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154
1154화 최후의 승부
이미 한 차례 대답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엽현은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이때 서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천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다.”
이 말에 엽현은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이때, 천도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아무 소용없다.”
“소용이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말없이 엽현을 보며 웃기만 하는 천도.
잠시 후, 엽현의 시선 속에 천도가 다시 말을 꺼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서옥 안에는 확실히 오유겁을 막을 방법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기지. 서옥으로 오유겁을 막을 수 있다면 선각자는 어째서 또 다른 방법을 찾아 떠난 것이었을까?”
“그건…”
엽현이 정답을 말하지 못하자 천도가 웃으며 대신 대답했다.
“서옥은 그저 일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게지. 방금 말한 대로 서옥으로 오유겁을 잠시 막아 낼 순 있다. 헌데 그 다음은? 또 다른 오유겁이 닥쳐오면 그땐 어떻게 할 거지?”
“…….”
침묵하는 엽현을 보며 천도는 말을 이어나갔다.
“머리 아프게 생각해 봤자 소용없다. 어차피 네 능력으로는 절대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없을 테니까. 너뿐 아니라, 그 어느 누구도. 능력 밖의 일에 골머리를 썩이느니 그 시간에 주변 지인들이라도 어떻게 지켜 낼 생각을 하는 게 이로울 게다.”
엽현은 그제야 천도가 시종일관 주장하는 바가 사실이자 현실이란 걸 깨달았다.
결국, 사람의 능력은 한계가 있다.
할 수 없는 일을 붙들고 늘어져 봐야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라. 이것이 천도가 엽현에게 전달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대 말이 옳소. 고민해 봐야 머리만 아프지….”
이때 엽현이 웃으며 천도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그나저나 또 신세를 지게 됐소. 이제 앞으로 우리가 적이 될 일은 없는 것이오?”
“하하… 그걸 누가 장담하겠느냐? 각자 저마다의 사정과 입장이란 게 있는 것이거늘. 또 아느냐? 그때 가면 또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게 될지….”
“아이고… 그건 좀 사양하고 싶소. 차라리 둔일경 강자와 싸우는 게 낫지, 그대같이 영리한 자와 겨루는 것은 정말이지 피가 마르는 일이오!”
엽현의 앓는 소리에 천도가 미소를 머금었다.
“그럼 천도 낭자, 나는 또 할 일이 있어서 이만 작별을 고하도록 하겠소. 조만간 또 만납시다!”
엽현이 막 돌아서려 할 때, 천도가 뒤에서 소리쳤다.
“천도검을 잘 이용 해 보거라!”
엽현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자 천도가 웃으며 말했다.
“놈들은 너를 치는 동시에 분명 내게도 손을 쓰려 할 것이다. 나는 잠시 숨어있을 테니 부디 보중하도록 하거라.”
“고맙소, 그대도 조심하시오!”
마지막으로 포권을 취해 보인 엽현은 그대로 검광을 타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검광이 남긴 긴 꼬리를 바라보던 천도는 옅은 미소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얼마 후, 성공을 천천히 배회하듯 걷던 천도의 앞에 돌연 흑의를 입은 중년 남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천도의 얼굴을 확인한 공손하지만 힘 있는 어투로 말을 걸어왔다.
“족장께서 그대에게 따듯한 차 한 잔 대접하길 원하시오. 실례가 안 된다면 음령족이 있는 곳까지 모시겠소.”
“후후, 그 차 안에 독이 들어있을지 누가 알지?”
천도가 거절하자 흑의인의 안색이 순간 어둡게 변했다.
“강제로 모시겠다면?”
바로 이때, 천도가 상대를 향해 기습적으로 일장을 날렸다.
남자는 이를 눈치챘지만, 반응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천도의 공격이 빨랐던 것이다!
쾅-!
불의의 일격을 받은 남자는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귀원파계경의 강자가 일합도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린 것이다!
잠시 소동이 있었던 성공은 이내 잠잠해졌다.
이때 천도가 손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한숨을 지었다.
“사실 나는 싸움을 싫어하다 뿐이지 너희가 생각하는 만큼 약하지 않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이리들 무시하는지… 에휴, 너무 연약하게 생겨서 그런가?”
이때 뭔가 떠오른 천도가 손가락으로 가볍게 허공을 그었다.
그러자 검광이 번뜩이더니 흑의인이 있던 자리에 날카로운 균열이 생겼다.
이를 본 천도는 히죽거리며 슬며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로부터 대략 일각 가량이 흘렀을 때, 천도가 있던 자리에 노인 하나가 나타났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마침내 검광이 만들어 놓은 균열을 발견하고선 눈살을 찌푸렸다.
“검기… 엽현이 한 짓이로군….”
말을 마친 노인은 지체없이 자리를 떠났다.
* * *
허무계, 무족의 진영.
엽현이 무사히 돌아오자 아목 등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곧 엽현은 허무계에 머물고 있는 모든 강자를 집합시켰다.
대전 안, 상석에 앉아 무인들을 내려다보는 엽현.
와야 할 자들이 모두 모이자 엽현이 목청을 가다듬으며 말을 꺼냈다.
“나쁜 소식을 전하게 되어서 미안하게 생각하오. 영역이 전 병력을 이끌고 이쪽으로 오고 있소. 진격 속도로 볼 때 길어야 이틀 후면 오유계에 도착할 것이오.”
순간 대전 안이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이보다 더 나쁜 소식이 있소. 그건 바로 현재 우리의 실력으론 절대 그들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오.”
이 말에 무인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이때였다.
“혹시 투항할 수는 없는 것입니까?”
무인들 중에서 흘러나온 이 음성에 모두의 시선이 엽현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엽현이 웃으며 대꾸했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투항한다면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것이오.”
