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15
214화 포르투갈의 사정
포르투갈은 독립 이전부터 북해와 지중해를 잇는 항해의 요충지였다.
그것은 이슬람 대제국인 우마이야 왕조가 지배할 때도 마찬가지.
따라서 외국의 사신이 오는 거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신비의 나라라고 불리는 극동에서 귀인이 찾아왔다.
그것도 대선단과 엄청난 선물을 들고서.
이는 식견이 별로 없는 사람에게조차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 결과 포르투갈을 향해 주변국에서 수많은 사신과 귀족, 그리고 성직자를 보내왔다.
소문에 의하면 저 머나먼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도 인선을 고르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당연히 포르투갈의 왕 주앙 1세는 이 기회를 놓칠 인물이 아니었다.
투우와 마상창시합을 준비하는 것도 기회를 살리기 위한 노력이다.
다른 나라의 귀족들이 포르투갈로 올 명분을 만들어주기 위함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실리 따윈 무시하고 ‘이교도’를 만나러 외국으로 간다는 사실만으로 비난하는 이도 있으니까.
마침 강해인도 투우와 마상창시합을 원하기도 한 만큼,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추기경들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후우. 어쨌든 급한 불은 껐구나.”
전도, 혹은 신학 논쟁을 빙자한 이단 심문이 끝나자, 주앙 1세는 바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는 정말 어떻게 되나 했다.
고지식한 로마의 교황청.
적국은 아니지만, 경쟁국이라고 할 수 있는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지지를 받는 아비뇽의 교황청.
이 둘은 강해인이 이교도라는 명분으로 거래를 훼방 놓을 소지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물론 주앙 1세가 그들의 협박 따위에 굴복할 인물은 아니지만, 강해인이 기분 상해서 떠나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고려해야 했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재정난으로 고통받는 포르투갈에 있어 강해인과의 거래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노련하더군요. 그 사람. 성직자를 상대해본 경험이 꽤 풍부해 보였습니다.”
두아르테 왕태자도 한숨 돌리며 강해인을 칭찬했다.
“게다가 아비뇽의 추기경이 험한 말을 하는데도 계속 품격있는 언어로만 대답하더군요.”
“원래 기품있는 성격일 수도 있겠고, 본인이 유럽에서 왕으로 인정받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 어느 쪽이든 대단한 인내심이다.”
틀렸다.
진실은 강해인이 품격있는 라틴어만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주로 성경으로 라틴어를 공부한 만큼, 매우 정중하면서도 장엄한 언어밖에 구사할 수 없다.
마치 영어 교과서에서 ‘Fuck you’나 ‘Son of bitch’를 가르치지는 않는 것과 같다.
덕분에 강해인은 분개하면서도, 정중하게 나갈 수밖에 없었다.
거친 표현을 모르니까.
기분이 안 좋은 상태에서 누군가가 ‘How are you?’라고 물었는데, 자동반사로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대답한 것과 비슷하다.
“뭐, 동방에도 성직자는 있겠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보면 온갖 종교에, 별의별 성직자를 다 만나봤을 테고.”
“그래서 그럴까요. 상대하기 참 난감한 사람입니다.”
처음 봤을 때는 항해만 잘하는 호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슬쩍 빚을 지게 하고 협상을 유리하게 나가려고 하자, 귀신같이 알아차리고는 역공을 가해왔다.
그 과정에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강해인은 만만한 인물이 아니며, 이 거래의 주도권은 그가 갖고 있다는 사실을.
동방에서 이곳까지 얼마나 먼 거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랍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원정대에 보내어 탐색한 결과, 항해로 70일 정도 걸렸다고 한다.
반면 포르투갈에서 잉글랜드나 베네치아까지는 길어야 10일.
그 정도야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거리일 것이다.
실제로 선원들의 상태는 매우 건강해 보였다.
이쪽은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는데, 강해인은 선택지가 너무 많다.
이는 협상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라는 걸 의미한다.
“그러게나 말이다. 극동의 문화나 풍습도 상당히 다른 것 같던데 아는 게 없으니…….”
호의로 한 일이 그에게는 무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계속 발목을 잡았다.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합니다.”
“그렇더냐? 그 잘생긴 외모를 갖고도 연회 때는 딱히 여자에 관심을 두지 않은 것 같던데.”
강해인의 외모는 좋게 말해도 ‘호방하게 생겼다.’ 혹은 ‘위엄있게 생겼다.’ 정도의 수준이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미의 관점이 달랐다.
