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31
129화. 사랑하는 세뇌의 어머니 (2)
파팡!
몇 초 지나지 않아 뚜껑이 열리는 상자.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익살스러운 얼굴의 피에로였으며, 이것이 나타나자 돌연 허 관사가 털썩 쓰러졌다.
세뇌 스킬로도 일으키지 못할 만큼 완전한 기절이라니.
이를 본 수예휘는 상자가 굴러들어온 방향을 향해 크게 외쳤다.
“웬 놈이냐!”
그러자 밖에서 들려오는 첫 마디.
“……나름 강화까지 한 [깜짝상자!]인데 이걸 버티네?”
“…….”
“게다가 주변에 경비는 또 왜 이리 적어. 설마 사람이 많으면 추적이 쉬울까 봐?”
이후에는 철문이 활짝 열리며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살무사처럼 날 선 인상의 금발 남자라. 꽤 낯익은 얼굴인데.
“김기려.”
그를 알아보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자는 나찰사원의 계획을 사사건건 방해했던 장본인.
즉, 표나길을 겁에 질리게 하였던 그 등급 위조자가 아닌가……!
‘대단하군.’
실제로 만난 김기려는 정말로 놀라운 수준의 위장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오죽하면 감각이 민감한 자신마저도 상대의 접근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기에.
‘표나길이 F급으로 착각했을 만해. 아니, 이건 거의 길가의 풀벌레보다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야!’
본인의 마력을 이토록 철저히 숨길 수 있다면 분명 보통내기가 아닐 터.
수예휘는 경계하는 어조로 물었다.
“예까지 온 저의가 무엇이냐?”
그러자 금발의 남자는 바닥에 있던 빨간 상자를 주우며 말했다.
“저의…. 그건 내가 궁금한 건데.”
영 답변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지만.
“그쪽 이름이 예휘라고 했나? 수예휘, 하나만 묻자. 넌 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사원을 운영하는 거냐?”
“뭐?”
“차라리 돈 때문이면 이해를 하겠어. 그런데 너는 신도들을 써서 한다는 짓이 마지막에는 결국 테러잖아.”
“….”
“대체 왜 그렇게 동포들을 못 죽여서 안달이야.”
김기려는 회수한 상자를 만지작거리며 문장을 늘어놓았는데, 이를 들은 나찰사원의 지배자는 위세 좋게 말했다.
“……해야 할 일을 했다고 해두지.”
수예휘는 진심으로 자신을 메시아적 존재라고 생각했으니까.
“내게는 위에 설 권리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하늘님도 이런 강한 힘을 내려주진 않으셨을 테니.”
“….”
“타인의 생각을 바꾸는 능력……. 이건 타락한 중생들을 바른 사상으로 이끌어 달라는 이 세상의 의도가 아닐까?”
“….”
“그러니 나라도 의무를 다해야지. 멍청한 것들이 기름진 땅을 다 망치기 전에.”
이게 다 신의 뜻이다!
기려는 그렇게 말하는 수예휘를 조용히 보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음, 알았어. 이제 그만 설명해도 돼. 미친 사람한테 괜히 말 걸었네.”
하지만 수예휘는 상대의 태도를 보며 외려 안쓰럽다는 눈총을 보냈다.
‘하긴 계시도 못 받는 범인이 뭘 이해하겠나. 저런 것들은 야훼의 방주를 보고도 손가락질할 터…….’
서로 보는 관점이 다르다 보니 대화조차 통하지 않는 상황.
“김기려야. 그래도 예까지 온 성의를 봐서 내 친히 마지막 설교는 해주마.”
이때. 수예휘는 어떻게든 기려를 이해시키고 싶다는 듯이 부드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남들을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게 하는 [세뇌] 스킬.
수예휘는 이 능력을 이용해 무질서한 인류의 행동을 바르게 고칠 예정이었다는데…….
“하하.”
금발의 S급은 이걸 듣자마자 크게 웃었다.
