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5
23화. 최강의 대마법사이던 내가 이세계에선 폐급 헌터
그래. 뭐.
대마법사라고 해서 실패를 겪지 않는 건 아니니까.
“협력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로써 모든 혐의를 벗게 되었다.
선우연 헌터는 검사 결과를 보고 번거롭게 만들어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덕분에 빨리 알게 돼서 다행이야.’
난 진짜 괜찮다.
눈물이 차올라 각막이 촉촉해질 것 같지만 아무튼 괜찮다.
“음…….”
그런데 그때.
내 눈치를 보던 선우연의 의외의 제안을 했다.
“저기, 집까지 바래다 드릴게요.”
“예?”
“하급 각성자분들은 검사 후 현기증을 느낄 수도 있어서요.”
나도 참 충격을 많이 받긴 했나 보다. 이런 지구인의 걱정까지 받게 되다니.
“아니면 병원으로 갈까요?”
선우연이 차 열쇠를 꺼내며 조심스레 묻는다. 나는 이에 답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나는 선우연에게 묵례하고 길을 나섰다.
각검원과 김기려의 집은 도보로 15분 정도의 거리니까. 일단 걸으면서 머리를 식히고 싶었다.
잊지 말자. 나는 알파우리 최고의 마법사다.
‘이 문제도 분명 언젠가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걸으니 맑은 하늘이 눈에 띄었고.
“흠.”
곧이어 나는 제자리에 다시 멈춰 섰다.
아까부터 쥐새끼가 따라붙었거든.
“볼일이 남았어요?”
뒤를 돌아보니 선우연이 보인다.
그 사람은 난처한 표정으로 나의 몇 걸음 뒤에 서 있었다.
***
실패했다.
이는 검사 결과를 본 선우연이 떠올린 문장이었다.
“각성치 14. F급 범주입니다.”
정밀한 신형 기기로 측정했으니 이보다 확실할 수는 없는데.
선우연은 한동안 그 숫자를 믿지 못했다.
‘정말 F급이 저 헌터의 랭크였다고?’
그렇다면 비기너 킬러 사건은 뭐였으며, 정하성에게 신고는 왜 당한 거지?
‘분명 소지품도 다 압수했는데.’
선우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 혐의가 모두 풀린 것은 아니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초능력과 몬스터가 실존하는 것이 오늘날의 현대 사회인데, 각성치를 작정하여 숨기려고 기발한 아이템을 사용했을 확률이 절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이야기.
“오늘은 이만 돌아가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협회의 규정으로는 더 이상 그를 구속할 수 없다.
선우연은 어쩔 수 없이 원칙에 따라 김기려를 해방시켰다.
그런데, 이 남자는 검사가 종료된 뒤에도 끝내 찝찝한 여지를 남긴다.
‘뭐지?’
검사 직후부터 느낀 건데…….
김기려는 태도가 좀 이상했거든.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로 멀거니 서서 한참 동안 벽을 바라보질 않나, 어쩐지 말수도 급격히 줄었고.
‘설마 어지럽나?’
짐작이 가는 건 단 하나.
하급 각성자가 간혹 보이는 검사 부작용.
만약 김기려가 현기증을 겪고 있다면, 선우연은 자신이 이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그의 재검사를 진행했으니까.
‘길에서 혼자 쓰러지면 어떡하지?’
결국 선우연은 김기려를 의심하는 마음 반, 걱정하는 마음 반을 품은 복잡한 상태로 결정을 내렸다.
김기려가 무사히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를 배웅하기로.
“볼일이 남았어요?”
당사자는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듯했지만 말이다.
“죄송합니다. 역시 걱정되어서요. 건물 앞까지만 동행하겠습니다.”
선우연은 물러나지 않았다.
저 F급 헌터가 특유의 섬뜩한 삼백안으로 흘겨봐도 뜻을 굽히지 않고 곁으로 다가갔다.
“마음대로 하세요. 그럼.”
하지만 다행히 큰 마찰은 없었다.
김기려는 이곳에 끌려올 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선뜻 선우연의 말에 따랐다.
항상 침착하고 예의를 갖춘 반응.
빈틈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정말 F급일까. 각성치가 조금만 높았으면 유능한 헌터가 됐을 것 같은데.’
내가 이걸 왜 아쉬워하고 있는 거람.
