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54
253화 영구 중립국 (1)
사실 난 비잔틴 제국보다 오스만을 좋아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전통과 역사보다는 혁신과 적응력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슬람 국가라는 특성과 쇠락한 말기의 삽질로 인해 저평가되지만, 오스만은 일개 영지에서 혁신에 혁신을 거쳐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번영한 제국.
동로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비잔틴 제국은 지는 해고, 오스만은 떠오르는 태양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 특히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일수록 신흥국보다는 근본 있는 나라를 좋아한다.
신성 로마 제국을 게르만 추장회로 생각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지만 비잔틴 제국을 부흥시켜야 할 이유가 생겼다.
이대로 가면 오스만이 너무 빨리 성장할 것 같기 때문이다.
나중에 오스만의 적이 될 맘루크 술탄국을 약화했으니까.
자칫 오스만이 원 역사보다 빨리 맘루크 술탄국을 삼키게 되면 오스만은 중개 무역의 이권을 챙기기 위해 나를 매우 적대할 수도 있다.
실제로 아프리카를 돌아 신항로를 개척한 포르투갈의 초기 주적은 오스만을 비롯한 아랍 상인이었다.
아무튼 나는 오스만을 견제해야만 하고, 오스만을 견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콘스탄티노플이 굳건히 서 있는 것이다.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지 않는 한, 오스만은 마음 놓고 세력을 확장할 수 없을 테니까.
“보자고 하시었소?”
비잔틴 제국의 황제, 마누일 2세가 독대를 허락했다.
이 이야기는 다른 누가 들어서 좋을 게 없어서 독대를 신청했다.
“단적으로 묻겠습니다. 로마를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희생하실 수 있습니까?”
“…….”
마누일 2세는 어떠한 표정 변화도 없이 지그시 나를 바라보았다.
내 말의 저의를 파악하려는 것 같다.
“약속을 어기려는 것이 아닙니다. 약속대로 10년은 확실하게 지켜드립니다.”
내가 영락제에게 죽지 않는 한 말이지.
“하지만 10년이 끝이 아니지 않습니까.”
진짜는 10년 뒤부터 시작인데.
“갑자기 마음이 바뀐 이유를 물어도 되겠소?”
“개인적인 이유입니다.”
오스만을 견제하기 위해서.
이 말이 새어나가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
마누일 2세가 입이 가벼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가장 확실하게 비밀을 지키는 방법은 아무도 모르게 하는 거니까.
“좋소. 굳이 캐묻지는 않도록 하지. 로마를 지킬 방도는 있소?”
“많은 것을 희생한다면요.”
“무엇을 원하시오?”
“대가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이쪽에서 지원을 쏟아부어서라도 로마를 지키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대로면 밑 빠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 격입니다.”
망조가 든 나라가 그렇다.
쓸데없는 데 돈이 새어나가 정말 필요한 곳에 쓸 돈이 없고, 체질을 바꾸자니 몸집이 무거워서 쉽게 바뀌지도 않지.
“좋소이다. 딸마저 희생시킨 무정한 아비거늘, 무엇을 못 내놓을까.”
“아들도 희생시켜야 합니다.”
“…….”
“죽이거나 내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내정 간섭할 생각은 없지만, 황태자인 요안니스는 로마의 멸망을 앞당길 위인입니다.”
에서 이 시대를 주로 플레이했기 때문에 확실히 안다.
차기 황제인 요안니스 8세는 능력적으로 그렇게 나쁘지는 않지만, 상당히 경솔한 경향이 있다.
이번 오스만 내전에서 살아남은 왕자인 무스타파를 지지해 내분을 일으키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분노한 술탄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을 공격당했다.
함락되지는 않았지만 대신 테살로니카를 빼앗기고, 모레아 공국을 유린당하는 등 비잔틴 제국을 사실상 회생 불가의 상태로 몰아넣으니까.
원 역사는 결과론적인 이야기라 반드시 참고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군인들마저 무시하는 그의 성격은 좋게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럼 누구를 다음 황제로 세워야겠소?”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추천하자면 5황자인 콘스탄티누스 11세를 말하고 싶다.
보통 망국의 군주는 상당한 암군 취급을 당하기 마련인데, 그는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임에도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는다.
단순히 동정론을 넘어, 그가 국가를 위해 노심초사하며 헌신을 했던 황제였기 때문이다.
