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44
043화 용왕의 시발점 (1)
우리는 30여 척의 함대를 이끌고 아유타야 왕국으로 향했다.
종교의 힘으로 어떻게든 사기를 끌어 올리긴 했으나, 객관적으로 봤을 때 매우 위험하다.
해군은 높은 숙련도가 필요한데, 우리 신병들은 기껏해야 한 달 훈련 받았으니까.
총이 있거나, 하다못해 대포라도 많으면 어떻게든 하겠건만.
대포 수는 적고, 그나마도 높은 숙련도가 필요한 전장식 대포다.
화약과 포탄을 넣고 도화선 연결하는 건 물론, 흔들리는 선상에서 도화선에 불붙이기조차 쉽지 않다.
활을 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선상 백병전에 이골이 난 해적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래저래 걱정이 많다.
“설마 우리를 최전방에 세우진 않겠지······.”
“충분히 그럴 것 같습니다만.”
“석피야. 불길한 소리 하지 마라.”
“죄송합니다.”
내가 먼저 말 꺼냈긴 하지만 어쨌든 하지 마.
“왜 그렇게 생각했어?”
“제독에게 원정대원은 소모품으로 쓰기 아깝지 않습니까. 반면 참파 해군은 쓰다 버리기 딱 좋죠.”
“그건······ 그렇지.”
정화는 인격자이지만, 명예보다 영락제의 바람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
진심으로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가차 없이 진행하겠지.
“대책을 세워야겠네.”
“거부권은 있습니까?”
“없으니까 대책을 세우지.”
판옥선이라도 있으면 해상 농성전이라도 시도해볼 텐데.
아직 개발도 안 됐다.
“근데 이건 뭡니까?”
석피가 돛대를 따라 부착된 쇠꼬챙이를 보고 물었다.
“피뢰침.”
“예?”
“전에 비자야 해전 때 천둥이 쳤잖아. 벼락이 떨어지면 엿 되겠다 싶더라고. 그래서 설치해놨어.”
“이런 거로 번개를 막을 수 있습니까?”
“번개는 뾰족하게 솟은 곳으로 향하는 성질이 있고, 특히 전도율······.”
이렇게 말하면 이해하기 어렵겠구나.
“간단히 말하자면 번개를 유도해서 바닷속에 넓게 퍼뜨리는 거지.”
“많이 대비하셨군요.”
“이걸로도 모자라. 그냥 운이 좋길 바라야 해.”
동남아시아 바다는 지랄 맞기로 유명하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남부, 그리고 인도네시아 전 지역이 환태평양 조산대.
불의 고리에 속한 지역이니까.
덕분에 지진에, 화산에, 쓰나미까지 온갖 재해가 판을 친다.
심지어는 태풍까지 오가는데 한반도는 그나마 열에너지가 좀 빠진 채로 찾아오지, 동남아시아는 직격타다.
여기에 주로 여름, 가끔 가을에 태풍이 오는 한반도와는 달리, 2월에도 태풍이 오기도 한다.
아시아에서 대항해시대가 열리지 못한 이유가 험난한 해양 환경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희망은 없습니까?”
“있지.”
“오. 역시 나리입니다. 그게 뭡니까?”
“비자야 해전 때는 우리가 큰 공을 세웠잖아. 다른 사람에게도 공을 세울 기회를 넘긴다는 명분으로 뒤로 빠질 수 있지.”
정화의 말로는 다들, 특히 무관들이 달아오른 상태라고 하니 서로 선봉에 서려고 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우리의 목표는 최대한 후방에서 안전하게 살아 돌아오는 거다.”
“예!”
***
“자네가 앞장서야겠네.”
아유타야에서 날 보자마자 정화가 한 말이었다.
정확히는 아유타야 왕국 남부 외곽에 있는 작은 어촌 마을이다.
이 이름도 제대로 없는 깡촌이 나중에 발전을 거듭하여 태국의 수도 방콕이 되지.
“제가요?”
당황해서 되물었다.
“그래. 자네가 선발대로 팔렘방으로 향하여 수비를 단단히 하고 본대가 올 때까지 버티게.”
“하오나 제독. 진조의의 해적단에 비하면 제 직속 병력은 한 줌에 불과하며, 참파의 해군은 이제 걸음마를 뗀 아기에 불과합니다.”
반면 진조의는 수백 척의 전함과 1만에 달하는 대군을 보유했다.
이걸 내 휘하의 병사로 막으라고?
나가 뒈지라는 말이다.
“자네 혼자서 막으라는 건 아니네. 팔렘방엔 시진경이 군민을 모아 방비를 굳히고 있네. 자네는 그걸 보조하면 되는 일일세.”
좋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팔렘방으로 향하는 길에 습격당하면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이미 보선을 비롯해 원정대 함선 몇 척을 나포당했잖아.
근데 그보다 약한 전력으로 바다를 건너라고?
“그래서 자네가 가야 하지.”
그건 네가 생각해야지.
간이 막사에서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는 각양각색의 감정이 깃들어있었다.
기대, 불안, 선망, 질투, 의구심, 의심 등.
아니야.
이건 아니야.
