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32
230화. 뱁새의 삶도 나쁘지는 않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부슬비가 내리는 아침.
제주도의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하고 새벽 첫 비행기로 서울로 돌아온 하성, 그리고 마찬가지로 길드 지부 문제를 갈무리하고 욕조에 푹 몸을 담근 에스더는 동시에 이런 보도를 확인하게 됐다.
[“더 이상 걱정하지 마세요.” 골렘 사태 종료]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수도의 재난이 종결됐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흠? 골렘?”
하긴, 한강변 근처는 종종 여름철에 특정 몬스터로 뒤덮이곤 하니까.
예전에는 화염 박쥐라는 종이 그렇게 난리더니 이번에는 하필 골렘이었나.
에스더는 거품을 푼 물로 전신욕을 즐기며 욕실 벽면의 TV를 응시했다.
하지만 다음으로 들려온 아나운서의 발언이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이번 사태의 처리에는 특히 네오 시스터즈의 헌터팀이 큰 활약을 했으며, 이 정규 3팀이 공략한 게이트의 수는 무려 전체의 58%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58%.
58%?
난도는 A급인 데다가 안에 골렘이 서식하고 심지어는 던전이 터지지 않도록 일주일 안에 모두 처리해야 했던 게이트를 58%?!
“오.”
영국산 입욕제의 달큰한 향이 욕실의 수증기 속으로 섞여든다.
에스더는 업무로 쌓인 피로를 차분히 풀며 흥미롭게 뉴스의 볼륨을 높였다.
“도대체 저걸 무슨 수로?”
정말이지 이 소리가 안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인데.
***
터덜터덜.
“…….”
풀썩.
한강변의 한 게이트.
생성된 출구에서 초췌한 표정의 헌터가 걸어 나온다.
이 인물은 네오 시스터즈 소속의 A급 헌터로, 이외의 특징에 관해 서술하자면 석궁 모양의 무기를 다루는 걸로 유명한 헌터였다.
더불어 어느 5인 그룹의 책임자이기도 하고.
“엄마…….”
그런데 이미 자립할 나이를 훌쩍 넘은 사람이 왜 갑자기 윗세대를 찾는가.
그것은 얼마 뒤의 뉴스에서 보도될 58%라는 수치와 연관되어 있었다.
그렇다.
네오 시스터즈의 정규 3팀은 지난 분배금 합의 이후, 무려 나흘간의 강행군 끝에 드디어 마지막 [거병의 손아귀]를 클리어했던 것이다.
[거병의 손아귀].투박한 신전을 배경으로 하는 A급 던전으로.
출현하는 몬스터는 간결하게 일반병 ‘샌드골렘’과 우두머리 ‘페레스’ 정도인 괴물 둥지.
참고로 그곳의 샌드골렘은 모래로 만들어진 적이 아니라 단지 바깥의 껍질이 밝은 빛깔일 뿐인, 튼튼함으로는 이루 말할 데가 없는 강적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걸 방금 모두 이기고 돌아왔다.
어떻게?
바로 어떤 삭발 머리 휴학생 덕분에.
‘엄마……. 엄마 딸이……. 이번에 돈 많이 벌어왔어…….’
후들후들.
석궁 사수는 떨리는 손으로 지갑의 가족사진을 매만진다.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이곳에서 등장하는 샌드골렘은 황금향의 골렘 파수병과는 전혀 다른 구조로, 요컨대 누군가가 윤승에게 비상 정지법을 알려주지 않은 미지의 적군이었는데.
교육의 목표는 자립이라 하던가.
그런 의미에서 한 외계인은 제법 훌륭히 선생의 역할을 해냈다고 볼 수 있었다.
-윤승아, 잘 봐.
-네.
-이게 골렘 관절이야. 여기에서부터 여기까지가 회전하며 움직이는 거야.
-네.
-그런데 사람이랑은 다르게 이 관절은 굽힐 때 꼭 반원을 그리니까.
-아!
-이렇게 둥근 관절 달고 있는 골렘은 상대할 때 팔 각도를 잘 봤다가 오히려 품으로 파고들어.
-품으로….
-겁내지 말고.