선우연은 짧은 감상에서 돌아와 일에 집중했다.
지금은 김기려 헌터를 안전하게 집으로 돌려보내는 게 급선무다.
“선우연 씨.”
그런데 웬걸.
이대로면 집에 도착할 때까지 정적일 줄 알았더니. 의외로 상대 헌터가 먼저 대화의 물꼬를 텄다.
“예.”
“그러고 보니 여쭤볼 게 있었는데요.”
“말씀하세요.”
“오늘 저희 집으로 오셨잖아요. 제가 집에 있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평일 대낮인데.”
자주 듣는 질문이다.
선우연은 어렵지 않게 답을 시작했다. 정확히는, 자기소개나 다름없었다.
“제 각성 스킬입니다. 공식명은 [서쳐]라고 불러요.”
“서쳐?”
“픽시위키에 검색하면 좀 더 자세한 정보가 나오는데…….”
여긴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으니 말로 설명하는 게 나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추적 능력이에요. 물건이나 사람이 어디 있는지 실시간으로 위치를 알 수 있거든요.”
B급 헌터. 선우연.
헌터로서의 랭크도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하는 이 각성자는 보유 중인 스킬 또한 유용하기 짝이 없었다.
이 [서쳐] 스킬은 목표가 한반도 끝에 있어도, 심지어 게이트에 숨어도 찾아낼 수 있었기에.
“서쳐 스킬로 범죄자를 추적하는 게 제 주 업무입니다.”
김기려는 이를 듣고 침묵하더니 한참 뒤에서야 작게 말했다.
“그럼 저희가 처음 만났을 때…….”
“네. 스킬로 당신이 도망친 걸 확인했어요.”
김기려는 다시 입을 닫는다.
‘본인도 찔리지?’
이 반응을 보니 역시 그가 뒤 꿍꿍이가 있다는 가설에 힘이 실린다.
비기너 킬러를 상대할 수 있는 신체 능력에, 협회 직원을 보면 도망가고, 목석같던 정하성을 직접 움직이게 만들기까지…….
이런 사람이 정말 단순한 F급에 불과하다고?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네.’
선우연은 기분이 찝찝했다.
그를 의심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계속 고민됐다.
그런데 그때였다.
“음?”
턱.
김기려가 갑자기 제자리에 멈춰 섰다.
덕분에 선우연도 덩달아 발걸음을 멈췄는데, 무슨 이유인가 했더니….
‘개? 아니, 잘 보니 너구리네.’
김기려의 시선 끝에 무언가가 있다.
길 한복판에 쭉 뻗어 누워있는 짐승의 형상.
저건 야생동물의 사체다.
오토바이, 혹은 자동차 같은 것에 밟혀 죽은 걸로 보였다.
“으, 뭐야. 더럽게.”
맞은편 골목에서 걸어오던 학생은 훼손된 사체를 보더니 질겁하며 옆으로 비껴간다.
흔한 반응이다.
선우연은 이 너구리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지만, 저 학생과 마찬가지로 조용히 길을 지나갈 생각이었다.
“뭐 하시는 거죠?”
하지만.
김기려는 성큼성큼 사체가 있는 곳으로 걸었다.
그러고는 허리를 숙이더니, 모두가 무시하던 동물을 들며 작게 말했다.
“이런 귀한 것이 길바닥에 함부로……. 아깝게.”
아깝게?
‘안타깝게’라고 말한 걸 잘못 들은 거겠지. 선우연은 짧게 정정하고 그를 말리기 시작했다.
“기, 김기려 헌터님. 아무래도 죽은 지 꽤 된 것 같은데 그렇게 만지면 위생상…….”
분해가 시작된 주검은 흉측하고 불결하다.
그래서 보통은 선뜻 만지지 않고, 오물 보듯이 쳐다보며 피해 간다.
하지만 김기려는 그 사체를 아무렇지도 않게 품에 안아 들었다.
“더러운 건 씻으면 그만이죠.”
망설임이 없는 목소리…….
“그럼 전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어, 네?”
“이 골목으로 꺾으면 바로 집이거든요. 다 왔네요.”
선우연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상대의 말을 듣고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마따나 목적지에는 이미 도착한 지 오래였다.
“조, 조심히 가세요.”
김기려는 그렇게 죽은 포유동물과 함께 근처 골목으로 들어갔다.