햇빛을 많이 받아 가무잡잡하지만, 잡티 없이 깔끔한 피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아몬드를 눕혀 놓은 것 같은 깔끔한 곡선의 눈.
동양의 관점에서는 험악해 보이지만, 적당히 튀어나온 광대뼈.
돌같이 단단해 보이는 사각 턱.
마지막으로 깔끔하면서도 멋들어진 수염.
즉, 강해인은 피부색을 제외하면 유럽에서 미남으로 생각하는 요소들만 모아놓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유럽은 하얀 피부를 좋아하지만, 남자는 피부가 어느 정도 타도 건강한 사람이라 보며, 남유럽에서는 건강한 구릿빛 피부도 충분히 매력적이라 본다.
덕분에 강해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상당한 미남으로 취급받고 있었다.
“베아트리스에게 매우 호의적으로 대하는 걸 보았습니다. 솔직히 베아트리스가 성격이 이상해서 그렇지, 외모는 훌륭하지 않습니까?”
제 어미를 닮아 예쁘긴 하지.
주앙 1세는 이 말은 삼켰다.
일부일처제가 교리인 기독교 국가에서 사생아를 만들었다는 건, 왕이라고 해도 흠결이기 때문이다.
“그가 데려왔던 파트너를 생각해보십시오. 가슴이 풍만한 여자를 좋아하는 게 분명합니다.”
“생각해볼 가치는 있겠군.”
“적당한 귀족 영애를 소개해볼까요?”
“원래는 그럴 생각이었으나, 지금은 안 된다.”
“그렇습니까?”
“세 교황청의 이목이 전부 이쪽에 몰려있지 않으냐. 이교도에, 일부다처제 국가의 사람에게 소개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 자칫 국가의 격이 떨어질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그렇다면…….”
“밤의 역사는 꼭 결혼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적당한 장애물이 있어야 더 불타는 법이지.”
일부일처제로 못 박는다고 해서 인간의 본능까지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왕족과 귀족의 결혼은 철저하게 가문 간의 이해타산으로 결정되지 않은가.
물론 그렇기에 결혼 생활만큼은 깨지지 않게끔 노력하지만, 결혼과 사랑은 별개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백작과 백작 부인이 후계자를 만들고 공식적으로는 부부로 활동하지만, 사적으로는 각자 애인인 정부를 두는 예는 셀 수도 없을 정도다.
그런데도 법이 엄격한 이유는 ‘귀족을 조지기 위함’이다.
여차하면 왕권과 교황의 권위를 빌려 영지를 몰수하고 작위를 박탈할 수도 있으니까.
물론 정치적인 요소는 고려해야 해서 아무에게나 그럴 수는 없지만, 그 판결을 왕이 한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이다.
“다행히 기회는 많다. 적통 영애에게 권하기는 그렇고, 하급 귀족의 딸이나 상속권 없는 장기 말이라면 애인으로 보내도 되겠지.”
“귀족들에게 그렇게 권하겠습니다.”
“혹시 다른 이야기는 없더냐?”
원정대 대접은 두아르테 왕태자의 업무다.
두아르테는 능숙하게 아랍어가 가능한 관리들을 보내어 아주 조그마한 정보라도 얻어오도록 명령을 내렸다.
특히 술이 들어가면 입이 가벼워지는 건 만국 공통인지라, 좋은 술을 주거나 선원들과 파티를 열도록 금전적인 지원까지 해주었다.
“체제가 매우 흥미롭더군요.”
“체제?”
“그들은 명령을 상세하게 내리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정해주고, 방식은 자율에 맡긴다고 합니다.”
“나쁘지 않군. 하지만 그런 체제를 구축하려면 상호 신뢰와 선원들의 실력이 있어야 할 터인데…….”
잘못 쓰면 언제든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는 위험한 구조다.
배신이 없다고 하더라도, 조직이 지도자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달려나갈 수도 있고.
“그리고 그들은 중요한 일은 모두 종이에 기록해서 결재를 맡는다고 합니다.”
“결재?”
주앙 1세는 두아르테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는 동아시아에서는 매우 익숙한 관료제의 트레이드 마크.
서류 결재다.
하지만 아직 유럽에서는 사용된 예가 없다.
이 제도를 최초로 도입한 사람은 무적함대로 유명한 펠리페 2세.
140년 정도 후의 일이다.
덕분에 그는 서류왕이라는 이명이 붙을 정도였다.
하지만 통신 기술이 발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완벽하게 처리하려 하다 보니 오히려 행정 둔화가 일어나고 말았다.