언젠가, 기려가 지나가는 투로 설명했던 골렘 관련 지식을 모두 흡수한 안윤승.
게다가 지난 [황금향]에서 그가 얻은 자산은 더 있었다.
기세 싸움이 주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비단 마법사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으니.
신장이 174cm에 무게가 66kg 정도인 포유류가 고작 1.3cm, 그리고 0.3g의 곤충에게 겁을 먹어 도망을 치기도 하는 세상.
두려움은 보통 행위의 성패에 실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렇기에 안윤승이 이번 싸움에서 압승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김기려가 보여준 모종의 경치로 인해 뒤틀린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냈었고.
처음에는 오로지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의 괴물로만 느껴지던 것이, 점차 어설프고 수많은 틈새를 내비쳤다.
그것이 현재의 안윤승에게 보이는 골렘의 모습이었다.
-쾅!
불어오는 혹한의 바람처럼 급작스럽고 매섭던 육중함도.
-쾅!
정신만 바짝 차리면 얼마든지 안전하게 회피할 수 있다니.
김기려라는 헌터가 사냥에 나설 때면, 골렘들은 높은 문턱에 걸려 다리를 발발거리는 로봇청소기처럼 미련함이 숨은 고철로 변하곤 했다.
그리고 그런 광경을 옆에서 모두 지켜본 안윤승이 아직도 골렘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을 리는 없는 법.
-큰 공격을 유도할 테니까. 저게 팔을 휘두르기 시작하면 10초 뒤에 이음매 부분으로 화력 집중해주세요!
네오 시스터즈의 일원들은 어느 방어계 헌터의 활약에 감탄했다.
순하기만 하던 청년이 던전에 발을 들이자마자 거의 다른 사람처럼 예리하게 변했다.
제 몸집의 5배가 넘는 거병을 앞에 두고도, 사소한 움츠러듦 하나 없는 강한 모습.
-윤승 선배. 선배는 골렘이 무섭지도 않으세요?
샌드골렘의 공격은 진화의 선봉에 선 A급 각성자조차도 잘못 맞으면 내장째로 터져버릴 위력이었다.
그래서 보통의 방어계 헌터들은 골렘의 공격을 막을 때 최소한 조금 움찔거리기라도 했는데.
윤승은 저것이 겁나지 않느냐는 후배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었다.
-형님이 무서워하지 말랬거든요. 그래서 그 말대로 그냥 안 무서워하기로 한 거죠.
어쩌면 종교가 시초가 이러하지 않았을까.
안윤승.
그 23세의 청년은 이내 올바른 방식의 믿음을 이루었다.
멘토의 좋은 부분을 분석해 정성스럽게 제 것으로 체득하고.
그렇게 쌓은 실력으로 결국 서울에 도래한 고난도의 게이트 범람도 성공리에 막게 됐으니.
“와~ 마지막 보스까지 코어를 뱉을 줄이야!”
“이게 다 얼마람.”
“아이고, 이 정도 양이면 파는 것도 일이겠다. 야.”
“걱정하지 마세요. 실장님이 말해주셨는데 길드에 벌써 거래 예약 잡으려는 연락이 수두룩하게 왔었다는데요.”
“오!”
“하긴~ 무한동력 코어는 대량으로 팔아준다고 하면 오히려 사는 쪽이 웃돈을 쳐줄 물건이긴 하지.”
시끌시끌.
잠시 기다리니 열린 출구에서 남은 팀원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그들의 입에는 하나같이 상쾌한 미소가 걸려있었고, 이는 며칠간 벌어진 싸움의 승자를 선명하게 증명하는 듯했다.
“진짜 이 정도면 다들 새 장비는 사고도 남겠다!”
“윤승 씨, 자경 씨. 인제 와서 분배금 안 먹겠다는 거 무르면 안 되는 겁니다?”
“예예.”
“하하, 네~”
그렇다면 일도 잘 마무리됐겠다, 이제 집에 가서 발이나 닦고 자면 될 것을.
구슬땀을 훔치던 윤승은 문득 생각했다.
일단 김기려 헌터에게 괜한 부담이 가지 않도록 하찮은(A급 골렘 던전) 문제를 선수 쳐서 해결해 두긴 했는데…….
