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89
87화. 기 싸움 (2)
“김기려, 뭐 하는 짓이야?”
“당신 정도 되는 사람이면 말 안 해도 알지 않나?”
나는 비좁은 발판 위에서 서슴없이 자세를 바꿨다.
“그럼 간단히 설명만. 남들은 우리 같은 각성자를 아주 단단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
“사실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각성자는 마력 통제가 조금만 미숙해도 내부 공격엔 취약해서….”
“….”
“안쪽을 노리면, 생각보단 쉽게 터지니까.”
참 신기한 일이다.
이런 저급 마도구 하나로 갑자기 대화의 흐름이 바뀔 줄이야.
“혹시 강창호 씨는 향상심이란 그 스킬의 살해 판단 기준이 정확히 뭔지 알고 있어요?”
이글이글.
순간, 귓가에 작열하는 태양과도 같은 마력이 모여든다.
이는 술자가 의식을 조금만 집중해도 곧바로 마법이 완성될 수 있다는 신호였다.
“일단 난 몰라요.”
“…….”
“하지만 진짜 기준이 어쨌든 간에, 이렇게 뇌랑 척수를 통째로 날려버리면 그보다 판정이 빠를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요컨대, 이쪽은 지금 저 S급에게 한 가지 협박을 하는 셈이다.
“강창호 헌터, 이래도 날 건드시려고?”
수틀리면 [향상심]이 발동되지 못하게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겠다는 충격 선언!
S급은 어이없다는 듯 반문했다.
“자길 죽이려 들면 자살해버리겠다고? 지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라고 생각해?”
그러나 강창호는 뒤이은 문장을 듣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말이 되지! 난 이 짓을 진짜 할 수 있으니까.”
“…!”
자.
이쯤에서 실용적인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
만약 본인이 동급의 마법사와 싸우게 됐다면, 승패를 판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속성? 지식량?
아쉽지만 전부 틀렸다.
의외로 술사 간의 싸움은 기세로 판가름 나곤 한다.
마법사는 생각보다 정신상태에 큰 영향을 받는 생물이라, 한쪽이 상대를 못 이길 것 같다고 여기는 순간 형세가 크게 기울거든.
그리고 이 자리에서 한 가지 확실히 밝혀두는데.
나는 이러한 술사 간의 기세 싸움에서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었다.
“이봐요.”
그래. 단 한 번도.
“강창호 헌터.”
나는 이윽고 돌변한 태도로 단언했다.
이 [파이로맨서 네크리스]를 사용하면 당신이 무슨 짓을 하든 내가 먼저 자결할 수 있으니, 괜한 생각 말라고.
“허세도 정도껏 부려. 그런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 리가…….”
이에 강창호는 처음으로 당황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는데, 나는 그의 반응에 싱겁게 웃어버렸다.
“허세?”
그야 이건 단순한 기세 싸움용 발언은 아니었으니까.
투둑, 투 두둑.
거대 거미의 발소리가 지척에서 들릴 무렵. 나는 팔짱을 낀 채로 허공을 올려다본다.
“창호 씨, 미안한데 나는 이 인생에 별 미련이 없어요.”
이어지는 것은 짧은 혼잣말.
“솔직히 이만하면 살 만큼 살았거든.”
“….”
“더러운 꼴도 많이 봤고(직장), 가장 바라던 일(퇴직)도 이미 이뤘고.”
“뭐?”
“물론 이대로 더 살 수만 있으면 정말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상대가 침묵하는 사이. 나는 자세를 반듯하게 하고 당당히 말했다.
“그래도 댁 같은 사람에게 휘둘려 다닐 바에야 죽는 게 낫지.”
이쪽이 문장을 이어나갈수록 S급의 얼굴은 점차 다양한 감정을 띤다.
충격.
난처.
놀람.
“허.”
끝에 이르러서는, 작은 감탄까지.
“하여튼 남의 스킬을 정 뺏고 싶거든 얌전히 계약 만료나 기다리십시다.”
“….”
“불필요한 간섭으로 괜히 일 틀어지게 하지 말고요.”
S급에게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상대가 무엇이 됐든 간에, 장장 10년이나 되는 시간을 고개 조아리며 살 생각이 없었다.
추호도 말이다.
“알아듣겠어요?”
그럼 이제 슬슬 상황을 정리할 시간이군.
나는 언제건 자해할 수 있게 준비하면서도, 평온함에 가까운 어조로 말했다.
“알아들었으면 옆에 기웃거리는 이 거미부터 좀 치우시지? 아까부터 짜증 나서 머리가 터질 것 같으니까.”
