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282
281화
-결전 준비(1)
“고블린들은?”
“전부 들어왔어요. 소수의 인원이 남아서 수색 작업을 계속하는 중이래요.”
“던전에 들어온 고블린들 모두 여기로 데려와.”
“네!”
티타니아가 이현의 명령을 받아서 던전 게이트로 포로롱 날아갔다.
“송아야, 훈련 중인 공원 사람들이랑 코에스몰 사람들도 여기로 불러줘.”
“알겠어요.”
“리코스! 디르케! 사우레노르 전부 집결시켜 둬!”
“알겠습니다.”
총관이 떠나고 나자 이현은 분주해졌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만반의 준비를 해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인님! 데려왔어요.”
고블린 수백 명이 던전의 환경에 반은 놀란 채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몬스터들을 보며 반은 겁먹은 채로 이현의 앞으로 모였다.
이현은 고개를 들어 고블린 피난민들을 세심히 살폈다.
일반 피난민이 절반이었고 남은 절반의 반은 부상자고 반은 피로에 지친 갱단원이었다.
특히 벌레 신의 권속이 내뿜는 사기를 뚫고 피난민을 구출한 갱단원들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현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래선 당장 전력으로 쓰기 힘들겠는데.’
아쉽지 않을 리가 없었지만, 그들을 구한 목적은 전투가 아니라 시설 건설이었다며 이현은 자신을 달랬다.
“티타니아, 일단 지친 고블린들한테 넥타르랑 암브로시아 섞은 것 좀 먹여. 그러면 다들 회복이 좀 되겠지.”
“아까운데……. 별수 없죠.”
본인 먹을 것도 없다며 티타니아가 구시렁대며 넥타르를 가지러 날아갔다.
이현은 릭과 패트릭을 불렀다.
“너희에겐 부탁할 게 있어.”
“뭔가요, 보스?”
어느새 자연스럽게 이현에게 보스 대접을 해주는 릭이 뭐든지 하겠다며 결의에 찬 표정을 지었다.
이현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곧 나와 같은 인간들이 올 거야. 그들에게 골렘 조종법을 가르쳐 줘.”
“그거야 어렵지 않죠!”
그동안 거래의 대가로 얻은 골렘은 넘쳐났다.
하지만 조금만 연습하면 쏠 수 있는 스팀건과 달리 골렘 조종은 어려운 기술이었다.
수십 년을 골렘 즉, 증기 기갑 슈트를 다뤄온 고블린들이 강사가 된다면 그래도 조금은 다룰 수 있게 될 터였다.
급한 감이 없진 않았지만, 이현이 무리를 해서라도 골렘 속성 강습을 시키려는 이유가 있었다.
‘벌레 신의 무리들을 상대하려면 던전의 병력을 전부 빼내야 해. 그럼 그동안 던전이 공백 상태가 된다.’
만에 하나 권속 누에들이 던전에 들어왔을 때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다면 참사가 일어날 터.
공원 사람들과 코에스몰 사람들을 스팀건과 골렘으로 무장시키려는 것은 그 대비였다.
‘물론 던전으로 들어오지 않게 하는 게 최우선이지만.’
일반 헌터들과 다르게 던전에 권속 누에가 들어오면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랐다.
그들은 던전을 만든 총관과 상극이 되는 벌레 신의 무리였으니까.
‘총관의 설명을 들어놓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
이현은 릭에게 그렇게 말한 다음 패트릭을 보았다.
“갱단원들에겐 조금 힘든 부탁이 될지도 모르지만, 회복하는 대로 다시 밖으로 나와서 같이 싸워줬으면 좋겠어.”
병력은 하나라도 더 많으면 좋았다.
이현의 부탁을 들은 패트릭의 표정이 갑자기 구겨졌다.
“이런 제길…….”
“왜 그러지?”
설마 권속들과 싸우는 게 내키지 않아서 화를 내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이현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하기 직전이었다.
“정말 당신을 볼 낯이 없군. 미치겠어.”
“……?”
“계속 당신한테 빚만 지고 있다는 소리라고!”
