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259
1259화 그렇게나 강하다고?
사실 엽지명, 그녀는 막념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엽현의 몸에 달라붙은 액난지인은 물론 그 이상의 것들을 볼 수 있었으니까.
예를 들면 엽현의 운명 같은…….
사실 엽지명이 볼 때 엽현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어야 했다.
이런 운명을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엽현은 버젓이 잘 살아 있다.
그것도 매우 강한 모습으로.
엽지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잡념을 떨쳐냈다. 엽현의 운명을 알면서 깊게 개입하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웬만하면 지켜보기만 하면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거리를 유지한 채 말이다.
바로 이때, 엽현이 두 눈을 번쩍 떴다. 뒤이어 그가 천천히 주먹을 감아쥐자, 하늘 전체가 크게 흔들리며 색을 잃어갔다.
이쯤 되자 엽지명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무리하지 마라! 지금 네 능력으로는 그 힘을 완전히 장악할 수 없어!”
“여, 엽 소저… 이미 늦은 것 같소… 이미 제어할 수가, 으윽!”
순간 엽지명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멍청한 놈! 죽기 싫으면 나를 탑 안으로 들여보내! 어서!”
빨리 날 들여보내!
엽지명의 말에 엽현은 영문을 몰랐지만, 일단 그녀를 탑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만큼 엽현은 고통스러웠고 상황이 급박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있다간 곧 죽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엽지명이 탑 안으로 들어온 후, 엽현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순간 그의 양팔이 황금색 불광으로 뒤덮였다. 이때, 불광 밑으로 두 줄기 붉은 기운이 미세하게 맺혔다.
다름 아닌 구사의 기운이었다.
구사(求死)!
구사는 정확히 말하면 도경을 만든 자의 신념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때 엽현은 도경 창시자의 패도 넘치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일전구사(一戰求死)!
이 순간, 고개를 든 엽현의 두 눈동자에 붉은 화염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양팔에 맺혔던 불광이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전신에 균열이 일었다.
너무나 구사의 기운 앞에 불법지력과 강력한 육신도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엽현은 이 상황이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가볍게 맛만 보려 했던 것인데 일이 왜 이렇게 흘러간단 말인가!
여기서 멈춰야 해!
결심이 선 엽현은 양손을 교차해 정면으로 힘차게 뻗었다.
쾅-!
찰나의 순간, 한 줄기 시뻘건 화염이 앞으로 튀어 나가면서 정면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잠시 후, 화염이 지나간 곳은 마치 검은 붓으로 색을 칠한 것처럼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것까지 무(無)로 돌아간 것이다.
더욱이 원래대로라면 대도의 법칙이 적용되어 정상으로 돌아와야 할 공간마저 영원히 복구되지 않았다.
칠흑과 같은 어둠 속에 남겨진 엽현은 멍한 표정으로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금 전까지 앞에 보였던 숲도, 바다도 보이지 않았다.
엽현은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도대체 무슨 힘이기에 이 정도로 강력하단 말인가!
이때 곁으로 다가온 엽지명이 휑한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의 힘은 아직 장난 수준에 불과하다. 이 힘은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
엽현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돌아보자, 엽지명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정상대로라면 도계 정도는 가뿐히 날릴 수 있을 것이다.”
그 강력한 도계를 쉽게 날려버릴 수 있다고?
이건 엽현으로서는 상상도 못 하는 힘이었다.
그가 아는 한 우주 하나를 날려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는 천녀가 유일했다.
“뭐라고? 그거 과장이 너무 심한 것 아니오?”
엽지명이 고개를 돌려 엽현을 쳐다보았다.
“과장? 아직 모르겠지만 이 정도는 아직 강한 축에도 끼지 못한다. 다만 지금 상태에서는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째서?”
“어째서라고? 우선 네 몸을 한 번 살펴보거라.”
엽현은 황급히 고개를 숙여 몸을 살폈다.
순간 엽현은 너무 놀라 잠시 말을 잊었다.
그의 육신은 마치 논바닥에 가뭄이 든 것처럼 사방팔방으로 균열이 나 있었던 것이다.
불법지력이 아니었더라면 육신이 소멸될 수도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다.
세상에 불강지체로도 견딜 수 없는 힘이 존재했단 말인가!
“내가 한 말을 잊지 말거라. 도경무학은 네가 사는 세상에 한해 가장 강력한 무학이란 걸.”
가장 강력한 무학. 엽현은 순간 도경무학이라는게 두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
“참, 네가 앞서 펼쳤던 두 개의 검초 역시 대단한 것이다. 네 경지가 높아질수록 그것들의 위력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날 것이다.”
엽지명이 말한 두 개의 검초란 일검정생사와 청삼남의 발검술이었다.
앞서 검도 경지를 돌파한 엽현은 이 두 가지 초식에 대해서도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엽지명의 말은 이어졌다.
“한 가지 더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도경무학은 그 살상력이 가공할 만큼 강하기에 매번 시전 할 때마다 인과를 쌓게 된다. 지금처럼 이 구역의 본원을 지워 버린 것은 이쪽 우주의 입장에서는 재앙이나 다름없는 일이니까. 만약 도경무학을 밖에서 사용했더라면 적어도 수천만의 생명이 죽어 나갔을 것이다.”