마음이나 태도뿐만 아니라, 능력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지라 이슬람 쪽 역사에서는 박하기 그지없지만, 팔레올로고스 왕조를 음흉하다며 불신하던 서유럽조차 그를 인정할 정도였다.
문제는 이제 겨우 다섯 살이라는 것.
“중요한 것은 기존의 방식으로는 어렵다는 것이지요. 장자 승계도 그렇고, 분할 상속도 그렇고 문제가 많습니다.”
“말이 모호하구려. 그대가 생각했을 때 최상의 이야기는 어떤 것이오? 이렇게 독대를 청하였으니 솔직담백하게 말해보시구려.”
“…….”
“무례하거나 터무니없는 말을 한다고 해도 문제 삼지 않을 테니, 기탄없이 말해보시오.”
“우선은 모레아 공국과 테살로니카를 나에게 넘기겠습니다.”
“그 이유는?”
“분할 상속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게임에서 분할 상속을 막기 위해 자주 쓰는 꼼수다.
충성심이 높지만, 아이를 갖기엔 나이가 많거나 고자인 신하에게 영지를 수여하는 것.
그 신하가 죽으면 현재 왕인 사람에게 돌아오니까.
현대가 아니라서 유류분 반환청구 같은 건 없다.
“물론 내가 다시 제대로 돌려줄 거라는 믿음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분할 상속을 막는다는 것 외에는 무슨 장점이 있소?”
“제대로 된 후계자가 나타날 때까지, 온전한 상태로 보존할 수 있습니다. 오스만이 내 영지를 건드리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건 참 괜찮구려.”
마누일 2세는 기분 나쁜 기색도 없이 담담하게 답했다.
하지만 태도로 봐서는 영지를 넘겨줄 것 같지는 않았다.
내 말을 듣고 그렇게 하겠다는 군주가 있다면 오히려 정신을 의심해야겠지만.
“그것은 결국 시간을 끄는 것이지 않소. 근본적인 대책은 무엇이오?”
“전쟁은 누가 일으킵니까?”
“힘 있는 자가 일으키오.”
“이길 것 같은 사람이 일으킵니다.”
내부의 불만을 잠식시키기 위해 외부의 적을 만들고 싶은 사람도 전쟁을 일으키긴 한다.
하지만 비잔틴 제국이 처한 상황과는 관계없으니 이 경우는 배제했다.
“따라서 답은 간단합니다. ‘지면 매우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혹은 ‘싸우는 것보다 협상하는 게 이익이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면 전쟁을 피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양념을 하나 더 쳐야 한다.
야심 차고 능력 있는 젊은 술탄.
오스만 술탄국을 오스만 제국으로 바꾼 위대한 황제.
메흐메트 2세를 즉위하지 못하게 방해해야 한다.
하지만 이건 말하지 않도록 하자.
“그러려면 강력한 전력이 필요할 터. 현재 가톨릭 국가들은 그럴 의지도, 힘도 없지.”
“동기라면 불어넣으면 되는 것이고, 10년 후라면 서유럽도 다시 힘을 갖출 것입니다.”
“내 말은 그게 아니오. 14년 전 니코폴리스에서 십자군 13만과 오스만 6만이 부딪혔소. 기사도에 심취한 그들은 정면 승부를 고집했고, 결과는 그대도 알고 있는 대로지.”
나도 알고 있다.
‘기사의 돌격은 정면 승부에 강하니 크게 상관없지 않나?’ 싶었지만 겪어보니 달랐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베네치아와 해전을 치를 때, 작은 배들이 가만히 있었다.
뭔가 싶었지만 일단 보는 족족 침몰시켰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기사도에 따라’ 큰 배는 작은 배를 선빵치지 않는 게 예의라더라.
손자병법에서는 전쟁은 이겨놓고 싸우는 거라고 가르치는데, 유럽은 롤플레잉 게임을 하듯이 전쟁을 하고 있었다.
전쟁이 장난인가 싶다.
“비록 이쪽이 아쉬운 입장이고, 마땅히 손을 뻗칠 곳이 없어 계속 구걸하고는 있지만, 나는 솔직히 그들에 대해 무척 회의적이라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어쩐지 처음 보는 이국인에게 보랏빛 혈통을 내어주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말 그대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나 보다.
