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74
273화 당동벌이 (3)
영락제가…….
죽었다고?
난 안 믿는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그 시신을 보기 전까지 믿을 수가 없다.
“폐하께서 붕어하셨다고요? 확실합니까?”
“어디까지나 소문입니다.”
허관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평안하게 대답했다.
황제의 죽음은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대역죄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보았을 때 매우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좀 이상하군요.”
“어떤 점이 그렇습니까?”
“아내에게 듣기론 폐하께서는 북벌군을 이끌고 북원의 수도 카라코룸을 불태웠다 하였습니다.”
역사에서 수도가 점령당하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따라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번 경우는 매우 큰 일이다.
몽골은 본래 유목 민족.
정주민처럼 고정된 수도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러다 오고타이 칸 때 카라코룸이 세워지게 되고, 몽골제국의 수도이자 북원의 유일한 도시가 되었다.
즉, 카라코룸의 파괴는 북원이 다시 유목민 시절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의미다.
“그 소식을 들은 건, 제가 귀향하기 며칠 전의 일. 그 소문을 전해준 건 천진항과 대만을 오가는 상인.”
천진항은 북경과 배우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항구다.
서울 옆 인천 같은 항구.
카라코룸을 불태운 시기와 소문이 전해진 시기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상업의 중요성이기도 하다.
상인은 정보에 민감하기에 정세를 살피는 데 매우 유리하거든.
그래서 상업을 장려한 나라는 대체로 외교력도 발전한 예가 많다.
칭기즈칸의 경우 상인을 통해 얻은 정보로 능숙한 침략을 했지만.
“반면 광동성의 상인은 천진항까지 가지는 않죠. 그렇다면 가주께서 그 소문을 ‘누구’에게 들었냐는 의문이 생깁니다만.”
“말씀드렸다시피 보급 물자를 대는 전쟁 상인입니다.”
“아니지요. 만약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천진항을 오가는 상인들이 이상한 징후를 포착했을 것입니다.”
북쪽에서 사업을 접고 내려오려고 한다거나.
아니면 곡물이나 무기 등의 사재기로 시세변동이 매우 컸어야 한다.
훌륭한 상인일수록 위기와 앞선 정보력을 이용해 이익을 내려고 했을 테니까.
“여러 정황으로 보건대 가주께서는 그 소문을 전쟁 상인에게 듣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다시 묻지요. 누구에게 들었습니까?”
“하하하. 이것 참 난감하군요. 그냥 그런 소문이 있다는 정도만 알아두시면 좋지 않겠습니까?”
“자칫 대역죄에 걸릴 수도 있는 소문을 그냥 넘기기도 어려울뿐더러, 이유 없이 그냥 알려주실 것 같지 않습니다.”
“허가장 사위에 대한 처가의 배려입니다.”
“그런 배려를 하시기엔 2차 주주 총회 때의 일이 있지 않습니까.”
2차 주주 총회 때, 허관영은 창해 주식 상단의 상단주인 나를 밀어내려고 했다.
아마도 그가 원한 것은 아니고 뒤에서 압력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고 해도 사실이 변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 일이 있고 난 뒤 허신애는 허가장과 반쯤 연을 끊고 오가지 않고 있다.
“아니면 그때 일의 사죄라고 말씀하실 생각입니까?”
“…….”
“가장 의심되는 사람이라면 역시 한왕 주고후 쪽입니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군요.”
“그것은 왜입니까?”
“한왕 주고후는 소인배입니다. 그가 내 처가댁을 믿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그 말씀 역시 대역죄에 걸릴 수도 있는 일이군요.”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제게 그 소문을 전해준 사람은 누구일까요?”
허관영의 표정은 계속 평온했다.
마치 내가 이렇게 따지고 들어올 거라 예상했다는 듯이.
그리고.
소문을 퍼뜨린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으리라는 듯이.
“수년 전. 믈라카 왕국에서는 말씀하신 일과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갑작스레 곽란이 창궐했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지요. 그리고 그 원인은 다름 아닌 통조림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똥조림이다.
콜레라 환자의 배설물을 담은 통조림.
콜레라균을 살려야 하기에 만드는 건 훨씬 단순했을 것이다.
멸균 과정이 필요 없으니까.
“그리고 그걸 만든 사람은…….”
“만든 사람은요?”
건문제다.
정확히 말하면 건문제의 부하.
하지만 건문제의 이름을 언급할 수는 없다.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확실한 역모니까.
