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14
213화 이단 심문 (3)
내가 유럽을 목표로 한 이유.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을 세우기 위함이지만, 살아남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현시점에서 세계 최강대국이자 동아시아의 절대 우위인 명나라와 영락제.
이를 상대하려면 ‘세계’의 범위를 동아시아에서 지구 전체로 확대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영락제의 변덕에 내 목숨을 맡길 수는 없잖아.
그나마 영락제가 빨리 죽으면 쥐 죽은 듯이 엎드려서라도 버티겠는데, 아직도 15년 정도 남았다.
그 15년 동안 영락제의 변덕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유럽에서 뭘 원하냐.
향신료나 비단, 도자기, 면직물 등을 팔고, 그 돈으로 은을 사 온다.
은의 시세는 유럽보다 명나라가 5배 이상 비싸니까.
없는 게 없다는 중국은 신기할 정도로 은이 적은 나라거든.
내가 가져온 교역품으로 60배 이상의 이윤을 남기고, 그 돈으로 저렴한 은을 사면 ‘최소’ 300배가 남는 장사가 된다.
어디까지나 이론상이기는 하지만, 아마 내 예상보다 더 많은 이익이 남을 것이다.
게다가 현시점에서 동아시아는 유럽에 비해 여러 분야에서 기술이 우위지만, 무기 개발 능력처럼 유럽이 더 우위인 부분도 있다.
이는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로 안정을 추구하는 동아시아에 비해, 유럽은 시도 때도 없이 싸워대는 만큼 끝없이 무기를 개발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
엄청난 이익과 무기 개발 능력.
추가로 아메리카로 향하기 위한 교두보 확보.
따라서.
교역은 유럽에겐 엄청난 이권이 걸린 문제지만, 나에겐 생존의 문제다.
물론 유럽 쪽에서는 내 사정을 모르지만, 그래도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지 않도록 더욱 섬세하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
자칫 교황들이 단체로 ‘이교도와 교역 하면 안 됨!’이라고 명령을 내리는 사태만큼은 피해야 하니까.
이왕이면 자발적으로 협력받을 수 있으면 더욱 좋고.
유럽의 군주들도 바보가 아니기에, 아무리 교황이 금지한다고 해도 엄청난 이권을 포기하고 순순히 교황의 명을 따르지는 않겠지.
하지만 자칫 내 이익이 크게 감소하고, 무기 개발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강 대 강으로 나가다가 파국 당할 위험을 회피하는 것.
그것이 내가 이단 심문을 성실하게 받는 이유이다.
“나는 왕이 되기 이전에는 사관이었습니다. 혹시 보신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쓴 기록문은 꽤 넓은 지역에서 크게 유행 중이죠.”
단, 저자세로 나갈 필요는 없다.
웬만하면 상호이익을 지향하겠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갑임을 확실하게 인식시켜줄 필요가 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역사는 기본적으로 승자가 씁니다. 혹은 자신의 나라에 유리하게 쓰지요. 그래서 타국의 역사를 볼 때는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객관성 따윈 개나 줘버렸다는 걸 누구나 아니까.
“반면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제삼자의 시선에서 쓴 기록은 매우 중시되지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
세 명의 추기경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세 교황 중 어떤 교황이 정통 교황인지, 내가 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떤 교황이 가장 훌륭한 교황이었는지는 내가 정한다.
나는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제삼자이며, 후세의 역사가들이 어떤 포인트를 중점적으로 보는지 알고 있거든.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누가 정통 교황입니까. 대만, 명, 조선, 지팡구, 향신료 제도, 그리고 인도에 이르기까지. 동방의 수많은 나라들은 모두 내 말을 믿을 것입니다.”
강하게 압박하자,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좋았어.
승기를 잡았으니, 이제 살짝 풀어줘 볼까.
“듣자 듣자 하니 오만방자하기 그지없구나! 이교도 주제에 교황 성하를 논하다니!”
갑자기 아비뇽의 추기경이 급발진했다.
“더욱이 네놈의 선단에는 무슬림도 많다고 들었다. 교적 따위가 교회의 분열을 획책하려 드는가!”
그의 분노에 찬 음성에, 이베리아반도의 귀족들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이베리아반도는 서유럽에서 유난히 이슬람 증오가 심한 곳이다.
이슬람교와 800년간 전쟁을 치른 최전방이기 때문이다.
현재도 여전히 이베리아반도에 그라나다 왕국이라는 이슬람 국가가 남아있고.
모로코에는 200년 전에 설립된 마린 왕조가 호시탐탐 이베리아반도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선원의 절반 이상은 유학의 가르침을 따릅니다.”
창해 주식 상단에는 무슬림의 비중이 상당히 크지만, 원정대는 대부분 명나라 출신.
유학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문화적으로 공맹의 가르침을 좇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유학은 종교가 아닙니다. 정치사상이자 철학에 가깝지요.”
“그렇기에 확신한다. 네 마음에 주님은 없다. 따라서 이교도다. 이교도와의 거래는 허락할 수 없다!”
