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81
179화. 블랙마켓 (3)
김기려의 성대가 내는 특유의 주파수.
그 차분한 음역을 인지한 상대방은 흠칫 놀라며 파지법을 바꾼다. 방아쇠에 둔 손가락을 총기 옆면으로 옮긴 것이다.
“기, 김기려 헌터?”
“네.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에 또 뵙네요.”
하지만 겨눴던 총까지 거두진 않는군.
그렇게 우리는 가면을 사이에 둔 채 경직된 대담을 했다. 먼저 입을 연 건 상대방이었다.
“어떻게 절 알아보셨…….”
“먼저 목소리를 내셨으니까요. 게다가 이렇게 매번 보면 한 사람 각성치 정도는 대충 기억하죠.”
바람 속성의 마력을 타고난 B급 각성자, 선우연.
그 협회 직원은 내 목소리를 몇 번이고 가늠하고 나서야 천천히 총구를 내렸다.
“아무튼,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에요?”
나는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하며 물었다.
그러자 선우연이 비틀어진 가면을 바로 하며 말했지.
“일하는……. 중이에요.”
다소 흔들리는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한 것이다.
“예?”
“서쳐 스킬도 보유자가 흔치 않은 편이어서요. 평소처럼 경찰분들에게 협력 중인데, 그간 열심히 한 게 좋게 보이기라도 한 건지. 얼마 전에는 직위가 높아져서 상대적으로 권한이 확장된 것도 있습니다.”
“아하.”
“이제는 피의자를 직접 검거할 수 있게 됐어요.”
“설마 여길 혼자 오셨나요?”
“아뇨. 당연히 형사님들이랑 함께죠.”
맙소사, 이미 경찰이 쫙 깔렸다니. 어떻게 소개받아도 이딴 암시장을 소개받을 수가!
“그런데 사실 이번 승진은 거의 기려 씨 덕분이에요. 그동안은 게이트를 못 들어간다는 이유로 항상 진급이 밀렸었는데…….”
내가 당혹감에 어쩔 줄 모를 무렵.
선우연은 무언가를 되뇌듯 조곤조곤 떠들다 곧 이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아쉽지만 이 자리는 감사 인사를 하기엔 부적절한 것 같군요. 김기려 헌터님, 도대체 왜 이곳에 계셨습니까?”
가면 속에서 흘러나온 것은 짙은 의문이었다.
“게다가 다른 곳도 아니고 하필 이 매대에. 저 인간은 블루셸을 팔잖아요.”
“…….”
“헌터님, 설마……. 블루셸을 사셨어요?”
그런데, 상대가 질문을 좀 한다고 내가 곧이곧대로 진실을 불겠는가?
암시장에 오기 전.
나는 불법 거래에 관한 한국의 법률을 훑어봤었다. 그래. 딱 이런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릴까 봐 혹시 모르는 마음에 미리 공부를 했단 뜻이다.
그리고 그 성실한 예습의 결과는.
“아니요. 그럴 리가요.”
나는 이곳에서 ‘아닌 척 잡아떼는’ 전략이 상당히 효과적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왜냐.
한국은 불법 매매를 단속할 때 공급자를 중점적으로 심판하거든.
‘확실히 그편이 효율적이긴 해.’
수많은 소비자는 일일이 족치기 번거롭다. 물론 죄의 경중도 다르다.
장물 한두 개를 사들인 구매자와 아예 장물을 대량으로 떼다 파는 장물아비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법.
거기에 손님 쪽은 벌할 근거를 잡는 것조차 어려운데 그들이 뭘 어쩌겠는가?
이런 계열로 기소하려면 최소한 법적으로 그 구매자의 거래 의지가 확고했다는 증거.
계약서, 송금명세, 녹음 파일 등 이하 부정할 수 없는 기록이 남아 있어야 겨우 판사에게 제출할 자료를 꾸릴 텐데.
‘음.’
방금 같은 고요한 현금 거래는 이 모든 사항을 빗겨간다.
