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78
176화. 호감정 (2)
혹시 지구에도 애완동물을 키우는 문화가 있을까?
당연히 있을 거다. 그야 지금도 김기려의 뇌에서 관련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으니까.
그러니 하는 말인데. 내가 지금부터 할 일은 마치……. 애완 설치류의 집을 청소하다 그것이 거실로 도망쳐버렸을 때의 대처법과 같다.
-콰직!
상대가 좋아하던 먹이 냄새로 유인해 포획을 꾀하는 것이다.
“허억!”
“꺄아아악!”
“잠깐……!”
푹.
나는 최진에게서 건네받은 해체용 가위로 왼쪽 손목을 내리찍었다. 그리고 터져 나온 피를 주변에 고루 뿌렸다.
상처 하나 없는 밀봉된 상태에서도 남의 혈액 상태를 알아본 흡혈귀인데. 아무렴 이러면 참을 수가 없겠지.
-!!
역시나, 몇 초 지나지도 않아 반응이 온다.
변신술사는 제 취향의 피 냄새에 흥분했는지 날갯짓이 2배로 빨라졌다.
저런 기세라면 이쪽으로 달려드는 건 시간문제일 터.
“기, 김기려 헌터! 아, 아니. 대체 그게 무슨!”
“진정하시고 동생 쪽이나 잘 보세요.”
흔들흔들.
직후, 나는 주머니에서 다홍색 물이 담긴 병을 꺼내 내용물을 최진이 보는 앞에서 마셨다.
동시에 손목의 출혈이 급격히 멈췄다.
사실 이것의 정체는 편의점에서 산 자몽 음료지만…. 나도 최소한의 눈치는 있거든.
‘치료 계열 각성자도 아닌데 혼자 상처를 재생시키면 이상해 보이겠지. 수복을 할 때는 최소한 포션을 마시는 척이라도 해야 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창공의 포식자가 드디어 미끼를 물었다.
“아아아악!”
최진희가 괴성을 지르며 날아든다. 속도는 빠르기로 유명한 그 비기너 킬러에 뒤지지 않았다.
실제로, 저 외침을 듣고 고개를 돌렸을 무렵엔 이미 상대가 코앞까지 도달한 상태였으니.
쇄도하는 비행생물.
그 흡혈귀는 피가 흩뿌려진 공터로 매섭게 낙강했다.
동시에 최진은 동생의 돌진을 인지하고 그것의 날개 한쪽을 급히 붙잡았으나…….
문제는 가속도.
증속에 증속을 반복하며 날아온 진희의 운동 에너지는 가공할 수준이었다. A급이 온몸으로 저지해도 제 먹잇감쯤은 가뿐히 자빠트릴 정도였다.
“읍.”
쿠드드드득!
이어진 것은 아스팔트가 갈리는 소음.
나는 최진희에게 목째로 붙잡혀 바닥에 처박혔다. 길은 터지고 가로등은 뽑혀나가고.
덕분에 자리에서 족히 30m는 밀려 나갔지만, 화려한 습격에 비해 피해는 별거 없었다.
이쪽은 신성나무 묘목의 코팅 효과로 난리통 속에서도 피부 하나 긁히지 않아서 말이다.
‘휴우.’
템빨 최고!
나는 주변의 흙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잠시 호흡을 멈췄다.
그런데 상황을 지켜보니, 아무래도 먼지가 사라지는 것보단 질식사가 더 빠를 듯싶다.
“하아악! 으아아아악!”
“진희야, 가만히 있어!”
“어오, 무슨 힘이 이렇게 세……!”
곧이어, 믿음 길드의 A급 헌터들이 내 몸 위의 흡혈귀와 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최진과 팀원들은 [혼란]에 빠진 진희를 제압하기 위해 안간힘을 짜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애당초 진희 같은 B급 헌터가 어떻게 이 팀에 속해 있었겠는가?
헌터 사회는 철저한 능력주의다. 단지 자매라는 이유만으로 약자를 끼고돌지는 못하는 법.
“아아아악!”
“진희야, 제발…….”
“이거 놔! 이거 놔!”
원래도 힘은 충분했지만, 상태 이상으로 이성까지 잃자 변신술사의 괴력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치솟았다.
콱! 최진희는 혈흔이 남은 내 팔목을 거칠게 집어 문다.
향상된 방어력이 아니었다면 아마 이때 손목이 찢겨 나갔을 것이다.
미친 흡혈귀에게 습격당하고, 30분을 기다려 겨우 포장한 맛집 닭갈비는 돌풍에 휩쓸려 날아가고.
하여간 되는 일이 없는 날이지만 이것도 이로써 끝인가 보지.
“아아악!”
곧이어, 그 흡혈귀는 제 언니의 손에 날개가 붙잡혀 뒤로 나동그라졌으니.
“으으, 으으으……!”
드디어 떨어져 나갔다.
변신술사는 제압당한 직후에도 몸을 뒤틀며 발버둥쳤지만, 최진이 이를 온몸으로 눌러 제지했다.
‘오, 역시 용의 심장은 달라!’