사실 자신이 골렘을 잡을 수 있었던 것조차도, 원류를 따져보면 모두 그 헌터의 덕분이었다.
어느 S급 각성자가 직접 세심하게 신경 써준 것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이번 사태에 끼어들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을 테니까.
“아!”
윤승은 보다 진심 어린 감사 표현을 할 요량으로, 자신을 이 자리까지 오게 해준 헌터의 선행을 성심껏 세상에 밝히기로 마음먹었다.
“아아! 드디어 찾았다. 출구가 여기에 뚫렸었군요.”
“어!”
“안녕하세요! 미리 연락드렸던 크리에이터 한제헌 TV입니다. 인터뷰 때문에 그런데,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문제는 이 모든 호의들이 상대가 바라는 형태가 아니었다는 점이지만.
***
【 익명게시판 】
업로드 속도 ㅆㅅㅌㅊ
혼자서 네오 3팀은 대체 어떻게 섭외해 왔대ㅋㅋㅋ
공중파에선 맨날 공략자들 인터뷰 짧게 끊으니까 안에서 뭔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어서 답답했는데
캬~~ 30분 풀영상 개꿀
헌터들 증언 들어보니까 안윤승 이번 던전에서도 날아다녔다나 봄
이게 바로 정규 팀원 희망편이다
역시 대머리는 강한 건가 ㅋㅋ] [댓글(22)] [익명 : 윤승 형님이 네 친구냐? 존칭 붙이도록] [익명 : 한 팀이 기여 58%는 진짜 어떻게 나온 비율인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네요; 이건 골렘 말고 다른 몬스터였어도 힘들 것 같은데요. ㄷㄷ] [익명 : (영상 캡처.jpg)
윤승 曰
‘예전에 김기려 헌터님이 골렘을 잡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트라우마를 극복한 계기는 솔직히 이게 제일 크다. 그 헌터님은 워낙 간단하게 골렘을 잡으셔서.’ 18:22] [ㄴ익명 : 레전드] [ㄴ익명 : ㅋㅋㅋ 와씨 골렘을 무슨 수로 다 잡았나 했더니 그 헌터 어깨너머로 배운 거면 인정이지] [ㄴ익명 : 그런데 이후에 나온 썰 저게 가능한 이야기인가요?] [ㄴ익명 : ㅇ] [ㄴ익명: 한국첫5단이상변이F급게이트에서나타난보스급골렘을정장차림맨손으로심장뜯어죽여버림 <- 누가 봐도 구라 같지만 앞부분에 ‘김기려 헌터가’ 한마디 붙이면 즉시 말 됨] [익명 : 아니 안윤승 이 새끼는 대머리가 아니라 패션 탈모잖아 학창 시절 보면 풍성충인데 지가 멋으로 민 거드만 ㅡㅡ] [ㄴ작성자 : 님은 뭔데 혼자 화나 계세요?]
.
.
.
반나절이 지났다.
골렘 사태 종식을 기념하여 응한 네오 3팀의 인터뷰가 인터넷으로 퍼져나갔을 때쯤.
안윤승은 오래간만의 휴일을 맞아 집 근처 공원에서 조깅을 했다.
-띠링♪
그런데 그때.
안윤승의 휴대전화로 재난 문자가 도착한다. 마포구의 한 상가 골목에 D급 레드 게이트가 생성됐다는 내용이었다.
‘D급.’
평소 같았으면 출동할 만한 거리도 아니고, 무엇보다 등급이 낮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게이트지만.
‘마포?’
관건은 위치다.
재난 문자에 첨부된 지도 사진을 보니 게이트의 발생지가 우연히 누군가의 주거지와 매우 가까웠다.
뭐, 설마 이런 D급으로 문제야 생기겠냐마는.
윤승은 가벼운 호기심에 현장으로 향해봤다.
속된 말로 ‘입’이 열릴 때까지 약간 시간이 필요한 레드 게이트답게 그가 도착할 때까지 골목은 조용했고.
이후는 협회에서 온 이름 모를 직원들과 함께 통로 제거.
지루할 정도로 무난하다.
-터벅, 터벅, 터벅.
하지만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일정한 템포로 땅을 딛는 구두의 밑창.
