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GAME RAW novel - Chapter 29
“아아- 죽겠다!”
“뭐?”
2012년 4월 13일. 포틀랜드, 오리건. 사우스웨스트 브로드웨이, 포틀랜드 주립 대학교(Portland, OR. SW Broadway, Portland State University).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무의식중에 한국어를 내뱉은 나는 원정길에 데이비드가 동행하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린 순간, 저절로 곡소리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체 얼마나 걸린 거지?
“좋아! 모두, 나를 따라오도록!”
다소 피곤한 기색으로 내려선 스탠리가 앞장서서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가방을 둘러메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휴대폰을 꺼내든다. 시간은 정확히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제 우리가 몇 시에 모였더라?
“와우- 15시간이나 걸린 거야?”
“하하. 아니야, 중간에 톰 아저씨가 잠을 자서 그래. 아마 쉬지 않고 운전하면 11시간이면 도착할 걸?”
“…….”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미국은 정말이지 더럽게 넓은 나라다.
11시간이면, 부산과 서울을 한 번 왕복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아마 한국의 프로 선수들도 이런 원정은 평생 경험을 못해보지 않을까? NBA 팀에 전용기가 필수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너희는 이런 원정이 일상인 거잖아, 그렇지?”
“응? 그야 물론이지. 언제나 홈경기만 할 수는 없잖아?”
다비온 베리는 홈과 원정을 병행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뜻으로 이해를 한 것 같았다.
나의 요지는 그것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Big Sky Conference에는 노스 다코다나 워싱턴처럼 지리적으로 더 먼 곳에 위치한 대학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과연 그런 데에 가기까지는 얼마나 걸리는 걸까?
“거의 꼬박 하루를 달릴 때도 있어. 완전히 구리다니까.”
“…….”
원정을 떠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이미 프로에 진출한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서울과 전주를 오가는 정도만으로도 컨디션의 미묘한 차이를 경험한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적응을 하면 문제가 없지만, 프로데뷔 초에는 원정이 가장 힘들다고도 했다.
반면, 이곳의 대학 선수들은 훨씬 더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에 익숙했다. 그 말은 컨디션을 관리하는 방법에 자연스레 익숙해 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곳에서, 나는 또 하나의 과제를 받게 된 기분이 들었다.
++++++++++++
PSU의 홈구장인 피터 스토트 센터(Peter Stott Center)는 마치 보스턴 셀틱스의 홈구장인 TD 가든을 연상케 만들었다.
방패 문양을 모티브로 한 심벌에 P와 S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고, 초록빛의 객석과 베이스라인 밖 페인트가 인상적이었다. 사방에 적혀있는 바이킹이라는 글자 옆에는 뿔이 달린 투구를 뒤집어 쓴 그림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시선을 잡아 끈 것은 한쪽 벽에 자리 잡은 거대한 전광판이었다.
“와아, 이 씨.”
디 이벤츠 센터와 마찬가지로, 이곳 피터 스토트 또한 끝내주는 시설을 자랑했나. 모든 NCAA Divsion 1의 경기장 수준이 이러한 것일까? 만약에 그렇다면, 정말로 부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고등학교 시절, 한 겨울 난방조차 들어오지 않는 체육관에서 농구를 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내게는 이런 시설을 접하는 것 하나하나가 전부 신선한 충격이었다.
“조심해!!”
“응? 우욱-!”
전광판에 정신이 팔려있었던 내게로 누군가 농구공을 보냈는가 보다.
얼굴에 맞고 튀어나간 농구공이 바닥에 떨어졌고, 벌써부터 자리 잡기 시작한 관중들의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게 뭔 쪽이야?
“너 대체 뭐하는 거야?”
