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89
188화 훌륭한 대화수단 (1)
게임이나 영화와는 달리 전쟁이라는 건 준비 과정이 쉽지 않다.
영락제가 북벌한다고 공언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준비 중인 것처럼.
그건 북부 군벌도 마찬가지다.
5만이나 되는 대군을 몰고 오려면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 시대 기준으로 상비군은 그리 많지 않을 테고, 대부분 징집병일 테니 더더욱 오래 걸리겠지.
그렇다면 결론은 둘 중 하나다.
무리해서 급하게 왔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전쟁을 준비한 후에 구실을 잡아 쳐들어왔거나.
대화를 시도한 건 이런 이유였다.
전자일 경우 버티기만 하면 알아서 무너질 테지만, 후자일 경우 적당히 타협을 보는 게 좋다.
캘커타의 상비군은 1천 명.
영혼까지 끌어모아 징집해도 4천 명이 될까 말까.
여기에 창해 주식 상단 선원 500명까지 포함해도 4,500명이다.
열 배를 넘는 군대를 상대로 이기기란 쉽지 않다.
해전이었다면 우월한 사거리와 화력으로 상대했겠지만, 지상전은 답이 없으니까.
일단 대화를 시도했고, 다행인지 필연인지 저쪽에서도 대화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저쪽에서도 사람 한 명을 보냈다.
“몇 달 만에 뵙는군요. 안녕하셨습니까.”
덥수룩한 수염에 매우 맑은 피부의 소유자.
호감형 인상에 총명한 눈동자를 지닌 잘랄웃딘이였다.
북부 군벌의 으뜸이라는 하킴 가네샤의 아들.
“어떻게든 안녕했다만, 요즘은 별로 안녕하지 못하고 있다.”
살짝 불쾌함을 드러냈다.
쳐들어와 놓고 안녕하냐니.
놀리는 것도 아니고.
“일이 이렇게 되어 저도 무척 유감입니다.”
“대화를 받아들이겠다고 했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대체 원하는 게 뭔가?”
“너무 하셨습니다.”
“뭘?”
“그렇게 노골적으로 적대하시면, 저희가 얌전히 있으리라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내가 뭘 했지?”
“용왕께서 하신 모든 일이 우리를 자극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잘랄웃딘은 씁쓸하게 웃었다.
“캘커타의 라자가 되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인 건 용왕 전하께도 이익이 되는 일이니 저희도 이해합니다.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요.”
“그러면?”
“대명과의 교역은 저희도 무척 고대하던 내용입니다.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벵골 술탄국에서 수입할 만한 물건이라는 건 좀처럼 없으니까요.”
사실이다.
인도도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었고, 땅이 넓어 자원이 많고, 인구도 많아 기술력도 뛰어나다.
덕분에 포르투갈 상인이 목숨을 걸고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했을 때, 인도의 반응은 이러했다.
‘유럽에는 이런 쓰레기밖에 없나?’
먼 길을 와주었고, 새로운 무역로는 언제든 환영할 만한 것이기에 인도도 나름 환영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하나같이 품질이 별로라서 총포와 대포를 제외하면 사줄 만한 것이 없었다.
게다가 중개 무역을 꽉 쥐고 있던 맘루크 술탄국의 상인들도 강하게 견제했다.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가면 역으로 자기가 털릴 상황.
포르투갈 상인들은 결국 교역을 포기했다.
대신 훌륭한 대화수단(대포)을 이용해 협박을 시작했다.
이러한 원 역사가 있긴 하지만 이쪽은 다르다.
창해 주식 상단의 교역품은 벵골 술탄국에서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가성비 뛰어난 제품.
그리고 원정대용 상품은 인도에서도 눈 돌아갈 만한 명품 중 명품이니까.
“하지만 캘커타에 들어오는 수많은 교역품을 저희와는 거래하시지 않더군요.”
“그대들의 샤와 이야기하라. 내게 캘커타를 맡기면서 다른 곳과는 거래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마침 군대를 일으켰으니, 이대로 수도로 가면 되겠네.
위화도 회군처럼.
“하하하. 그건 반란이지 않습니까. 벵골 술탄국에서는 라자의 권리를 폭넓게 인정해주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반란은 아니지요.”
그러니까 만만한 나를 협박하겠다?
“내가 우습게 보이나?”
“당연히 아닙니다. 그랬다면 열 배가 넘는 5만 대군을 준비했을 리가 없지요.”
“그러면?”
