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221
220화
-전장의 협곡(6)
일기당선(一騎當先), 말을 타고 누구보다 앞서서 달려 나갔고,
무외충봉(無畏衝鋒), 창끝을 찌르는데 두려움이 없었던 촉의 명장 조자룡.
스퀴라스 무리를 상대하는 나진의 모습은 몸 전체가 쓸개와 같아서 겁을 모른다는 그 조자룡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이현은 그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꿀벌 집에 쳐들어간 말벌 같은 모습이네.”
꿀벌의 벌집에 말벌이 침입하면 모든 꿀벌들이 나서서 말벌을 공격한다.
분명 먼저 공격해오는 건 스퀴라스 무리였다.
하지만 수십, 수백의 스퀴라스 무리를 상대로 무쌍의 공격을 보여주는 나진을 보니 이현은 한 마리의 말벌이 떠올랐다.
우아하고 강력한 장수말벌이.
“[화예소휘창-백화난만(百花爛漫)].”
마치 백 개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것마냥 역천강기의 빛이 사방에 혈화를 수놓았다.
순식간에 수십 마리의 스퀴라스가 쓰러졌지만, 스퀴라스닉 비스트가 쏟아내는 만큼 같은 수의 스퀴라스들이 다시 몰려왔다.
아직 화예소휘창의 성취가 높지 않은 나진이라 간혹 그녀의 창을 뚫고 몰려드는 스퀴라스들도 있었다.
“키에엑!”
하지만 그런 스퀴라스들의 공격은 허공을 계단마냥 사뿐하게 밟고 떠오르는 나진 앞에서는 허사로 돌아갔다.
그러곤 다시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 나진의 창날이 꽃잎의 비처럼 쏟아졌다.
“으아악! 그만하지 못해!”
나진이 스퀴라스들을 농락하고 있을 무렵, 마찬가지로 민아에게 농락당하던 우르자가 괴성을 질러댔다.
퉁! 퉁!
연이어서 쏟아지는 민아의 속성 마혈탄에 선조의 방패는 너덜너덜하게 박살 난 지 오래였다.
그뿐 아니라 질기고 단단한 오우거의 피부마저 곳곳이 타고 지져지고 찢어져 있었다.
우르자는 컨셉처럼 입에 달고 다니던 말투도 포기한 채 머리를 감싸 쥐고 스퀴라스닉 비스트의 뒤로 도망쳤다.
“이, 이, 이 쓰레기 같은 놈들!”
“꼴사나워.”
거대한 거미, 절망공의 뒤에서 고개만 내놓고 욕을 하는 우르자를 보며 민아가 키득거렸다.
그러곤 살짝 빠져나온 우르자의 미간에 용염탄을 한발 먹여주었다.
“크아아아악!”
뜨거운 불꽃과 열기가 우르자의 한쪽 눈을 태워 버렸다.
안구가 녹다 못해 끓어올라 주르륵 흘러나오자 우르자는 결국 이성의 끈을 놓았다.
“너희만큼은 용서 못 한다.”
우르자가 괴성을 지르며 목에 걸린 해골들을 하나씩 부수자 해골에서 모골이 송연해지는 귀곡성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가 얼마나 소름 끼치는지 민아나 나진은 물론 스퀴라스들마저 흠칫 움직임을 멈출 정도였다.
“다 미쳐 날뛰게 해주마!”
마지막 해골마저 부서뜨린 우르자가 하늘을 향해 양손을 펼쳤다.
“[피의 격노]!”
주술의 발동과 동시에 마치 그의 몸에서 빠져나온 피처럼, 붉은 기운이 양손에서 빠져나와 하늘로 솟구쳤다.
크라쉬에 육박할 정도로 거대한 오우거의 몸이 순식간에 미라처럼 말라 버렸다.
“개… 같은 인간들……, 모두 죽이는 것이와요…….”
털썩, 몸의 모든 정기를 빼앗긴 우르자, 아니 오우거 미라가 마지막 말을 남기고 뒤로 쓰러졌다.
그의 몸에서 나온 붉은 기운이 비처럼 가운뎃길 전장 전체에 내렸다.
[민아와 나진의 보스가 그의 종들에게 몸을 숨기라고 전합니다.]이현의 경고에 민아와 나진이 서둘러 몸을 피했다.
“민아야! 이리로 와!”
나진이 민아를 안아 들고 서둘러 날아올라 지붕처럼 그늘진 바위 밑으로 숨었다.
그 직후, 핏빛 기운이 무방비 상태의 스퀴라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퀘에에엑!”
“쿠키잇!”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핏빛 기운을 맞은 스퀴라스들의 몸집이 급격하게 커지면서 이전보다 1.5배나 불어났다.
거기에 눈이 붉어지고 송곳니와 엄니가 길게 자라나 입술 밖으로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키리릭!”