조금 미안한 표정이 된 다비온 베리가 내게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아무래도 내게 패스를 보낸 주인공인 것처럼 보였는데, 한눈을 판 내가 나빴으니 그에게 악감정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난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괜히 촌놈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다시 집중을 하기로 한 나는 몸을 푸는 동료들의 틈으로 몸을 묻었다. 가볍게 레이업을 하나 올려 넣은 후, 콜린에게서 받은 농구공을 릴라드에게 전달한다.
NBA의 관계자들이 방문한 탓인지, 오늘 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결연했다.
“친구, 저기 좀 봐. 샘 프레스티야.”
“샘 누구?”
“이런! 오클라호마의 단장 말이야. 샘 프레스티! 몰라?”
“…….”
미안하지만, 금시초문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리온은 내게 또 다른 곳을 가리키며, 덴버의 단장인 마사이 유지리(Masai Ujiri) 또한 오늘 이곳을 찾았다고 말해왔다. 스카우트가 아닌 단장이 직접 찾은 것은 그만큼 릴라드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는 뜻이라면서 말이다.
이번 2012 드래프트에서 20번 픽을 가진 덴버와 28번 픽을 가진 오클라호마 모두, 순번을 올리기 위해 꽤나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런 그들의 타깃이 릴라드라는 뜻이었다.
“젠장! 하필이면, 이럴 때에.”
여전히 부상으로 뛸 수 없는 리온은 매우 아쉬워하는 듯 보였다.
“샘과 마사이 모두 NBA에서 가장 유능한 남자들이라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시합을 뛰는 것은 두 번 다시는 없을 기회야. 빌어먹을! 오늘 경기는 매우 치열 할 거야, 친구.”
“…….”
덴버는 2라운드에도 두 장의 드래프트 픽을 보유하고 있었고, 외에도 포틀랜드와 필라델피아의 관계자들 또한 이곳을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사전에 조사한 PSU의 졸업생들 모두 2라운드 지명을 노리고 있었기에, 그들 또한 오늘의 경기를 매우 진지하게 임할 것이 틀림없었다. 말이 친선 경기이지, 토너먼트를 방불케 하는. 어쩌면 그보다 더 치열할 가능성도 있었다.
오늘 과연 내가 뛸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스탠리가 약속을 하기는 했지만, 조금 불안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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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반 3 : 51
WSU 9 VS 5 P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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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U 12 VS 5 PSU
“와우- 굉장해.”
수많은 NBA 스카우트 및 관계자들의 앞에서, 릴라드는 무력으로 시위를 하는 중이었다.
얼마 전, 의 유명 애널리스트인 채드 포드(Chad Ford)는 릴라드가 과대평가 된 전형적인 케이스라며 그를 로터리 밖으로 밀어내 버렸다. 또한 유명 드래프트 사이트인 도 릴라드를 22번째에 위치시켜 버렸다.
WSU가 3월의 광란에 진출했지 못했기에, 주가가 폭락해 버리고야 만 것이다.
“또 스틸이야.”
“어- 오.”
오늘 경기의 초반 흐름은 PSU가 우세하게 끌고 오는 것처럼 보였다.
레나도 파커(Renardo Parker)와 찰스 탭스콧이 연달아 우리의 골밑을 공략하며, 스코어를 0 : 5로 벌려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 때부터 릴라드가 불을 뿜었다.
아티머스의 패스를 받아 컷인을 성공시켰고, 곧바로 이어진 공격 기회에서 미들레인지 점퍼를 꽂아 넣었다. 상대방의 실책을 틈타 다비온 베리와 속공 플레이를 만들어 냈으며, 이 후에는 연속해서 찰스 오둠을 괴롭혔다.
스틸 후에 석점, 또 스틸 후에 석점.
불과 90초 전까지만 해도 0 : 5였던 시합은 12 : 5로 뒤바뀌어 버렸다.
삐이이-, 삑!
“타임아웃!”
이런 릴라드의 플레이에 우리 WSU의 벤치는 잔뜩 흥분해 있었다. 벤치로 들어오는 선수들에게 자리를 양보한 우리들은 주변에 서서 스탠리의 지시를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 관중석을 확인해 본다.