“…….”
“가능하다면 검을 휘두르기 전에 이점을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거라.”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소.”
“그리고…”
엽지명은 엽현에게 도경을 건넸다.
“다 봤으니 돌려주겠다.”
엽현은 순순히 도경을 돌려받았다.
“무슨 내용이 적혀 있었소?”
“이 우주의 대도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노인의 말대로 악인의 손에 들어가면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겠더군.”
“그래서, 도경을 읽고서 뭔가 깨달은 것이 있었소?”
엽지명이 고개를 저었다.
“흥미로운 부분이 있긴 했지만, 큰 도움을 받을 정도까진 아니었다.”
“어째서 말이오?”
“…….”
엽지명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엽현은 듣지 않아도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도경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말은 그만큼 그녀가 강하다는 의미였다.
마치 막념에게 도경이 별 소용없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역시 만만히 볼 여자가 아니었어!
엽현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자신이 만나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이렇게나 강한 걸까?
“자, 그럼 나는 네 번째 도경을 찾으러 가야겠다.”
엽지명의 목소리에 엽현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아까 그 노인이 말한 ≪명운≫ 말이오?”
엽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책에 내가 찾는 것이 있을지 모른다.”
“혹시 위치를 알고 있소?”
엽지명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반드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어째서 말이오?”
“뭘 그리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냐?”
“…….”
“어쨌든 점괘에 그리 나왔으니 믿어 볼 수밖에.”
점괘라고?
엽현은 호기심이 동했다.
“점도 볼 줄 아시오?”
“조금은.”
엽현은 엽현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럼 내 점도 한 번 봐 주시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소?”
엽현의 말에 엽지명이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네 운명을 점칠 자격이 되지 않는다.”
“…….”
엽지명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나저나 조금 전의 폭발을 알아챈 자가 있을지도 모르니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자꾸나. 사람들이 몰려오면 귀찮아질 뿐이다.”
엽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엽지명을 데리고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렇게 두 사람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폐허가 된 장소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잠시 주변을 살펴본 그림자는 엽현과 엽지명이 떠나간 방향을 계속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빛에는 아쉬움, 두려움 그리고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깃들어져 있었다.
이때, 그림자의 뒤편에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왜 출수하지 않았던 거지?”
“저 아이는 그리 간단한 상대가 아니다.”
“흥! 제까짓 게 강해 봤자지! 지금이라도 쫓아가서 죽…”
바로 이때, 그림자가 돌연 뒤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러자 그의 손아귀 안에 흉악하게 생긴 악수(惡獸) 한 마리가 들어왔다.
목을 잡혀 바동거리는 악수는 체구가 작은 강아지의 형태였다.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달려 있고, 전신으로 지극히 사악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내 명령이 있기 전에는 절대 건드려선 안 된다. 알겠느냐?”
그림자의 말에 악수는 전혀 두려움 없는 표정으로 상대를 노려보았다. 이때, 악수의 몸이 희미하게 변하더니, 순식간에 수백 장 밖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빈허(賓虛)! 여기서 질질 끌 시간이 없다는 건 너도 알고 있을 텐데?”
“…그럼 혼자 해보던가.”
빈허라 불린 남자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는 듯 엽현과 엽지명이 사라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에 악수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서렸다.
“꿈도 야무지시군. 누구 좋으라고!”
“천염(天厭), 규칙을 어기고 이 세상으로 넘어온 대가로 우리는 제 실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다. 행동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특히 지금까지 숨어 있던 저 여자가 갑자기 기운을 드러내고 다니는 것만 봐도 뭔가 이상하지 않나?”
“그러니까 네 말은 이게 다 그녀 곁에 있는 남자 때문이라는 건가?”
천염의 말에 빈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 액난지인을 달고 다니는 자가 평범할 리가 없지 않느냐.”
액난지인!
이 말을 들은 순간 천염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확실해? 농담하는 거 아니지?”
“내가 지금 상황에서 농담이나 할 사람으로 보이나?”
“흠… 그런데 왜 아직도 살아 있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평범하지 않다는 거다.”
빈허는 다시 천염을 향해 돌아섰다.
“이쪽 세상에도 분명 강자는 있기 마련이다. 방심할 처지가 아니란 말이다.”
이에 천염이 고개를 저으며 반박했다.
“너는 다 좋은데 너무 신중해서 탈이야. 그 남자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우리가 그녀를 납치하는 것까지 막을 순 없잖아?”
“만약 그녀가 이미 남자에게 물건을 넘겼다면?”
빈허의 말에 천염의 검은 두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미치지 않은 이상 그럴 리가 없잖아?”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못할 일은 없는 법이지.”
“흠… 그럼 계속 이렇게 기다리고만 있어야 한다는 거야?”
“영원히 기다리라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은 상황을 살펴볼 시점이라는 말이지.”
“그럼 이건 어때? 듣자 하니 이쪽 세계에 녀석을 노리는 자들이 많은 것 같던데. 그들과 손을 잡는 거는 어떨까?”
빈허가 고개를 저었다.
“이쪽 세상의 무인들은 머리에 뇌 대신 소면 사리가 들어 있으니 절대로 엮이려 하지 말 것! 이것이 바로 떠나오기 전에 주인이 하신 말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