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81
79화. 경매
아이템 박스 심부름도 끝냈고, 레드 게이트로 번 수익도 드디어 입금되었는데 더 이상 지체할 필요가 어디 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나는 오늘 쇼핑을 하러 나왔다.
‘여전히 엄청 깨끗하네.’
오래간만에 와본 헌터 마켓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횡으로 넓게 뻗은 구조의 신축 건물. 오가는 각성자들.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느껴지는 요술의 흔적.
외계의 마도학자에게는 이보다 흥미로울 장소가 없지.
‘흠.’
하지만 나는 입구의 매대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2층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살 물건을 미리 정해 뒀으니까.
‘강창호에게 저항할 때 쓸 마도구가 필요해.’
현재 내 통장에 있는 돈은 약 5400만 원.
물론 여기에는 마탑의 외부 감정 일로 벌어들인 금액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걸 고려하고서라도 정말 엄청난 수준 아닌가?
고작 5일 만에, 게다가 안윤승의 몫을 다 떼고도 수중에 이런 돈이 남다니!
‘고맙다. 얘들아!’
이 순간, 머릿속에서 다시금 사냥의 주역들이 떠오른다.
지난 5일간의 레드 게이트 공략은 안윤승과 어느 S급의 협업으로 일구어낸 결과였으니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강창호의 도움도 꽤 컸어.’
한국의 마지막 S급 헌터.
그놈이 안전장치가 되어준 덕분에 B급 게이트도 솔로로 도전할 수 있었다.
뭐, 하지만 그건 그거고.
‘살해 협박은 다른 문제야.’
강창호는 조금만 수틀려도 내 목을 꺾으려들 위험인물이었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이쪽도 어느 정도는 준비를 해야 할 터.
‘오.’
나는 여러 상점을 둘러본 끝에, 드디어 원하는 조건의 도구를 발견했다.
[파이로맨서 네크리스] [등급 : 레어] [효과 : 불꽃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내는 목걸이. 최대 C급에 달하는 공격을 할 수 있다.]깃들어 있는 마법도 적당하고.
가격도 좋고.
옳거니. 목걸이라면 몸에 지니고 다녀도 크게 이상하진 않겠군.
‘셔츠 안으로 넣으면 어찌저찌 숨겨지려나?’
나는 만족스럽게 가게의 직원을 호출했다.
“저기요. 이 파이로맨서 네크리스를 1개 사고 싶은데요.”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진열장에 있는 가격표를 밀려 읽은 모양이라.
“아~ 헌터님. 이 450만 원은 옆에 있는 칠흑의 반지 가격을 말하는 거고요. 목걸이의 가격은 아래쪽 카드입니다.”
이어서 직원은 부드러운 손길로 한 지점을 가리킨다.
[59,800,000]일, 십, 백, 천, 만…….
이런 젠장.
“고작 C급 화염 스킬 하나 흉내 내는 데에 6천만 원?”
나는 어이가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따지듯 외쳐버렸다.
그런데 돌아온 직원의 반응이 가관이었다.
“아이고, 헌터님. 이건 가격이 엄청 잘 나온 거예요. 동급 아이템 중에서는 오히려 가성비 갑이라니까요?”
“이딴 게……?”
“이런 거 하나 있으면 게이트에서 얼마나 편하겠어요. 물 속성이랑은 또 달라서 길도 밝힐 수 있고요.”
용량이 쥐꼬리만 해서 C급 불꽃 한 번 일으키면 24시간을 꼬박 충전해야 하는 이 고물 덩어리가 6천.
두통이 몰려온다.
아, 각오는 했지만, 설마 진짜 예산 초과일 줄이야.
‘전 재산을 내도 못 사…….’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은 가게도 샅샅이 돌았지만, 결국 그 목걸이 이상으로 적합한 것은 찾지 못했다.
“망할! 한시가 급한데 몇 푼이 모자란 것도 아니고.”
나는 힘없이 가게에서 나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이렇게 소란스럽진 않았는데. 갑자기 쇼핑몰 로비가 웅성웅성.
“음?”
소란의 원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그 인물은 멀리서 봐도 눈에 확 튀는 외양이었으니 말이다.
“꺄~ 에스더다!”
“사인해달라고 하면 해주려나?”
“야야, 같은 헌터끼리 사인은 좀!”
와인 색으로 물들인 머리카락과 몸의 실루엣이 드러나는 화려한 패턴의 원피스.
하지만 무엇보다도 확실한 신분 증명은 바로 저 방대한 마력이렷다.
‘아하, S급이 떠서 다들 이렇게 난리였구만.’
