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30
128화. 사랑하는 세뇌의 어머니
종교.
오늘날의 세계는 이례적인 종교 열풍이 불고 있다.
던전 쇼크라는 초유의 재난 속에서, 많은 이들이 마음을 기댈 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아이고, 천지신명님. 비나이다. 비나이다…….”
“주님, 제발 제 가족을 굽어살펴주세요.”
“우리가 살아 있는 건 다 부처님의 은덕이야. 너희도 어서 부처님께 헌향하거라.”
인류는 이러한 신앙심을 이용해 괴물과의 싸움에서 이겨나갔다.
희망.
가끔은 단지 믿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었으니.
어찌 보면 종교는 지난 던전 쇼크에서 인류의 생존율을 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한데, 요즘은 거꾸로…….
이 신앙이라는 것 때문에 죽어가는 이들이 늘고 있단 말이지.
“에잉, 쯧쯧. 네 아들이 왜 괴물한테 물려갔는지 아느냐? 그게 다~ 네 사주팔자에 액이 껴있어서 그랬던 게야.”
“액이요?”
“그려! 빨리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남은 딸년까지 홀랑 잡아 먹힐겨!”
언젠가 한 대마법사는 게이트를 만든 이들을 일컬어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었다.
주릴 기에 마음 심.
기심체.
그들은 사람의 마음에 굶주린 족속들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사실, 이 세상에서 타인의 마음에 굶주려 있는 것은 비단 기심체들뿐만이 아니었고.
오늘날의 한국은 사기꾼이 들끓는 혼란의 시기.
그리고 이 사기꾼 중에서도 가장 게걸스레 몸집을 불린 것이.
바로 어느 사이비 종교였다.
“-속세에서 번 더러운 돈은 모두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 재산을 모두 나차녀님께 헌납해서 정화를 지내야, 우리가 앞으로 화를 입지 않습니다!”
던전 쇼크로 인해 소중한 것을 잃은 이가 많은 요즘. 나찰사원은 일종의 따스한 구원자였지.
본인들도 같은 일을 겪었다며 나의 고통을 헤아려주고.
가족을 잃은 누군가가 외롭지 않도록 꾸준히 다가와 주고.
어디 하나 기댈 곳 없는 냉랭한 사회에 이보다 정이 많은 모임이 또 어디 있겠나.
“형제님, 이렇게 매일 얼굴을 보니 좋네요. 내일도 꼭 나오셔서 저희와 같이 기도합시다.”
“예!”
하지만 사실, 나찰사원의 부드러운 선의 속에는 기심체나 다름없는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다.
절박함. 슬픔. 불안.
그들은 재난으로 발생한 타인의 감정을 먹이로 삼는 기생충이었으니.
“흑, 흐윽. 정말 재산만 헌납하면……. 더러운 욕심을 버리면 다시는 고통을 겪지 않는 겁니까? 정말로 저희 부모님도 건강히 돌아올 수 있는 건가요?”
이들이 기심체와 무엇이 다르랴.
그리고, 이런 잘못된 신앙이 과연 앞으로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
화요일.
허름한 복도에서 남자 두 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 달도 기도금은 다 채우셨습니까?”
“물론입니다.”
“잘하고 계십니다. 사도님께서도 요즘 이 기도방 실적을 아주 눈여겨보고 계셔요.”
“정말입니까?”
나찰사원에는 여러 단계의 직위가 존재한다.
승급할 수 없는 교주와 사도 자리를 제외하면 ‘대 선생’이라는 위치가 가장 높았고.
이곳에 있는 젊은 남성은 그 ‘대 선생’의 직위를 목전에 둔 상황이었지.
“그럼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주십시오. 허 관사님.”
허 관사란, 나찰사원 안에서 그 젊은 남자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예! 살펴 가세요!”
또한 허 관사는 대 선생으로 승격하기 위해 최근 고군분투 중이었다.
상부에 바치는 상납금을 조금만 더 채우면, 드디어 자신도 교단의 간부가 될 수 있으니까.
“거의 다 올라왔어.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다고.”
최근에는 교주님이 구속되는 등 교단 내외로 풍파가 잦았다만…….
허 관사는 이것이 사탄들의 음모이며, 고초를 겪는 교주님께서는 금세 부활해 돌아오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왜냐고?
그야 교단의 높으신 분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난 내 위치에서 내 일만 잘하면 돼.’
허 관사는 상납금을 쥐어짜 내기 위해 오늘도 적극적인 활동에 나섰다.
“아이고~ 자매님,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운이 좋게도, 이번에 새롭게 교육한 신도들은 제법 돈이 되었지.
특히, 지난 8월에는 던전 브레이크로 가장을 잃고 혼자 아들을 키우게 된 웬 아줌마가 들어왔는데.
이 신도는 어찌나 겁이 많고 귀가 얇은지.
그저 자식 이름 석 자만 말하면 제사비든 기부금이든 부르는 대로 값을 치렀다.
“부디 우리 아들 잘되게 해주십시오. 나차녀님…….”
그리고 다시 돌아온 수요일.
