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33
31화. 초보 사냥꾼 (2)
간혹 그런 이들이 있다.
위험하고 사나운 마수를 상대하길 포기하고, 보다 쉬운 먹잇감을 향해 눈을 돌린 사냥꾼이.
업계의 은어로는 이들을 ‘개구리’라고 불렀다.
자신보다 몸집이 작다면, 동족이라 할지라도 입을 쩍 벌려 잡아먹는 꼴이라니…….
“장소는 역시 그 게이트로 할까요? 입구에 CCTV도 없고.”
“그래. 그러자.”
“김기려는 내가 유인할게요.”
이들을 가리키기에 딱 좋은 호칭이 아닌가. 개구리.
“팔찌 말고 더 털어먹을 게 있었으면 좋겠는데, 워낙 차림이 거지꼴이라 별 기대도 안 되네.”
이 개구리들은 주로 하급 각성자를 노려 범죄를 저질렀다.
초보 헌터들은 아직 게이트에 익숙하지 않아 목숨을 지키려고 보호 장비에 과투자하는 경향이 있는데.
대출을 끌어모아 장비를 샀다고 해도 어차피 본인은 햇병아리 헌터.
베테랑 앞에서는 그것이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였다.
“뭐 어때요. 그 팔찌 하나만 팔아도 당분간 놀고먹어도 될걸요.”
게다가 더욱 악질적인 부분은, 이들은 단순히 금품 갈취만을 목적에 두지 않는다는 것.
“어쨌든, 3주 만의 일감이니 제대로 준비하자고요.”
같은 인간을 사냥하기로 마음먹은 이들이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질 리는 없었으니.
헌터계의 동족 포식자들은 높은 비율이 쾌락 살인마였다.
김기려는 하필 이런 헌터들의 눈에 띈 것이다.
“어디 보자. 팔찌의 능력이 발동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우선 기절 아이템이 필요하고…….”
재현은 벌써 신이 났는지 중얼거리며 계획을 세웠다.
이런 재현을 보던 팀의 리더는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야, 그런데 재현이 너 옛날에 그 헌터랑 팀 짠 적 있댔지.”
“예? 예에.”
“어떤 놈이었냐? 뭐 다른 주의할 점은 없어?”
그러자 질문을 받은 남자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주의할 점?
“푸하하하! 말도 마요. 저거, 작년에 F급 게이트에서 꼬리 말고 도망갔었다니까요? 내가 아는 헌터 중에 제일 약해요!”
***
다음 날.
‘재현을 보면 뭔가 떠오를 듯 말 듯 해.’
띠링♪
심경이 복잡한 와중. 문자 메시지 도착음이 울린다.
나는 휴대전화의 잠금을 열어 메시지에 답장했다.
“아이고! 이렇게 일찍 나와계셨어요?”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얼굴들이 도착했다.
어제 만났던 그 헌터 팀이다.
“정말 페이는 어제랑 똑같이 쳐주시는 거 맞죠?”
“어우, 물론이죠. 빳빳하게 새 지폐로 뽑아왔습니다. 하하.”
그럼, 인원도 다 모였겠다 슬슬 일을 시작해야지.
나는 그들의 안내에 따라 한 게이트에 도착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
비좁은 골목 어귀에 발생한 F급 블루 게이트. 이곳이 오늘의 일터였다.
‘여기는 보스가 2마리나 된댔지?’
일반적으로 게이트는 보스를 처치하면 사라진다.
그런데 이 현상에는 작은 규칙이 있었다. 바로, 안에 산 사람이 있으면 게이트 붕괴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여유가 생기면 게이트도 제대로 조사해보고 싶어.’
나는 지구의 문물을 신기하게 쳐다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호기심은 나중에 채우고 일단은 업무부터 집중해야지.
‘짐꾼 일만으로도 이렇게 벌 수 있다면 굳이 착한 안윤승을 등쳐먹을 필요가 없겠어.’
나는 기쁜 마음으로 배낭을 고쳐 메고 게이트 안으로 향했다.
겁쟁이 김기려와는 달리 듬직하기 짝이 없는 헌터들의 등을 따라서 앞으로.
앞으로, 그리고 또 앞으로.
“기분 탓인가? 이 길은 아까 왔던 곳 아니에요?”
정신없이 나아가다 보니 어느덧 우리 일행은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
아무래도 동굴 구조다 보니 이래저래 갈림길이 많아서 방향을 잃은 것 같은데.
“봐요. 아까 잡았던 몬스터 사체도 그대로 남아 있고. 역시 길을 잘못 든 거 같은데요.”
“…….”
“혹시 길 찾기 스킬 있으신 분?”
나는 짧은 질문을 던지며 주변을 둘러봤다.