나는 한국마탑의 길드장을 발견했다.
그녀는 주변 헌터들에게 손을 흔들며 무빙워크를 내려오고 있었다.
‘아는 체를 해야 하려나?’
왠지는 모르겠지만, 에스더는 지난번 외부 감정 의뢰 이후로 종종 안부 연락을 해줬으니까.
나는 그 친절한 관심에 화답하기 위해 에스더에게 인사를 건네기로 했다.
S급의 압력 탓인지 생각보다 가까이 접근하는 헌터들은 없어서 거리도 금세 좁힐 수 있었고.
“안녕하세요. 에스더 씨.”
어느덧 우리는 정면으로 마주치게 된다.
“이런 곳에서 다 뵙네요. 아이템 맞추러 오셨어요?”
그런데…….
어쩐지 에스더의 반응이 상상한 것과 달랐다.
휙.
그녀는 내 인사를 듣자마자 웃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으니.
‘어라?’
이어서 에스더는 입을 삐죽거리며 대놓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이를 보고 마른침을 미친 듯이 삼켰다.
‘내, 내,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아니, 그치만 그동안 안부 문자에 답도 열심히 했는걸!’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인물이 이렇게 나오니 여간 당황스러운 일이 아닌데.
***
‘흥!’
에스더는 한동안 뾰로통해 있었다.
그리고 이 상황의 원인은 당연히 모 외계인이 제공했다.
[김기려 헌터님! 오늘은 뭐 해요~~? 설마 이 시간에 벌써 저녁 먹었다고 할 건 아니죠?ㅎㅎㅎ] [네 지금 지인이랑 돼지갈비 먹는 중]그래. 기려는 S급의 식사를 권유를 자그마치 3번이나 퇴짜 놓았으니까……!
물론 그도 거절하려고 마음먹고 그랬던 건 아니고, 정말 우연히 시간이 매번 안 맞았던 것이었지만.
‘오후 4시에 저녁을 처먹는다고?’
이를 모르는 에스더는 상대가 선을 긋고 있다고 느낄 뿐.
‘흥!’
그런데 사실, 그녀는 이러한 대우 자체에는 별 불만이 없었다.
저 각성자가 냉랭한 것이야 어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런 일로 혼자 일희일비해서 얻을 게 뭐가 있겠나.
‘나처럼 능력 있고 매력적이기까지 한 헌터가 밥 한 끼 먹자는데 통째로 무시하다니.’
서에스더는 입을 꾹 다물고 생각했다.
‘들이대는 타입은 취향이 아닌가 보구나!’
그렇다.
이게 그녀가 표정을 굳힌 진짜 이유였다.
그동안은 먼저 나서서 친분을 쌓으려고 노력했으나, 김기려는 이를 썩 달가워하지 않았으니까.
에스더는 이제 접근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그 F급과 일부러 거리를 둬 흥미를 끌려고 한 것이다.
“안녕하세요. 에스더 씨, 이런 곳에서 다 뵙네요. 아이템 맞추러 오셨어요?”
하지만 막상 본인과 마주치니 행동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어? 이, 이 남자가 먼저 인사하네?’
평소에는 말 한마디 붙이기 어렵던 사람이 선뜻 인사를 건네주니 왠지 좋기도 하고.
이걸 괜히 무시했다간 귀한 대화 기회만 날리는 거 아닌가 싶어진 상황.
“여, 여긴……. 잠깐 들른 것뿐이고, 사실은 경매장을 구경하러 왔어요.”
에스더는 결국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대답을 내놓게 됐다.
“드디어 [하양새]가 출품됐거든요!”
“하양새?”
“명색의 S급이 이동용 아이템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오늘은 경매에 참여하러 가요.”
헌터 랭킹의 이점이 무엇이던가.
에스더는 이래 봬도 자그마치 한국의 헌터 랭킹 2위에 서 있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협회로부터 다양한 혜택을 받는데.
“저는 적어도 이 한국에서는 이인자니까요. 입찰 우선협상대상자거든요.”
그중 하나가 바로 경매에 대한 여러 가지 우대 사항이었다.
원하는 경매에 무조건 참여할 수 있다든가, 수수료를 면제받는다든가.
“아하.”
기려는 그 이야기에 큰 관심을 보였다. 본인은 처음 듣는 시스템이었으니.
“경매장이라면 사거리 건너편에 있는 그 건물 말하는 거죠?”
이에 에스더는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당신은 F급이라 순위가 낮아서 경매하러 다녀보진 못했겠군요.”
아무래도 헌터의 순위 산정에는 등급 보정이 강하게 들어가는 모양인데.
