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32
130화. 사랑하는 세뇌의 어머니 (3)
그동안 해온 아부가 빛을 발할 때다.
미래의 자산인 흡마제를 넘긴 것.
진흙탕에서 밧줄로 구해준 것.
거기에 만날 때마다 아낌없이 친절을 베푼 것까지.
내가 무엇 때문에 이 많은 공을 들였다고 생각하는가?
‘흐하하하!’
수예휘를 처리하기로 마음먹은 날.
나는 계획을 세우기에 앞서 가장 먼저 마탑을 찾아갔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 간 이유는 단 하나.
“어머, 제가 늦은 건 아니죠?”
나는 손을 싹싹 빌며 에스더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었다.
수예휘를 잡기 위해 든든한 아군을 구해왔다는 거다.
‘투자해둔 보람이 있구나!’
사실 에스더가 내게 호의적이라는 건 진작에 눈치챘지.
성장한 이무기의 출현을 앞둔 당시.
에스더는 게이트 공략을 자제해달라는 내 부탁을 쉽게 들어줬었으니.
‘이 정도면 S급의 저주술사랑 친하게 지낸다는 초기의 목적은 달성했네.’
후후후.
마탑의 방문 이후로 있었던 과정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골렘 조종술.
이후로는 그 마법을 이용해 나찰사원의 뒤를 졸졸 쫓아다닌 게 다거든.
‘허 관사라는 녀석을 찾은 뒤에는 정보 수집도 일사천리였지. 하여간 지구에선 아무도 골렘 조종술을 몰라서 편하다니까.’
나는 추적에 몰두했던 지난 몇 주간을 회상하며 감상에 빠졌다.
나찰사원의 집회는 주로 밤에 있어서 하루를 꼴딱 새는 일도 잦았는데…….
이 몸을 몇 번이나 야근하게 하였으니 역시 수예휘는 살려둘 수가 없겠군.
뭐 아무튼.
-기려 씨, 그런데 수예휘라는 그 각성자 말이에요.
-네.
-우리랑 같은 S급이면……. 저도 어느 정도는 세뇌의 영향을 받지 않을까요?
-아, 그거.
-세뇌 내성류 장비는 변변찮은 게 없어서 걱정되네요…….
강창호도 아니고, 정하성도 아니고.
내가 다양한 S급 헌터 중에서 굳이 에스더를 조력자로 택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여기에 오기 전부터 에스더는 상대랑 어떻게 싸워야 할지 상당히 고민하던데.
솔직히 말해서 에스더가 세뇌에 당할 것 같으면 내가 얘를 창고까지 데려왔겠는가?
사실상 전투는 모두 그녀의 몫이거늘.
‘화이팅.’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에스터 헌터는 수예휘와 완벽한 상하 관계였다.
-걱정 마세요, 에스더 씨.
-당신이 압도적으로 이길 테니까.
저주 속성.
그녀는 자신이 타고난 각성 능력 덕에 강한 세뇌 내성을 지녔기에.
“거기 계신 사이비님~ 이게 2:1 싸움이라 아무래도 서로 붙으면 댁이 질 것 같은데, 이참에 얌전히 손들고 항복하는 건 어때요?”
“닥쳐! 이 속세에 찌든 년아!”
“어머, 이 범죄자는 목청도 커.”
세뇌.
저주.
이러한 정신 계열의 마법들은 특수한 규칙을 가진다.
같은 계열의 술사가 맞붙었을 때. 그들의 전투는 속된 말로 철저한 ‘선빵필승’ 체제를 따르니까.
일단 여기에서 바람술사 2명이 서로 싸운다고 쳐보자.
그럼 2명이 치고받으며 점점 상처가 늘겠지?
바람에 베이든. 뒤로 자빠지든.
보통의 속성들은 동급 간에 싸움이 났을 때 둘 다 어느 정도는 손해를 입는 법이었다.
한데 눈앞에 있는 저 술사들만은 사정이 다르단 말이지.
그들은 정신이라는 영역에 침범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만큼 본인의 의식을 매우 견고히 보호하거든.
‘그래서 에스더도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내성이 있는 거야. 그런 방면에선 방어력이 뛰어나니까.’
그런데 이게 선빵필승이랑은 무슨 상관이냐고?
‘원래 단단할수록 깨질 때 충격이 큰 법이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저런 술사들의 싸움은 대개 누가 먼저 의식을 뚫느냐로 승패가 갈린다.
한 번 의식이 침범당하면 해당 술사는 반격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들려오는 말로는 남의 정신만 들락거리다 갑자기 자기 집이 털리니, 거기에 온 신경이 쏠려서 마법을 완성할 수가 없다는데…….
‘나는 따지자면 올라운더형이라 경험해본 적은 없어.’
