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6
24화. 납치
재검사를 마친 다음 날 오후.
밤 10시. 김기려의 원룸.
“뭐지? 배합이 잘 안 되네? 습도 때문에 그런가?”
당시의 나는 마력 증폭제 제조에 한창이었다.
드디어 재료를 모두 모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도구도 없이 농도를 맞추려니 골 아프네.”
하지만 열악한 환경이다 보니 진행은 지지부진했다.
“아무리 김기려가 F급의 마력이라 해도 마법은 일단 되찾아야 할 텐데.”
거듭되는 실패에 집중력이 떨어졌다.
게다가 어디 이뿐이랴.
-띠리링♪ 띠리리링♬
“아오! 어떤 미친놈이 이 시간까지 전화질이야!”
이 빌어먹을 휴대전화는 오전 9시부터 정말이지 끊이지 않고 울어댔다.
왜냐고?
【 지식Ing 】
[Q. 각성 검사를 마치면 뭐부터 해야 하나요?] [A. 헌터증 발급되셨으면 협회 쪽에서 스킬 검증을 받으세요. 프로필에 보유 중인 스킬을 명시해두면 일할 때 편합니다.]나는 인터넷을 하다 발견한 어느 글을 보고 김기려의 헌터 프로필에 ‘감정’ 스킬을 추가했는데.
알고 보니 이 프로필은 외부인에게도 자유로이 공개되는 정보였던지라.
“제길!”
나는 무심결에 등록한 정보 덕분에 현재 각종 기업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 중이었다.
그것도 종일 말이다.
“이젠 대꾸하기도 귀찮다.”
회사의 개로 사는 인생은 질렸거늘.
나는 걸려 온 전화를 곧바로 뚝 끊었다. 하지만 집중력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하아, 당 떨어져…….”
전화를 수십 통이나 받아서 그런지 유난히 지치고. 배도 고프고.
“식량을 공수해 와야겠어.”
그래서 나는 마력 증폭제의 제조를 미루고 밥이나 먹기로 했다.
지금 시간은 밤 10시.
하지만 영양분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지.
전국 곳곳에 24시 편의점이 있다니 지구인들은 역시 신인가?
‘오늘은 초콜릿이라는 걸 사 먹어봐야지.’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골목으로 나왔다.
주변은 캄캄했지만, 내 고향도 항상 이 정도로 어두웠기에 신경 쓰지 않고 걸었다.
“음?”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나는 편의점으로 가던 중 길목에 세워져 있던 검은 자동차를 스쳐 지나갔는데.
내가 옆을 지나가자마자 갑자기 그 자동차의 뒷문이 드르륵 열려서…….
이후의 일은 정신없이 빠르게 진행된 것 같다.
차에서 튀어나온 3명의 괴한이 나를 습격했다.
덩치가 큰 지구인이 뒤로 돌아와 목을 졸랐고, 나는 깜짝 놀라 저항하려 해봤지만….
“컥!”
경동맥을 옥죈 팔은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절대적인 힘의 차이다. 이 몸이 고작 F급 각성자였기 때문이다.
마법을 쓸 수 있었더라면 뭐가 좀 달랐을까?
아니, 그 괴한들은 척 봐도 D급은 되어 보이는 마력량이었다.
그러니 여기에 F급의 마법을 써봤자 고양이가 할퀴는 수준이었을 터.
“끄윽……!”
이다음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갑자기 눈앞이 새카맣게 물들고, 의식이 끊겼다.
기절한 것이다.
‘으악! 뇌에 가는 혈류가 멈추면 기절하는구나!’
차라리 마법으로 처맞았으면 버텼을 텐데.
환생 마법의 특성상 나는 지구에서 수면, 기절, 세뇌 등의 스킬에 저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이렇게 물리 공격으로 나오면 어쩔 도리가…….
마법사 간의 싸움에서 비겁하게 근력을 쓰다니!
“후우…….”
아니,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어쨌든 겨우 의식은 돌아왔는데 상황이 가관이다.
‘젠장, 여기가 어디지.’
정신을 차리니 나는 안대가 씌워진 상태였다.
게다가 몸은 철제 의자에 꽁꽁 묶여 꼼짝할 수 없었다.
이 행성은 정말 무서운 곳이었구나. 이런 흉흉한 일이 벌어질 줄이야.
‘대체 누가 이런 짓을?’
기려야, 너 혹시 살아 있을 때 원한이라도 사고 다녔니?
그런 생각을 할쯤이었다.
“저기 있는 놈이 그 F급이냐?”
“예에, 대기 타다가 잡아 왔습니다.”
“기한은 맞추겠네.”
근처에서 누군가가 대화하고 있다.
“그런데 진짜 F급이던?”