선우연은 멀어지는 그의 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조용히 생각했다.
‘데려가서 묻어주려는 거구나.’
길에서 만난 생물의 주검을 외면하지 않고 거두는 사람.
김기려의 이 행동은 선우연의 뇌리에 강렬한 흔적을 남겼다.
‘따뜻한 면도 있네.’
만약 이 B급 헌터에게 생각을 읽는 스킬이 있었더라면, 감상이 제법 달랐을 텐데 말이다.
사실 김기려의 실제 속마음은 이런 분위기였다.
‘이게 웬 떡이냐! 지구는 이게 좋아. 생물 샘플이 여기저기에 널려있네!’
김기려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전공 마법은 골렘 관련 마법.
그리고 그의 고향에서는 골렘의 재료가 크게 2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암석과 금속으로 하나씩 조립한 ‘무기 골렘’.
나머지가 바로 신이 내린 골렘 재료, 동물의 사체를 이용한 ‘유기 골렘’.
‘마력 증폭제를 완성하면 여기에 먼저 마법을 시도해보자.’
쉽게 말해 그는 상태가 좋은 실험체가 버려져 있길래 챙긴 것이다.
실험을 마치고 나면 지구의 윤리대로 껍질의 장례까지 치러줄 예정이었으니. 외로이 길에서 식어가던 너구리에게도 그편이 더 나은 결말이지 않겠는가?
어쩌면 김기려가 검소한 성격일지도 모른다는, 그 추측 하나 정도는 진실일 수도 있겠다.
***
“그 소식 알아?”
“무슨 소식?”
“저번 주에 마탑 길드 미로를 깬 사람이 나왔대.”
“아, 진짜? 통과자는 누군데?”
“몰라! 유명한 사람은 아니래.”
“그 미로 △△△ 헌터도 포기하고 나왔었잖아. 어떻게 깼냐. 미쳤네.”
현대는 정보화 사회다.
정보의 생산과 유통이 곧 금전 가치로 이어진다.
이는 헌터 업계에서도 예외가 없었기에, 그들은 언제나 소식에 민감했지.
새로운 게이트, 새로운 아이템, 새로운 스킬…….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니는 것은 바로 인적 자원에 대한 정보라.
“이봐, 김 실장. 아까 연락받았지? 엊그제 어떤 F급 헌터가 재검사를 했다는데 이게 아주 물건이야.”
“아, 네. 분석 스킬 사용자가 간만에 나왔다죠.”
“하여간 협회에 사람 심어두길 잘했어.”
서울의 일각에서 작은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안윤승을 A급 골렘에게서 구해줬던 것은 워낙 국소적인 사건이고, 피해자 본인도 인터뷰 뒤로 잠잠히 있었으니 파급력이 크지 않았지만…….
어느 날.
정하성을 기절시켰다는 거짓말을 한 업보.
그리고 탑의 미로를 최초로 클리어했다는 목격담이 뒤섞이고야 말았다.
악랄하기로 유명한 마탑의 시련을 훤히 꿰뚫고, 상위 각성자의 약점까지 파악하는 F급 헌터가 있다더라!
소문이 이 지경까지 발전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는 나비 효과였다.
심지어 김기려는 각성 재검사 이틀 뒤.
각성자는 협회에 보유 중인 스킬을 보고해두면 활동이 편하다는 인터넷 글을 보고 이를 실천하기에 이르렀으니.
“고급 분석 스킬을 각성한 F급 헌터라.”
결국 몇몇 사람들만 공유하던 이 작은 뜬소문은, 한 단체의 귀에 들어가게 됐다.
그 단체가 누구냐면…….
***
철컹, 철컹, 철컹.
녹슨 차고용 셔터를 닫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나는 어둠 속에서 몸을 움직이려 해봤다.
그러나 나의 손발은 얇고 튼튼한 케이블 타이에 묶여 발버둥칠수록 살갗만 쓸릴 뿐이었다.
손목에서 피가 흐른다.
비릿한 쇳내가 코를 간질였다. 하지만 이것은 혈액의 냄새가 아니다.
‘내가 묶여 있는 의자랑 똑같은 게 방에 한가득 있나 보군. 철제 의자.’
우선 결론부터 말하겠다.
“후…….”
나는 납치당했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됐더라?
나는 끌려오기 전부터 지금까지 벌어진 일을 천천히 되짚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