“기려 씨, 그럼 이참에 저 따라서 경매장이나 같이 둘러보실래요?”
에스더는 별 기대 없이 가볍게 권유했다. 그래서 이런 반응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네.”
“음?”
“그래 주시면 저야 고맙죠.”
상대가 이렇게 시원스레 승낙하다니!
이건 기회였다. 김기려라는 헌터가 시간이 비어있다는 행운이 어디 두 번 찾아오겠는가?
“어머머, 진짜요?”
에스더는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벙글 웃으며 앞장섰다.
-♪~ ♬♩~
“아, 잠시 통화 좀 하겠습니다.”
“그러세요!”
게다가 웃을 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 직후 이어진 통화에서는, 입꼬리가 들썩일 정도의 희소식이 흘러나왔으니까.
‘아니, 네오 시스터즈 길드가 김기려를 로비에 6시간 버려두는 미친 짓거리를 했단 말이야?’
푸하하하하!
그녀는 최고의 기분으로 경매에 참여할 수 있었다.
***
“1억 8천, 1억 8천 받았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1억 9천오백, 2억, 2억 오백. 지금부터는 1천 단위로 올라갑니다.”
“2억 8천. 낙찰입니다.”
이내 도착한 경매소.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전문 경매사의 목소리가 울린다.
‘오호…….’
자리에 앉은 김기려는 이곳이 묘하게 영화관과 비슷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정면의 커다란 스크린. 어둑어둑한 조명. 의자만 딱딱하지 않았어도 정말 똑같았을 텐데.
‘스크린에 떠 있는 건 현재 입찰가와 상품의 간단한 정보인가?’
기려는 팔짱을 끼고 의자에 기대앉았다.
이 순간에도 경매사는 새로운 상품의 입찰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크게 흥미가 일진 않았다.
이쪽은 방금 막 단위가 전혀 다른 경매를 겪은 참이라.
“에스더 헌터, 그런데 아이템을 낙찰받으면 어디에서 교환하나요?”
“경매가 끝나는 대로 따로 안내 방송이 뜬답니다.”
김기려는 아까 겪었던 하양새 아이템의 경매를 잠시 떠올렸다.
-크윽! 51억!
-60억.
-66, 66억이요!
-70억.
-아악!
-으으…….
지난 경매는 그야말로 압살이었지.
에스더는 새로운 입찰자가 생길 때마다 수억 단위를 우습게 올리며 아이템의 소유권을 따냈으니.
‘길드장이라는 건 돈이 많구나.’
이 자리의 한 F급 헌터는 겉보기에는 냉혈한으로 비치기 십상이지만, 막상 머릿속을 열어보면 실없는 생각을 하기 일쑤였다.
‘몹시 부럽다.’
그렇게 김기려가 에스더의 재력을 시기할 즘이었을까.
“다음 상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어느덧 정면의 무대에 새로운 아이템이 올라왔다.
금장을 두른 양장본 책 한 권.
그 책이 등장하자마자 장내가 소란스러워진다.
“뭐야, ‘봉마서’네!”
“저게 나온다는 이야기는 없었잖아?”
“에이,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그걸 입찰하는 게 아니었는데……!”
게다가 요란을 떠는 것은 그 헌터들뿐만이 아니었다.
“저 물건, 어떻게 생각해요?”
에스더는 마지막 경매품이 공개되자 곧바로 직원의 조언을 구했다.
그녀는 경매에 참가할 때마다 항상 길드 감정사를 데리고 다녔으니.
“대박이에요! 레어급 [봉인된 마도서]라니. 오늘은 다른 큰손도 없으니 비교적 쉽게 가져가시겠는데요?”
동행한 전문 감정사의 말에 에스더는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마지막 아이템의 경매가 시작됐다.
“경매는 23억에서 시작해서 1천만 원씩 호가하겠습니다.”
경매사의 한 마디에 우수수 손을 드는 사람들.
매섭게 치솟는 입찰가.
하지만 에스더는 개미들이 얼마나 가격을 올려놓든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 자리에 한국마탑이라는 대형 길드의 자본력을 이길 사람은 없었으니까.
‘괜히 처음부터 가격 올려놓지 말고 어느 정도 열기가 식으면 그때 들어가야겠네.’
에스더는 발을 까딱거리며 여유를 즐기다, 한 박자 늦게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여기에서 마탑주의 입찰을 제지하는 인물이 있다.
턱.
“잠깐만요.”
김기려는 그녀가 손을 드는 걸 보자마자 조용히 말했다.
“입찰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