나뭇가지 사이에 둘린 형형색색의 싸구려 천.
가운데에 놓인 꽹과리.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청년.
허 관사는 아침부터 산에 올라와 이것저것 복잡한 준비를 하는데.
이곳은 저 새내기 신도의 조상이 묻혀 있는 선산이었으며, 오늘은 그녀의 집안을 위한 제를 지내주는 날이었다.
제사비 5000만 원.
부적비 300만 원.
그리고 안식일인 토요일마다 60만 원.
나찰사원에서는 그야말로 숨 쉴 때마다 돈이 나가지만 그래도 자식 목숨에 비하면 이 정도 지출쯤이야.
“비나이다, 비나이다.”
나이가 든 신도는 나찰사원이 준비해준 제사를 굳게 믿으며 연신 중얼거렸다.
우리 아들 잘되게 해주세요.
우리 아들 좀 지켜주세요…….
“야!!”
하지만 그때.
갑자기 저 너머에서 덩치 큰 남자가 급하게 달려왔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 그 청년은 단단히 화난 듯, 묘에 도착하자마자 큰소리로 외쳤다.
“너희 이게 무슨 짓이야!”
“아, 아들?”
“어머니! 제가 이 자식들 믿지 말라고 했잖아요. 내가 그렇게 제사만은 지내지 말라고 했는데!”
이래서 재물이 무서운 거다.
아무리 순하던 사람이라도 5,000만 원 정도를 뜯기고 나면 야차처럼 돌변하니까.
“야! 돈 당장 뱉어내! 이 쓰레기들아. 어떻게 나이 든 사람을 꾀어서 이딴 엉터리 제사를 지내게 할 수가……!”
신도의 아들은 묘지 근처에 있던 허 관사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허허, 내가 부정 타니까 절대 가족에게 제삿날을 알리지 말랐잖습니까.”
하지만 허 관사의 얼굴은 여전히 평온하다.
오늘날에는 이런 상황을 해결해주는 아주 기막힌 물건이 있기에.
“사기꾼 주제에 뭐라고 씨불이는……!”
휙.
허 관사는 품에서 꺼낸 [유혹의 눈동자]를 상대에게 들이밀었다.
그러자 신도의 아들이 눈을 끔뻑끔뻑하더니 이윽고 무너지듯 무릎을 꿇었다.
일반인은 대처할 수 없는 미지의 힘.
과연, 배워온 교리대로 게이트는 축복임이 틀림없다.
던전 쇼크가 일어난 이래로 자신 같은 사람들은 이토록 살기 편해졌지 않은가?
“아들!”
“쯧, 귀찮게.”
허 관사는 이쪽으로 달려오던 여자 신도도 똑같이 세뇌시킨 뒤 손을 털고 일어났다.
아이템에 당하면 복잡한 사고가 불가능해져 은행 업무 등을 시킬 때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거늘.
‘뭐, 그래도 이번에 받은 제사비 덕에 상납금은 채웠으니 일단 됐나?‘
허 관사는 세뇌된 모자를 흘겼다.
이 순간에도 그의 눈빛에는 어떠한 죄책감도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그저 돈, 돈, 돈.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을 등쳐먹을 수 있을지에 대한 궁리뿐.
“얘들아. 기도 끝났으니 뒷정리들 해라.”
“예, 관사님!”
“네!”
그렇게 허 관사는 단물을 빨아 먹은 가족을 버리고 유유히 산을 내려왔다.
-찍찍.
그런데 참 희한하지.
아무리 날씨가 따뜻해졌다고 해도 아직 땅이 얼어있는데, 원래 산에 쥐가 이렇게 흔했던가.
***
그로부터 얼마 뒤.
‘드디어!’
지방의 어느 폐공장 앞.
허 관사는 기쁜 마음으로 이곳에 당도했다.
오늘이 바로 대 선생으로 승격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단의 간부가 되면 영광스럽게도 최고 수뇌부인 수예휘 사도를 대면할 수 있었다.
선생의 자리는 사도가 손수 하나하나 내려주는 것이니까.
‘이제 포교 활동에 아등바등 목매지 않아도 돼! 편하게 교리 공부만 할 수 있어. 가만히 있어도 돈은 알아서 들어온다고.’
철커덩.
허 관사는 자신의 발전을 기뻐하며 눈앞의 철문을 열었다.
그러자 안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느리게 돌아봤다.
새하얀 머리카락과 날씨에 맞지 않는 반투명한 우의를 입은…….
“빨리 왔군요.”
그래. 그 자리에 수예휘가 서 있다.
허 선생은 오늘에서야 사도라는 존재를 만난 것이다.
‘오!’
그나저나 바깥 사회에서는 경찰을 앞세워서 무고한 사도님을 잡아가려 한다더니만.
안으로 들어오니 왜 수예휘가 그동안 잡히지 않은 것인지 단박에 이해됐다.
“거기에 있는 게 전부 [무한동력 코어]입니까?”
잘하면 하나에 십 수억도 호가하는 아이템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니.
아마 수예휘는 저것으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한 것일 터.
마력을 차단하는 결계와 코어의 활용.
