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55
254화 영구 중립국 (2)
중세의 끝.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이유는 우르반 거포도, 배를 산으로 넘기는 기발한 작전도 아니었다.
문단속이 안 된 콘스탄티노플의 비밀 쪽문에 50여 명의 예니체리가 들어갔고, 그중 한 명이 쫓기는 와중에 성벽에 오스만 깃발을 꽂는 일이 발생했다.
그 깃발을 본 비잔틴 제국군은 패닉 상태에 빠졌고, 반대로 오스만군은 승리를 확신하며 동료의 시신을 넘어 함락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이런 일만 없어지면 콘스탄티노플을 지켜낼 수 있는가.
나는 굉장히 회의적이다.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콘스탄티노플이 지쳐있다는 방증이니까.
또한, 영지를 죄다 빼앗긴 상태이기에 용병에 의지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인적 자원이 고갈된 상태이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지원을 차일피일 미룰 정도로 서유럽에게 콘스탄티노플은 딱히 메리트가 없다.
물론 멀쩡하기를 바라기는 하겠지.
이슬람을 막는 방파제니까.
마치 지진을 막는 방파제로 일본 열도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 같은 마음이라고 할까.
대신 한국보다 잘 나가지는 말고.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도 거의 막을 뻔했다는 사실은 테오도시우스의 성벽과 이곳 사람들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다.
희망 없이 지쳐있는 도시.
인적 자원의 고갈.
아무런 이권도 없는 껍데기.
이 요소들만 해결할 수 있다면 비잔틴 제국의 부흥까지는 몰라도, 콘스탄티노플은 지킬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 모든 문제는 ‘돈’이라는 해결책으로 귀결되고.
돈으로 해결이 안 된다면, 더 많은 돈이면 해결된다.
그리고 지금.
단서를 찾았다.
“이거 스스로 생각한 거야?”
설계도를 가리키며 소피아에게 물었다.
“그게…… 예…….”
소피아는 기죽은 상태로 대답했다.
“왜 그런 반응이야? 죄 지었어?”
“그게…… 예하의 기술을 훔친 거니까…….”
“내 기술?”
난 쇠뇌를 만든 적이 없는데.
“오스만에 부탁하여 만든 투석기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적용된 기술을 사용했습니다.”
“아~”
대포가 대두되는 시기에 투석기라고 하면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다빈치의 투석기는 르네상스 시대에 고안된 물리학의 정수 중 하나다.
판스프링도 그렇지만, 적은 힘으로도 태엽을 감아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는 구조는 상당히 고급 기술이다.
“딱히 내 기술도 아니야. 포르투갈에서도 봤고, 콘스탄티노플 항구에서도 사용하던데?”
기중기에 흔히 사용되는 기술이다.
기중기라고 하면 수원 화성처럼 성을 만들 때만 사용되는 줄 알았는데, 유럽에서는 의외로 항구에서 흔하게 사용된다.
무거운 짐을 하적하거나 선적할 때 쓰더라.
그걸 보며 항해와 교역에서는 유럽이 아시아보다 확실히 더 발전되어 있다는 걸 느꼈지.
“하지만 무기로 사용하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렇게 따지면 나는 소형화에서 쇠뇌에 적용한 적이 없는데.”
“죄송합니다…….”
“오해가 이어질 것 같으니 이것부터 확실히 하자. 나는 화를 내는 게 아니야. 오히려 감탄하고 있어.”
어깨너머로 본 정도로 그리스의 불을 재현할 때부터 그럴 낌새가 보이긴 했는데.
공주가 공학적인 재능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것도 상당히 뛰어난 수준인 것 같은데.
이런 인재가 왜 역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나 싶긴 하지만, 그게 역사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자신의 재능을 개화해 줄 교육을 받기 어렵고.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역사에 이름을 남기려면 획기적인 발명을 하거나 이론을 정립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는 폰 노이만은 의외로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인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장영실도 내 덕에 한국사가 아닌 세계사에 발자취를 남길 것이다.
무려 증기기관을 발명했으니까.
그래서 뼈아프게 다가오기도 했다.
장영실은 내 부하가 아니라, 킬방원의 부하니까.
여러 분야에 특출난 인재를 많이 데리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장영실을 제외하고 공학에 특출난 인재를 만나보지 못했으니까.