갑자기 고함을 지르는 패트릭을 보며 이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이게?’
당황한 이현이 되물을 새도 없이 패트릭이 이현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곤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충성의 맹세를 읊었다.
“나 패트릭 오도일, 고블린 갱단의 몹이자, 에이랜드 고블린의 우두머리로서 보스 도이현에게 몸과 마음을 다한 충성을 바치는 바요.”
“…….”
“지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맹세하노니, 보스 도이현은 살아남은 우리 에이랜드 고블린의 유일한 왕이자 주인입니다.”
마치 기사도 소설의 충성 맹세 장면처럼 패트릭은 이현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이현은 당황해서 발을 뺄까 하다가 그것이 오히려 패트릭의 충성을 배신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곤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후, 속이 다 시원하군.”
맹세를 마치고 몸을 일으킨 패트릭의 얼굴은 후련해져 있었다.
반면 충성 맹세를 받은 이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끝난 거야? 대체 무슨 소리를…….”
“보스 도이현은 우리의 목숨을 이미 몇 차례나 구해줬지.”
패트릭이 이현을 보며 히죽 웃었다.
“거기다 2세대 증기 엔진의 핵심 소재를 건네주었고 스팀건이라는 신무기를 개발할 기술까지 줬어.”
“…….”
“거기다 우리가 피난할 장소를 제공해준 것만으로도 이미 은혜가 넘치는데, 이제 우리의 도시를 구해준다고 말하고 있으니 내 속이 어떻겠어?”
패트릭이 담배를 하나 꺼내어 불을 붙였다.
연기를 푸우 내뱉은 그는 뜨거운 눈빛으로 이현을 쳐다보았다.
“에이랜드 고블린은, 그리고 도일 가문의 고블린은 빚을 지고는 못 살아.”
“맞아요. 빚을 지고도 발 뻗고 자는 놈이 있으면 그건 고블린이 아니라 5살 난 오크나 다름없죠.”
이젠 릭마저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이현은 그런 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들…….”
이렇게까지 말을 했는데 이해하지 못한다면 바보였다.
그리고 이현은 바보가 아니었다.
“우리는 앞으로 당신 아니, 보스 도이현을 주군으로 모시고 살 거다.”
담배를 문 채로 패트릭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러니 저 괴물 새끼들을 잡는 데 부탁이니 뭐니 낯간지러운 말 같은 건 하지 말고, 명령해. 우리는 목숨이라도 바치겠어.”
패트릭의 두 눈은 누가 갱단 아니랄까 봐 의리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무리야.”
“어째서요?”
패트릭보다 되려 릭이 소리 높여서 되물었다.
“우리가 보스의 밑으로 들어가는 게 별로 신가요?”
“아니, 그건 아니야. 다만….”
말을 잠시 끊은 이현은 한숨을 내쉬곤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이 전투가 끝나면 던전과 이 행성은 연결이 끊어져.”
“앗.”
릭이 소리를 내며 낭패한 표정을 지었고 패트릭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되면 너희가 살던 도시, 행성과는 작별하게 될 거야. 그럴 수 있겠어?”
던전의 승격이 완료되면 언덕 위의 저택과 연결된 게이트는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되면 스카라반 행성과 도시 뉴가텀과는 작별해야 했다.
‘물론 [워터게이트]로 연결을 할 수는 있겠지만…….’
던전과 시간의 흐름이 일치했던 에트나 행성과는 달리 스카라반 행성은 시간의 흐름이 달랐다.
던전에서 1년만 시간을 보내도 스카라반 행성에서는 7년의 세월이 흐른다.
이현은 그 점을 지적해 주었다.
“던전에서는 잠깐의 시간이라도 던전 밖에 남은 고블린에게는 긴 시간이 흐를 수도 있어. 특히 릭, 만약 너와 네 아버지가 떨어진다면 어떻게 할 거지?”
“그건…….”
릭이 우물쭈물하며 답을 하지 못했다.
