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42
241화 오스만 제국의 꿈 (1)
“이쪽입니다! 이쪽이에요!”
비잔틴 제국에서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하고 있던 무함마드는 배를 타자마자 개다래 나무를 본 고양이처럼 난리를 쳤다.
“안다. 근데 너는 양심도 없냐?”
“왜요?”
“저거 이즈미르 항구잖아.”
“거기에 술탄과 술탄의 군대가 있으니까요.”
“너 얼마 전에 저길 다 때려 부수지 않았어?”
“에이. 보이는 배만 족족 박살 낸 것뿐이에요.”
“전함만 그랬겠지?”
“모르셨어요?”
무함마드가 눈을 크게 떴다.
“고도로 발달한 오스만 함선은 제노바 상선과 구별할 수 없다.”
“……그거 그럴 때 쓰는 말 아니야.”
얘가 내 옆에 붙어있더니, 현대의 드립을 제멋대로 쓰네.
“오스만은 용맹한 기마 민족의 후예입니다. 배는 거들뿐이죠.”
“그러니까 어선이고, 상선이고 다 부셨다는 거 아니냐.”
“에헤이. 바다로 돌려보낸 거죠.”
“너도 바다로 돌려보내 줄까?”
“저는 용맹한 기마 민족의 후예라니까요. 돌아간다면 초원으로 돌아가야죠.”
얘를 어찌하면 좋으니.
“아무튼, 그때는 다 적이었고, 지금은 술탄께서 다 접수하셨으니까 아무 문제 없습니다.”
“무사 왕자가 아직 살아있어서 어떻게 될지 몰라.
“무사 왕자는 호전성이 강하고, 복수심이 강한 사람입니다. 용맹한 오스만 군에서도 고개를 젓는 사람이 많을 정도죠.”
게임으로 치자면 ‘용감한’, ‘앙심 깊은’, ‘노기등등한’이라는 특성이 달려있겠네.
‘가차 없는 폭군’ 정도의 칭호가 부여되었을 테고.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에서 무사 왕자가 이겼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인자하시고 자비로운 술탄에게 기울었을 겁니다.”
항우와 유방 같은 느낌인가 보다.
“근데 너 계속 메흐메트 술탄을 찬양하네. 여기 남고 싶냐?”
“여기 남는다면 꽤 좋은 대우를 받겠죠. 술탄께서는 튀르크인이 아니어도 능력만 있다면 재상에 임명할 정도로 개방적인 분이거든요.”
바예지트 파샤를 말하는 모양이다.
오스만 최초의 비 튀르크인 재상.
꽤 유명한 사람이다.
“여기에 능력 있는 튀르크인인 제가 합류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대신 빚을 갚아주려나?”
“에이. 빚은 이미 다 갚았죠. 제가 가진 돈이 얼만데요.”
“그럼 여기 남아라.”
무함마드도 이제 제 인생 살 때도 됐지.
“싫은데요.”
“음?”
“남자는 자고로 태어났으면 큰일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술탄 밑에서 큰일 하라고.”
“술탄이 대단한 위인인 건 맞는데, 솔직히 전하가 더 대단하긴 하죠.”
간신이네.
현대 튀르키예 사람들이 들었다면 발작할 만한 대사다.
“그래서?”
“더 대단한 전하 밑에서 더 큰 일을 하렵니다.”
“…….”
그러니까 옆에서 계속 술탄을 칭찬한 건, 자기 몸값을 높이려는 수작이었다는 뜻이잖아.
‘위대한 술탄이 나를 원한다. 그러니까 월급을 올려줘라’ 같은.
마치 ‘나 오늘 멋진 남자한테 고백받았어.’라고 자랑하는 여자친구 같은 모습이다.
“남는 건 상관없는데, 오스만 첩자질 할 생각이라면 가만 안 둔다.”
“첩자라니요. 말씀 너무 심하게 하시네. 전하와 술탄을 잇는 중재자 정도로 생각해 주세요. 애초에 오스만을 적대할 생각도 없으시잖아요.”
“그렇긴 해. 그래도 폭탄 제조법 같은 건 유출하면 안 된다.”