그 순간부터 수백 마리의 스퀴라스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우와 이건 진짜 무서운데.”
마치 약을 먹은 바퀴벌레 떼처럼 발광하며 달려드는 스퀴라스들을 보며 나진이 질린 얼굴을 했다.
민아도 그 모습을 보며 얼굴이 새파래졌다.
“언니, 뭔가 기분 나빠.”
하지만 그렇다고 싸우지 않을 수는 없었다.
민아가 악 불카누스를 들어 조준하고, 나진이 애각창을 들어 다시 뛰쳐나갈 준비를 했다.
[민아와 나진의 보스가 [은폐의 장막]을 자신의 종들에게 선사합니다.]이현의 메시지와 함께 [은폐의 장막]의 효과로 스퀴라스들로부터 민아와 나진의 몸이 숨겨졌다.
“삼촌?”
민아가 입을 더 열려고 했을 때 나진이 서둘러 민아의 입을 막고 손가락을 입에다 가져다 댔다.
그녀는 이현이 뭘 하려는 지 눈치를 챈 듯했다.
[민아와 나진의 보스가 그의 종들에게 작전을 실행할 때까지 모습을 숨기라고 조언합니다.]그들의 모습이 가려지자마자 목표를 잃은 스퀴라스들이 광분하기 시작했다.
“크큇큇!”
“키에엑키엑!”
피의 격노, 속칭 블러드레이지.
샤먼들이 쓸 수 있는 저주받은 주술이며, 이 술법에 걸린 이는 이성을 상실하고 오로지 파괴와 살해의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당연히 그 욕망 앞에 피아의 구분 따위는 없었다.
으드득!
결국, 광분한 스퀴라스가 동료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것을 시작으로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그중 겁 없는 몇몇 이들은 자신들의 탈것이었던 스퀴라스닉 비스트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딸깍- 딸깍-.
처음에는 당황하던 절망공 역시 피의 격노의 영향권 안에 들었던 터라, 곧 이성을 잃어버리고 스퀴라스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곧 가운뎃길은 동족상잔의 혈향으로 가득 채워졌다.
* * *
한편, 그 시각.
아랫길에서는 트롤 메이지와 에보니 고블린 라이더의 공세가 계속되고 있었다.
“저 마, 망할 갑옷만 없으면 사, 살을 벨 수 있는데.”
거대한 늑대의 등에 올라탄 고블린 라이더 기트라가 시미터를 혀로 핥으며 투덜댔다.
디르케의 황금갑옷에 번번이 막혀서 피 한 방울 묻지 않아 그가 원하는 맛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타가 또 혀 찰린다.”
거대 멧돼지의 등에 올라타 있는 트롤 메이지 예징야가 혀를 차며 기트라를 비난했다.
“저, 적의 피가 없으면, 내, 내 피라도 하, 핥을 거다.”
“기타려라. 곧 찬뜩 핥게 될 거다.”
예징야가 입에서 우물거리던 뼛조각들을 손바닥에 탁 뱉어냈다.
그러곤 마치 씨를 뿌리듯 그가 소환해 낸 늪으로 뿌렸다.
“일어나라.”
그러자 땅속에서 거대해진 뼛조각, 아니 뼈 칼날들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본 블레이드].”
대여섯 개의 뼈 칼날이 예징야가 휘두른 지팡이의 움직임을 따라 이아코스와 디르케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동시에 기트라도 늑대의 배를 걷어찼다.
“다, 달려, 이 머, 멍청한 늑대!”
콰드득!
디르케가 날아오는 뼈 칼날을 하르페 창으로 박살 내자마자 기트라의 시미터가 연이어 들이닥쳤다.
“해, 해냈다!”
이번에는 기어코 시미터가 갑옷의 틈을 파고들어 피를 본 모양이었다.
디르케가 순간 비틀거리고 기트라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제길.”
디르케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반격을 가하려 했지만, 이미 기트라와 그의 늑대는 저 멀리 도망친 후였다.
시미터에 베인 어깨의 상처가 쓰라려 왔다.
“적당히 해!”
이후로도 적들은 뼈 칼날로 정신을 분산시키고 돌격해 치고빠지는 작전을 반복했다.
덕분에 디르케의 몸에 점점 상처가 늘어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이현 역시 마력의 샘으로 보고 있었다.
“아레스의 황금 갑옷도 만능은 아니구나.”
전신을 감싸는 하데스의 퀴네에와는 달리, 황금 갑옷은 전형적인 그리스식 갑옷이었다.
즉, 어깨나 허벅지 등이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갑옷이 보호하고 있는 부분은 문제없이 시미터를 튕겨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은 디르케가 집중력을 잃어감에 따라 상처가 늘어났다.
이현은 서둘러 DP를 소모해서 아이템을 디르케에게 보냈다.