그러자 강창호는 무너진 길 너머를 한참이나 넋 놓고 보더니, 돌연 큰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강한 흥미가 서린 눈빛으로, 세차게 실소하는 것이다.
***
“…그래. 내가 졌어.”
이 녀석, 아무래도 정말 내 스킬이 탐나긴 하는 모양이다.
향상심을 무용지물로 만들 거라고 겁박하자 곧바로 사람이 고분고분해졌으니.
“앞으로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그러니 일단 그 목걸이 좀 내려놔.”
극적 타결이다.
강창호는 답지 않게 식은땀까지 흘리며 내 자해를 만류했다.
이쯤 되면 대체 이놈이 나를 무슨 스킬의 소유자로 생각하고 있는 건지 궁금할 지경인데.
‘에휴, 됐다. 캐묻기도 귀찮네. 어차피 뭘 상상하든 나는 그 마법을 쓸 줄 알 테고…….’
잘그락.
나는 흔쾌히 목걸이를 놓았다.
물론 별 의미는 없을 행동이었다.
어차피 이런 하급 마도구쯤은 발끝에 걸어놔도 완벽히 다룰 수 있으니까.
“대화로 잘 풀려서 다행이네요.”
강창호도 이를 어느 정도는 눈치챘는지. 그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묘한 반응을 보였다.
더 이상 이전 같은 공격성은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상대의 체격이 체격이다 보니 꽤 부담감이 드는군.
“음……. 강창호 헌터님, 물론 저도 일부분은 반성하고 있습니다.”
자폭 협박은 일종의 미봉책.
강창호가 미친 척하고 너 죽고 나 죽자며 달려들면 답이 없어지니. 나는 이쯤에서 적당히 물러났다.
“그쪽 입장에서는 확실히 계약자가 그런 장소에 가는 게 불안할 텐데.”
“하하.”
“역시 사과의 의미로 앞으로는 위험한 곳에 가게 되면 꼭 보고를…….”
잠깐.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강창호는 내가 게이트에 얼쩡거리는 것 자체를 싫어하잖아.
‘어?’
그렇다면 이참에, 헌터를 아예 때려치울 테니 저 녀석에게 30억 정도만 꿔달라고 해볼까?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치는 계획.
하지만 이 발상은 불과 몇 초 만에 폐기되고야 만다.
조금만 고민해봐도 뒤따를 부작용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갑자기 억 단위의 돈을 달라고 하면 이상해 보이겠지. 그걸로 뭘 할지에 대해 관심이 쏠릴 게 뻔해.’
이건 직감적인 건데.
왠지 저 지구인에게 내 목적이 신선한 폐라는 걸 들키면 안 될 것 같다는 기분이 강하게 든다.
나의 문제는 폐만 구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라. 당장 급하게 굴어서 크게 바뀔 게 없기도 하고…….
‘어쩌면 갈아탈 육신을 구하는 쪽이 더 성가실 수도 있어.’
맞아. 육체.
이후에는 김기려를 대체할 좋은 몸. 요컨대 최소 E급 이상의 사체를 구해야 하기도 하니.
역시 헌터라는 신분을 함부로 버리는 것도 좋은 생각은 아닌 듯했다.
‘이건 각성자의 죽음을 제법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직업이니까.’
그래서 나는 돈 문제만큼은 일단 혼자 해결해보기로 했다.
“이만 게이트는 나갈까요? 보스도 잡았고.”
“그래.”
“여기에서 얻은 아이템은 8:2로 넘겨주시는 거 맞죠? 아까 한 통화 녹음해뒀습니다.”
지금 같은 속도면, 어차피 목표액 달성이 그다지 오래 걸리지도 않을 테고 말이다.
***
촤르르르륵.
ATM 기계에서 지폐를 세는 소음이 흐른다.
덜컥.
그 소리가 끝났을 무렵에는 현금인출구 너머로 푸른 종이가 몇 장 튀어나왔지.
슥슥슥.
나는 기계에서 나온 지폐를 손으로 다시 한 장씩 센다. 그리고 그것을 지갑에 옮기며 생각했다.
“10만 원.”
오늘은 이걸로 뭘 사서 먹을까.
지난 7일은 그야말로 태풍 같은 한 주였다.
나찰사원을 잡겠다고 조폭들 소굴도 들어가 보고, 그것 때문에 S급 헌터랑 목숨을 건 다툼도 벌이고.
“휴우.”
그야말로 숨 가쁘게 살아온 나날.
하지만 이제 그것도 다 옛말이다. 나는 갖은 노력 끝에 드디어 모든 일정을 해치웠기에.
“이제야 좀 살겠네.”