신기하게도 안윤승은 이 무기명의 발소리만 듣고도 다가오는 이의 정체를 유추할 수 있었다.
그야 저 남자는 살얼음 위 같은 괴물의 소굴에서도 보통 비슷한 걸음 속도였으니까.
휙!
윤승은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눈에 누군가의 상이 맺혔다.
새하얀 봉투 하나를 팔에 걸친 채로 털레털레 걸어오는 S급 헌터의 모습.
“어어!”
“음?”
정말로 이렇게 마주치게 될 줄이야!
S급 헌터를 발견한 그는 상대에게 반가운 기색으로 다가가 외쳤다.
“형님! 안녕하세요! 역시 레드 게이트 경보를 보고 와보신 건가요? 마음은 감사하지만, 형님께서 이런 하찮은 몬스터까지 직접 손보실 필요는 없죠. 번거로우실 일 없게 제가 방금 다 처치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은.
‘어……. 뭐야. 이거 뭔 헛소리지…….’
우선 설명해 두자면 외계인은 그냥 인근 할인마트를 들렀다 오는 참이다….
구매 품목은 희석식 소주와 소량의 마른안주.
신체 교환술에 실패했다는 것은 고작 일주일만으로 털고 일어날 충격이 아니었기에, 그는 아직도 깊은 시름에 잠긴 상태였고.
당연히 던전 브레이크 따위는 신경 쓸 겨를도 없는데, 갑자기 만난 안윤승이 저런 말을 해오니 속으로 뭔가 싶었다.
게다가 지구 지인의 이상한 발언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는데.
“아! 그리고 얼마 전에 있던 건 말인데요…….”
“어?”
“뉴스에도 떴으니 물론 아시겠지만, 그, 흠흠. 저희 팀이 골렘 던전을 싹쓸이했었던 거 있잖습니까. 그런데 이게, 당연한 거지만 절대 저 혼자 한 일이 아니고. 특히 어떤 길드원 한 분이 엄청나게 많이 도와주신 건데…….”
“어.”
“자경이라고 어떤 염동 스킬 쓰시는 헌터분이 계시거든요? 근데 그 헌터가 진짜 형님을 뒤에서 엄청 응원해요. 게다가 이번에 되게 고생하셔서, 그걸 보니 왠지 이건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져서…….”
기려는 혼란에 빠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가 안 되는 건 똑같긴 한데 일단 급한 건 이 부분이다.
“잠깐만, 미안한데 사실 내가 최근에는 여러 이유로 뉴스 체크를 못 했었어.”
“헉! 그러셨어요?”
“그런데 방금 뭐라고? 골렘? 윤승이 네가 골렘을 자진해서 토벌했단 소리야?”
골렘을 무서워하는 거 아니었나?
이에 윤승은 힘찬 목소리로 답했다. 그거야 먼저 이끌어 주신 덕분에 이미 극복한 지 오래라고.
게다가 그때 어깨너머로 배웠던 게 얼마나 효과가 좋았는지. 요즘은 아주 골렘이 선호 몬스터가 됐을 정도라고.
“아무튼, 이게 제가 약소하게나마 준비한 선물인데 부디 기운이 나셨으면 좋겠어요.”
누군가가 마른 눈을 깜빡이는 사이, 윤승은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솔직히 형님 요즘, 기운이 좀 없으셨잖아요.”
“…….”
“그런데 형은 뭐 돈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남들은 좋아서 방방 뛰는 희귀 마석도 그냥 돌처럼 덤덤하게 받으시는 분이니까. 이런 방식으로나마 보답을…….”
기운, 돈, 그리고 보답이라.
모 외계인의 지능 수준이라면, 원래 이런 토막 난 요소들만으로도 대충 사건의 얼개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모 외계인은 이내 생각을 포기한다.
F급의 몸에 갇혔다는 스트레스로 현재는 뇌를 쓰는 것도 제법 귀찮은 상태여서.
“어, 음, 어… 그래.”
실상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는 대충 다 알아들었다는 기색으로 지구인을 칭찬하고 자리를 떠났다.
물론 윤승은 그것만으로도 기뻐했으니, 서로의 만족도 면에서는 문제가 없는 결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