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59
058화 거짓말은 안 했다 (1)
돌아가는 길은 빠르고 편했다.
날씨가 좋고 순풍인 덕도 있지만, 선원들이 항해에 능숙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짧은 시간.
깊은 경험.
폭발적으로 실력을 향상한 선원들은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편하고 안전하게 광주까지 데려다주었다.
덕분에 나도 내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논어, 화엄경, 쿠란, 베다, 성경.
세상에 사상의 혁신을 가져온 성스러운 경전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새로운 경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돈이라는 가혹한 신을 숭배하기 위한 경전.
돈이라는 만능 하인을 지배하기 위한 경전.
앞서 말한 경전과는 달리, 신성함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다.
오히려 인간의 추악함과 냉혹함만을 담백하게 드러내지.
그렇기에.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경전이기도 했다.
“국부론(國富論). 이름이 굉장히 거창합니다.”
허가장의 소가주.
아니, 이제는 가주가 된 허관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거창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나라의 부를 다루는 학문이니까요.”
나는 경제학 전공도 아니고, 경제학 전공이라 하더라도 그 내용을 달달 외우고 있을 정도로 암기력이 좋지도 않다.
하지만 항해사가 그렇듯, 역사가 그렇듯 흐름만 알고 있으면 된다.
부족한 부분은 사관의 역량이 채워줄 테니까.
본래 국부론이라면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의 저서다.
책의 제목이나 내용보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용어가 더 유명한 그 책 말이다.
모든 내용을 기억하지는 못하기에 제목과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용어만 빌렸다.
그리고.
죄수의 딜레마와 함께 ‘개인의 최선은 조직의 최선이 아니다.’라는 명제를 설명했다.
뉴딜 정책과 같은 거시 경제도 얄팍하게나마 설명했고.
아마 내 국부론과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이름만 같지 내용은 상당히 다를 것이다.
“그래서 이걸 제게 보여주는 이유가 뭡니까?”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어떤 기회요?”
“저에게 투자할 기회를요.”
내 대답에 허관영은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크게 웃었다.
“하하하. 태어나서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보통은 ‘투자해 주세요.’라고 말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 건 자신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고요. 아무나 저에게 투자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나 초기 투자자는 다른 이들보다 훨씬 짭짤할 터.
어중간한 이는 투자자로 받지 않을 것이다.
“차를 준비했습니다.”
전에 왔던 그 정원.
그 자리에서.
불과 3개월 만에 한층 더 성숙한 허신애가 다기를 준비해왔다.
그녀를 흘끔 본 허관영은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로 답했다.
“차라리 허가장의 예비 사위로서 돈을 받고 싶다고 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관직에 있는 존귀한 분이시니, 증여가 부담스럽다면 빌려드리는 형식도 괜찮습니다.”
“아니요.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제가 드리는 겁니다. 저에게 투자할 기회를요. 싫다면 상관없습니다.”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필요합니다. 하지만 다다익선은 아닙니다.”
“왜죠?”
“금액이 많아지면 투자한 금액 대비 이윤이 적어 보일 테니까요.”
사람들의 눈을 돌아가게 만들어야 하는데, 꼴랑 2배, 3배 벌었다고 하면 눈 돌아가겠나.
열 배, 백 배는 벌어야지.
“같은 이유로 저에게 투자할 기회를 받는다고 하셔도, 투자할 수 있는 금액에는 제한이 있습니다.”
“그 금액이 얼마입니까?”
“은자 천 냥입니다.”
“켁. 아. 죄송합니다. 추한 모습을 보여드렸습니다.”
“상관없습니다.”
내가 타는 중형 함선인 조(曹) 한 척이 은자 100냥 정도.
대형 함선인 진극이 300냥 정도 된다.
물론 유지비와 개·보수비, 함포 장착까지 생각하면 훨씬 더 비싸지겠지만.
“또한, 최소 투자 금액을 은 100냥으로 할 생각입니다. 그 이하라면 받지 않겠습니다.”
“하하······ 하하하! 이것 참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하고 싶은 대로 하시면 됩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어요.”
“허가장의 예비 사위가 엄청난 공훈을 세워 이름을 떨쳤다 들었습니다. 돌아온다면 어떻게 대접해야 할까 고민했지요. 그런데 이런 거래를 들고 오시니 참으로 뜻밖이군요.”
“대접은 충분합니다. 안타깝지만 시간이 금인지라 오래 머물기 어렵거든요.”