미리 확인한 NBA의 관계자들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거나, 함께 방문한 이들과 열심히 대화를 주고받는 중이다. 이 곳 포틀랜드에서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 역시도, 릴라드의 엄청난 퍼포먼스에 매우 놀란 표정이었다.
승패에 대한 부담이 적은 친선 경기이기에, 순수하게 경기를 즐기는 듯한 모습이다.
“이봐, 이봐! 민혁!”
“으, 응?”
“대체 어딜 보고 있는 거야?”
스탠리가 부르고 있었다는 것을 까맣게 몰랐던 나는 재빨리 그에게 사과했다. 그러자 작게 한숨을 내쉰 그가 트레이닝 져지를 벗으라고 지시한다.
“에?”
“도미닉의 발목이 살짝 돌아갔어. 아이싱을 하는 동안은 네가 뛴다.”
“…….”
이렇게 빨리 경기에 출전하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당황한 상태였다.
“뭐하고 있어? 빨리 준비하지 않고.”
“응? 아, 그, 그래.”
리온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하고 든 나는 재빨리 지퍼를 내리며 트레이닝복을 벗었다.
스탠리는 내게 지금까지와 비슷한 역할을 요구했는데, 아직 팀에 충분히 녹아들지 못했음을 감안하면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나는 윙과 코너에서 스페이싱을 확보하고, 팀을 위해 움직이는 데 주력하게 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수비를 하는 것도 매우 중요했다. 최소한 평균치는 보여주어야만, 앞으로도 꾸준한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내게 조언을 했던 것처럼, 공격보다는 수비가 내게 더 많은 출전시간을 보장할 테니 말이다.
“얼에게 들었어. 요즘 매일 같이 남아있다며?”
“응?”
“그는 항상 내가 졸업하기만을 기다렸을 건데 말이야.”
코트로 들어서려는 순간, 릴라드가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건다.
“너무 긴장할 것 없어. 그간 훈련해 왔던 것을 믿으라고. 알겠지?”
“고, 고마워.”
“아, 그리고.”
“응?”
“너 신발 끈 풀렸다?”
으왁-!
깜짝 놀라서 고개를 아래로 내리니, 정말로 내 오른쪽 농구화 끈이 풀려 있었다. 재빨리 몸을 숙여 끈을 단단하게 동여매고는 재빨리 수비 진영을 향해 달려갔다.
낯선 동양인이 코트에 들어서는 모습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산만해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지만, 저절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난 볼을 양 손으로 찰싹 두드리며, 집중력을 끌어 올리고자 했다.
나의 상대는 찰스 탭스콧이었고, 본래 그를 전담하던 아티머스는 레나도에게로 옮겨갔다. 내가 레나도를 막아서기에는 힘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였기에,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나저나, 이 녀석이 어떻게 플레이를 했더라?
탭스콧을 따라 움직이는 동안, 나는 그의 등번호를 슬쩍 바라보며 생각했다. 최근 며칠 동안의 난 PSU의 경기를 계속해서 돌려보았고, 등번호 11번의 선수가 어떻게 플레이를 하는지도 머릿속에 집어넣어 놓았다.
“아티!!”
“응?”
“스크린이야, 스위치!!”
“??”
대뜸 지시를 내리는 내 목소리에 당황한 아티머스가 머뭇거리는 사이, 하이포스트에서 좌측 45도 지점으로 움직이던 탭스콧이 레나도 파커의 스크린을 받았다.
“아이, 씨.”
PSU가 탭스콧을 공격 옵션으로 사용을 할 때에는 언제나 이 방법을 사용하곤 했다.
하이 포스트에 자리한 두 명의 포워드가 스크린을 통해 엘보우로 빠져나와 자리를 잡는다. 그와 동시에 외곽에서 볼을 돌리던 가드들이 위치를 바꿔 엔트리 패스를 넣기 좋은 지점으로 이동을 한다.