굳은 표정으로 입만 열어 내는 다소 특이한 형태의 웃음이었다.
“남의 위에 설 권리라……. 하긴, 나도 한때는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슥.
뒷짐을 진 기려는 옛날 일을 떠올리듯 잔잔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 수예휘 네 뜻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가네.”
“허?”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우수하고, 다른 저능아들은 지배받아야 마땅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시기가 내게도 없는 건 아니었어.”
“….”
“힘이 있으면 주변을 깔보게 되는 법이지.”
하지만 어쩐지, 문장이 이어질수록 그는 묘한 기색이 되어서.
“…그런데 그런 내가 결국 마지막에 어떻게 됐는지 알아?”
이어서 뱀 눈의 남자는 무표정하게 허공을 바라볼 뿐. 이 뒤의 이야기는 아무리 지나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그가 이쪽을 비꼬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김기려는 교단의 사상을 부정하기 위해 본인의 과거를 예로 든 듯하니.
“생긴 대로 세치 혀를 잘 놀리는구나.”
“예휘야. 진지하게 들어. 내가 인생 선배로서 말하는데 너 그렇게 살다간 큰일 난다. 진짜.”
수예휘는 건방진 소리를 하는 헌터에게 자신의 힘을 경험시켜주기로 했다.
아니, 사실은 상대가 창고에 들어설 때부터 이미 능력은 발동된 상태다.
이 스킬은 능력에 오래 노출될수록.
그리고 서로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위력이 기하급수로 증대되는 기술이니.
‘슬슬 충분하겠군.’
수예휘는 눈앞의 헌터에게 ‘나찰사원의 사도 앞에선 자세를 낮춰야 한다’는 사상을 강하게 주입했다.
세뇌를 통한 강제적 명령이었다.
“…….”
하지만 웬걸?
이상하게 스킬이 사용돼도 반응이 잠잠했다.
금발의 남자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여전히 꼿꼿이 서 있었으니까.
두 사람은 신장 차가 제법 많이 났기에, 오죽하면 바르게 선 김기려가 이쪽을 멸시의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듯이 느껴지는 상황.
‘뭐지?’
수예휘는 이 풍경을 믿지 못하고 더 큰 마력을 쏟아부었다.
[세뇌]가 먹히지 않을 거란 계산은 애초부터 없었다.왜냐면 자신은 신이 선택한 재목이니까.
더 정확히 말하면, 이쪽은 저 남자와 같은…….
“똑같은 S급인데 왜 스킬이 안 통하는지 궁금해?”
“!!”
그때.
여태 입을 닫고 있던 기려가 침묵을 깨고 나섰다.
“네놈…….”
누군가의 발언대로, 사실 나찰사원의 주인은 보유 마력량이 A급의 범주를 아득히 넘은 인물.
즉, 세간에 알려진 바와 달리 진짜 숨겨진 S급은 이쪽. 수예휘야말로 한국의 진실한 4번째 S급이다!
하지만 인제 와서 누가 진짜인지를 가리는 의미가 있을까?
S급이고 나발이고, 여기에 있는 금발의 헌터는 정신 계열의 상태 이상을 모조리 무시할 수 있거늘.
“그나저나 뒤에 코어를 제법 많이 쌓아두셨구만. 혹시 그걸로 나중에 국가 점령이라도 할 셈이었어? 전 국민의 꼭두각시화. 뭐, 그런 거?”
뒤집을 수 없는 상성 차.
기려는 수예휘가 마력 에너지원을 모으는 이유를 추측하며 느긋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게 그리 쉽진 않을걸. 보다시피 나처럼 튀는 놈들이 하나씩은 꼭 나오거든.”
“이것이 김기려 너의 각성 능력이냐?”
“마음대로 생각해.”
이 순간에도 수예휘는 꾸준히 세뇌를 시도했지만, 남자는 그런 술사의 노력을 비웃듯 고개 하나 굽히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수예휘는 스스로의 역량을 잘 가늠하는 각성자였다.