“용왕 전하시라면 능히 샤의 허가를 받아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나도 인생 날로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이긴 하다만, 그래도 이런 날강도 심보는 아닌데.
“……일단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지. 할 이야기가 더 있다면 계속해보게.”
“용왕 전하께서는 무척 지혜롭고 총명한 분이라고 들었습니다만, 벵골 술탄국의 알력 관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는 모양입니다.”
“내가 이곳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생각하나?”
“예. 지식이란 배워나가면 되지만, 단기간에 되는 문제는 아니지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잘랄웃딘은 은은하게 짓던 미소를 지우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첫 번째는 말씀드렸던 교역입니다. 수도인 판두아와만 거래하겠다는 건 북부를 무시하는 행위이며, 치타공을 비롯한 여러 라자의 세력을 견제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건 그대의 샤에게 따지라니까. 왜 제삼자인 나에게 이러는 건가.”
“……두 번째는 용왕 전하께서 포섭한 무슬림들. 그들은 시아파입니다. 그리고 벵골 술탄국의 라자들은 수니파 이슬람을 믿습니다.”
그랬어?
상상도 못 했던 이야기였다.
어쩐지 벵골 술탄국에서 무슬림은 귀족이라고 들었는데, 내가 포섭한 이들은 무척 가난하게 산다 생각했다.
단순히 아사신이라서 그런 건 아니었구나.
“세 번째로 샤와는 다르게 우리는 힌두교도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제 아버지인 가네샤께서도 힌두교 브라만이시고요. 하지만 전하께서는 그들을 핍박하고 계시지요. 무척 불쾌합니다.”
“계속해보게.”
“네 번째로 북부의 백성들을 계속 받아들이고 계십니다. 그것도 더럽고 위험한 일을 해주는 이들 위주로 받고 계시지요. 이는 매우 심각한 위협입니다.”
나로서도 치안의 불안 요소인지라 그리 달갑지 않았지만, 저쪽도 노예가 자꾸 탈출하니 위기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게다가 가네샤가 힌두교 브라만 계급이라 했으니 카스트 제도가 붕괴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있겠지.
“마지막으로 캘커타의 라자로 취임하셨는데 우리에겐 어떠한 초대도, 양해도 없었습니다. 이는 우리를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마지막은 내 잘못이 맞다.
원래 이사 와서 시끄럽게 굴면 떡이라도 돌리면서 양해를 구하는 게 인지상정.
라자 취임 시작부터 정신없는 일이 끊임없이 벌어지는지라 깜빡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도자가 잘못을 인정하는 건 매우 어렵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문제가 되니까.
또, 인정하는 순간 더 큰 걸 내어줘야 할 테니까.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백성을 위하는 것이다. 또한, 너희가 요구하는 대부분은 그대의 샤와 이야기할 일이지.”
“미리 말씀드리지만, 라자 간의 싸움에는 샤라고 해도 관여하지 못합니다. 애초에 벵골 술탄국은 라자들이 연합하여 독립한 나라니까요.”
잘랄웃딘은 엄하게 말했다.
필요하다면 어떠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표정이다.
“혹시라도 샤가 용왕 전하를 지원하리라 생각하신다면 그 생각은 버리시는 게 좋습니다. 그는 법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상승 불패, 무혈승리의 전설을 지닌 용왕 전하시지요. 물론 우리도 그리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목소리 깔지 말고 말하게. 협박하는 이는 수도 없이 만나 보았으니 무서울 것도 없네.”
이게 계속 들어주다 보니 사람을 호구 등신으로 보나.
진심으로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자, 잘랄웃딘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십니까? 전쟁 때 군 지휘관 중 2할은 아군에게 죽는다는 걸요.”
“알고 있지. 그러니 그대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걸세.”
“보통 그런 일은 불리한 쪽에서 훨씬 많이 일어납니다. 더욱이 현재 캘커타는 무척 혼란스러운 상황이지 않습니까.”
심지어 라자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쪽이 훨씬 불리한 건 팩트다.
“아직도 캘커타의 군대를 믿는 건 아니시겠지요?”
“결론을 말하게. 뭘 원하나?”
“우리도 용왕 전하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습니다. 용왕 전하는 물론이거니와 명 왕조와의 무역은 무척 매력적이거든요.”
“그대들과도 교역하겠다고 하면 물러가겠는가?”
“확실한 증표를 원합니다.”
“증표?”