암시장을 눈으로 구경만 한 것은 사실 대수로운 죄가 아니니.
확실한 증거가 잡히지 않는 이상, 내 책임은 기껏해야 게이트 입장 미신고에서 그치는 상황.
“전 여기에서 아무것도 산 적 없어요.”
나는 버젓이 시치미뗐다.
저 블루셸 상인이 훗날 입을 열어도 상관없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이곳의 법률은 공급자가 아닌 이에겐 너그러운 편이다.
“그나저나 선우연 씨는 지금 엄청나게 바쁘신 거 아니에요?”
생각을 거듭하니 겨우 가슴이 진정된다. 나는 그렇게 생긴 여유로 슬쩍 대화 주제를 바꿨다.
“다짜고짜 들어와서 사람을 쐈잖아요. 아무리 외진 가게라도 이대로면 다른 사람이 발견할…….”
하지만 상대가 영 호락호락하지 않더라.
“말을 티 나게 돌리시네요. 어차피 저는 따로 팀의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에요.”
“….”
“그리고 여기에 들어오기 직전 당신이 ‘8세트 주세요.’라고 한 걸 들었고.”
아이고야.
이거 예상보다 더 제대로 걸렸는데.
“잘못 들으셨어요.”
“B급 각성자의 청력으로 그랬을까요?”
“예. 저는 애초에 이런 걸 살 돈이 없거든요.”
“그럼 그 가방엔 뭐가 들었죠?”
“개인 장비요.”
“확인해봐도 될까요?”
이어진 건 선우연의 집요한 질문. 나는 시체의 근육을 움직여 시선을 도르르 굴렸다.
“……수색 영장도 없이?”
반쯤은 당황해서 낸 말이었다.
솔직히 저 직원이 불법 거래 문제를 이렇게까지 깐깐하게 캐물을 줄은 몰랐던 터라.
“아니, 김기려 헌터…….”
B급의 각성자는 살짝 얼이 빠진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하긴, 거짓말로 대강 속이는 졸속한 짓이 언제나 잘 풀릴 리도 없는 법.
저 인간도 이번만은 쉽게 넘어가지 않을 모양인데.
‘곤란하네.’
어차피 가방에 있는 현금만으로는 치명적이지 않겠지만.
만약 선우연이 힘으로 아이템 박스를 뺏으려 들기라도 하면 어쩌지. 그땐 인권침해라고 외치며 바닥에 드러누워야 하나?
‘블루셸은 소지만 해도 불법이잖아.’
이쪽이 증거를 지키려 머리를 굴리는 사이. 어느덧 옆에 서 있던 여성은 다음 마디를 꺼낸 상태였다.
“왜?”
요동하는 울림으로.
“……이건 정말 좀 이상한데. 기려 씨 같은 사람이 대체 왜 이런 걸?”
중얼거리며 의문을 표한 것이다.
그야, 블루셸은 하급 각성자에게만 효과를 내는 물질이었으니……!
복용자의 각성 등급이 C급만 되어도 이 열매는 유의미한 결과를 내지 못한다. 그 정도로 강화의 한계선이 명백하다는 소리다.
그러니 현 상황은 까딱 잘못하면 내가 약자라는 실마리를 줄 수도 있지만.
‘흠.’
다행히 써먹을 수 있는 변명 거리가 하나 있긴 하다.
내가 여기에서 뭘 사든 아무렴 강창호의 귀에 들어갈 게 뻔한데. 이쪽이 설마 아무 대비도 없이 블루셸을 구하러 왔겠나.
하지만 그 변명을 언급하면 금지품을 샀다는 걸 자백하는 꼴이 된다. 이를 어쩐다?
“잠깐.”
그 순간이었다. 선우연이 갑자기 심각한 어조로 대화를 끊었다.
“그나저나 이럴 때가 아니라…….”
“예?”
“슬슬 신호가 올 때인데도 왠지 아까부터 밖이 너무 조용하네요.”