덕분에 정신 공격의 스페셜리스트들은 필살기 연구에 제법 몰두하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졌지만 잘 싸웠다 따위의 전투는 불가능했고, 어떻게든 상대를 먼저 공격하는 쪽이 모든 승기를 가져오는 상황.
일단 이 체계 때문에 수예휘는 매우 위협적인 상대일 수밖에 없었다.
저 세뇌술사는 각성치가 자그마치 S급의 범주라서 같은 계통 안에선 거의 절대적인 위상을 발휘하니까.
‘세뇌 각성자가 100명이 달려들든 1000명이 달려들든. 수예휘에겐 개미 떼일 뿐이야.’
따라서 이 전투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하나뿐.
약간이라도 좋으니. 어떻게든 수예휘보다 힘이 센 정신계 마법사를 불러오면 된다.
그리고 다행히…….
이 한국에는, 그러한 조건에 들어맞는 헌터가 딱 한 명 있었으니.
“하여간 난 너 같은 것들이 제일 싫어.”
또각. 또각.
수예휘와 대치하고 있던 에스더는 앞으로 나서며 천천히 말했다.
“잔기술 좀 생겼다고 자기가 뭐라도 된 양 설치질 않나. 기다렸다는 듯이 범죄도 저지르고.”
간드러진 목소리. 미소 띤 얼굴.
전체적인 분위기는 가벼웠지만, 그녀가 꺼내는 문장에는 명백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나는 수예휘 네가 나찰사원의 신도 수만큼 갈가리 찢어져 죽어버렸으면 좋겠네.”
혐오.
“옳지. 콱 죽어버리라고.”
이윽고 휘몰아치는 마력.
에스더는 상대를 쏘아보며 짙은 저주를 쏟아냈다.
수예휘는 자신을 향한 공격에 대응하며 세뇌를 마주 발동했지만. 나는 이미 이어질 결과를 알고 있지.
“큭!”
수예휘와 에스더는 모두 S급.
그러나 타고난 힘의 크기를 세세히 따져보면 어느 한쪽이 근소한 우위를 보이고 있다.
“이럴 수가, 잠깐! 이게…….”
점차 얼굴이 일그러지는 수예휘.
그 술사는 입은 우의를 줴뜯으며 저주에 저항했다.
하지만 에스더의 마력은 자신을 뿌리치려는 시도에도 스멀스멀 타인의 뇌를 잠식하기 시작하여…….
“────!”
이내 공기에 찢어지는 비명이 울린다.
수예휘가 저주술사와의 정면승부에서 밀렸다.
단 한 끗. 그 미세한 힘의 차이가 그들의 상하를 명확히 결정지은 것이다.
“아아아악! 으으……. 어떻게 된, 내, 내, 내 머리. 내 머리가……!”
수예휘는 벌레가 옮겨붙은 사람처럼 귀를 미친 듯이 긁기 시작했다.
아마도 저주에 당하는 감각이 꽤 불쾌한 모양인데.
“어머! 진짜 기려 씨가 말한 대로네! 한 번 꺾었을 뿐인데 스킬이 다 끊겼잖아?”
에스더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적의 행동을 삿대질하며 신기하다는 듯 외쳤다.
하지만 내 과로의 복수는 지금부터 시작이지.
내가 이깟 정신 마법의 원리나 보여주자고 여기까지 찾아왔겠나.
“에스더 헌터.”
“네~ 그거 말이죠?”
에스더는 내 부름을 듣더니 곧바로 표정을 갈무리했다. 정확히는, 무언가에 집중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뭐, 뭐 하려는…….”
저주는 지정할 수 있는 효과가 다양한 마법이니만큼 그곳에서 파생된 기술도 많은 편이다.
염증을 일으킨다든지. 몸을 마비시킨다든지.
심지어 그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분류의 저주는 지구에서 새로운 명칭까지 따로 붙은 상태다.
“역시 처벌에는 이만한 게 없지. 거기, 수예휘 씨. 혹시 당신 ‘incitement of hatred’라는 스킬명 들어봤어?”
이곳은 워낙 저주술사의 수가 적다 보니 몇몇 스킬은 제대로 번역조차 안 된 모양이다만.
“그만.”
수예휘는 에스더의 발언을 듣자마자 창백한 안색이 되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 잠깐만 기다려봐요. 이러실 필요까진 없잖아요. 제가 정말 큰 죄를 지었는지 헌터님이 눈으로 확인하신 것도 아니고. 예?”
이어서 우비를 쓴 신도는 기도하는 자세로 말을 줄줄이 쏟아냈다.
“잠시만요. 기다려보세요. 제가 다 설명할게요. 사실 제게는 사정이……!”
하지만 아무리 설득해도 에스더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미안, 난 사연 있는 악당 캐릭터는 싫어해서.”
몇 초 뒤.
우득. 에스더는 수예휘의 눈꺼풀 위를 손아귀로 우악스레 붙잡고 자신의 마나를 아낌없이 부어 넣었다.
각성 능력의 발동이었다.