“제 여동생과 혼례를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어우. 신물이 올라올 것 같네.
이 시대 사람들은 창의력이라는 게 없나 봐.
정략결혼과 혼인동맹이 제일 쉽고 간단하며 들인 노력에 비해 효과적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이건 너무 하는 거 아니냐고.
“그대의 나이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만, 여동생은 몇 살이지?”
“10살입니다. 저와는 달리 외모가 무척 뛰어나 장래가 매우 촉망되는…….”
딱 거기까지만 듣기로 했다.
“조 까세요.”
***
전쟁은 인도적인 측면에서 악이지만,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무척 필요할 때가 있다.
국가, 특히 신생국이 국제 사회에 존재감을 드러낼 때는 이만한 게 없으니까.
그래서 1차 세계 대전 때의 희생으로 독립까지 했던 캐나다와 호주는 자발적으로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심지어 그때보다 훨씬 많은 병력을 투입하면서까지.
독립 국가로서 국제 사회에 발언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전쟁과 승리만큼 좋은 게 없었으니까.
비슷한 사례로 튀르키예도 있다.
튀르키예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지도 아래 친 서방 세속주의를 택했다.
그 탓에 소련에게 안보 위협을 느끼던 상황인지라 NATO 가입을 원했지만, 이슬람 국가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러다 튀르키예에게 기회가 왔다.
6.25 전쟁.
여기에 미국 편을 들여 참전하면 NATO에 가입할 명분이 생긴다.
문제는 한국 전쟁에 참여할 명분은 없다는 것.
그래서 나온 전설의 드립이 ‘튀르키예와 한국은 형제의 나라’라는 드립이다.
이렇듯 전쟁은 국가에게, 특히 신생국에 확실한 존재감과 발언권을 부여해준다.
이는 고대부터 변하지 않는 진리와도 같은 것.
이번 전쟁도 마찬가지다.
승리하면 캘커타의 존재감은 확실하게 각인된다.
벵골 술탄국뿐만 아니라 인도 아대륙 전체에서.
“나는 모든 일에 있어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지만 전쟁만은 다르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승리가 최우선이다.”
창해 주식 상단의 간부와 캘커타의 문무관을 모아놓고 말했다.
“전하.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이 전투는 승산이 없습니다.”
“상대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차라리 배를 타고 잠시 떠나는 것도 괜찮은 수라고 생각합니다.”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는 이들은 캘커타의 관리들이었다.
창해 주식 상단의 간부들은 내 선택을 믿는다는 듯 특별히 의견을 꺼내지는 않았다.
나에 대한 믿음에서 온도 차이가 드러난다.
아마 병사들은 더더욱 나를 못 믿겠지.
“그대들은 역사를 보고 배우지 못했나? 한 번 양보하면 다음에는 더한 걸 요구한다. 또, 백성을 버린 지도자가 다시 신뢰받는 일은 없다.”
“한때의 치욕을 참아내고 다시 일어서는 이는 많습니다.”
“그건 적이 민심을 잃었을 때의 이야기지.”
가네샤도, 그의 아들 잘랄웃딘도 나름 상당한 지지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서 물러서면 다음은 없다.
“하지만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없는 건 아니다. 적은 충분한 준비 없이 급하게 대군을 일으켰으니까.”
“보급은 기다리면서 약탈로 버티면 됩니다. 애초에 북부 영지와 이곳은 그리 멀지 않습니다. 더욱이 지금은 겨울입니다.”
일반적으로 겨울의 전쟁하면 공격 측이 상당히 부담되는 기후다.
보급도 어렵고, 혹한의 날씨에 야외 취침은 병사들의 건강에 큰 부담이 되니까.
하지만 벵골 지역은 다르다.
낮에는 평균 20도 정도.
밤에도 영상 기온이다.
오히려 덥고 비가 쏟아지는 여름보다 훨씬 전쟁하기 좋다.
……인도 북서부는 겨울 되면 상당히 춥던데.
“그대들은 내가 싸운 이야기를 듣기만 했지, 직접 보지는 못했지.”
“…….”
“우리는 언제나 최소 다섯 배 이상의 적과 싸웠다. 그리고 나를 적으로 삼은 이들은 모두 물고기 밥이 되었지.”
모든 면에서 불리한 상황.
사기를 높이려면 이름값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보여주지. 왜 내가 시바의 화신이라 불리는지를.”
알고 싶다.
왜 나한테만 계속 엿 같은 일이 벌어지는지를.
시바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