선우연은 그렇게 말하고 가게의 매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여태 쓰러져 있던 암상인에게 미란다 원칙을 알렸다.
저래 봬도 의식은 멀쩡했는지. 귀로 쏘아붙여지는 체포 문구에 미간을 찡그리며 반응하는 암상인.
물론 그것이 끝이었다. 상대는 앓는 소리 하나 내지 못할 정도의 강력한 마비 마법에 당한 상태라.
“이야기는 잠깐 미뤄둘게요.”
선우연은 특수 수갑까지 꺼내 범죄자를 추가로 구속했고.
모든 과정을 마친 뒤에는 나를 향해 첨언했다.
“어차피 조금만 있으면 절 다시 보게 되실 거예요. 이 암시장은 일반인을 주 고객으로 삼아서 경비도 별 볼 일이 없어요.”
“….”
“가장 높은 사람이어 봤자 C급쯤이라던데요. 그러니 시장 봉쇄가 끝나면 이야기는 그때 듣겠습…….”
하지만 그녀는 문장을 정상적으로 마칠 수 없었다.
그 직후, 우리는 거의 같은 타이밍에 새로운 정보를 인지했기에.
‘누가 오고 있군.’
선우연은 점점 가까워지는 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가면을 쓰고 있어서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어차피 외계인인 내게 그보다 중요했던 것은 소리의 떨림. 높낮이.
“각성자들?”
또는 상대의 심박수 같은 것이었으니.
“아니, 어? 잠깐, 이럴 리가 없는……?”
협회 직원은 어느 때보다 크게 동요했다.
이유는 아마 건물 밖에서 흘러드는 저 마력들 때문이리라.
현재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은 어느 각성자의 무리였는데.
거기엔 선우연과 맞먹는 술사가 딱 봐도 둘은 껴있었거든.
‘이 암시장 경비는 강해봤자 C급일 거라더니.’
B급이 2명이라.
경찰 쪽에서 조사를 잘못했나?
하지만 뭐가 어찌 됐든 곤란한 상황임은 틀림없었다. 곧이어 그녀는 눈에 띄게 허둥거리며 매대 밖으로 뛰쳐나왔다.
-벌컥!
동시에 흐른 것은 거친 문소리.
토벽 집의 입구를 열어젖힌 인물은 웬 민얼굴의 남자였는데, 나는 상대가 가면을 쓰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운영 측이군.’
가면을 쓴 것은 손님.
쓰지 않은 것은 가게의 주인인 규정이었으니까.
“고객님들! 실례지만 잠시 초대장 좀 다시 보여주시겠습니까?”
가게로 헐레벌떡 들어온 장정들은 이내 외친다. 당장 블랙마켓의 입장권을 재확인해야겠다고.
이유는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분위기상 아마 이 흐름은 선우연이 동료의 신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과 연관이 있을 터.
“초대장?”
“또요?”
일단 이쪽은 암시장의 정식 회원이라 불시검문을 당해도 별문제는 없다.
하지만 선우연은 다르지.
저쪽은 초대장까지 구하진 못했는지 자격을 재확인하겠다는 말을 듣자마자 자세가 눈에 띄게 얼어붙었다.
“뭐야, 그나저나 이 상점은 왜 지키고 있는 사람이 없어?”
게다가 매대 밑에 숨겨져 있는 가게 주인이라도 발견되는 날에는…….
거 상황 볼 만해지겠군. 나는 주변의 흐름을 지켜보며 잠시 고민했다.
‘흠.’
우선, 이쪽은 강창호의 소개로 이곳에 온 몸이니 초대해준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최대한 가만히 있어야 하고.
선우연은 내가 블루셸을 거래했다는 약점을 거머쥔 상태니…….
‘이참에 저 파수꾼들에게 쥐새끼나 확 팔아먹어 볼까.’
매력적인 선택지가 떠오른다.
이기적인 풍조가 만연한 행성에서 온 영혼답게 금세 도출한 계산적 발상.
