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79
177화. 블랙마켓
최진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갑자기 이상한 이야기를 하시네. 아무튼, 강창호에 대한 건 이해했으니까 이만 가세요, 김 헌터. 우리도 슬슬 퇴근 준비를 해야 해서요.”
이상한 반응이다. 그래서 기려는 이 주제를 반복적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 행동 탓에 애써 얻은 호감도만 깎아 먹게 되었다.
“됐으니까 가라고요! 하여간 사람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가뜩이나 밤이 늦어서 피곤해 죽겠구만!”
용 사냥꾼은 이내 대화를 거부하며 윽박까지 질렀으니.
‘얼씨구. 윤승이 친척이라길래 기껏 신경 써줬더니…….’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란 누구에게나 있는 법.
게다가 신체에 자리를 잡아버린 저주는 어차피 이쪽이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니까.
‘흠. 뭐, 어쩔 수 없지.’
기려는 잠깐 고민하다 곧 그러려니 하고 상황을 넘겼다. 그리고 최진이 건네준 닭갈비 값을 받고 춘천을 떠났다.
***
-화르륵.
…최진이 뿜어내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열기가 피부를 자극한다.
서울로 돌아온 지 약 3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쯤.
나는 평소처럼 정하성에게 기초 마도학을 가르치는 중이었다. 이게 끝나면 아마도 집에 가서 남은 닭갈비나 먹을 것 같고.
언제나와 같은 일상이었다.
“헌터님, 방금은 어땠나요?”
“응?”
“제가 옆으로 쓴 스킬이요. 말씀하신 대로 최대한 마력을 집중해보긴 했는데요.”
“아하.”
“……그런데 역시 좀 긴장되네요. F급처럼 연기하실 때에는 그래도 스킬을 멀리서 쏘게 하셨는데. 이제는 아예 헌터님을 근처에 두고 연습해야 한다니.”
일단 정하성은 [신성나무 묘목]으로 급등한 내 방어력을 크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조금만 지나면 다음 달로 넘어가서 다시 30억의 강의료를 받을 수 있고.
보다시피 통장 잔액은 가파르게 상향 곡선을 그리는 상태다.
더불어 얼마 전에 얻은 아이템 박스로 이제는 편의적인 부분도 많이 개선됐다. 이보다 좋은 흐름이 어디 있겠는가?
‘흐음…….’
한데.
사실 나는 이 주제넘은 평화 속에서도 영 마음이 불편했다.
원인은 지금도 어디선가 나를 쳐다보고 있을 누군가의 시선이다.
강창호. 일단 지난번의 경고 뒤로는 서로 지나칠 정도로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제기랄, 찝찝해 돌아가시겠다!’
당장 문제가 없다 뿐이지.
솔직히 그쪽은 언제 무슨 이유로 사건을 터트릴지 모를 폭탄이었다.
내가 아무리 고분고분 말을 잘 들어도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서 [향상심]을 발동하려 들지도 모른다고.
‘이제 와서 계약이 후회되네.’
맹약서에 서명할 때만 해도 말썽거리의 수습이 이렇게까지 느려질 줄은 몰랐거늘.
시커멓게 망가진 폐. 게다가 체내 마력은 차마 마법사라고 불러주기도 창피한 수준.
‘마음에 드는 점이 없어.’
나는 어떻게든 이 후줄근한 몸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 사실만은 언제나 확고했다.
힘을 키우는 것과 육체 변경.
이것들은 약간의 속도 차이는 있어도 결국 둘 다 필수적으로 이뤄야 할 목표란 말이다.
모든 일정을 마친 후.
나는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다시금 원하는 물건의 매물을 확인했다. 여태껏 하루도 빼먹지 않은 일과였다.
.
.
.
……정확히는, 일과였었지만.
[검색어 : 용의 폐]그로부터 몇 분이나 지났을까.
나는 김기려의 원룸에 덩그러니 앉아 휴대전화를 응시했다.
[검색결과 : 1건]참고로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하는데, 이건 매물이 나왔다는 뜻이 아니라 누군가가 [용의 폐]를 사고 싶다고 구매 게시판에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누군가가 제시한 구매 희망가란 얼마일까.
[76,800,000(USD)]해당 단위를 복사해 포털 사이트의 환율 계산기에 넣으면 이런 결과가 나왔다.
[102,924,288,000 대한민국 원]일십백천만십만백만…….
나는 방금도 확인한 숫자의 자릿수를 연거푸 검토했으나 몇 번을 확인해도 결과는.
“1,020억.”
……이 말을 먼저 하는 걸 잊었는데. 사실 내가 춘천에 가 있던 그 오전 중에는 TV에서 이런 뉴스가 터졌단다.
[(속보) ‘용의 폐’의 숨겨진 기능 밝혀져……. 물약 하나로 드래곤 브레스를 쓸 수 있게 된다고?]그래서 멸시받던 아이템의 시세 폭등이 벌어졌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어째서……!
어찌하여 이런 끔찍한 일이!