“오스만 담당 일진은 러시아인데.”
“음?”
“혹시 흑해 북쪽과 손을 잡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까? 그쪽도 정교회 국가입니다만.”
“어디를 말하시오? 설마 킵차크한국의 속국인 모스크바 대공국을 말하시오?”
아…….
아직 타타르의 멍에가 안 끝났나 보다.
내가 류리크 가문으로 플레이할 때는 금방 독립했는데.
현실은 다른 모양이다.
하긴.
그런 상태니까 슬라브족 여성을 노예로 잡아 나한테 선물로 줄 수도 있었겠지.
“쯧. 복잡하군요.”
여기 사람들이 바보라서 방책을 떠올리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는데 안 된 거겠지.
“자신을 과신하지는 않네만, 간단했다면 내가 이미 했을 걸세.”
“그렇긴 하겠지요.”
“그래서 방법이 없겠나?”
마누일 2세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 모습으로 물었다.
그의 표정을 보건대 ‘해탈했다.’라는 말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짐작할 수 있었다.
“당연히 있지요.”
내가 말이야. 응?
상세한 역사는 몰라도, 흐름 정도는 알고 있다고.
“콘스탄티노플을 영구 중립국이자, 온갖 이권이 얽힌 국제도시로 만들면 됩니다.”
중립국이라고 해도 공격을 안 받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아무리 중립을 선언해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중립도 힘이 있어야 하는 거라고.
영구 중립국의 대표적인 국가, 스위스.
스위스가 중립을 지킬 수 있는 데에는 용병으로 다져진 전투력과 알프스산맥이라는 천혜의 요새 덕분이기도 하지만, 2차 대전 때에는 더 큰 이유가 따로 있었다.
바로 돈이다.
***
마누일 2세와 비밀 협약을 마친 뒤, 소피아의 궁전으로 돌아갔다.
소피아와 의논할 게 있어서.
궁전의 응접실에서는 이소군이 춘자에게 라틴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refrigescant caput et calefaciat cor.”
“정답! 대머리의 마음은 타들어 가고 있다!”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나는 춘자를 높게 평가한다.
이젠 그녀 없이는 항해가 부담스러워질 정도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춘자와 공부는 상성이 안 맞다.
빨리 때려치우는 게 서로에게 좋은 일 같다.
“흠흠.”
“오셨습니까. 전하.”
“오셨습니까.”
이소군과 춘자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잘 되어가고 있니?”
“예. 문제없습니다.”
이소군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교육자의 최대 덕목은 인내심이라던데.
그녀는 참 훌륭한 교육자가 될 것 같다.
“춘자.”
“예!”
“‘이 문제의 기원’이라는 뜻의 문장은?”
“어…… 잘 모르겠습니다.”
정답은 I love Britain이다.
라틴어로는 Diligo Britanniam.
“그보다 소피아는 어디 갔어?”
“하실 일이 있다면서 방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사샤는?”
사샤는 슬라브족 여성의 이름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은 춘자에게 맡겨놨다.
메흐메트가 보낸 이상 그럴 가능성은 적지만, 어쩌면 적의 첩자나 암살자일 수도 있으니까.
현재까지 춘자의 말로는 그러한 낌새나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궁전의 시녀에게 일을 배우고 있습니다.”
“말도 안 통하는데 일은 어떻게 배워?”
“이 궁전에도 노브고로드 어를 할 줄 아는 시녀가 있다고 하더군요.”
“오호.”
안 그래도 말이 안 통해서 답답했었는데 다행이다.
나도 그리스어를 공부하고 있으니, 출항하기 전까지 어설프게나마 의사소통이 될 수도 있겠네.
“소피아와 이야기 좀 하고 올게.”
그녀들을 뒤로하고 소피아의 방으로 향했다.
“소피아. 있어?”
반응이 없다.
해가 중천인데 벌써 자는 건 아닐 테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 안으로 들어갔다.
“…….”
방 안에는 소피아가 있었다.
뭐 때문인지 몰라도 피곤했는지 책상 위에 엎드려 자고 있었는데…….
“음?”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무언가 설계도가 그려져 있었다.
“와우.”
설계도에는 도르래를 이용하여 쉽게 장전할 수 있는 쇠뇌.
그리고 톱니바퀴를 이용해 한 손으로도 장전할 수 있는 쇠뇌 설계도가 그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