그럼 이쪽도 슬슬 기상해볼까.
나는 여태껏 최진희의 밑에 시체처럼 깔려 있었다.
야리야리한 F급의 근력 따위로는, 방금의 상황에서 진짜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었거든…….
‘눈에도 먼지가 들어갔나? 갑자기 눈물이 나려 하네.’
나는 남모를 비밀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리 스킬 써주세요!”
“아, 넵!”
그리고 이쪽이 더러워진 정장 재킷을 벗어 탈탈 털고 있을 무렵.
소리를 들어보니 저쪽도 어느덧 상황이 정리된 것 같았다.
우리가 그 난장판을 겪는 사이, 다행히 상태 이상 내성이 높은 편인 힐러가 먼저 혼란에서 빠져나왔고.
그 힐러는 회복 즉시 최진의 동생에게 정신을 깨우는 마법을 맞혔으니까.
“헉!”
이윽고 모든 팀원이 평소의 상태로 돌아왔다.
상태 이상이 해제된 진희는 발광을 했던 여파가 뒤늦게 몰려오는지 불현듯 몸을 늘어트렸다.
“진희야, 정신이 들어?”
추욱.
하지만 아직 상황이 파악되진 않나 보다. 그 여동생은 자매의 질문에 눈만 깜빡였으니.
“언니……. 미안.”
진희가 다시 입을 연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녀는 스킬로 만들었던 이형의 기관을 감추고, 부드럽게 돌아온 손발로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언니 쪽은 괜찮다며. 오히려 이번 일은 자신이 실수한 것이라며 동생을 꼭 끌어안고 다독였다.
보기 드문 우애였다.
‘음?’
하지만 그때…….
‘뭐지?’
지구인들을 별생각 없이 관찰하고 있던 무렵.
어째 내 쪽으로 묘한 반응이 돌아왔다.
최진은 제 동생을 쓰다듬다 말고 돌연 시선을 들었는데, 왠지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까만 홍채를 움직이지 않고 뚫어져라 고정했던 터라.
‘장시간의 눈 맞춤.’
그러고 보니 지구인들은 내가 저런 행동을 할 때마다, 지금 본인에게 시비를 거는 거냐며 화를 냈었지.
‘어라? 시비라고?’
나는 상대방의 적대적인 표현에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봐도 행동의 원인이 쉽사리 추측되지 않았다.
***
A급 헌터 최진.
그 인물은 동생의 등을 쓸어내리며 생각했다.
마물 앞에서 힘을 감추려던 건 정말 멍청하기 그지없었다고.
자신이 그런 객기를 부린 탓에 동료들마저 온갖 고생을 다 했다고.
“하.”
최진은 스스로를 향한 비난을 끊임없이 터트렸다.
잠깐은 그 비난의 칼끝이 바깥으로 돌아간 적도 있었고 말이다.
이 일은 어찌 보면 원인 제공자가 따로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은가?
그 S급 헌터만 아니었으면, 자신도 스킬을 숨겨야겠다는 판단은 하지 않았을 텐데.
‘…….’
최진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래. 사실은 다 알고 있다.
방금의 생각들은 비루한 핑계일 뿐이며, 이 상황은 오히려 그 헌터 덕분에 겨우 온건히 마무리됐다는 것을.
최진은 감았던 눈을 떠 공원 바닥을 살폈다. 그곳에는 아직도 붉은 핏자국이 적나라하게 남아있었다.
‘미친놈.’
그녀는 평소에 사람을 향하여 정신이 나갔다는 표현을 쓰길 꺼려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정말 다른 할 말이 없었다.
-잠깐 가위도 빌려주시고.
-가위?
-네. 당신 손에 들려 있는 그 잘 갈린 해체 가위.
푹.
그 인물이 본인의 생살을 가른 이유는 고작 최진희를 지상으로 부르기 위함이었으니. 어느 누가 이를 보고 경악하지 않겠는가.
말릴 틈이 없었다.
김기려는 해체 도구를 받자마자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그런 짓을 벌였다.
‘미친…….’
최진은 지양하던 비속어를 재차 되뇌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김기려가 누구보다 또렷한 정신이었음을 확신하기도 했다.
최상급 각성자들은 술 따위에 취하지 않으니까. 그 같은 사냥꾼들은 일반인과 달리 사고력을 상실할 일이 좀체 없다.
‘맨정신으로 그랬다고 생각하니 더 소름이 끼쳐.’
그럼 김기려는 왜 수많은 해결법 중에 그런 기행을 택한 걸까?
“언니, 괜찮아? 혹시 언니도 아파?”
최진은 왠지 그 이유를 얼추 알 것 같았다.
김기려는 S급 헌터다.
그것도 사촌이 입이 닳도록 칭찬해댄 실력 있는 S급.
한데 그런 인물이 누군가의 성급한 요청대로 흡혈 각성자를 직접 잡으려 들었다면….
자신의 동생은 지금쯤 몸이 성치 않았을 수도 있었다.
S급이란 가히 그런 생물이니까.
B급 헌터의 뼈쯤은, 작은 부주의만으로도 수수깡처럼 부러트려 버리니까.