나는 창자가 끊어질 때나 날 법한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저 구매 글을 갓 발견했을 때에는 ‘뭐가 잘못됐겠지. 누가 장난으로 아무 숫자나 갈겨 놓은 걸 거야.’라며 현실을 부정했거늘.
어제의 뉴스는 이미 해외에선 꽤 유명한 이야기였던 모양이다.
한 외국의 헌터가 속성 저항을 올려주는 포션을 마시다가 우연히 재채기를 하게 되며 폐의 숨겨진 기능을 알아냈다는데.
그 기능이란 자그마치 드래곤 브레스의 발현.
특정 약품으로 조건을 맞추면, 용의 폐의 소유자는 죽은 마물의 속성 공격을 뿜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세상이 왈칵 뒤집혔다.
‘씨발! 게다가 무려 이렇게 나오는 브레스의 위력이 술자가 아니라 죽은 드래곤의 등급을 따라가!’
그리고 이 와중에 시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바로 중동의 구 석유 부자들.
들려오는 말로는 폐의 소유주는 각성하지 못했어도 초능력을 쓸 수 있게 된다고 하니 신기한 마음에 그들이 경쟁에 뛰어들었다나?
어쨌든 그 중동 재벌들의 관심에 힘입어 용의 폐는 뒤늦게 귀한 몸이 되셨다.
제시가가 점점 상승해 현재는 1,020억이라는 미친 가격까지 도달한 상황.
전문가들은 브레스의 일일 사용 가능 횟수가 적은 만큼 이는 일시적인 현상일 거라고 설명했지만, 저 시세가 언제 떨어질지는 정작 아무도 모른다.
나는 휴대폰 화면에 뜬 사람들의 의견을 차분히 훑었다.
그리고 이불에 얼굴을 묻은 채 다시금 외쳤다.
“신이시여!”
솔직히 지금 사람이 안 미치게 생겼냐.
차분히 생각해보면 지구는 지난 가고시마 게이트 이후로 드래곤이 발생하지 않았다.
저 중동의 부자들마저도 여태 폐는 사들이지 못했으니 이 세상에는 아직 해당 장기의 여분 자체가 없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 새로운 효과가 공표되기 전에 100억 정도의 무리한 구매 제시글을 올렸었다 한들 변수는 없었을 상황.
즉, 이것은 무려 시간을 되돌려도 막을 수가 없던 참사라는 뜻이다.
아무래도 이건 [용의 폐]를 포기하라는 이 세계의 의지 같다.
그럼 나보고 앞으로 어떻게 하라고?
산사람의 폐라도 뽑아다 몸에 박아?
하지만 그런 대수술을 하려면 밑바닥부터 30억을 모을 때와 비견되는 개고생을 거쳐야 하는데.
“어째서 나에게 이런 일이!”
천재지변이다. 오랫동안 고민해봤지만 역시 여태까지의 계획을 대거로 폐기해야 한다는 결론만 나왔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영혼 이동만은…….’
그렇지만 별수 있나. 까라면 까야지.
나는 입을 다물고 뇌를 쥐어짜 냈다.
가슴속은 여전히 분통이 터졌지만, 해결되지 않을 일에 감정을 소모하는 것만큼 쓸데없는 낭비도 없으니 곧 그 절망감도 가라앉혔고.
***
1,000억.
처음에는 돈이라도 꿔볼까 했는데, 생각보다 이 세계는 헌터의 대출 심사가 박한 편이라고 한다.
‘언제 죽을지 몰라서 오히려 신용이 낮다나.’
그럼 성실하게 목표액을 모아볼까?
하성에게서 받는 강의료로 단순 암산하면 앞으로 약 33개월을 진행 시 1,000억이 완성.
그런데 문제는 내가 짠 하성의 커리큘럼 길이가 최대 6개월분이다.
‘이걸 33개월로 늘이긴 좀.’
게다가 초기 3달의 체험 분량이 끝나면 강의료를 올리겠다는 그 계획.
그것도 지금에 와서는 반쯤 불가능 판정이 떨어진 상황이었지.
-김 헌터님, 그나저나 제가 내는 강의료의 세금 처리에 대해서 말입니다만…….
-어?
-이 거래는 비밀을 지켜달라고 하셨으니 따로 사업자를 내진 않으실 텐데. 그럼 규모가 규모니만큼 아무래도 입금액이 증여로 판단될 것 같습니다.
-…….
-어차피 제가 다 부담할 돈이긴 한데, 그럼 세무 처리도 제 쪽에서 하면 되겠습니까?
사실 내가 받는 30억은……. 단순한 30억이 아니었거든.
이렇게나 발전한 세계면 당연히 위정자들을 위한 조세가 다양할 텐데 그간 생각이 짧았다.
그러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하성이 실제로 쓰고 있는 돈은 세금을 포함하여 자그마치 현금 60억 원.
솔직히 말하면 아무리 S급을 상대로라도 이 정도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월마다 뜯어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욕심을 부려 비용을 더 올리기까지 하면 최후는 뻔하지 않을까?
‘완전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 행이잖아.’
하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에픽급 히드라를 팔아치우기엔……. 그건 또 싫단 말이지.
내가 봐도 지금의 폐 값은 너무 거품이 낀 가격 같으니.