이 말을 듣자 무인들이 다소 주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의리로는 엽현과 함께해야 하겠지만, 목숨을 건질 방법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때, 아목이 앞으로 나섰다.
“무족은 항복하지 않겠소.”
“천족 역시 같은 생각이오.”
신족 신사인 아천도 엽현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한 이때, 태일이 다소 난처한 미소를 띠며 엽현에게 말했다.
“엽현, 내 생각에 우리 정신들은…”
태일의 표정을 본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할 것 없소. 나 역시 이해하는 바이니 얼마든지 떠나도 좋소.”
“크흠,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구나. 그럼 살아서 만나길!”
말을 마친 태일은 정신들과 함께 황급히 대전을 벗어났다.
하지만 유일하게 남은 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엽현과 비교적 오래 알고 지낸 신공이었다.
엽현은 신공이 남은 것을 보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신공, 그대는 가지 않는 것이오?”
“나는 이곳에 남겠다.”
“어째서?”
“네 놈과 생사를 함께 하기로 결심했으니까!”
엽현은 의외의 대답에 다소 기분이 묘해졌다.
신공이 언제부터 자신을 이리 아꼈던가?
물론 신공이 남은 이유는 엽현을 아껴서가 아니라 상황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였다.
현재 국면은 겉에서 본다면 당연 엽현에게 불리한 양상이겠지만, 신공은 엽현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소복의 여인!
그녀가 나선다면 상대가 반보 둔일이든 영역의 수많은 강자들이든 단칼에 허무로 변할 것이 분명하다.
결국, 이런 혼란스런 상황에서 그가 믿어야 할 것은 태일도, 엽현도 아닌 소복의 여인이었다.
그가 아는 한, 그 여인보다 더 강한 자는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신공의 결정에 무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같은 정신들보다 엽현을 믿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엽현 역시 다소 의아했다.
태일이라면 모를까.
자신과 악연이 있는 신공이 남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모두가 어리둥절해 하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신공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뭘 쳐다봐! 내가 남겠다는데 뭐 불만 있어!?”
“……”
엽현은 다소 아리송한 얼굴로 신공을 흘끗 펴다 본 후 고개를 돌렸다.
이때 그와 눈이 마주친 악마안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나와 여기 신제도 여기 남는다.”
“그거… 다소 의외로군. 그대들은 이미 나와 적이 된 줄로 알았는데….”
“그래서, 지금이라도 떠날까?”
악마안이 엽현을 빤히 쳐다보며 묻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대들의 의견을 존중하겠소. 남고 싶다면 얼마든지 남으시오.”
“물론 그럴 것이다. 이제부터 오유계는 한배를 탄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사실 영역이라는 거대한 적이 다가오는 이 상황에서 오유계는 너와 나를 구분할 여유가 없었다.
더욱이 악마안은 신공과 마찬가지로 엽현의 배후를 그 누구보다도 믿고 있는 상태였다.
영역과 비교해서 천녀와 흰 장포의 여인은 신이나 다름없던 것이다.
또한, 악마안이 가장 염두에 둔 것은 서옥이 엽현에게 있다는 점이었다.
기왕 서옥을 차지하지 못하게 되었다면, 그 옆에 바짝 붙어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오유겁을 마주한 악마안의 생존전략이었다.
악마안에게서 시선을 뗀 엽현은 장내를 한 번 둘러보았다.
현재 모인 병력은 검종을 제외하고 부문종, 천족, 무족, 그리고 만유서원.
이들 세력은 끝까지 자신과 함께할 믿을만한 자들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엽현은 대전 밖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우리는 아무래도 여기서 배수의 진을 쳐야 할 것 같소.”
이 말에 무인들의 표정이 다소 어둡게 변했다.
누가 봐도 지금 상황은 엽현 측의 절대적인 열세였다.
무인들은 이 허무계가 자신의 마지막 전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이때 엽현이 대전 밖을 나섰다.
잠시 후, 고요한 성공 가운데 도착한 그는 인왕인을 꺼내 들었다.
이때 아목이 자리에 나타났다.
아목이 따라 온 것을 보자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인왕인으로 십이전장(十二戰將)을 소환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소?”
아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어떻게 하는 것이오?”
아목이 인왕인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네가 직접 한 번 물어보거라.”
이에 엽현은 인왕인을 눈앞으로 치켜들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그의 손에 있는 인왕인이 가볍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멀리 떨어진 성공에서 희미한 그림자가 보이더니, 순식간에 엽현과 아목 앞에 나타났다.
오래전 초대인왕이 남긴 열두 명의 전사들!
아목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이들을 바라보았다.
이 열두 개의 신비한 존재는 살아있는 생명체는 아니었지만, 그 기운은 무척이나 강했다.
최소 귀원파계 절정의 강자들!
처음 엽현의 얼굴을 바라보던 이들은 그의 손에 있는 인왕인을 보자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모두 일어나시오.”
엽현의 한 마디에 열두 전사들이 기립했다.
인왕인을 갈무리한 엽현은 아목을 쳐다보았다.
“한 군데 더 갈 곳이 있는데 함께 가겠소?”
“훗, 물론이지.”
엽현이 웃으며 십이전장을 바라보자, 그들은 곧장 열두 개의 금빛으로 변해 인왕인 안으로 사라졌다.
엽현과 아목 역시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그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무변지하성이었다.
곧바로 전당포를 찾은 엽현은 그곳에서 소도를 마주했다.
엽현은 천천히 계산대 앞에 있는 소도를 향해 다가갔다.
“도와 줄 사람이 필요하오. 찾아 봐줄 수 있소?”
엽현의 말에 소도가 손을 들어 한 쪽을 가리켰다.
차를 홀짝이고 있는 여인.
바로 외발 여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