 하루에 대추야자 다섯 알로 연명했다고 하셨거든. 그래서 라마단 기간 중이나 끝난 직후엔 대추야자를 먹어.”
“오호. 그런 일이 있었구나.”
“대추야자랑 코코넛은 달라. 코코넛이 훨씬 크고, 높은 나무에서 자라니까.”
“아무튼 코코넛 열매로 기름을 짜서 비누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지?”
“그 정도야 쉽지.”
그동안 밥만 축내는 무늬만 연금술사인 줄 알았는데.
한 건 해주는구나!
“잘 부탁한다. 네 손에 믈라카 백성들의 목숨이 걸려있다.”
“맡겨줘!”
***
“생각보다 일이 커졌군요.”
“면목 없습니다.”
믈라카 화상의 대표 이영길은 젊은 이진섭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목적은 달성했고, 용왕이 냄새를 맡고 감시를 심하게 하기에 작업을 멈추었습니다. 하지만…….”
“역병이란 그런 것입니다. 굳이 퍼뜨리지 않아도, 쉴 새 없이 창궐하니까요.”
젊은 화상 이진섭은 참 신기한 사내다.
겉보기엔 부드럽기 그지없고, 언행도 침착한 편인데 사람을 압도하는 위엄이 있다.
이는 필요할 때마다 분위기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용왕 강해인과 무척 대비되는 점이다.
“이 정도로 역병이 퍼지니 명성 높은 용왕도 별수 없는 모양입니다.”
이영길은 은근슬쩍 강해인에게로 책임을 넘겼다.
‘나는 용왕이 말했을 때 딱 멈췄는데, 이렇게 퍼진 건 네가 수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는 기적의 논리였다.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지만, 용왕을 우습게 보지 마세요. 진정으로 무서운 자니까요.”
“능력이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만, 전에 봤을 때는 이상을 좇는 순진한 청년 같았습니다만.”
“그 점이 무섭습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아닙니까?”
“보통 사람들은 창궐하는 역병을 두려워합니다. 심지어 군주조차도 역병이 창궐한 마을을 통째로 불태우라고 명령할 정도지요.”
“그러고 보니 용왕은 곽란이나 학질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그저 너무 많이 퍼질까 봐 걱정했을 뿐이지요.”
참 신기한 일이 아닌가.
걸리면 열 명 중 일고여덟 명은 죽는다는 곽란.
학을 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극심한 고통과 죽음을 안겨주는 학질.
이렇게나 위험한 역병을 보고도, 그 사이로 여유롭게 걸어 다닌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함이다.
“정말 용왕의 가호라는 게 있는 걸까요?”
“그건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용왕을 무서운 사람이라 평가한 건 다른 이유입니다.”
“예? 어떤…….”
“용왕은 역병 환자를 보고 두려워하기는커녕, 어떤 방법이 더 효과적인 치료 방법일지 시험하고 있습니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사람의 사고방식일까요?”
“아…….”
“어쩌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환자를 구침지희(九鍼之戱) 때 쓰이는 닭 정도로 보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구침지희는 살아 있는 닭에 각기 다른 침 아홉 개를 깊게 찔러 넣어 침술의 숙련도를 알아보는 것.
침을 넣을 때 닭이 아파하거나 죽으면 안 되고.
침을 빼고 난 뒤에는 닭이 자유롭게 움직여야 한다.
몇 개의 침을 사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의술의 경지를 평가하며, 아홉 침을 다 쓰면 태의(太醫)라 하여 침 하나로 모든 병을 볼 수 있는 최고의 의사라고 한다.
“……설마 용왕이 그러겠습니까.”
이영길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으나, 이내 부정했다.
역병을 퍼뜨린 자가 역병을 막으려는 자를 인간성 없다고 두려워하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그 점이 무섭습니다. 사람을 도구처럼 사용하는데, 아무도 그의 인성을 의심하지 않아요. 오히려 이상을 좇는 순진한 청년으로 보지요.”
지금도 그렇다.
그는 상인들에게 돈을 기부받아, 그 돈으로 창해 주식 상단의 물건을 사서 환자를 치료한다.
아마 용왕이 기부했던 돈 이상으로 벌어들이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용왕을 칭송하고, 돈을 기부한 상인들은 악질로 본다.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대인께서 말씀해주시기 전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용왕은 정말…… 무서운 자였군요.”
이영길은 믈라카 화상을 대표하는 거상.
수많은 사람을 보았고, 사람 보는 안목이 꽤 있다고 자부했다.
그런 자신마저 이렇게 감쪽같이 속을 줄이야.