“이교도의 문화라는 게 꺼림칙하지만, 배울 건 배워야겠지.”
“이런 사소한 것들이 쌓아 올려 불가능을 가능케 했을 테니까요.”
“그들이 하는 것이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알아내어라. 언제까지고 끌려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
“명심하겠습니다.”
왕태자 두아르테는 조용한 성격이지만, 기회를 보고도 놓칠 정도로 우둔한 인물은 아니다.
저 강대한 카스티야에게 다시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나날이 부상해가고 있는 숙적 이슬람 세력에게 또다시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이번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그의 예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
세 교황청의 추기경들과 수많은 귀족 앞에서 공식적으로 말한 예언.
틀리면 별문제 없을 것이다.
그는 이교도이고, 엄청난 황금을 가져다줄 귀한 손님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
보호를 해주는 대가로 훨씬 더 좋은 조건을 받아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의 예언이 적중한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받아들일 것이다.
현 교회가 너무 타락해서 자정이 되지 않으니, 신께서 이교도를 통해 말씀을 보내오셨다…… 라고.
“자칫 신이 신도들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을 정도로 대사건이 되겠지. 교회의 권위는 바닥으로 떨어질 테고.”
“정말 그가 성인으로 추대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건 아니지. 몇백 년 전에는 평범한 마을 주민이 성자로 추대되는 일도 있었다고 하니.”
성인이 되는 정식 절차가 없어서 그렇다.
교황 그레고리오 9세가 1234에 성인을 조사하는 제도를 만들기는 했으나, 성인으로 추대하는 제도는 여전히 없는 상태였으니까.
이는 170년 뒤인 1588년에 교황 식스토 5세가 예부성성을 설립함으로써 체계적으로 정립된다.
반면 지금은 매우 덕이 높은 자나 순교자, 혹은 기적을 일으킨 자.
……라고 믿어지는 사람은 대개 성인으로 여겨진다.
“엄청난 사건이 되겠군요.”
“그가 가져온 교역품은 그야말로 엄청난 가격에 팔리겠지.”
“그렇겠죠. 강해인과 관련된 모든 물건은 성유물로 취급될 테니까요. 가뜩이나 비싼 향신료가 ‘신성한 후추’라며 훨씬 더 비싼 가격에 판매되겠지요.”
“그런데도 ‘신성’이라는 수식어 하나 때문에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갈 테고.”
“우리로서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재정이 상당히 힘든 상황이었는데 상당히 윤택해질 테니까요.”
성인이 기적을 일으킨 장소는 성지가 되어, 상당한 수의 순례자가 몰려들게 된다.
특히 그가 계시를 받았다는 리스보아의 성당은 기적을 바라는 신도들의 방문으로 발 디딜 틈도 없어질 것이다.
그만큼 리스보아의 경제는 더욱 발전할 수밖에 없을 테고.
“폐하. 큰일입니다!”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는데, 그 기대를 무참히 짓밟듯 법복 귀족 중 하나가 새하얗게 질린 채로 주앙 1세의 집무실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피사의 교황께서…… 선종하셨다고 합니다.”
주앙 1세와 두아르테 왕태자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힘이 빠진 것처럼 스르륵 의자에 몸을 뉘고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망했군.”
“망했군요.”
피사의 교황은 포르투갈이 지지한 교황이다.
교황이 선종하는 거야 큰일이긴 하지만, 포르투갈 왕국이 망할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강해인의 예언.
만약 순수를 거부할 경우 ‘한 달 안에 세 교황 중 하나가 선종할 것.’이라고 했다.
가장 악독한 교황이 죽는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피사의 교황이 신의 뜻을 가장 따르지 않았다고.
당연히 그에 줄을 대고 있던 포르투갈도 외교적으로 상당히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자칫 ‘잘못된 교황을 섬긴 교적을 처단한다.’라는 명분으로 카스티야가 다시 전쟁을 선포할 수도 있고.
그때는 아라곤 왕국도 함께하겠지.
강해인과의 교역을 빼앗기 위해서.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주앙 1세는 이내 기운을 차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인께 만나 뵙고자 청하라.”
“예? 성인이요?”
법복 귀족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해를 못 한 듯했다.
주앙 1세는 다그치듯이 말했다.
“강해인 말이다. 지금 당장 만나야 한다. 서둘러라!”
“예!”
방법은 하나뿐이다.
성인 강해인이 ‘피사의 교황은 죄가 없다.’라는 말을 해주는 것.
과연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서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인가.
제대로 된 교역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진이 빠지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