올해 들어 발견된 서쳐들의 추적을 피하는 새로운 방법은 이미 범죄자들 사이에 공공연하게 퍼져 있는 상태였다.
“역시 사도님이십니다. 이런 흐름을 예지하고 미리 대비를 해두신 겁니까?”
한데 어째 반대편에서 대답이 돌아오질 않는다.
수예휘라고 불린 이는 미소 띤 얼굴로 이쪽을 조용히 훑을 뿐이니.
“허 관사님. 제가 여쭐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어진 건 수예휘의 몇 마디 질문이었다.
“혹, 관사님께서는 선생직에 올라가면 제 욕심을 다 내려놓을 수 있습니까?”
“예?”
“기도금이 없어도 신앙을 위해 계속 봉사하실 수 있느냐고요.”
이에 허 관사는 답한다. 자신은 교단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으니 당연히 그러겠다고.
“정말이요? 그럼 정말 앞으로 허 관사님께는 기도금을 한 푼도 드리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하지만 이번에는 왠지 입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지.
솔직히 말하면 대 선생은 다단계 회사로 치면 다이아몬드 등급. 즉 가장 많은 수납금을 거둬들이는 자리였으니까.
“어, 음, 진짜로 한 푼도라면……?”
그는 찰나에 당혹감을 내비쳤다.
수예휘는 이를 놓치지 않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찌 된 게 돈 이야기만 나오면 다들 반응이 똑같군.”
이것이 허 관사가 들은 수예휘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그 후에는 갑자기 눈앞이 아득해지더니, 의식이 점멸하듯 끊겼고.
“이래서 교육이란 게 참 어려워. 교단을 유지하려면 돈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하는데, 막상 그리하면 이런 탐욕적인 선생만 나오니 원.”
수예휘는 실망한 목소리로 중얼대며 [세뇌] 스킬을 발동했다.
남을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쯤은 그에게 간단한 일이었다.
심지어, 이쪽은 날고 기는 A급마저도 순식간에 지배할 수 있는 존재였기에.
실로 격이 다른 재능. 수예휘는 이렇게 각성 후로 자신이 만난 모든 이들을 원하는 대로 조종해왔다.
“흐음.”
하지만 요즘은 그런 수예휘조차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특정 정치인의 암살 실패.
김 의원과의 유착 발각.
게다가 이 여파로 사원의 교주마저 체포돼버릴 줄이야.
“휴, 하여간 암살 대상에 그렇게 강한 경호원이 붙어있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유인향으로……. 게다가 경찰 쪽은 체포자들의 자결을 대체 어떻게 막은 거야?”
무당도 저 죽을 날짜는 모른다더니.
수예휘는 예상치 못한 요소들로 큰일을 그르치고야 말았다.
게다가 교주 역으로 세워뒀던 탁광조가 잡혀간 이상 이제 나찰사원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일단은 이름을 바꿔서 억지로 수명을 늘리긴 했다만. 머리 역할을 해주던 허수아비가 베였으니 이 텃밭이 과연 얼마나 가주겠나.
“세상일이 쉽지만은 않군. 탁광조의 대체품 같은 건 당장 구하기가 어려운데.”
이를 알기에, 수예휘는 요즘 대 선생들을 완전 세뇌하면서까지 상납금을 무리하게 짜내고 있었다.
돈은 혐오스러운 것이지만 별수 있나.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큰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선 그에 맞는 막대한 금전이 필요한 법.
이 정도의 실패는 수예휘를 좌절시킬 수 없었다. 누군가의 짐작대로 사실 사이비 종교를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그림자에 숨은 어느 세뇌술사였으니.
집단의 이름이야 바꾸면 된다. 자신을 대신해줄 총알받이야 또 세뇌해서 구해오면 그만이다.
“벌써 15개인가.”
수예휘는 공장 바닥에 가지런히 늘어둔 무한동력 코어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사사삭.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공장 구석에서 불현듯 작은 기척이…….
‘음?’
수예휘는 의문의 소음을 쫓아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웬 생쥐 한 마리.
그는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생쥐를 향해 단검을 던졌는데, 과연 상급의 각성자답게 신체 능력이 남달랐다.
콱!
던진 단검은 짐승의 몸통에 정확히 꽂혔으니 말이다.
“생쥐.”
수예휘는 자신이 찔러 죽인 생물에게 다가가 그것을 들어 올렸다.
몸통에 칼이 꽂혀 생을 마감한 소동물.
하지만 이건…….
방금 죽었다기에는, 너무 차갑지 않나?
“…!”
우비를 쓴 각성자는 그제야 무언가를 깨닫는다.
“허 관사, 이 버러지 같은 것! 대체 여기까지 뭘 달고 온……!”
하지만 남을 탓할 시간은 없다.
곧이어, 공장 안으로 이런 것이 들어왔으니까.
‘상자?’
틱, 데구르르르.
반쯤 열린 공장 문에서 굴러들어온 물건은 다름 아닌 손바닥만 한 크기의 붉은 상자.
이윽고 상자의 윗면은 무언가를 토해낼 듯 들썩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