독박쓰고 뒤질 수는 없어.
차라리 조선을 위해서 한다면,
‘애국했다. 후손들아 기억해줘.’
‘다음 생엔 재벌집 막내아들로 환생할 테니 미워하지 말고.’
라고 자위라도 할 수 있지, 이건 진짜 개죽음이잖아.
“원정대에는 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장수와 책사가 많지 않습니까. 그들에게도 공을 세울 기회를 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어라?
없다.
마상척인지 마하충인지 하는 놈.
그 녀석을 도발해서 고기 방패로 보내려고 했는데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가장 의욕이 넘치는 이들로 선발대를 꾸렸었네. 그리고 결과는 서신에 보낸 대로일세.”
“나포되었다는 보선이 설마 마상척이 지휘하는 보선입니까?”
“역시 예상하고 있었군. 그런 자네니까 믿고 보내는 걸세.”
에이. 그건 너무 억지다.
“차라리 다 함께 가는 건 어떻습니까?”
“그러고 보니 자네에겐 작전 개요를 설명하지 않았군.”
정화는 상 위에 놓인 커다란 동남아시아 해도를 가리켰다.
대충 엇비슷하긴 한데, 실제 지도와 비교하면 상당히 엉성하다.
전에 레 리가 줬던 해도보다도 부정확했다.
“남해 일대는 섬과 바다가 많은 만큼, 해상 무역이야말로 생명줄이라 할 수 있네.”
말레이반도와 수마트라섬 북쪽, 그리고 필리핀에 붉은색 기물을 올려두었다.
“하지만 해적이 창궐하면서 이 생명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지.”
강력한 해상 왕국이었던 스리위자야의 멸망과 마자파힛의 내전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그들이 힘을 잃어버린 순간 바다의 통제권도 잃어버렸으니까.
시암, 크메르, 참파, 대월 등 인도차이나반도 국가들은 굳이 해상 무역에 목숨을 걸지 않아도 육상 무역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고.
“반대로 말하면 이 해적들을 진압하면 안정적인 무역로를 확보할 수 있으며, 남해에 대한 대명의 영향력도 공고하게 할 수 있다는 뜻이야.”
필리핀에 있는 붉은 색 기물을 치웠다.
“마닐라 일대는 지금 생각하지 않기로 하지. 그곳은 하나의 큰 세력이 없고, 군소해적과 왜구들이 섞여서 날뛰는 혼탁한 바다니까.”
지휘봉으로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 해안을 가리켰다.
미래에도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항로.’, ‘수에즈 운하, 파나마 운하와 함께 3대 해상 요충지.’라고 불리는 믈라카 해협이다.
“우리는 이곳만 확보하면 되네.”
말은 쉽지.
“문제는 해적의 특성일세. 혹시 자네는 해적들이 어떻게 싸우는지 아나?”
“해적은 자체적으로 함선을 만들 능력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조각배 정도지요.”
“왜 그러한가.”
“안정적인 육지와 목재를 확보할 수 없을뿐더러, 훌륭한 기술을 지닌 조선공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따라서 해적들은 정면승부가 불가하며, 빠른 기동력을 이용해 배를 나포한다고 들었습니다. 해안가에 정박한 배를 훔쳐가는 예도 많다고 하더군요.”
항구에 기항했음에도 괜히 교대로 불침번을 세우는 게 아니다.
“해적은 정면 승부를 할 수 없기에 주로 깊은 밤 때를 노리며, 만약 발각되었을 경우 미련 없이 도망가버립니다. 중무장한 함선으로는 그들의 배를 따라잡을 수 없으니까요. 마치 자객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찌 대응해야겠는가.”
“제일 중요한 건 정찰입니다. 또한, 공을 탐하여 적을 쫓는 우를 범하면 안 됩니다. 아군 함선끼리 거리가 벌어지는 순간, 사방에서 벌떼처럼 달려들 테니까요.”
“잘 아는군. 그런데 남해는 처음 와보는 조선인인 자네가 그런 사실은 어찌 알았나?”
“기본적인 내용은 부선장이 알려주었습니다. 그 내용이 심상치 않다 여겨, 비자야에서 남해 해적의 습성과 동태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였······ 어라?”
쎄한 느낌이 들어서 주변을 돌아보니 일부는 한숨을 쉬고 있고, 일부는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역시 자네야. 한 배를 맡는 선장이라면 응당 해야 할 일이지.”
반대로 말하면 응당 해야 할 일을 안 한 이가 있다는 뜻이다.
‘그 당연한 걸 왜 안 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내가 미래인 시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의외로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당대 최강의 전함인 판옥선 백여 척, 7년간 전승 무패의 실전으로 다져진 최정예 수군을 한 방에 날려버린 자.
칠천량 해전의 병신, 원균이다.
심지어 판옥선 134척으로 세키부네라는 중소형 함선 60척에 포위 공격당했다는 전설적인 위업도 있다.
이는 나중에 어떤 일본 장르 소설에서 300명의 민병대로 5000의 정예 몬스터 군단을 포위 공격해서 몰살시켰다는 전설의 ‘포위섬멸진’에 대한 근거를 제공한다.