역사가 바뀔 테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저도 사람이라서 어려울 때 도와준 사람을 배신하진 않아요.”
이 이야기는 장난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무함마드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데요.”
“왜?”
“형평성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요?”
금방 다시 장난치는 표정으로 돌아왔지만.
“무슨 형평성?”
“그렇잖아요. 비잔틴의 공주를 아내로 맞이했으면, 오스만의 공주도 아내로 맞이하는 게 인지상정 아닙니까?”
“메흐메트 술탄이 몇 살이지?”
“올해로 28살이죠.”
“그럼 딸의 나이는 많아야 10살 정도겠네?”
“딸만 공주인가요. 동생도 공주지. 선대 술탄인 바예지트께서는 무려 8남 5녀를 두셨답니다.”
선대 술탄인 바예지트 1세의 막내아들이 무사 왕자고, 나이가 22살이라 했으니까…….
동생 중에는 결혼 적령기인 여동생이 있을 수도 있겠네.
“게다가 오스만은 일부다처제! 심지어는 정실 개념도 없음! 이야~ 딱 맞네. 딱 맞아.”
“정실 개념이 없나?”
“정실을 따로 두면 후계에 문제가 생긴다고 봐서요.”
“그렇구나. 근데 관심 없어. 애초에 난 더는 결혼할 생각이 없다니까. 이번 일은…… 그…… 의도치 않은…….”
사고라고 하면 소피아가 불쌍해지잖아.
적절한 단어로 대체하려고 하는데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걱정하지 마세요.”
“뭘?”
“이번에도 의도하지 않으면 되죠. 대만에서는 제가 잘 말씀드릴게요.”
‘대만’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무서워졌다.
귀국하면 뭐라고 말하지?
“거기까지 해라. 농담 아니다.”
“네…….”
“그보다는 메흐메트 술탄에 대해 말해봐.”
사전 정보는 입수해야지.
객관적인 사실이라면 어느 정도 다 알고 있기는 하지만.
“술탄께서 술탄이 된 건 7년 전이에요. 내전으로 인해 완벽한 술탄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죠. 이번에 무사 왕자를 완전히 끝내고, 에디르네에서 즉위식을 치른다고 하네요.”
에디르네라면 아드리아노플.
콘스탄티노플에서 불과 200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콘스탄티노플은 얼마나 무서울까.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서울에서 200km 떨어진 곳에 북한의 수도가 있다는 뜻이잖아.
서울과 평양의 거리는 200km 정도…….
어라?
이것이 한국이 로마의 후예라는 증거입니다!
“그런 거 말고. 메흐메트 술탄의 개인적인 것 좀 말해봐. 좋아하는 거라든지. 취미라든지.”
“술탄의 취미는 사냥과 야을르 귀레슈입니다.”
“그게 뭔데?”
“몸에 기름을 바르고 하는 레슬링입니다.”
“아~ 오일 레슬링.”
피부는 미끄러워서 잘 잡히지 않고, 대신 허리춤이나 바짓가랑이를 잡고 상대를 들어 올리거나 뒤로 넘기면 이긴다.
씨름과 레슬링의 반반 섞인 느낌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메흐메트는 몸에 기름을 묻히고 남자끼리 부비는 걸 좋아한다.
메모.
“아마 이번에 즉위식을 치르면 단합의 의미로 크르크프나르 축제를 열 수도 있어요. 무려 53년의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대회니까요.”
“아. 그거.”
현대에도 이어진다.
역사가 500년이나 된 거였구나.
“운동을 좋아하나 보네.”
“엄청나게 좋아하시죠. 사실 오스만에서는 남자로 인정받지 않으면 제대로 통치하기가 힘듭니다.”
“난 어렵겠다.”
“대신 활을 잘 쏘지 않습니까?”
“내가?”
“전에 봤는데, 그 정도면 꽤 잘 쏘는 편에 속하죠.”
“오스만은 활을 잘 안 쏘나?”
“오스만 활은 최강입니다!”
내 말에 무함마드가 분개했다.
평소라면 적당히 받아주겠지만, 이건 용납할 수 없다.