동굴의 내부는 구불구불하고 붉은빛이 돌아서 마치 살아있는 짐승의 식도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기려 씨, 그런 건 필요 없어요. 길은 맞게 찾아왔으니까.”
“네?”
그런데 그 순간.
앞장서던 D급 헌터가 돌연 걸음을 멈추더니, 나를 돌아보며 씩 웃기 시작했다.
“아니, 막다른 길인데 맞게 왔다니 무슨 소리…….”
이 직후 느껴지는 것은 무언가 깨지는 파열음.
그리고 훅 끼치는 식초 냄새.
“악!”
쨍그랑! 곧이어 누군가가 던진 유리병이 머리에 부딪혀 실없이 부서진다.
나는 덕분에 영문도 모르고 이상한 물약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콜록, 콜록!”
“너무 걱정하지 마쇼. 푹 자고 일어나면 다 끝나있을 테니까.”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같은 헌터인데 어째서 공격하는 거야.
지구인들은 동족 폭행 패티시라도 있는 거냐.
“이야, 형님. 저 자식 잘 버티네요?”
“제깟 게 그래 봤자지. 이 기절약 한 방이면 F급은 5초 안에 끝이라고.”
그런데 이 사람들 뭔가 착각한 것 같다.
나는 이 물약의 독한 냄새가 싫었던 것뿐이지. 졸음이나 기절을 참느라 몸부림치는 게 아니니까.
“…5초 지난 것 같은데요?”
“어?”
몇 초 뒤.
그들도 무언가 이상한 걸 깨달았는지 하나둘 표정을 굳히기 시작했다.
‘어디서 이딴 열등한 마도구를!’
이쪽은 기본적으로 완벽한 기절 마법 내성을 가진다.
나는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그런 내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이것이었다.
“X발!”
“야, 야, 야! 도망간다. 잡아!”
“저 새끼 못 뛴다며!”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 싶을 땐 튀는 게 상책이지.
나는 이를 악물고 전력 질주했다.
줄곧 메고 있던 짐가방은 던져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쪽은 곧 발목이 묶이게 되어…….
“끄악!”
휘리릭, 어디선가 튀어나온 푸른 덩굴이 다리를 매섭게 잡아챘다. 식물을 다루는 술사라면 분명 그가 아닌가.
“김재현, 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순식간에 시야가 거꾸로 뒤집힌다.
나는 재현이 쓴 스킬에 의해 공중에 매달렸다.
“아니, 작년까지만 해도 다리를 절고 다니더니 어떻게 고쳤죠?”
“지금 그딴 게 중요해? 나한테 왜 이러냐고!”
“하, 씨. 이거 어쩌지.”
저 오만상을 쓴 얼굴을 보니 뭔가 계획이 틀어진 모양이다.
“대체 왜 기절하지 않는 건데?”
“몰라요. 탈탈 털어도 아이템은 팔찌밖에 안 보인다고요.”
“야, 일단 내려. 혹시 모르니까.”
이젠 설상가상으로 D급 헌터까지 가세했다.
내가 든든하다고 생각했던 그 팀장은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로 명령했다.
“이 F급 새끼야.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또 도망치려 하면 이빨부터 하나하나 뽑아 죽여버린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도끼에 협박당할 날이 올 줄이야.
“마, 마, 말로 합시다. 말로.”
나는 목젖에 드리운 도끼날을 흘긋 보며 두 손을 바짝 올렸다.
제길.
‘뭐야, 내가 손을 올리면 지구인들의 시선도 따라오네. 어딜 쳐다보고 있는 거야?’
그리고 이 순간이 되어서야 대략적인 상황이 보이기 시작했다.
‘설마…….’
그들의 시선이 아까부터 내 손목에 고정된 게 참 의심스러운데.
“지금 팔찌 때문에 이러는 거예요?”
역시나. 이 말을 꺼내자 그들은 정곡을 찔렸다는 듯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 무려 강도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날 기절시키려 했군. 이 아이템의 사용 횟수를 소모하지 않으려고……!’
그런데 이제 와서 밝히지만 이 팔찌의 능력은 별거 없는데.
대미지 2회 방어. 흔한 효과잖아.
“그래. 어떤 공격이든 한계 없이 막아주는 아이템인데 눈이 안 돌아가겠어?”
단지, 이 마도구가 잘하면 S급 몬스터의 공격마저 막아버릴 수 있다는 게 문제겠지만.
‘이런 미친.’
호신용으로 가지고 있던 장비가 도리어 위험을 불러오다니. 뭐 이딴 경우가!
‘지구에선 이 정도의 하급 마도구도 강도질의 대상이 되는 건가……!’
솔직히 팔찌를 넘기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이쪽도 운 좋게 얻었을 뿐이라 물건에 큰 집착이 없었거든.
장비를 줘서 일이 해결될 것 같았으면 얼마든지 그리했을 것이다.
‘으으으.’