“종잡을 수 없는 그의 인격 때문에 휘둘리다 보면, 어느새인가 그런 착각에 빠져들게 되지요.”
이진섭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자신도 강해인을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뭔가…… 뭔가…….
사람들이 모르는 뭔가가 있다.
이대로 가면 아마 평생을 가도 ‘그 뭔가’가 뭔지 알 수 없겠지.
따라서 그의 본성을 드러낼 뭔가가 필요하다.
“마침 잘되었습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요.”
“어떻게 할까요?”
“그의 진심을 시험해 봅시다.”
“예? 어떻게…….”
“안정된 상황에서는 누구나 가면을 유지할 수 있지요. 하지만 극심한 혼란이 온다면, 사람은 결국 본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진섭은 똑똑히 봤다.
불과 한 달 사이에 천하가 뒤집히는 모습을.
건문제의 황군은 분명 3년에 걸쳐 찬탈자 주체의 정난군을 박살 내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삐걱대는 사이, 찬탈자는 속전속결로 남경으로 쳐들어왔고, 그걸 막지 못해서 한순간에 천하의 주인이 바뀌었다.
혼돈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극심한 혼란.
그때가 되어서야 사람들은 본성을 드러냈다.
충신으로 죽은 이가 있고, 찬탈자를 모실 수 없다며 낙향한 선비가 있다.
상황이 기울자 마지못해 항복한 자가 있고, 처음부터 항복하여 길을 열어준 배신자가 있다.
평소에는 알 수 없었던 본성이 드러난 건, 한 달 사이에 일어난 극심한 혼란 때문이었다.
“민심이 흉흉해진 이때, 유언비어를 퍼뜨려 서로를 증오하고 죽이도록 유도합시다.”
“전에 용왕이 저를 찾아왔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감정은 계산할 수 없는 영역이다. 광기가 극에 치달으면, 죄가 있다고 의심되는 쪽부터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없는 죄도 있다고 믿게 만들 능력이 있다고 했지요.”
다시 말해서 그런 일을 했다간 자신부터 용왕에게 죽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영길로서는 결코 바라지 않는 결과였다.
“하하하. 틀린 말은 아니군요. 용왕은 분명 그럴 능력이 있지요. 하지만 언제는 안 그랬습니까?”
“예?”
“언제나 권력자가 원하면 없던 죄도 만들어내어 죽였습니다. 역적으로 죽은 이들 중 정말로 역모를 꾸민 이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
“하지만 용왕은 그러지 않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심증보다는 확실한 물증이 있어야만 움직이더군요.”
이진섭이 보기에 가장 이상한 점이다.
그 누구도 보장해주지 않는 미래를 향해서는 두려움 없이 척척 걸어가면서, 왜 이런 일에는 확실한 증거를 찾는가.
만약 자신이 용왕이었다면, 주석 채취장에 역병이 창궐했을 때 일단 화상들부터 죄다 잡아다 심문했을 것이다.
“하지만 말씀하신 극심한 혼란이 온다면 용왕도 결국 행동을 바꾸지 않겠습니까?”
그걸 시험해 보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이영길, 이자가 배신할 수도 있겠지.
“용왕이 우리 같은 천박한 상인과 같겠습니까?”
“예?”
“상인은 이익에 따라 그럴 수도 있지만, 정의롭고 공정하며 고고한 용왕은 그러면 안 되겠지요.”
사실 그래도 상관없다.
그 길을 택하는 순간, 지금까지 용왕이 쌓아온 인덕이 와르르 무너질 테니까.
과연 용왕은 실리를 위해 타락할 것인가.
아니면 공정하고 순수하다는 인상을 위해 무능을 가장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이 난관을 극복할 것인가.
너무 기대된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꼬리를 남기지 말고 사람을 써서 유언비어만 푸세요. 나머지는 알아서 굴러갈 겁니다.”
“대인은 어찌하실 겁니까?”
용왕 강해인은 시험의 대상일 뿐, 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지.
영락제에게 자신의 존재를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 그 근거다.
그리고.
명확한 적은 존재한다.
바로 이 믈라카에.
“저는 따로 할 일이 있어서요.”
원정대가 학질로 골골대는 상황.
믈라카에 혼란을 터뜨려 치안을 마비시킨다.
그 사이.
정화를 죽여 찬탈자의 눈을 파고, 손을 자르며, 입을 막아버리겠다.
그렇게 되면 찬탈자로서는 용왕을 의심할 수밖에 없을 터.
둘 사이를 갈라놓고.
대명으로 향하는 길을 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