“그런데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사람이 많지 않더군.”
노기가 느껴지는 정화의 말에 예부의 관리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나를 원망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마치 ‘선생님. 오늘까지 제출할 숙제 있어요.’라고 말한 눈치 없는 모범생을 보는 듯한 눈빛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네. 적은 기동력이 빠르고, 정면승부를 피하는 만큼 상대하기 까다롭네. 또한, 오래 끌수록 피해는 크게 누적되겠지.”
쾅!
정화는 믈라카 해협 일대를 주먹으로 크게 내리쳤다.
매섭게 자리를 지키던 붉은 기물이 일제히 쓰러졌다.
“따라서 단기 결전으로 한 방에 끝내야 하네.”
정화가 나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대가 팔렘방으로 가서 수비를 굳건히 하고 적을 끌어내게. 그사이 나는 해적들의 본거지를 소탕한 후, 해적들의 뒤를 잡겠네.”
“······.”
내가 소탕할게.
네가 버텨.
라고 말하고 싶지만, 계급이 깡패다.
“미리 말하지만, 함선은 추가 지원해줄 수 없네. 수비가 너무 강하면 해적들이 미끼를 물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이대로면 의미 없는 개죽음이 될 수 있습니다.”
미끼가 되는 제 사정도 생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만.
“게다가 해적이 굳이 올까요?”
“오지.”
“마땅한 유인이 없지 않습니까.”
“왜 없겠는가. 자네가 엄청난 보물을 지니고 있는데.”
엄청난 보물?
나한테 그런 게 있었나?
“용왕을 쓰러뜨렸다는 명성. 압도적인 공포를 원하는 진조의에게는 참을 수 없는 보물이지.”
오직 나만이 해적왕의 미끼가 될 수 있다는 뜻.
즉, 답은 정해졌다.
너는 대답만 해라.
미개한 중세 같으니.
더러운 계급 사회.
“알겠습니다. 있는 힘껏 발버둥 쳐보겠습니다.”
“고맙네.”
“그런데 함선만 추가 지원이 불가합니까? 다른 건 지원이 가능하죠?”
“그래. 무엇이든 말만 하게. 만금을 들여서라도 반드시 구해주지.”
항모전단을 원합니다.
13척만 있으면 세계 정복도 쌉 가능입니다.
“함포와 화약을 최대한 지원해주십시오. 포를 다룰 수 있는 정예병도 부탁드립니다.”
“······자네는 참 화포를 좋아하는구먼. 알겠네. 어차피 우리는 육지에 있는 해적의 본거지를 소탕해야 하니까.”
그렇게 말한 후 정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나 질문이 있는데.”
“예. 제독.”
“조선인들은 왜 그리 화포를 좋아하는 겐가?”
“······.”
일반화하지 말라고 말하기엔, 조선 사람치고 화포 싫어하는 사람을 못 봤다.
600년 후 미래에도 말이다.
“본능입니다.”
***
바로 출발하지는 않았다.
참파 전함(구 대월 전함)에 대포도 설치해야 하고, 기초적인 포격 방법도 알려줘야 하니까.
하지만 현대처럼 포격 연습을 해볼 수도 없다.
그러기엔 화약이 너무 귀하고 비싸다.
화약 대신 모래, 도화선 대신 밧줄로 반복 숙달만 시켰다.
“혼자서 다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만 집중해, 하나만.”
화약만 넣는 사람.
도화선만 설치하는 사람.
포탄만 넣는 사람.
화포 식히는 사람.
화약재 끄집어내는 사람.
이런 식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대포 조준은 정화가 지원해준 정예 포병에게 맡기고.
어쩔 수 없다.
1인분의 포병으로 훈련하기엔 시간이 촉박했으니까.
속성교육으로 때려 박는 수밖에 없다.
“식사 시간!”
“““와아아!”””
해변에서 바베큐 파티가 벌어졌다.
아유타야에서 가져온 질 좋은 고기를 산처럼 쌓아뒀으며, 조선에서는 구경하기도 힘든 향신료가 가득하다.
내가 강력하게 주장해서 한 일이다.
전투를 앞두고 있다는 마음가짐을 위해.
너희에게 아낌없이 지원한다는 착각을 심어주기 위해.
“나리.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사형수에게 대접하는 최후의 만찬 같은 느낌이라서.”
“······.”
“괜찮아. 우리는 살 거야. 전부다.”
지옥으로 끌고 왔지만.
내가 다 살릴 거다.
그렇게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저······.”
참파 해군 신병 두 명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미리 말하자고 했잖아.”
“조용히 해.”
뭔 일이래.
“긴히 할 말? 따로 자리가 필요해?”
“예.”
신중해 보이는 남자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가벼워 보이는 남자는 계속 불안하다는 듯이 주변을 살피고 있었고.
“내 막사로 가지.”
“예.”
우리는 함께 막사로 들어갔다.
지휘관 막사라지만 남자 네 명이 들어가니 살짝 비좁게 느껴졌다.
“무슨 일이지?”
둘은 서로의 눈치를 봤다.
그리고 신중해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저희는······ 해적왕의 첩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