슬쩍 허신애를 보고 미안하다는 의미를 담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담담하게 마주 고개를 숙임으로써 답례했다.
“대인께서 목표하신 금액은 어느 정도입니까?”
“일단은 성과를 보여줘야 하기에 소소하게 할 생각입니다. 은 10만 냥 정도?”
“푸훗. 켁! 켁! 아······ 죄,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남자의 아밀라아제를 자꾸 맞게 되네.
“······.”
허신애가 조용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 얼굴을 닦아 주었다.
손수건에서 청량한 난초향이 났다.
“소소하게요?”
“예. 소소하지요. 시간만 넉넉했더라도 백만 냥 정도는 받을 생각이었습니다만······.”
“그 엄청난 금액으로 대체 뭘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시대를 바꿀 겁니다.”
“······.”
10만 냥도 초기 투자 금액이다.
나중을 생각하면 100만 냥도 모자라다.
“돈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예를 들면······ 그래요. 베 한 필 짜는 데 보통 4~5일 정도 걸리지요?”
“직조만 보면 그렇지요. 목화를 키우는 데 걸리는 시간과 백저(표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포함하면 훨씬 더 길어지지요.”
“베 한 필 짜는 데, 반 시진이면 충분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전보다 훨씬 좋은 품질로 말입니다.”
단순히 배만 산다면 돈은 그리 많이 필요 없다.
기반 시설을 죄다 살 것이다.
죄다 사고, 적당한 장인을 모집하고, 분업을 시켜서, 생산량을 극도로 끌어모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큰 수익을 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세상을 바꾸기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뀐다.
그게 바로 산업혁명이니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조기 산업혁명을 생각하고 있다.
그거라면 증기기관 없이 분업과 반복 숙달만으로도 가능하니까.
하지만 이 개념을 처음부터 이해시키기란 매우 어렵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력에 한계가 있고, 상상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공상으로 취급할 테니.
“다른 것도 있지요.”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면 황칠나무라는 게 있습니다. 오직 조선에만 있는 특산품으로 조선에서도 일부 섬 지역밖에 자라지 않는 매우 희귀한 나무지요.”
“들어보았습니다. 황칠 공예품은 조선의 조공품 아닙니까. 그 어떤 것도 황금처럼 보이게 해주는 신비한 능력을 지녔다고 들었습니다.”
옻나무로 하는 옻칠과 비슷하다.
다만 그 색이 다른데, 황칠나무 수액을 바르면 금속이든, 나무든 황금색을 띤다.
심지어 강철에 바르면 더 단단해진다고 한다.
그야말로 한반도의 연금술.
만능 도료라고 할 수 있다.
“조선에서는 이를 조공품으로만 사용합니다. 그리고 조공품에는 공출만이 있을 뿐, 제대로 값을 치르지 않지요.”
덕분에 그 지역 주민들의 고통이 매우 심하다고 한다.
점점 더 많은 양을 요구하는데, 값을 치르지 않으니, 생업을 방해받고 점점 고달파지기만 하니까.
결국, 장인들은 도망치고, 그 지역 주민들이 나무를 몰래 베어서 죽여버리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덕분에 대한민국 시점에서는 이미 기술이 실전되고 명맥이 끊어진 상태였다.
“재미있는 일 아닙니까. 아주 좁은 지역에서, 특별한 장인만이 만들 수 있는 데다, 수많은 이들이 원하는 ‘명품’을 헐값에 후려치는 바람에 장인들이 다 죽어가고 있어요.”
“······.”
“이런 일이 조선만 해도 꽤 많습니다. 명나라에는 없을 것 같습니까? 왜에는요? 참파에는요?”
“그러니까 그 사치품을 전부 사들여서 교역하겠다. 이 말씀입니까?”
“사치품이 아니라 명품입니다.”
그게 그거긴 한데, 사치품이라고 하면 거품을 무는 유학자들이 많을 테니까.
마케팅을 잘해야 한다.
“또한, 명품을 사들이는 게 아니라, 재료와 장인의 재능을 살 겁니다.”
“저는 대인께서 엄청난 돈으로 특정 물품을 독점하여 가격이라도 올려치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숙청당하겠지요. 저는 안전을 지향합니다.”
허생전에 나오는 그 내용을 말한 것이다.
이 시대에 독과점 금지법 같은 건 없지만, 대신 함부로 황제나 조정의 심기를 거슬렀다간 목이 날아간다.
“위험은 항해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마찬가지 이유로 쌀, 소금과 같은 필수품.