수재급은 많이 봤는데, 천재급은 못 봤다는 뜻이다.
그런데 소피아의 일면을 보자니, ‘천재다!’까지는 아니어도 수재를 넘어선 재능을 갖춘 것 같다.
잃어버린 퍼즐을 찾은 느낌이다.
“혹시 이것도 해볼 수 있을까?”
대략적인 구조를 그렸다.
“이건 시계가 아닙니까?”
“……알아보겠어?”
“서유럽의 일부 항구에는 시계탑을 설치했다고 하여 대략적인 구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유럽은 이런 부분도 발전했구나.
몰랐던 사실이네.
“하지만 이건 너무…… 작네요.”
“이미 만들어진 시계탑을 작게 만들면 돼. 쉽지?”
아직은 세상에 없는, 나중에나 발명되어야 할 금속 태엽은 이미 발명했다.
야금술도 상당히 발전한 상태.
회중시계가 정확히 언제 발명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슬슬 나올 때가 됐다.
더욱이 시계탑도 이미 만들어진 상태라지 않는가.
누구는 동굴 속에서 소형 핵융합 발전소도 만들었는데 이 정도야 껌이지.
“해보겠습니다.”
“좋았어.”
“정확히 어떻게 하면 됩니까?”
아…….
“그건 네가 생각해야지.”
오랜만에 이 말을 하니 속이 다 시원하네.
***
내전을 수습한 메흐메트 술탄은 티무르에 의한 패전과 내전의 상처를 수습하기 위해 주변국에 파격적인 유화책을 내밀었다.
가장 큰 수혜를 받은 곳은 다름 아닌 비잔틴 제국.
테살로니카를 돌려받았으며, 오스만에 바치던 조공도 중단, 여기에 명목상이긴 해도 오스만의 상국이 되는 성과도 얻어 내었다.
큰 시름을 덜어낸 마누일 2세는 나랏일에 슬슬 손을 떼었다.
대신 종교와 문학에 심취했다.
‘지금 그럴 때냐?’라고 하고 싶지만, 나로서는 오히려 좋았다.
그 덕에 내 영향력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으니까.
실제로 현재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세하는 건, 다른 황자나 귀족이 아닌 바로 나였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돈이 되기 때문이다.
향신료를 비롯해 없어서 못 사는 동방 무역품을 독점하고 있으니까.
돈만 많고 힘이 없다면 유대인들처럼 약탈과 착취의 대상일 뿐이지만, 나는 확실한 힘이 있다.
무사 왕자로부터 콘스탄티노플을 지키고, 전멸 위기에 놓인 카타프락토이를 구출.
상당한 해군력을 가진 베네치아 해군을 최소한의 피해로 몰살.
강력한 위상을 뽐내는 맘루크 술탄국의 핵심 항구를 불태운 실적.
여기에 무함마드의 기강 잡기와 여기서는 ‘프로메테우스의 번개’라 불리는 다이너마이트가 준 충격도 나를 함부로 하지 못하는 이유다.
정치적으로도 완벽하다.
오스만 내전을 종식하고 메흐메트를 술탄으로 옹립하는데 상당한 이바지했고, 그 덕에 그와 호형호제를 한다는 사실.
서유럽에서는 로마 교황청에 한정되긴 하지만 성인으로 인정.
또, 보랏빛 혈통과 결혼한 비잔틴 제국의 부마라는 소문도 파다하게 퍼졌다.
결정적으로 비잔틴으로선 외세인 내가 설치고 다니는데, 마누일 2세는 나랏일에 손을 뗀 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황제가 묵인했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무튼,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나는 로마의 독재관처럼 나랏일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콘스탄티노플을 영구 중립국으로 만들기 위한 밑 작업이다.
또, 내가 본국으로 돌아간 사이, 다른 황자들이 설치지 못하도록 손발을 묶어두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렇게 궁정을 주최하는데…….
내가 일을 하나둘 처리하기 시작하자 소문이 퍼졌는지 온갖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동안 이렇게 불만이 많았으면서 어떻게 참았다니.
“그래서 뭐가 불만이라는 건가? 돈은 주었을 텐데?”
내 말에 군 지휘관 중 하나가 매우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인제 와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이것이 로마의 화폐입니다.”
“아…….”
비잔틴 제국의 화폐를 보자, 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오스만에서는 금화를 쓰는데 여기서는 은화를 쓴다.