다행히 이미 있는 아이템을 주는 거라 DP 소모가 크지 않았다.
나진과 민아에게 사용한 [은폐의 장막] 효과는 생각보다 DP를 많이 잡아먹었다.
자신이 내려준 약으로 서둘러 상처를 치료하는 디르케를 보며 이현은 이아코스를 바라보았다.
“조금만 더 서둘러라, 이아코스.”
DP가 넘친다면 늪으로 진창이 되어 버린 전장을 헤쳐나갈 효과나 아이템을 주겠지만, 현재 그럴 DP는 이현에게 없었다.
때문에, 이현과 디르케는 이아코스의 권능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끝났나 봐요!”
티타니아가 마력의 샘에 비친 이아코스를 가리켰을 때,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는 그의 얼굴이 보였다.
“기다렸죠?”
등 뒤에서 들리는 이아코스의 미성에 디르케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 기다리다 답답해 죽는 줄 알았어.”
“걱정하지 말아요. 이제 날뛰게 해줄게요.”
이아코스는 거기까지 말한 뒤 양손에 들고 있던 솔방울 지팡이, 티르소스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나는 정화자일지니, 탁하고 삿된 것들로부터 그대는 다시 태어났도다.”
스킬과는 전혀 다른 신의 권능이 이아코스가 내려찍은 지팡이 끝에서 퍼져 나갔다.
디르케의 피와 늪에서 나는 고약한 썩은 내로 가득하던 아랫길 전장에 달큼한 술의 향기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커냐!”
“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이 머, 멍청한 마법사야!”
기트라와 예징야는 물론이고 그들이 타고 있던 늑대와 멧돼지도 당황해서 주춤거렸다.
티르소스에서 퍼져 나온 권능이 아랫길 전장을 가득 채우던 늪의 진흙과 뻘물을 모두 진하고 달콤한 포도주로 바꿔 버린 것이었다.
주신(酒神) 디오니소스가 가지던 권능이었다.
“명계의 왕비에게 전하거라, 디오니소스가 직접 그대를 해방시켜 줄 것이라고.”
이아코스의 말과 동시에 티르소스의 솔방울이 짤랑 흔들렸다.
그러자 늪지 가득 채워졌던 포도주에서 담쟁이덩굴이 자라나더니 포도주를 빨아들여 숨 막힐 정도의 주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탈콤한 냄시가 난다. 야캐진다…….”
“이, 이게 무슨 조, 조화지?!”
담쟁이덩굴이 뿜어내는 술의 향기에 취한 기트라와 예징야가 비틀대더니 늑대와 멧돼지에서 떨어져 내렸다.
늑대와 멧돼지도 취기가 올라오는지 고개를 연신 흔들어 대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게 신의 기적…….”
디르케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이아코스는 더러운 물을 깨끗한 술로 정화하고 담쟁이덩굴로 술의 향기를 퍼뜨려 적을 취하게 만들었다.
더 놀라운 건 그 향기가 디르케나 이아코스에게는 전혀 다가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제 디르케의 차례예요.”
이아코스가 디르케의 어깨를 툭툭 치며 눈을 찡긋거렸다.
디르케의 발목을 잡던 늪지는 담쟁이덩굴로 꽉꽉 메워져 평지나 다름없어졌다.
그리고 어느새 티르소스를 자그레우스의 활로 바꿔 든 이아코스를 지켜줄 필요도 사라졌다.
“그래, 이젠 내 차례지.”
디르케가 찌뿌둥했던 관절을 꺾어대며 몸을 풀었다.
[디르케의 보스가 그의 종에게 너무 날뛰지만 말아 달라고 부탁합니다.]“그건 힘들 것 같은데요, 보스?”
이젠 당했던 걸 갚아줄 차례였다.
술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기트라와 예징야에게로 그동안 억눌러왔던 디르케의 속도가 터져 나왔다.
“[돌진].”
서걱!
그 첫 번째 제물은 늪지대를 만들어 디르케의 발을 묶고 지겹게도 뼈 칼날을 날려 신경을 건드렸던 트롤 메이지 예징야의 목이었다.
* * *
“어떻게 되고 있지?”
“전반적으로 비등비등하네요.”
쇼구즈의 보고에 크라쉬의 목에서 심기 불편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왜지?”
“왜겠어요? 티타니아 선배가 있는 던전인데 당연히 보통 이상은 하겠죠.”
쇼구즈가 몸을 꾸물렁대며 키득거렸다.
“윗길은 접전 중이고, 가운뎃길은 우리가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네요. 아랫길은 불리한 상황입니다.”
판정상 일대일. 쇼구즈의 말대로 비등비등한 상황이었다.
그 말을 들은 크라쉬가 마력의 샘 근처 바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마음에 안 든다. 내가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