“그 말씀, 일개 추기경이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당연하다!”
그 말에 귀족의 상당수는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명령을 내렸다고 해도 거래를 안 할 건 아니다.
향신료와 막대한 이익은 교황이 아니라, 교황 할아버지가 와도 포기할 수 없는 요소니까.
하지만 상당히 귀찮아지겠지.
예를 들면 위장 상단을 세우고, 언제든 꼬리를 잘라버릴 준비를 한다든가.
“이곳에 온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의 귀족 및 상인들이여. 고작 돈 몇 푼에 신앙을 팔 생각인가?”
귀족들의 불만이 커지자 아비뇽의 추기경은 자신의 지지 세력에게 호소했다.
이베리아반도의 두 강국, 카스티야와 아라곤은 아비뇽의 교황을 지지하니까.
“카스티야와 아라곤 왕국은 저와의 거래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안타깝군요. 평화적이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거래가 되리라 기대했는데 말입니다.”
군중심리가 퍼지지 않도록 나 역시도 은근슬쩍 한마디 보탰다.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라. 주님께서는 너희의 믿음을 시험하고 있나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효과는 상당했다.
아까 언급했던 ‘동방의 제독으로 위장한 악마’라는 선동이 꽤 잘 먹힌 느낌이라고 할까.
이래서 중세에는 교회의 파워가 어마어마하다고 한 거구나.
아무리 개소리를 지껄여도, 사람들이 믿어주는 순간 개소리가 아니게 되네.
안 되겠다.
갈라치기 한 번 더 가야겠다.
울어라.
지옥참마도!
“확실히 이곳은 신의 땅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와서 인정해 봐야 늦었다.”
“리스보아의 성당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날 밤 꿈을 꾸었습니다. 성화에 나올 듯한 새하얀 천사가 내려와 계시를 내려주었지요.”
순간 왕궁의 알현실이 정적으로 물들었다.
자칫 신성모독이 될 수도 있는 폭탄선언이었으니까.
“저는 그것이 계시인지, 단순한 꿈인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만, 지금 다시금 머릿속이 환해지는 것을 보면 계시가 분명한 모양입니다.”
“무슨 계시를 내렸습니까?”
계시라는 말에 로마의 추기경이 바로 반응했다.
“프라하의 순수한 가르침을 따라라.”
마르틴 루터보다 100년 앞선 체코의 종교 개혁가, 얀 후스의 사상을 말하는 것이다.
얀 후스는 현재 프라하의 카렐 대학교의 교수로 있으니까.
참고로 그는 1년 뒤인 1411년 피사의 대립 교황 요한 23세에게 파문되고, 5년 뒤인 1415년 화형당한다.
얀 후스의 핵심 사상은 교황보다 성경의 가르침이 위에 있다는 복음주의.
대표적인 주장으로는 교회는 허례허식과 사치에서 벗어나 경건하고 청빈한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현재 교회에서 성만찬 때 사제와 귀족만이 포도주를 마실 수 없는데, 얀 후스는 성경대로 평신도에게도 포도주를 마실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나중에 그의 상징이 포도주가 된다.
내 말뜻을 이해한 이들은, 특히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주던 피사의 추기경까지도 무서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감히 이교도 따위가 신의 말씀을 속여 모독하는가! 성전이다! 저 더러운 이교도가 신의 땅에 발을 디딜 수 없도록 철저하게 막을 것이다!”
아비뇽의 추기경이 아예 발작하며 날뛰었고.
“흠흠. 귀인께서는 본인이 하신 말의 무게를 짐작하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동방에서는 모르겠으나, 이곳에서 신의 말씀을 사칭하는 건 있을 수 없는 대죄입니다.”
나에게 호의적이었던 피사의 추기경도 매우 엄중하게 경고했다.
“…….”
의외로 초반에 나를 몰아붙였던 로마의 추기경과 종교 재판관은 별말이 없었다.
“나는 프라하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이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릅니다. 그저 전해 들은 대로 알려드릴 뿐입니다.”
이제 막 처음 유럽에 도착한 내가 뭘 알겠냐.
그런 뜻으로 말했다.
“하지만 전해 들은 복음은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뭣이?”
“만약 순수를 거부할 경우, 한 달 안에 세 교황 중 하나가 선종할 것이며…….”
현 피사의 대립 교황, 알렉산데르 5세가 죽는다.
그 뒤를 이어 요한 23세가 피사의 대립 교황이 되지.
사고로 더 일찍 죽을 수는 있겠지만, 더 늦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신도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따를 것이라 기대하고, 그만한 축복을 내리겠다고 했습니다.”
“혹시 천사께서 그 축복이 무엇인지 언급하시지는 않았습니까?”
로마의 추기경이 차분하게 물었다.
들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딱히 믿는 것 같지는 않지만.
사실 그렇다.
역사상 한 번도 이어지지 않았던 세력 간의 접촉이다.
역사면 몰라도 매우 소상한 부분까지 알고 있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혹시나?’라는 의문을 갖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으니,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판단은 알아서 하시지요.”