하지만, 그런 본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선량한 결론을 내렸다.
‘에휴, 됐다. 어차피 다른 경찰들까지 왔다는데 선우연을 입 막아서 될 일이 아니야.’
위기에 빠진 각성자를 감싸기로 한 것이다.
“-여기 있던 점원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던데요.”
뭐, 저 지구인에게는 마침 정산해야 할 빚도 있었으니까…….
터벅터벅.
나는 경비들이 가판대 쪽을 확인하지 못하게 일부러 몇 걸음을 걸어 나왔다.
이렇게 보면 마비된 상점주가 일반인이어서 다행이었다. 저게 각성자였으면 마력 때문에라도 진작 들켰을 테니.
“그래요? 아무튼, 빨리 초대장이나 보여줘요!”
그때.
무리의 뒤쪽에 서 있던 경비는 손을 휘휘 흔들며 검문을 재촉했다.
이에 나는 손을 주머니로 넣었고, 그곳에서 반으로 접힌 회원권을 꺼내 보였는데.
“자요. 그리고 저기에 우두커니 있는 바지 입은 사람은 내가 짐꾼 삼아 데려온 손님이니까 굳이 따로 확인할 필요 없어요.”
“예?”
“아까 들어올 때 입구에서 함께 얼굴 보여줬잖아요. 괜찮죠?”
나는 물 흐르듯이 거짓말을 하며 동행인의 검사 생략을 요구했다.
던전은 바깥세상과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입구의 가드와도, 강창호와도 쉽게 연락을 할 수가 없으니. 저들로서는 빠른 사실 판단이 어렵겠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리에서 가장 덩치가 큰 각성자가 내 말을 듣자마자 와락 표정을 구겼다.
“필요한지 아닌지는 우리가 판단합니다. 두 분 다 초대장 주시죠!”
“흠.”
물론 그 기세는 오래가지 못했지만.
“그래. 입구에서 그렇게 사람을 실컷 뜯어봐 놓고, 이제는 이름도 모를 동네 자경단한테까지 우리 신원을 다 까발리라고…….”
“네?”
“하여튼 시장 한번 참 잘 돌아가.”
직후, 이 자리의 누군가는 그간의 태도를 뒤집고 고압적이기 그지없는 어조를 내뱉었다.
“내가 방금 내 이름 적힌 초대장 보여줬잖아. 그리고 데려온 지인 신분은 밝히긴 싫다는 걸 이렇게 뻔히 알려줬는데…….”
슥.
곧 시야가 밝아진다.
나는 얼굴을 감싸고 있던 가면을 턱부터 벗어 그들 앞에 섰다.
이곳의 초대장은 글씨가 작아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이름이 바로 눈에 들어오지 않으며.
따라서 그들은 이 카드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한발 늦게 알아차렸으니.
“…너희는 내가 누구한테 초대받았는지.”
이내 주최 측의 안색이 빠르게 변한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잘 모르나 보지?”
살벌한 눈초리가 꽂히자 그들은 크게 위축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내 발언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아직 쐐기는 박지도 않았으니까.
“그나저나 이렇게 얼굴만 보셔서 괜찮겠어?”
스르릉.
나는 아이템 박스에서 히드라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의 손잡이를 말아쥔 채 선언한다.
“이쪽이 진짜 S급이 맞는지도 확인하게 해줄까?”
“헉!”
“아니, 그게.”
“알아들었으면 이쯤하고 가. 뒤에서 뭔 사고가 터졌는진 몰라도, 한 번만 더 너희 사정으로 쇼핑 방해하면…….”
나는 찰나의 침묵으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지구에 환생한 지도 어언 몇 개월.
아슬아슬하게 1년을 채우지 못했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지능이 있다면 이 정도는 슬슬 알아채는 법.
“그땐 내가 직접 문제를 만들어줄 테니까.”
나는 그간의 경험으로 학습한 상태였다.
이 외모는 동족을 위협할 때 제법 효과적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