그리고 화약, 말과 같은 전략물자는 함부로 손댈 수 없다.
자칫 심기를 거스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것들을 전부 제외한다고 해도 돈이 될 만한 물건은 많다.
독과점하지 않아도, 독과점 같은 효과를 낼 수도 있고.
“제가 설명해 드릴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일 것 같군요. 아무리 예비 처가라고 하지만, 장사 밑천을 전부 공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하나만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씀하세요.”
“황실로부터 무역 허가를 받는 일은 어렵습니다. 더욱이 강 대인 같은 사대부가 장사에 뛰어들었다간, 아무도 대인을 사대부라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방책이 있습니까?”
나는 손가락으로 허관영 앞에 있는 국부론을 가리켰다.
“저는 시대를 바꾼다고 하였습니다. 단순히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장사가, 상업이 천하다는 인식을 바꾸고, 나아가 국가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게 상식이 되도록이요.”
미래에는 나라님이.
그러니까 대통령이 다른 나라에 가서 건설이나 무역 계약을 수주해오면 사람들이 엄지를 치켜세운다.
경제 대통령이라고.
내 목표도 그것이다.
사대부나 조정 대신이 나서서 좋은 거래를 따오면 백성들이 좋은 선비라고 인정해주게끔 만들고 싶다.
“그동안 광주에 참 다양한 이들이 찾아왔습니다. 아유타야를 비롯한 온갖 사신단들이 광주를 거쳐 경사로 향했지요. 그분들이 공통으로 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짐작하시겠습니까?”
“글쎄요. 무엇입니까?”
“‘왜 용왕은 자신들의 나라에는 찾아오지 않을까. 섭섭하다.’였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는 뿌듯하기만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다 이유가 있었군요.”
시간을 줘야 가든가 말든가 하지.
어쨌거나 좋은 신호다.
남경에서 중상주의를 주창할 때, 동의할 확률이 조금이라도 올라간다는 뜻이니까.
“저 역시 장사꾼입니다. 장사꾼으로서 상업이 귀하게 여겨지기만 한다면 만금을 투자할 수도 있지요.”
그렇게 말했지만, 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실망이라기보다······ 회의적인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아무리 강 대인이라 해도 불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상업의 중요성을 생각한 이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고들 하지요.”
“그들 모두 세상을 바꾸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간혹 여불위처럼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거상이 나타나긴 했으나, 그들 역시도 세간의 인식을 바꾸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저를 믿지 못하겠다면 투자 이야기는 없던 일로 하지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허관영은 장총관을 불러 광동어로 무언가를 지시했다.
그러자 장총관은 사라졌다가 곧바로 한 상자를 들고 돌아왔다.
“은원보 20개. 정확히 은 천 냥입니다.”
“절 못 믿으시겠다면서 어찌 투자를 하십니까?”
“강 대인을 못 믿는다기보다 이 세상 누구도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허관영은 은근슬쩍 내 옆에 앉아있는 허신애에게 일부러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나를 보았다.
“믿어보고 싶습니다. 장사꾼이 천시 받지 않는 날이 오기를 누구보다 학수고대하고 있으니까요.”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이는 빚이 아니라 투자입니다. 다 날려버릴 수도 있어요.”
“알고 있습니다. 꿈이라는 값비싼 사치품을 샀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국부론을 가리켰다.
“정독해봐야 제대로 알 수 있겠습니다만, 현재까지 생각으로는 괜찮은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괜찮은······ 정도입니까?”
상업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허가장이라면 경제학의 가치를 알아보리라 생각했는데······.
“예. 결국 천하의 근본은 농업이니까요.”
“네?”
“상업은 없어도 불편할 뿐이지만, 농업은 없으면 다 죽어 나갑니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에 대한 보완책이 없습니다.”
“상업의 중요성을 설파하려고 지은 책인데, 어떻게 농업을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도 써야 합니까?”
“물론입니다.”
그는 여태까지 있던 어떤 모습보다도 진지하게 말했다.
“아무리 좋은 것이 있더라도 농업이 흔들리면 국가의 명운이 흔들릴 테니까요. 사대부들은 물론, 폐하도 설득하기 어려울 겁니다.”
듣고 보니 그랬다.
그들에게는 국가를 더욱 부유하게 만드는 것보다, 국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
“만약 이 점을 해결하신다면, 제 인맥과 재산을 최대한 동원하여 대인의 뜻이 관철되도록 돕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