그리고 자신의 넘쳐나는 마력이면, 설령 같은 S급일지라도 무릎 꿇리리란 확신이 있었지.
적어도 지금까지 연구해온 바로는 그랬다.
그런데, 설마 지금 와서 이런 변수가 발생하다니.
‘대체 이놈은 뭐야.’
수예휘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S급을 노려봤다.
‘뭐길래 매사에 이리도 날 방해하는 거야?’
하지만 돌아온 것은 상대의 차가운 시선뿐.
세뇌가 실패하자 수예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주력기가 안 통하면 다른 수단을 써보면 되지 않느냐고?
사실 그런 시도는 상급 각성자와의 싸움에서 무의미한 것이었다.
이는 지구 각성자들의 고질적인 문제인데.
스킬석으로 획득한 타계열의 마법은 대개 각성자들의 자연 능력보다 효율이 현격히 떨어졌기에.
‘내가 가진 다른 스킬이라고는 신분 위장용 [워터볼]뿐. 그런 약한 스킬로 같은 S급을 이길 수 있을 리가……!’
기껏해야 C급 정도의 화력을 내는 보조 기술로 주능력을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
수예휘의 입장에선 세뇌의 실패가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자, 잠깐.’
한데…….
가만 생각하니 어째 이상하지.
저 헌터는 분명 이쪽의 세뇌를 막았는데, 그럼에도 먼저 달려들진 않고 있으니까.
“혹시…….”
수예휘는 잠깐 고민하고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내게 뭔가 바라는 것이 있나?”
여기까지 와서 저렇게 가만히 있는 걸 보면, 혹 김기려도 대화를 원하는 것일까?
“돈이라든가, 아니면 이 코어들……?”
수예휘는 S급을 재물로 회유해서라도 전투를 회피하려 했다.
하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김기려는 이래 봬도 저 바닥에 널브러진 생쥐와 전투력이 엇비슷한 F급 각성자.
그런 주제에 직접 싸우러 왔을 리는 없는 법.
“코어? 글쎄.”
뒤적뒤적.
기려는 제 호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돈도 일단은 됐어. 사실 원하는 건 벌써 얻었거든.”
“얻었다니?”
“수예휘, 여기에 추적 스킬을 차단하는 결계를 아주 꼼꼼히도 걸어놨던데, 본인 몸을 숨기려면 이 방법도 주의해야 했던 거 아닌가?”
이어서 수예휘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김기려가 정면으로 들어 보인 휴대폰의 액정.
화면에 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 근방의 지도 사진이었다.
요컨대.
“GPS.”
기려는 자신의 휴대폰에 깔린 위치 찾기 앱을 보여주고 있다.
“지구에는 이미 좋은 추적법이 있잖아.”
그리고 이 순간.
드드드득. 갑자기 공장의 높은 창문 쪽에서 생소한 마력의 흐름이 발생했다.
엄청난 질량을 지닌 연기가 속절없이 밀려 들어오는 듯한 이 감각은 설마.
‘상급 각성자의 마력!’
-콰장창창!
이상 현상을 눈치챔과 동시에 온 창문이 산산조각 부서지고, 박살 난 창으로부터 누군가가 거칠게 날아들었다.
툭, 투둑.
부스러지는 유리 너머.
하얀 거대 새의 등에서 뛰어내리는 선명한 인상의 여인.
자홍색으로 물들인 곱슬 머리카락이 특징적인 그 각성자는 고운 뺨에 떨어지는 파편을 털어내며 부드럽게 인사했다.
“어머.”
한국마탑의 길드장.
“제가 늦은 건 아니죠?”
서에스더가 떡하니 등장할 줄이야!
‘이런! 어째 선뜻 공격해오지 않더라니, 놈도 시간을 끄는 게 목적이었구나!’