“에이. 내가 솔직히 조선에 자부심은 없는데, 그래도 활은 조선이 최고지.”
“아니라니까요. 나는 오스만 각궁보다 좋은 활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자식이.
넘으면 안 될 선이라는 게 있는데.
다른 건 몰라도 쏘는 건 지면 안 된다.
그게 내가 조선인으로서 유일하게 가진 자부심이다.
게다가 무함마드는 흑각궁과 편전을 수없이 봤으면서도 이런 소리를 하는 거다.
그게 더 괘씸했다.
“그럼 콘스탄티노플에서 오스만군은 왜 안 쏘고 맞기만 했냐?”
“루멜리아 시파히는 근본이 없어서 그래요. 그러니 프랑키스탄 애들처럼 투창 같은 걸 쓰지. 아나돌루 시파히였다면 오스만 궁기병의 힘을 제대로 보여줬을 겁니다.”
“내기할래?”
“받죠. 저는 오스만 활이 더 우수하다는 것에 10년 치 야근을 걸겠습니다. 대신 전하가 지면 오스만 여인과도 결혼하는 거예요.”
“결혼…….”
“졸리시면 주무시던지요.”
“허허허. 이게 어디서 약을 파냐. 똥개도 제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데, 너도 고향에 오니 힘이 솟구치냐?”
“천하의 전하께서 왜 이렇게 혓바닥이 기십니까. 후달리십니까?”
“후달려? 이 새끼가 왕한테 말하는 꼬라지 봐라.”
도발이라는 건 알지만.
이건 물러설 수 없다.
“오냐. 내 결혼을 건다. 석피야!”
“예!”
석피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잘할 수 있지? 너에게 내 결혼 생활이 달려있다.”
“아, 그건 아니죠.”
내 말에 무함마드가 또 반항했다.
“뭐가 아닌데?”
“전하께서 직접 술탄하고 붙어야 할 거 아닙니까.”
“야 이 양심 없는 놈아. 전투형 군주하고 지능형 군주하고 현피를 붙이냐!”
광개토대왕하고 세종대왕하고 누가 한국사의 진정한 대왕인지 결투로 결정하자는 말이랑 똑같잖아.
“현피?”
“원래 지능형 군주는 대신 위신을 세워줄 개인 투사가 있는 법이다.”
이건 에서도 그렇다.
따라서 합법이다.
“꼬우면 너도 데려오든가. 왜? 오스만 술탄국에는 석피를 이길 명사수가 없나?”
“아뇨. 해보죠. 대신 야을르 귀레슈도 하는 겁니다.”
오일 레슬링?
“좋다. 얘들아!”
“예!”
대만 제어로 외쳤다.
대만 원주민들이 드넓은 어깨와 큼지막한 가슴 근육을 실룩이며 다가왔다.
아시아인 최강의 사모아인 피지컬.
드웨인 존슨보다 강력해 보이는 전사들이 한 트럭이다.
“해보자고. 다시는 조선을 무시하지 못하게 해주마.”
“……조선인은 하나도 없구만.”
“석피는 조선인이다.”
“딱 봐도 오스만 사람이지, 누가 조선인으로 봅니까?”
“국적은 인종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인종차별주의자야. 그러면 루멜리아에 사는 사람들은 진정한 오스만인이 아니라는 뜻이냐?”
“튀르크인은 아니죠.”
“얘들도 한민족은 아니지만…….”
“조선인도 아니지 않습니까. 대만인이라고 봐야지.”
……할 말이 없네.
아니야.
이런 건 목소리가 큰 쪽이 이긴다.
“같은 배달민족이라 할 수 있다.”
“그게 뭔데요?”
“무려 세계 최초로 아프리카를 돌아 유럽까지 배달을 온 민족. 그게 배달민족이다.”
“차라리 바다의 민족이라든가, 용왕의 용족 같은 거면 모를까 싼 티 나게 그게 뭡니까?”
“아니, 내가 조선인이고 내 밑에서 일하면 조선인이지. 뭔 말이 많냐.”
“대만은 어쩌시게요?”