포스트업 스킬이 매우 뛰어난 탭스콧이 자리를 잡으면, 곧바로 농구공이 전달된다는 뜻이다.
“좋았어!!”
바로 지금처럼.
“대체 뭐하는 거야?”
“미안, 네가 말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거든.”
아티머스를 구박한 내가 베이스라인을 걸어가 농구공을 릴라드에게 전달한다. 2점을 허용해, 스코어는 12 : 7이 되었다.
농구에서 실점을 하는 것은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것이지만, 내가 투입이 된 첫 번째 포제션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 것은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잔뜩 찌푸리고 있던 나의 엉덩이를 릴라드가 한 번 툭하고 두드려준다.
“이번엔 아티가 실수를 한 거야.”
“정말 그런 거였으면 좋겠네.”
스위칭 디펜스가 정상적으로 이루어 졌다고 하더라도, 실점을 막았을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너무나도 쉬운 레이업을 허용한 것이 싫었을 뿐이었다.
수비는 내가 미국에서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이것은 내 임무고, 실점을 허용하더라도 최대한 컨테스트 하는 것이 필요했다.
“움직여! 움직이라고!”
“스위치! 뒤로 물러서!”
벤치를 포함해, 양 팀의 선수들 사이에서 끊임없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난 조용히 코너에 서서 공격이 진행되는 상황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있는 방향을 철저히 윅-사이드(Weak-Side)로 만들어 놓았고, 스트롱 사이드에 밀집한 선수들이 픽&플레이를 통해 공격을 전개하려는 듯 보였다.
다비온 베리가 볼을 운반하는 가운데, 카일이 스크리너가 되어 다가선다. 동시에 아티머스가 내가 있는 코너로 횡단했고, 나는 자연스레 윙으로 자리를 옮겼다.
베리는 2 : 2 플레이 후, 도움 수비를 온 선수를 확인하며 점프를 해 외곽으로 볼을 넘겼다. 릴라드가 비어있는 상황에서 볼을 잡았고, 슈팅을 시도하는 듯 보였던 그는 한 번의 페이크로 수비를 제쳐내며 내게 농구공을 전달했다.
본래 나를 막던 탭스콧은 릴라드에게로 가있는 상황. 아티머스에게 들러붙어 있던 레나도 파커가 열심히 달려오고 있었다.
“슛해!”
동시에 들려오는 리온의 생생한 목소리.
그는 오후 훈련 뒤에 진행 된 나의 개인 훈련을 끝까지 지켜 본 유일한 남자였다. 손에 쥔 농구공을 그대로 슈팅 포지션으로 올라가는 상황이 여전히 조금 어색하기는 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 오른손이 캐치 후에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는 거다.
릴라드의 패스를 받은 순간, 농구공에 닿았던 위치에서 정확히 슈팅 포지션으로 옮겨간 나는 왼손의 스냅을 충분히 이용해 슈팅을 날렸다. 점프의 높이도 이전보다는 조금 낮게 가져갔고, 대신 릴리즈를 하는 위치는 전보다 높아졌다.
슈팅이 손을 떠나고 조금 뒤, 블록을 시도하는 파커가 눈에 띄었다.
철썩-!
“그렇지이-! 바로 그거야!!”
환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세 개 펴든 리온의 호들갑스러운 반응과 함께, 뒤늦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선수들은 손뼉을 치며 나의 첫 WSU에서의 득점을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수비로 복귀하며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솔직히 조금 놀랐다는 표정의 콜린과 스탠리였다. 무언가 대화를 주고받던 두 사람이 교체를 준비하고 있던 도미닉을 도로 벤치로 불러들인다.
내가 조금 더 시합에 뛸 수 있을 거라는 사인으로 이해해도 되려나?
다행히도, 내 예상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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