“일부러 D급 애들 써서 기습해봤는데 아주 찍소리도 못했습니다. 데려오기 쉽던데요.”
나는 귀를 기울였다.
“어디 부러트리고 온 건 아니지? 흠집 난 데 있으면 빨리 고쳐놔.”
“아유, 제가 일 하루 이틀 합니까.”
“F급이니까 조심해야지.”
철컹, 철컹, 철컹.
그런데 잠깐. 대화 중이던 그들 목소리 사이로 돌연 요란한 소리가 났다.
철제 셔터가 올라가는 소리였다.
“아! 큰형님 오셨습니까!”
이 방으로 사람이 한 명 더 들어온 것 같다.
아니, 두 명… 인가?
“다들 인사해라. 여기는 우리 VIP분이시다.”
“안녕하십니까!”
“이따가 VIP께서 상품을 직접 보신다니까. 너희는 지금 바로 가서 준비해.”
안대로 시야가 가려져 있으니 상황을 유추하기 어렵다.
그래도 나는 묵묵히 그들의 대화를 훔쳐 듣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소름이 쭉 끼쳤다.
“…저기 묶어둔 녀석, 일어나 있는데?”
VIP라는 사람이 내가 기절한 척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가 사실을 지적하자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곧이어 묵직한 구둣발 소리가 가까워졌다.
나는 쥐 죽은 듯 숨을 삼켰다.
“이 안대 벗겨봐.”
코앞으로 다가온 누군가.
그의 명령이 떨어지니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이 풀렸다.
“넌 자는 척 그만하고.”
그가 잔잔한 위협을 해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감았던 눈을 떴다.
그러자 보이는 풍경은, 누군가가 의자에 거꾸로 앉아 있는 모습.
VIP는 의자의 등받이 부분에 팔을 괸 채 말한다.
“안녕.”
나는 VIP의 정체를 확인하고 눈을 크게 떴다.
“오랜만이야. 그나저나 이거 놀랍네. 솔직히 김기려 헌터같은 사람을 이런 곳에서 다 볼 줄은 몰랐는데.”
그래. 내 앞에 있는 것은 바로 한국의 S급 각성자 강창호였다.
이런 미친.
‘강창호라고?’
이쪽이 뭐라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전에, 상대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갑자기 끌려와서 뭐가 뭔지 모르겠어? 내가 좀 설명해줄까?”
그는 꽁꽁 묶여있는 내 꼬락서니를 훑더니 입꼬리를 비죽 올린다.
“요즘 업계에 소문이 자자해. 마탑의 미로를 분석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감정 스킬을 가진 헌터가 나타났다고.”
“….”
“그런데 문제는 그 감정사의 각성 등급이 F라는 건데.”
강창호는 어느 하급 헌터를 쭉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힘없는 놈이 주제에 안 맞게 고급 스킬을 가지고 있으면 가끔 범죄의 표적이 되곤 하지. 그러게 평소에 조심하지 그랬어.”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주변을 슬쩍 살폈다. 자세히 보니 여긴 웬 폐건물 안이었다.
천장에 걸린 깨진 조명은 위태로워 보였다.
“절 어떻게 하려는 거죠?”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강창호가 목을 울리며 잠깐 고민하더니, 곧 답해줬다.
“팔려고 하는 거지.”
“…!”
“이 세상에는 자기가 가진 장비 성능을 숨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 물론 그러려면 개인 감정사를 둬야 하는데….”
“….”
“뭐, 알잖아. 감정사들 계약금이 만만치 않은 거.”
“납치해오면 좀 저렴한가 보죠?”
“특히 유지비 쪽이.”
결국은 돈, 돈 때문이군.
이제야 알았다. 여긴 각성자를 인신매매하는 범죄 조직인 것 같다.
나는 몸값은 어마어마하게 높은 데 반해, 스스로를 지킬 힘은 없는 F급이어서 노려졌고 말이다.
“그리고 D급 이하는 세뇌 내성이 낮아서 써먹기가 좋아.”
약자를 세뇌해 노예로 부린다라. 이건 내 고향에서도 있던 범죄라 놀랍진 않지.
“나도 여기에서 각성자를 사봐서 아는데, 일단 세뇌해두면 배신할 걱정이 없으니 편하더라고.”
하지만 이건 좀 경악스러웠다.
어쩐지 여기 사람들이 강창호를 VIP라고 부르더라니. 이미 여러 번 상품을 이용한 우수 고객이셨냐.
“저기…. 강창호 씨, 이렇게 만났으니 혹시나 하고 드리는 말이지만, 절 도와주실 생각은?”
나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도움을 요청해봤다.
“음, 내가 김기려 헌터를 왜 도와야 하지? 난 지금 이 자리를 손님으로 온 거야.”