“윽, 으으……. 악!”
수예휘가 에스더의 손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구 발버둥쳤지만 의미 없지. 세뇌술사 주제에 쟤가 무슨 대단한 완력이 있겠어.
“아아아아아악!”
그리고 이때 발동된 마법이 무엇이냐 하면.
“힉……?”
스륵.
에스더는 상대의 얼굴을 짓누르고 있던 손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러나 눈을 뜬 수예휘는 이전보다 더한 절망의 기색을 보였다.
“아아, 아아아아…….”
이것은 다름 아닌 에스더가 가진 2번째 스킬의 정체. 표적에 임의의 공포증을 부여하는 것.
“기려 씨, 정말 이거면 될까요?”
그리고 에스더가 수여한 새로운 사상은 바로 인간공포증이라.
말로 표현하면 별거 아닌 듯 보이지만 스킬로 부여된 감정의 세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수예휘는 인간의 모습을 한 우리를 보자마자 바닥을 기며 구토하기 시작했으니.
“예. 저건 이제 각성 능력을 못 쓸 거예요.”
나는 사이비 종교를 창립한 술사의 말로를 지켜보며 말했다.
“[세뇌]는 남을 지배하는 능력인데, 자기가 두려워하는 사람의 머리 꼭대기에 오를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마법의 원천봉쇄.
게다가 저런 꼴이 됐으면 지금껏 유지 중이던 세뇌들마저 전부 해제됐을 터.
“히익, 히익, 힉.”
이제 나찰사원도 끝났군!
나는 계획의 성공을 기념하며 수예휘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러게 내가 남들 깔보고 다니지 말랬지?”
하지만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이후, 수예휘는 크게 충격받은 얼굴로 거품을 물고 혼절해버렸으니까.
“이걸 기절하네.”
“어떡하죠?”
“그냥 둡시다. 어차피 그 스킬은 에스더 씨가 마음만 먹으면 계속 유지된다며요. 이젠 대충 경찰에 인도하면 끝나요.”
나와 에스더는 창고에 남아 짧은 대화를 나눴다.
“아무튼 오늘은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뭘요~”
그런데 일을 정리하고 나가려는 무렵에 에스더가 묘한 질문을 하더라고.
“참, 기려 씨.”
“예.”
“그나저나 수예휘……. 이전에도 설명했지만 저대로 두면 오래는 못 살 거예요. 요즘은 어디로 눈을 돌려도 사람투성이잖아요. 심지어는 거울 속도 그렇고.”
“아, 예.”
“나는 지금 수예휘가 폐인이 돼서 죽어버릴 거라고 말하고 있는 건데 반응이 영 심심하네요?”
저주술사를 상대하는 건 어렵다.
특히 상대는 외계인이라 어떻게 비위를 맞춰야 할지 도통 모르겠으니 원.
“음.”
나는 잠시 침묵하다 곧 말했다.
“그럼 제가 여기에서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데요?”
이쪽은 나름대로 진지하게 자문을 구한 것이건만.
에스더는 놀란 눈치를 할 뿐 별다른 말을 하질 않았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걸 보니 일단 기분이 나쁜 건 아닌 것 같은데.
‘에라, 모르겠다.’
외계인의 속내를 알기 어려운 거야 뭐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니까. 지금은 그냥 넘어가자.
***
이것으로 사이비 테러범들의 역사가 막을 내렸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세뇌의 모체이던 수예휘가 무너지자, 15%나 되는 중진들이 줄줄이 자의식을 되찾아 사실상 단체가 공중분해 됐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린 신도들은 본인이 세뇌된 상태로 저질렀던 일을 기억해내고 고통스러워했지.
하지만 혼란은 크지 않을 것이다.
주취감형…. 과는 결이 좀 다르지만.
이곳의 법률은 심신상실 상태에서 저지른 죄를 벌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기에.
‘융통성이 없는 알파우리와는 다르군.’
결국 폭삭 망한 건 수예휘 그 한 녀석뿐이었다. 해피엔딩이지.
“훗, 그러게 누가 나 같은 대마법사를 건들랬나.”
그렇다면 도사리던 위험도 뿌리 뽑았으니, 이제는 편하게 한국에서의 삶이나 즐기면 되는 건가?
“흐흠.”
나는 고개를 쭉 빼 들어 창밖을 확인했다.
지금은 2월 중순.
나찰사원의 일을 처리하다 보니 바깥은 어느덧 봄이라는 계절이 찾아든 상태였다.
날씨가 좋아진 김에 나들이를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띠링♪
이때, 꺼져있던 휴대폰 화면 위로 불쑥 새 알림이 떠올랐다.
[보낸 이 : 서에스더]이 헌터는 무슨 일로 오전부터 문자를 보낸 거지.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수신된 내용을 확인했다.
[기려 씨! 지금 잠깐 만날 수 있어요? ε=┌(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