‘그 위력은 내가 S급 헌터에게 직접 맞아봐서 잘 알지.’
어쩌면 김기려도 이런 사실을 알기에 진희를 피로 부르는 방법을 쓴 게 아닐까?
다시 생각해보면 그게 그나마 온건한 포획법이긴 하다.
그리고 저 S급 헌터는 땅으로 내려온 각성자가 덮쳐들었을 때에도 상대방의 안위를 최선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시체처럼 멈춰 진희가 진정하길 기다렸어.’
강창호 같았으면 제 목을 잡은 무례한 B급을 진작에 후려쳤을 테고, 정하성도 그런 상황에선 당황해서라도 흡혈귀를 떼어내려 발버둥쳤을 텐데.
‘…….’
사건을 정리하던 최진은 결과적으로 한 S급 헌터의 행동을 이렇게 해석했다.
‘봐준 거구나.’
그가 내 동생을 봐주었구나.
정말 혹여라도 다치지 않도록.
‘어떻게 이런…….’
사실 기려는 당연히 약해빠진 폐급의 몸이라 아무 대처도 할 수 없었던 거였지만, 진실을 그녀가 알 리는 만무했다.
이내 최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제게 다가온 헌터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녀의 눈빛에는 더 이상 이전의 표독함이 없었다.
“저희 때문에 포장한 식사를 못 먹게 된 것 같은데, 닭갈비 값은 제가 꼭 배상하겠습니다.”
“정말요?”
“그리고 아까 쓰신 포션도요. 몇 급짜리였는지만 말씀해주시면 똑같은 걸로 즉시…….”
하긴, 김기려가 흔쾌히 제 피를 먹여줬다는 동생의 말을 들었을 때부터 조금 긴가민가했는데.
뒤늦게 못 박힌 첫인상을 배제하려 노력해보니…….
최진은 천천히 기려라는 사냥꾼의 본질을 파악했다. 그는 생각보다 너그러웠고, 호의적이었고.
“아뇨. 그것까지는 됐어요.”
“예?”
“포션 쪽은 신경 쓰지 마세요. 그나저나 동생분은 괜찮아요?”
저런 차가운 얼굴로 감히 다정하다 느껴질 정도의 성격이었다.
이래서 윤승이 그를 고매한 인격자라 연신 칭송해댔던 것이리라.
“네. 헌터님 덕분에 크게 다친 사람이 없어서 다 괜찮네요.”
최진은 한결 유하게 변한 태도로 대화를 이었다. 오해도 풀렸겠다, 상대에게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기려 씨, 이건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이지만…….”
“네?”
“평소에 강창호 헌터와 함께 공략을 다니시죠? 음, 부디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강창호 같은 사람과 왜 친분을 이어나가시는지는 몰라도, 개인적으로 그 헌터는 절대 신뢰를 하지 마셨으면 해요.”
이내 최진은 작은 목소리로 강창호를 언급했다.
멀쩡한 사람이 그런 헌터를 동료로 두고 있다면, 기려가 모종의 기만을 당했을 확률이 높았으니까.
최진은 ‘기회주의’나 ‘성격파탄자’라는 단어를 써가며 자신이 아는 강창호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김기려도 그간의 의문을 해결했다.
용 사냥꾼이 자신을 적대했던 이유를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아, 여태 그것 때문에 불편해하셨던 거예요?”
난 또 뭔가 했네.
기려는 이윽고 시원스레 밝혔다. 자신도 좋아서 그 인간과 동행하는 건 아니라고.
“그놈은 나한테도 개자식이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요? 아니, 그럼 왜 그런 인간이랑 공략하러 다닐 생각을 한 거예요? 대체 어떻게 믿고요?”
최진은 놀란 눈치로 되물었지만, 돌아온 건 무심하게 어깨를 추어올리는 S급의 모습이었다.
“설명하려면 좀 복잡해요.”
“아…….”
“어쩌면 당신들이랑 비슷한 이유일 수도 있고요.”
음?
그런데 이건 무슨 소리인가.
최진은 상대가 꺼낸 뒤 문장을 듣고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들었는데, 기려는 이를 조용히 내려다봤다.
“흠, 이게 낮까지는 좀 애매했는데…….”
대화가 이어진 것은 몇 초가 지난 뒤의 일이다.
“최진 헌터, 혹시나 하고 묻는 거지만 한국마탑의 에스더랑 아는 사이예요?”
“아뇨?”
다소 뜬금없는 질문을 시작한 기려. 그러나 모든 발언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그는 오랜 관찰 끝에 최 자매의 또 다른 특징을 눈치챘으니까.
“아하.”
사실 그 자매는 쌍으로 저주에 당한 상태였다.
그것도 제법 상급에 달하는 저주로.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지구에서 이만한 강도의 저주를 발현시키는 경우는 딱 2가지였으니.
“그럼 역시 기사의 맹약에 서명한 상태이신가 보네요?”
기려는 본인이 생각한 다른 경우의 수를 꼽았다. 그런데 이 직후 공터의 기류가 급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