“부탁합니다.”
“‘성 요아힘 계곡에 끝을 알기 어려운 은혜를 부여하였으니, 이 은혜로 배고픈 자들을 먹이고, 가난한 자를 구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요아힘스탈러를 말하는 것이다.
달러의 어원.
유럽 최대의 은광 중 하나.
현재는 발견되지 않았다.
아마 100년 뒤에 발견되는 거로 알고 있다.
원래는 내가 독식하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까 체코 보헤미아 지방은 내륙에 있어서 내가 손을 대기 어렵다.
해군이 주력인 나로서는 지키기도 어렵고.
대신 나에게는 일본의 이와미 은광과 남미의 포트시가 있으니, 요아힘스탈러는 유럽을 구슬리는 데 쓰자.
“‘이것이 보헤미아에 주님의 뜻이 있다는 증거니라.’라고도 하였지요.”
엄청난 은이 묻혀 있는 성 요아힘 계곡은 체코 보헤미아 지방에 있다.
그리고 종교 개혁가 얀 후스도 보헤미아 지방에서 태어났다.
만약 성 요아힘 계곡에서 진짜 은광을 발견한다면, 미신이 횡행하는 중세에서는 내 말을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은혜를 보고도 믿지 않고, 타락을 보고도 무시한다면, 200여 년 후 지진과 해일로 그대들의 심장에 대재앙을 내릴 것이다.’라고도 하셨군요.”
리스본 대지진을 말한다.
200년 뒤에 포르투갈의 세력은 한풀 꺾인 상태지만, 리스본은 대항해시대를 연 혁신의 도시로 위세가 높았으니까.
아쉽다.
역사를, 특히 1410년 초기의 역사를 자세히 알았다면 혼을 쏙 빼줄 정도로 예언자 행사를 할 수 있었을 텐데.
“200년 후요? 왜 그렇게 나중에…….”
“저는 불가지론자입니다. 신의 뜻은 헤아릴 수 없지요. 어쩌면 인간에게 200년은 매우 긴 시간이어도, 신께는 찰나와 같은 시간이라 그런 게 아닐까요?”
“알겠습니다.”
“에밀리오 추기경! 설마 저 이교도의 말을 믿는 것이오?”
로마 추기경의 이름이 에밀리오인가 보다.
참고로 라틴어도, 스페인어도, 포르투갈어도 비슷한데, 남성 명사에는 끝에 ‘오’발음이, 여성 명사에는 끝에 ‘아’ 발음이 붙는다.
에밀리오, 페르난도면 남자 이름.
에밀리아, 페르난다면 여자 이름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믿지 않을 이유도 없습니다.”
“뭐라고?”
“프라하의 가르침이 옳은지, 200년 후에 대지진이 일어나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지만 한 달 안에 세 교황 중 한 분이 선종하신다. 성 요아힘 계곡에 엄청난 축복이 있다. 이는 금방 확인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로마의 추기경, 에밀리오는 나를 예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만약 거짓일 경우 신의 말씀을 사칭하고, 신성을 모독한 대가는 처절하게 치르게 될 것입니다.”
“나는 천사가 알려준 대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확실하지도 않은데, 신의 계시라 확신하고 공개 발언하신 것은 귀인의 선택이고 책임입니다.”
“좋습니다. 틀렸을 경우 어떠한 대가라도 받아 보이지요. 반대로 진짜 천사가 계시를 내려주었음이 확인되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때는…….”
에밀리오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떴다.
“공의회를 소집하여 귀인을 성인으로 추대하겠습니다.”
“성인?”
그거 명성 높은 성직자가 선종해야 추대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성인으로 추대된 사례가 있었나?
하긴. 판타지 소설 보면 살아있는 성녀는 클리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나오는데, 현실에서 안 될 거 없겠지.
“그게 추기경 한 명의 뜻으로 진행할 수 있는 일입니까?”
“그 정도로 구체적인 예언을 하고, 옳았다는 것이 밝혀지면, 딱히 누가 나서지 않더라도 귀인을 성인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뭐, 그렇겠지.
설사 교황청에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교황의 선종이야 큰 관심이 없겠지만, 인간은 돈에 관심이 많다.
괜히 세계 곳곳에서 골드러시가 터진 게 아니니까.
만약 성 요아힘 계곡의 은광을 발견하게 되면, 알아서 나에 관한 소문이 퍼질 터.
백성들이 그렇게 믿는다면 앞으로 나는 이단 논쟁에서 면역이 된다.
애초에 나 자신이 갖추고 있는 교역의 권리와 무력 역시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도 하니.
“잘은 모르겠지만 천사가 축복을 언급할 때, 땅속에서 은빛 광채가 솟아 나오는 모습 또한 보았습니다. 한 번 확인해 보시지요.”
땅속.
그리고 은을 언급함으로써 마무리를 지었다.
이제 결과만 기다리면 된다.
자신의 위기를 연출하고 깔끔하게 반격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것.
이것이 킹의 듀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