최근 들어서는 안윤승의 스킬 훈련에만 간간이 어울려주는 실정이다.
그것도 매주 목요일에만 말이다. 다른 날은 윤승이가 회사에 따로 볼일이 있다나 뭐라나.
‘본격적으로 복귀를 준비하는 거겠지.’
돈줄… 이 아니라, 지구에서 사귄 첫 지인이 멀어져가는 걸 보니 마음 한쪽이 씁쓸하지만,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
나는 상념을 떨쳐내며 삼각김밥을 한 귀퉁이 물었다.
아, 그런데 지금 어디에서 식사하고 있는 거냐고?
“구구구구구.”
“이 행성은 조류가 왜 이렇게 흔한 거야…….”
시선을 흘긋 내리자, 발치에서 낯익은 생물이 눈을 마주쳐왔다.
그렇다. 나는 현재 서울의 한 공원에 나와 있다.
“그리고 이 행성 조류들은 왜 걸어 다니는 거지……?”
정확히는 벤치에 앉아서 삼각김밥과 탄산음료를 먹는 중이고.
“구룩, 구구구구구.”
“흠, 보다 보니 귀엽군.”
이 얼마나 평화롭고 좋은 시간인가.
솔직히 말하면 지난 한 주는 너무 무리한 감이 있었다. 자그마치 3일을 내내 밤샌 적도 있었으니.
‘아니, 이럴 거면 환생을 왜 했냐고.’
나는 늦게나마 초심을 찾기로 했다.
휴식. 이 쉬운 것이 전생에서는 어찌나 쟁취하기 어렵던지.
‘한동안은 쉬자.’
나는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평화로운 오후를 즐겼다.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
그리고 10일 뒤.
-촤르르르륵.
나는 지난 며칠간의 휴식 끝에 일종의 루틴이 생겼다.
아무래도 체크카드보다는 현금이 손에 익어서 말이다.
‘2만 원.’
아침에 일어나 하루 동안 쓸 금액을 인출하고. 그 돈으로 편의점에서 못 먹어본 종류의 삼각김밥을 사고.
예의 그 공원에 도착하면 언제나 앉던 벤치에 앉아 식사를.
최근에는 그저 이런 생활의 반복이었다.
-바삭.
하지만 나는 이 일상이 꽤 마음에 들었다. 먼 우주를 건너온 영혼에게는 아직 모든 게 흥미로웠으니까.
‘신기해.’
구름, 새, 푸른 초목.
나는 요즘 지구를 구경하는 것에 푹 빠져있었다. 어찌 보면 외계인다운 취미기도 했다.
‘음.’
그런데 이렇게 10일이나 같은 장소에 머무르다 보면 싫어도 외우게 되는 것들이 있단 말이지.
예를 들어, 이 근방에서 자주 보이는 비둘기의 부리 색 같은 거라든가.
옥상에 보이는 저 여자 같은 거.
‘오늘도 있네?’
벤치에 앉아 시선을 치들면, 항상 같은 풍경이 보인다.
어느 지구인은 11시만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저 건물의 옥상에 등장했으니.
‘자세까지 똑같아.’
잔 가닥이 부스스 나와 있는 동그란 올림머리.
각진 안경.
그리고 언제나 같은 흰 코트.
10일 동안 꼬박꼬박 얼굴을 봐서 그런지 이젠 왠지 모를 친밀감까지 드는데.
“흠.”
나는 삼각김밥의 마지막 한 입을 털어 넣으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내일도 나와 있으려나?’
…라고 떠올린 지 고작 3초가 지났는데 말이다.
“어?”
몇 초 뒤.
그 흰 코트의 인물이 갑자기 난간에 한쪽 발을 걸쳤다. 이것이 무얼 예고하는지는 안 봐도 뻔하다.
-덜컹.
“어어어?!”
이윽고 옥상에서 누군가가 투신을 시도했다.
사람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으악!”
그걸 보니 별안간 소름이 쭈뼛 돋았다.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했다.
물론 나는 이런 상태에서도 마법을 시전할 수 있는 수재이긴 하다마는…….
솔직히 결과에 자신이 없다.
김기려의 마력량은 F급에 불과하며, 상대는 너무 높은 곳에서 떨어졌기에.
휘이이이잉.
낙하 속도를 줄이기 위한 바람 마법이 시전된 직후.
나는 길 건너편의 건물로 황급히 달려갔다. 상대의 안위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허억, 헉.”
그나저나 대체 어디로 떨어진 건가 했더니…….
이제 보니 인근 화단에 웬 여자가 쥐죽은 듯이 누워있다. 그것도 흰 코트를 입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