하지만 상황을 봤을 때. 이미 교섭하기엔 늦은 듯했다.
‘이 자식들, 처음부터 날 살려 보내줄 생각이 없었구나.’
애초에 피해자를 왜 이런 게이트 깊숙한 곳까지 유인했겠어.
그들은 나를 죽이고 게이트 클로즈를 할 작정일 거다. 그럼 던전이 사라지며 시체도 자연스레 증거인멸이 될 테니.
“야! 김기려, 그 팔찌 당장 빼서 이쪽으로 넘겨!”
“내가 미쳤다고 주겠냐? 움직이지 마! 확 2번 다 써버리기 전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는 고래고래 소리치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이 강도 놈들이 눈치를 보면서 얼어붙었다. 그래. 당연히 손 하나 까딱할 수 없겠지.
‘날 조금만 건드려도 자칫하면 공격 판정이 날 테니까!’
이 마도구의 제한 횟수는 단 2번.
그걸 모두 소모하고 나면 단순한 액세서리로 돌아간다.
내 시선은 팔찌의 남은 효과 횟수를 표시하는 푸른 마정석 장식을 잠깐 훑다가 다시 정면을 향했다.
“야, 김재현. 이대로는 서로 아무것도 못 할 텐데 그냥 나 좀 놔주면 안 돼?”
“뭐?”
“살려주면 오늘 일은 절대 비밀로 할게. 어차피 나도 지금 크게 다치거나 한 게 아니잖아. 너희를 무슨 혐의로 신고하겠어?”
교착 상태가 이어지자 나는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설득을 시작했다.
하지만 큰 효과는 볼 수 없었다.
“개소리하고 있네. 나가기만 하면 바로 떠벌리고 다닐 거 누가 모를 줄 알아!”
‘티 났나?’
나는 화를 내는 팀 리더를 무시하며 조용히 머리를 굴렸다. 원래는 틈을 봐서 다시 도망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오, 됐다. 기절 하나 안 먹혔다고 일이 다 꼬였구먼. 야, 재현아.”
“왜요.”
“이번엔 포기해야겠다.”
D급 헌터는 갑자기 내 목에 겨누어져 있던 도끼날을 거두며 한숨을 푹 내쉬는데, 나는 드디어 이 상황에서 해방되는 건가 하고 잠시 생각했다.
그에게 얻어맞기 전까지는 말이다.
“F급 주제에 아이템을 쓰네 마네 하면서 간 보는 게 X같네. 진짜!”
뻑!
사람의 주먹과 얼굴 뼈가 맞부딪히는 살벌한 소리가 동굴을 울린다.
인내심이 바닥난 D급이 결국 날 공격했다. 그러더니 씩씩대며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겠는가.
“야, 써봐. 써 보라고 새끼야. 그 아이템 횟수 닳는 순간이 네 제삿날이니까!”
이어진 것은 무자비한 폭행이었다.
그 D급은 분풀이하듯 주먹을 휘둘러 내 어깨나 복부 등을 쳤는데, 그럴 때마다 뼈가 하나씩 부러졌다.
‘아야!’
이러다 맞아 죽겠는데.
“잠시만요! 드, 드리겠습니다! 알겠어요. 아이템을 드릴 테니 일단 멈춰봐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나는 다급히 소리쳤다. 그러자 D급 헌터가 행동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진작 그럴 것이지!”
“이야. 역시 매가 약이네.”
이게 F급의 현실인가.
폭력에 굴복하고, 조롱당하고, 하여간 힘이 없으니 서럽군.
“후…….”
아무래도 아까 머리를 맞았을 때 피부가 찢어진 모양인데, 나는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애써 무시하며 주섬주섬 팔찌를 만졌다.
이걸 넘기면 모든 게 끝난다.
‘아마 내 목숨도……!’
그런 순간이었다.
갑자기 동굴 너머에서 탁탁탁탁, 하는 사람 발소리가 흘러들기 시작했다.
“뛰는 소리?”
재현과 팀원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린다.
“누가 멋대로 들어온 거야?”
돈도 안 되는 F급 떨거지 게이트에 무단으로 침입할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데.
하지만 뒤이어 나타난 것은 정말이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다.
“뭐야, 저거.”
“안윤승? 그 안윤승이라고?”
A급 헌터 안윤승.
저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기, 기려 형? 이게 지금 무슨…….”
달려 나온 윤승은 깜짝 놀란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친 즉시 외쳤다.
“도와줘!”
그러고 보니 깜빡하고 있었네.
[(문자 메시지)] [윤승아, 오늘 약속 알지? F급 게이트는 시간도 얼마 안 걸린다니까 그냥 앞에서 기다려라] [넵!] [일 끝나면 바로 스킬 마저 봐줄게] [진짜 고마워요 형]나 오늘 일정이 2개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