여러모로 아깝다.
역시 용의 장기를 산다는 계획은 당분간 이루기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꺼리던 보완책을 다시 검토했는데.
그 보완책이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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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인간의 폐를 추출해
신선한 상태로 이식한다.
준비물 1. 폐 공여자
준비물 2. 갈아탈 육체
준비물 3. 총 다섯 가지 술식 발동에 필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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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이렇게 법망이 삼엄한 세계에서 대체 산사람은 무슨 수로 잡아 올 것이며, 쥐꼬리만 한 마력으로 고급 마법은 당최 뭔 배짱으로 쓰겠단 건지.
‘게다가 지구의 환경과 지구인의 구조도 완벽히 익히지 않은 상태로 말이야. 응?’
나는 허탈한 웃음과 함께 관자놀이를 짚었다.
“하하…….”
그런데 뭐, 다시 말하지만 혼자 속끓여봤자 바뀌는 것도 없고.
생각해보면 당장 오늘 세상이 망할 것도 아니라. 이제는 그냥 시원스럽게 여유를 갖기로 했다.
‘하긴, 이 정도 변수는 있어야 인생이 재밌지.’
꾸욱.
나는 잡생각을 하던 것을 멈추고 눈앞의 네모난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먼 공기 중에서 청량한 노랫소리 같은 것이 흐른다.
저걸 보니 일단 방금 누른 게 초인종은 맞는 모양인데.
“흠.”
두리번두리번.
이곳은 외벽이 단색조로 칠해진 어느 단독주택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런 외진 건물에 찾아온 이유는 하나뿐.
[통화를 거는 중 … 강창호 ☎]앞으로의 계획에 앞서, 나는 한 S급 헌터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그 사람 집 앞까지 찾아온 참이다. 이쪽이 궁금한 것은 아무래도 전화로 나누기는 모호한 주제라.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
몇 번의 신호가 가니 드디어 휴대폰에서 연결음이 울렸다.
“아, 강창호 헌터님! 지금 도착했는데 혹시…….”
-그냥 열고 들어와.
다시 휴대폰 화면이 컴컴해진다. 상대방이 본인 할 말만 하고 통화를 끊었다.
나는 그 꼴을 보고 마음속의 미래 계획에 조심스럽게 ‘원시술사 효수하기’를 추가했다.
하지만 그건 훗날 벌어질 일이고, 오늘은 오늘의 흐름을 따라야 할 터.
‘오.’
끼이익.
커다란 철창을 열고 들어서자 녹색 정원이 펼쳐진다.
나는 강창호의 마력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진행했는데, 이어서 현관문을 건너니 상상도 못한 내부 구조가 드러났다.
마치 예술가의 아틀리에처럼 넓고 탁 트인 고풍스러운 공간.
‘이게 사람 사는 집이라고?’
눈이 절로 휘둥그레진다.
지금까지는 김기려가 사는 집도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인제 보니 거긴 개집만도 못했군.
강창호의 거주지는 정말이지 누군가의 원룸과 비교도 안 될 규모였으니까.
‘와, 집을 무슨 리조트처럼 꾸며놨네.’
나는 고요한 복도를 걸어 나갔다.
한참을 움직이니 드디어 창 너머로 내내 찾던 각성자의 그림자가 보였다. 야외에 놓인 희고 길쭉한 의자에 누워 있는 지구인.
강창호다.
“음?”
그런데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왠지 좀 물에 젖어 있는 것 같은데…….
‘어라. 건물이 이렇게 좋은데 욕실은 불편하게 밖에 있는 건가?’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테라스로 추정되던 장소와 가까워지니 점차 강창호가 왜 그런 꼴이었는지가 드러났다.
“수영장?”
파란색의 물이 가득 담긴 구조물.
이게 수영장이라고 불린다는 건 나도 안다. 그런데 그게 개인용 주거지에 떡하니 박혀 있을 줄이야.
“갑자기 얼굴은 왜 보자고 했어.”
썬베드에 누워 있는 강창호는 몸을 일으키는 성의조차 보이지 않고 대화를 시작했다.
무채색의 가운과 형형하게 빛나는 용의 눈이 이질적으로 대조된다.
그럼 집주인이 방문 이유를 물었으니, 이쪽은 응당 그것을 밝혀야 하건만.
힐끗.
부자의 전유물인 개인 수영장에 자꾸만 시선이 간다.
군침도 살짝 돈다. 솔직히 말하면 여기에서 이틀만 놀다 가면 안 되겠느냐는 소리가 목젖까지 튀어나오는데.
“일단…. 잠깐 들어가서 이야기하실까요?”
나는 대마법사의 체통을 위해 속마음을 애써 감추고 손에 쥔 상자를 들어 보였다.
【생생생 오렌지주스】
네오 시스터즈의 모회사에서 판매하는 국민 과일 음료 세트다.
최근에 알게 된 건데, 이 나라는 주거 공간의 방문자가 선물을 챙겨야 하는 문화가 있더라고.
역시 외계 출신인 이상 상식 면에서는 아직 많이 부족할 수밖에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