수예휘는 김기려가 대화에 적극적이었던 이유를 비로소 깨달았다.
저 남자는 여기에 싸우러 온 게 아니라, 처음부터 자신을 표지 삼아 에스더에게 GPS 정보를 보내고 있던 것이다.
‘S급이 2명. 아무리 나라도 저들을 한 번에 상대하는 건 무리다.’
스슥.
수예휘는 순간적인 판단으로 빠른 행동에 나섰다.
아이템 박스로 코어들을 회수한 뒤.
그 아이템 박스에서 다시금 필요한 도구를 꺼내 든 것이다.
‘가진 상급 장비들을 활용하면, 도피쯤은……!’
결계를 유지 중이던 코어를 보관 상자로 돌려보내고 이동용 아이템을 꺼내기까지 걸린 시간이 불과 4초.
휙.
수예휘는 손에 쥔 검은 천을 바닥에 펼쳤다.
[명계의 모포] [등급 : 유니크] [설명 : 데메테르에게 뻗쳤던 하데스의 손길과 같이, 그것의 어둠에 닿으면 먼 장소로 단숨에 이끌린다.] [추가 설명 : 모포를 가장 최근에 펼쳤던 위치로 고속 이동]그러자 사람 정도는 능히 삼킬 수 있을 것 같은 짙은 그림자가 땅에 떠올랐다.
“윽?!”
하지만 김기려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애당초, 기려는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적과 대면했던 것이기에.
수예휘가 장비를 사용하려는 그때.
기려는 손아귀에 감추고 있던 물질들을 그림자를 향해 힘껏 던졌다.
마치 식물의 씨앗처럼 보이는 울퉁불퉁한 붉은 구체.
[붕괴 입자-α]이는 나찰사원이 게이트를 닫는 데 악용했던 아이템.
[설명 : 부착 시, 해당 도구 1종을 파괴.]더불어 본래의 역할은 상대의 장비를 파괴하는 마도구다.
-쩌적!
붕괴 입자 몇 개가 달라붙으니 이윽고 갈가리 찢어져 버리는 땅 그림자.
“이 사탄 마귀 새끼가!”
한 대에 십 수억에 달하는 명계의 모포가 삽시간에 파괴됐으니 어찌 욕이 안 나오랴.
수예휘는 망가진 장비를 보며 악다구니를 쳤다.
하지만 억대의 재물을 손괴한 가해자는 평화롭게 말을 이어갈 뿐이라.
“내가 네깟 것들의 연구 하나 파헤치지 못했을 것 같아? 나찰사원이 게이트를 어떻게 닫고 다녔는지 정도는 이미 파악했어.”
“……!”
“그래서 네가 도망칠 때 마력 통로를 이용할까 봐 유통 금지 처분 전에 좀 쟁여놨지.”
도르륵.
김기려는 자신의 손을 펼쳐 주머니에 숨겨놨던 물건들을 보여준다.
그의 손바닥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여섯이 넘는 숫자의 붉은 구슬.
이것이 과거와 현재의 가장 큰 차이였다.
나찰사원에 힘없이 납치당했던 때와 달리, 김기려는 이제 차원이 다른 재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이 붕괴 입자라는 거 가격이 장난이 아니더라? 알아보니 이게 나오는 게이트는 이미 옛적에 단종된 상태라길래.”
그는 제 손에 있는 마도구를 바라봤다.
동시에 남자의 목에는 점차 굵은 핏대가 서기 시작하여.
“그 탓에 인어고개를 공략한 성과가 통째로 적자가 됐는데…….”
뿌드득.
그는 날이 시퍼렇게 선 삼백안으로 세뇌술사를 내려다본다.
분명 마력 한 점 느껴지지 않는 각성자이건만.
“야, 수예휘. 혹시 지금 걸치고 있는 그 우비도 아이템이냐?”
나찰사원의 사도는 그 인물이 내뿜는 압박감에 어쩐지 어깨를 움찔 떨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