“십사(十士)라는 조직이었습니다. 열 명의 선비라는 뜻이지요.”
그중 하나가 이소군의 오빠.
그는 이소군이 직접 쏴서 죽였다.
“이상하군요.”
“무엇이 말입니까?”
“저에게 소문을 전해준 이는 십사라는 자들이 아닙니다.”
“이름이 중요하겠습니까. 남해의 화교들을 뒤에서 조종했던 흑막이라는 게 중요하지요.”
“하하하. 그것도 그렇겠군요. 하지만 그들이 남해에서 들어온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럼 무엇을 압니까?”
“그 조직의 이름이요.”
허관영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리고 가볍게 숨을 고른 후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들은 자신을 천안문(天安門)이라 했습니다.”
“…….”
“놀라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늘(天)을 평안케(安)한다니. 동창에 이 이름이 흘러갔다면 역모라 판단하고 피바람을 일으켰을 겁니다.”
아니.
그게…….
나는 그래서 놀란 게 아닌데.
“게다가 조직 이름에 문(門)을 붙이다니요. 마치 자신들을 불의에 저항하는 임협(任俠)이라 생각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임협이란 약자를 돕고 강자를 물리치는 용맹한 사람을 뜻한다.
무협 소설의 협객이라는 뜻.
실제로 존재하긴 하지만, 하는 꼴을 보면 협객보단 도적에 가깝다.
“아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예? 그럼 무엇이 중요합니까?”
“……아닙니다.”
‘금방 진압당할 것 같은 이름이잖아!’라고 외치려다가 참았다.
참고로 현시점에 천안문은 없다.
지금 지어지고 있는 북경 황궁의 정문의 이름은 승천문이다.
언제 천안문으로 개명되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천안문이라는 조직이 접촉해왔다는 뜻이죠? 뭔가 제안을 하던가요?”
“아니요. 그 소문을 전해주면서 때가 되었을 때 선택하라고만 하였습니다.”
“때가 되었을 때…….”
“물론 저는 그들을 광인이라 생각하고 웃어넘겼습니다만, 혹시 전하라면 뭔가 아시지 않을까 싶어서 말씀드렸습니다.”
지금까지는 시험이었다는 뜻이다.
나는 멋대로 상상하다 낚인 거고.
“그들의 말에 의하면 폐하께서 원정을 끝내고 돌아오시는 길에 유목천에서 봉변을 당했다고 합니다. 사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천하가 바뀐다.
그것도 급격하게.
“사실이라면 가주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전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제가 그 말씀을 순수하게 믿으리라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전하께서는 훌륭한 왕이자 학자입니다. 동시에 천재적인 상인이기도 하지요. 따라서…….”
그는 빙그레 웃었다.
“저는 믿지 못하시더라도 허가장의 돈이라면 믿을 수 있으시겠지요?”
***
허가장의 방문을 마친 나는 남경으로 가려던 계획을 접고 다시 대만으로 돌아왔다.
역시 믿어지지는 않는다.
그 괴물 같던 영락제가 죽었다니.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사실일 경우를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만약의 사태 때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나라는…….
조선이다.
대만으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왕궁 근처에 자리 잡은 권수연의 집으로 향했다.
대만에 온 조선 장인이나 상인은 사실상 권수연의 지휘를 받고 있다고 하니까.
여자가 지휘한다는 게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조선 초기에는 여성의 권한이 상당한 수준이다.
성종 때 한 번, 숙종 때 한 번 대폭 깎여서 그렇지.
“여기가 권수연의 집?”
“네.”
석피가 대답했다.
확실히 집 양식이 조선 같다는 생각은 든다만…….
“집이 엄청 큰데?”
“재물을 크게 벌었다고 합니다.”
조선 양반가 남자들은 사회적인 규제로 인해 돈을 벌기 어렵다.
그 대신 여자 쪽이 품을 팔거나 가산이 있는 경우 재테크를 하지.
북한도 비슷하다고 들었다.
그러니 명문가의 여식인 권수연이 신부 수업으로 경제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이상한 건 아니다.
“넌 어떻게 알았냐?”
“그게…… 아내가…….”
“아. 맞다.”
생각해 보니 석피의 아내도 조선인이다.
조선에서 상당한 권세 가문인 청주 한씨 가문.
엄격하게 말하면 석피는 천민 출신인데, 백제와 고려, 조선을 건국한 공신 가문의 사위가 되다니.