“그럼 대만인을 자칭하면 벵골 술탄국은 어쩌고? 조선인임과 동시에 대만인이고, 명나라 사람이고, 인도 사람이고, 유럽 사람이고, 로마인이기도 한 거지.”
로마.
중요하다.
그래서 꼭 넣었다.
“개 억지네.”
“꼬우면 네가 왕 하든가.”
“평소에는 권위를 잘 안 쓰시면서 이런 사소한 거에만 그러세요?”
“사소하니까 목숨 걸어야지.”
원래 인생도, 역사도 그런 거다.
“저분들은 뭐 때문에 저렇게 다투고 계시나요?
선장실 근처에서 우리를 보던 소피아가 이소군에게 라틴어로 물었다.
“남자라서.”
이소군이 라틴어로 짧게 대답했다.
듣는 건 돼도, 여전히 말하는 건 어렵나 보다.
“남자라서요?”
“귀여워.”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곧 적응됨.”
소피아는 여전히 알쏭달쏭한 표정이었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이소군이 라틴어에 더 익숙해지든지, 아니면 소피아가 다른 언어를 익혀야 할 것 같다.
“아무튼, 두고 보자고.”
“축제 때 두고 보죠.”
메흐메트 술탄이 모르는 사이.
우리는 그렇게 조선과 오스만의 자존심을 건 승부를 결정했다.
***
메흐메트 술탄이 수복한 이즈미르 항구는 이전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이제는 보선을 보더라도 발작하는 모습이 없었으니까.
덕분에 우리는 평화롭게 이즈미르 항구에 기항할 수 있었다.
“와아아아!”
우리가 내리자 항구를 지키던 오스만군이 일제히 환호를 질렀다.
확실히 콘스탄티노플에서 상대했던 오스만군과는 무장이 다르다.
발칸반도의 오스만군은 체인 메일을 입었다면, 이곳은 천이나 가죽 갑옷이 주류인 경무장이라고 할까.
심지어 남성용 치마인 킬트를 입은 이도 많았다.
더운 중동에서 활동하다 보니 철 갑옷을 피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기동성을 중시하는 점도 있겠고.
“이렇게 되니 개선장군이 된 느낌이구나.”
“틀린 말은 아니죠.”
무함마드가 어깨를 쭉 폈다.
칭찬해달라는 뜻 같다.
“…….”
콘스탄티노플과는 반대로 엔히크 왕자는 쭈그러들었다.
이베리아반도에서 오스만에 대한 소문은 무지막지했으니까.
기독교인은 잡아서 산 채로 태워 죽인다든가.
주변 기독교 국가에게 소년을 바치게 한 다음 괴물로 키워낸다든가.
심지어 젊음을 위해 어린 소녀의 피를 빤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다.
물론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빠르게 세력을 넓혀가는 오스만에 대한 두려움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리라.
“잼민아. 너무 겁먹지 마라. 편하게 있어도 돼.”
“저를 포로로 잡으려고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혹독한 훈련 끝에 예니체리로 만든다거나…….”
“다 큰 애는 사상개조가 힘들어서 그러진 않을걸?”
“그, 그럼 산채로 불태워서…….”
“뭐 하러 그러겠니. 술탄도 사람이야. 사람.”
“아니면 포르투갈의 이권을 내놓으라고 협박할 수도…….”
“포르투갈에 이권이 있긴 하니?”
있으면 나 좀 주라.
“저, 저는 그냥 배에 있으면 안 될까요?”
“잘 생각해보렴. 네가 언제 또 오스만의 술탄을 만날 수 있겠니. 이럴 때일수록 이베리아 남아의 기개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
“그렇다고 건방지게 굴지는 말고.”
“네…….”
엔히크의 어깨를 두들겨 주고, 다시 무함마드를 보았다.
“안내해.”
“옙!”
이게 거의 마지막이다.
선원들에게 슬슬 향수병 증상이 나타나고 있는 만큼, 슬슬 귀국할 계획도 세워야 한다.
이번 만남으로 내가 생각하는 미래를 확실하게 그릴 수 있게 되기를.
각오를 다지고 메흐메트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