크기는 매우 작고, 은 함유량이 매우 적은지 새까맣다.
이런 거 받으면 임오군란이나 무신정변 같은 거 일어나야 하는 거 아닌가?
비잔틴군의 사기가 낮은 이유가 있었네.
“그럼 그동안 이걸 받고 일했다는 건가?”
“나라가 위기인데 돈을 밝힐 수는 없으니까요.”
애국 페이라고 해야 할지.
훌륭한 노예라고 해야 할지.
이 말은 삼켰다.
……근데 왜 잘 참다가 내가 궁정 주최를 하니까 말하는 건데?
“알겠네. 곧 제대로 된 은화를 만들어서 법률대로 지급하겠네. 물론, 그동안 받지 못했던 분까지 최대한 참작해 주겠네.”
“가, 감사합니다.”
지휘관은 진심으로 감사하는 듯했지만, 옆에서 나를 도와주던 궁정 귀족이 난색을 보였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황실에는 돈이 없습니다.”
“흐음…….”
나는 돈이 많다.
따라서 내가 내줄 수도 있다.
어차피 콘스탄티노플에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건 각오한 바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안 된다.
유럽과의 교역이 큰돈이 된다는 걸 보여줘야 하니까.
누구에게?
창해 주식 상단의 주주들에게.
이제는 명나라 대신이나 거상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아시아의 수많은 국가와 여러 단체가 얽힌 매우 중요한 문제다.
또, 소속 선원들에게 목숨을 건 항해를 하게 하려면 그만한 보상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려우시면 제가 빌려드릴 수도 있습니다.”
제노바 상인이 대답했다.
유럽의 특색인지, 여기만 그런 건지 몰라도 궁정 주최에는 온갖 사람들이 모여 공개적으로 한다.
“빌려준다? 그게 되는가?”
“안 될 거 없지요.”
“이율은 어느 정도인가?”
“이자를 받는 건 천한 유대인들이나 하는 일입니다.”
무이자로 빌려주겠다는 뜻인가?
“대신 향신료나 동방의 교역품을 더 할당해주시면…….”
그러면 그렇지.
이게 대체 뭐 하는 꼬락서니인가 싶다.
“할당량은 지금 함부로 결정할 수는 없네. 이번에는 거래 대금은 본국으로 가져가야 하기도하고. 하지만 돈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 다른 방법은 없겠나?”
“그러시면 ‘노예’를 발행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노예?”
뭔 소리지?
“돈을 빌리고, 정해진 기한 후에 돌려주겠다는 채무 증서 말입니다.”
“아~”
채권을 말하는 모양이다.
채권이랑 노예랑 스펠링이 같은 모양이다.
“나중에 더 비싸게 사시겠다는 약속만 있다면 충분한 양의 ‘채권’을 매입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게 이자 아닌가?”
“다르지요. 이건 어디까지나 사고파는 거래니까요.”
이럴 거면 그냥 이자를 받아!
뭐 하는 거야. 대체.
“어느 정도를 원하나?”
“한 10% 정도 더 높은 가격을 원합니다.”
“자네 혹시 포르투갈 사람인가?”
“네? 제노바 사람입니다만.”
아니. 그냥.
날강도 같아서.
뭔 놈의 채권에 이자를 10%씩이나 붙이냐.
솔직히 창해 주식 상단 정도면 세계 유일의 글로벌 대기업인데.
심지어 여러 국가의 왕까지 얽혀 있고.
이 정도면 AAA급 신용 아니냐.
“10%는 너무 많소. 5%쯤 합시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예하께서 언제 돌아오실지도 모르고, 바다는 험난한 곳인데 혹시라도…… 좋지 않은 일이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5%”
“죄송합니다.”
안 되네.
이걸 어쩔 수 없이 눈탱이 맞아야 하는 건가.
뭔가 방법이…….
잠깐만.
채권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는 건, 다른 금융 상품이 팔릴 수도 있다는 뜻이잖아.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내가 금융 알못이긴 하지만, 개념으로나마 하나 아는 게 있다.
잘못 건들면 쫄딱 망한다는 위험한 파생 상품.
“장래에 일정한 시기에 상품을 넘겨주겠다는 계약. 이것을 그대가 사는 걸세.”
선물 거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