이래서 사람 일은 모른다고 하나 보다.
“너희 집도 좀 벌었디?”
“그야…… 많이 벌었지요. 집의 크기가 달라져 있더군요. 귀국하고 처음 집에 갔을 땐, 저를 두고 다 이사하였나 했습니다.”
“역시 조선인이 장사를 잘해.”
전생에 해외 평가에서도 그랬다.
기업가 정신은 세계 탑급이라고.
기업은 일류.
정치는 삼류.
“근데 오늘 무슨 축젯날이야? 잔치가 열린 것 같은데?”
“제삿날이라고 합니다.”
“아…….”
미리 물어보길 잘했네.
이 시대에는 여자가 제사를 주관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근데 제사를 왜 여기서 지내? 본가는 어쩌고?”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그럴만한 사정이 있으니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일단 들어가 보자.”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대만은 원주민 수와 비교하면 이민자가 대다수인 곳인 만큼 치안이 확실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 탓에 사병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조선인으로 보이는데 명나라 말로 물었다.
“왕이야.”
조선말로 답했다.
“예?”
“이 나라 왕이라고.”
“헙.”
“안에 권 아가씨 있지?”
“네!”
“들어간다?”
“예!”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 지역인데, 관계자가 아니면서 프리패스한 것 같아 묘한 성취감이 들었다.
저택 안에 들어가니 겉보기엔 역시 잔칫상 분위기다.
인근 주민을 초청해서 여러 음식을 푸짐하게 대접하는 걸 보면.
이게 제사의 본 목적이긴 하다.
제사를 명분으로 주민의 민심을 얻는 것.
그리고 손님에게 선물을 받는 것.
물론 조상님에 대한 감사와 봉양의 의미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뜻이다.
“전하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사당으로 들어가자, 연한 옥빛을 내는 한복을 입은 권수연이 나를 맞았다.
“확인할 게 있어서 왔다만…… 그럴 경황이 아닌 모양이군.”
“아닙니다. 본 제사는 조선에 있는 본가에서 치르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여기는?”
“조선의 문화를 알리고, 이웃과 더 친하게 지내기 위함이지요. 또, 멀리 고향을 떠나온 조선인들에게 위안을 해주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다소곳하게 웃었다.
“게다가 저도 가문의 사람인데, 멀리 있더라도 제사는 지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전하께서는 제사를 치르지 않으십니까?”
“치르긴 한다만, 이렇게 풍성하게 하지는 않지. 차 한 잔 올리는 정도로 끝내니까.”
“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다만, 이는 내 의지다. 왕실 행사는 많아질수록 재정에 큰 부담이 되니까. 최소한으로 간소하게. 그것이 내 방침이다.”
초반에는 상관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쌓인다.
나중에 정조쯤 가면 왕실 행사로 1년 내내 숨돌릴 시간도 없었다고 들었다.
그러니 지금부터 최대한 간소화하는 버릇을 들여야지.
개인적으로는 그런 거 할 시간과 돈이면 경제를 더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끄럽습니다. 제가 너무 사치한 듯싶군요.”
제사상을 보자니 화려하긴 했다.
상상하지 못한 화려함이긴 했지만.
망고나 바나나는 그렇다 치자.
근데 제사상에 커리는 웬 말이고, 월남쌈은 웬 말인가.
“어…… 이 음식들은?”
“제가 먹어보니 무척 맛이 좋더군요. 조상님도 맛보시면 좋을 것 같아서 올렸습니다.”
“하긴 뭐.”
제사상은 정해진 규칙이 없다.
조선은 청빈을 강조하고, 당시에는 먹을 것도 별로 없었는데 그런 화려한 제사상이 규칙이 있었을 리가.
그냥 주변에 있는 음식 중에서 제일 괜찮을 걸 올렸다.
내가 죽거든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피자를 올려달라고 해야겠다.
죽기 전에 피자를 개발해야겠네.
지금 시대에는 케첩이 없거든.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킬…… 조선 국왕을 만나고 싶다.”
“전하를 말씀입니까?”
“그래. 그대가 조선의 대사 역할을 하지 않은가.”
“미천한 소녀에게 과분한 말씀입니다. 저보다는 대호군께 말씀드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대호군?”
“장영실 영감 말씀입니다.”
“장영실이 여기에 있어?”
“예. 저기에…….”
그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음식을 먹다 말고 조심스레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석피야.”
“예.”
“잡아 와.”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