물론 돌아온 대답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게다가 마침 잘됐어. 슬슬 전용 감정사를 둘까 했는데. 감정사 매물은 항상 귀하거든.”
S급 헌터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창호가 움직이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지구인들은 VIP님, VIP님 하면서 그를 상전 모시듯 데려간다.
X발.
‘이딴 곳에 환생하지 말걸.’
흑흑.
하지만 이 방에 남아 있는 납치범들은 내게 슬퍼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이봐, 애들이 다음 물건 들여왔다니까. 그 F급은 이제 위층으로 옮겨놔.”
“예!”
“넵!”
나는 이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벌벌 떨었는데, 그런 와중 후각에 기이한 신호가 와닿았다.
-찰그랑.
“잠깐, 그 아이템은 조심히 다뤄! 향이 새고 있잖아. 야, 다들 절대 들이키지 마!”
꽃밭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달콤한 냄새.
그 향이 콧잔등을 간질일 때쯤. 나는 납치범들에 의해 또 다른 방으로 옮겨졌다.
이번에 도착한 방은 좁고 퀴퀴한 창고였다.
***
텅.
가스마스크를 쓴 조직원들이 김기려의 몸을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그들은 들고 있던 향로를 구석에 내려놓고, 빠르게 방을 나갔다.
텅.
다시 육중한 철문이 닫혔다.
방 한쪽을 차지한 저 황금색 향로는 다름 아닌 마도구였다.
C급 게이트에서 습득한 수면 아이템이지만, 효과가 우수해 B급 각성자마저도 재울 수 있다나.
‘갔군.’
그런데 문제는, 이 향로가 어떤 대마도사에게만큼은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
‘굳이 여기로 옮긴 걸 보면 당장 팔려 가는 건 아닌 듯하고.’
나는 두 눈을 번쩍 떴다.
멍청한 녀석들. 내가 잠든 줄 알고 안대조차 다시 씌우지 않았군.
“이익…!”
일단 이 구속부터 어떻게 해야겠다.
나는 낑낑대며 묶인 손을 풀려 했다. 하지만 김기려의 나약한 힘으로는 도저히 케이블 타이를 끊을 수 없었다.
‘젠장.’
다른 수단을 쓰자.
나는 신발 끈을 풀었다. 그리고 끈을 늘어트려 손목 안쪽을 통과하도록 묶었다.
‘도와줘, 마찰열!’
그 뒤에는 팔을 움직여 신발 끈과 케이블 타이를 미친 듯이 비볐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필사적인 모습이나 다행히 보기보다 효과는 있었지.
‘아!’
툭.
드디어 케이블 타이가 끊어졌다.
나는 손이 자유로워지자마자 발의 구속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우, 이제 어쩌지?’
정리해보자.
나는 인신매매 조직에 납치됐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어떤 마법도 쓸 수 없는 상태. 즉, 전투력이 개미 정도라는 건데.
‘도망쳐야 해.’
아무리 세뇌에 면역이 있다고 해도 이런 상태로 이상한 곳에 팔려 가면…….
위험하겠지. 그런 미래를 상상하니 얼굴이 절로 새파랗게 물든다.
이대로 여기 있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고.
‘우선 경찰에 신고해둘까?’
나는 자연스럽게 손을 주머니로 뻗었다.
‘윽, 휴대폰이 없어!’
하지만 주머니는 텅 비어있었다.
그래. 납치 피해자의 소지품을 남겨둘 리 없지. 결국 정면 돌파뿐이군.
‘골목에 죽치고 앉아 있던 걸 보면 추적 마법은 못 쓰는 술사들이야. 이 건물을 빠져나가서 어딘가에 숨어버리면 내게도 승산이 있어.’
그런데 그때.
탈출 계획을 짜던 중, 문득 어떤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부터 구석에서 달달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저 향로 말이다.
“음.”
연꽃 모양으로 조각된 금장 향로라.
그것의 꼭대기에는 손에 쥐기 좋은 기다란 체인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나는 주변을 눈치 보다 향로를 슬쩍 들었다.
“도둑질은 취향이 아니지만.”
뭐,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니까…….
탕!
“뭐야?”
“어?”
철제문이 돌연 안에서 밖으로 열린다.
밖에 서 있던 경비들은 이 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았으나. 이어진 상황은 대처하지 못했다.
안면에 연기를 내뿜는 물체가 내던져졌기 때문이다.
“으헉!”
깡! 금속 향로의 빈 공간에서 맑은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소리가 멀어짐과 동시에 복도의 경비들은 스르르 잠에 빠졌다.
“효과 좋네.”
그러게 조금 불편하다고 마스크를 벗고 있진 말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