릭이 던전에 남고 아버지 맥도일이 바깥에 남게 된다면, 아마 던전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 맥도일은 노환으로 죽게 될 것이다.
반대로 릭이 바깥에 남고 아버지 맥도일이 던전에 남는다면, 몇 년 만에 둘의 신체적 나이가 같아지는 기묘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어떤 상황이 되었건 가족이 함께 누릴 시간을 잃게 된다는 건 마찬가지야.”
이현의 지적에 릭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릭의 어깨가 축 처지자, 그의 등을 강하게 두드리는 손길이 있었다.
“뭘 그런 걸 걱정해?”
“팻?”
“큰아버지랑 너 둘 다 오면 되잖아. 안 그래? 설마 큰아버지가 널 혼자 두시겠어?”
“맞아. 아버지는 그러실 분이 아니지.”
패트릭의 해결책에 릭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 모습을 보며 히죽 웃던 패트릭이 이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마 다른 이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일 거야. 설령 던전 밖에 남는다고 하더라도 이 상황을 각오하고 남도록 내가 설득을 잘하도록 하지.”
“그렇게까지 한다면, 나도 말리진 않겠어.”
이현이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솔직히 이현의 입장에서 그들이 던전에 남아주면 나쁠 게 없었다.
아니, 골렘을 제작할 기술이 있는 고블린이 남아준다면 던전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나야말로, 보스.”
이현이 내민 손을 패트릭이 힘차게 잡았다.
[숙련도의 증가로 [쌍무적 계약] 스킬이 C등급으로 상향됩니다.]“벌써?”
갑자기 들려온 던전의 알람에 이현이 눈을 크게 떴다.
* * *
“이게 이렇게 빨리 오를 수 있는 건가?”
오도일 저택에서 피난처를 제공하겠다는 계약으로 [쌍무적 계약]이 D등급으로 올라간 게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이현이 말도 안 되게 빨리 등급이 올라가는 상황에 당황하고 있자, 티타니아가 설명을 해주었다.
“총관님이랑도 계약했잖아요. 그게 보통 계약이겠어요?”
“아, 그건 또 그렇네.”
절대자 다음으로 격이 높은 총관과의 계약이었다.
“숙련도가 조금 쌓이면 그게 이상한 거겠네.”
“규격 외가 또 규격 외 짓을 한 거죠.”
“……짓이라니.”
이현이 티타니아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가 금방 다시 폈다.
‘아차, 칭찬해야지.’
이번 일만 마치면 봉인이 풀릴 티타니아는 고오급 인재가 될 게 뻔했다.
무려 그 ‘사도’와 동급의 존재라고 하니까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얘, 처음에는 나한테 완전 띠꺼웠지.’
이현과의 첫 만남에서 불만에 가득 차 틱틱 대면서 금방이라도 떠날 것처럼 굴던 티타니아였다.
미리 칭찬을 해두고 관계 개선을 할 필요가 있었다.
이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티타니아를 칭찬했다.
“역시 티타니아는 핵심을 콕 집어서 묘사를 잘하네. 하, 하하, 하하하.”
이현치고는 노력 끝에 나온 칭찬 멘트였지만, 티타니아의 표정은 마치 교미하는 두꺼비를 본 듯했다.
“뭐예요. 그 징그러운 미소랑 칭찬은?”
“…….”
“답지 않은 짓은 고만하고 얼른 나갈 준비나 하죠?”
“……내가 말을 말아야지.”
기껏 노력해서 없는 칭찬도 해줬건만 이런 태도라니.
이현은 이를 뿌득뿌득 갈며 짐을 챙기고 게이트로 향했다.
“……으이구, 속이 다 보입니다, 다 보여요.”
그런 이현의 뒷모습을 보며 티타니아가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걱정 안 하셔도 떠날 생각일랑 없네요.”
이현과 동고동락하며 이미 정이 들 대로 들어 버린 그녀였다.
설령 앞으로 이현이 고난으로 가득한 길만 걷더라도 그녀는 그와 함께 걸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물론 그렇게 안 되도록 도와야겠지만.”
티타니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런 자신에 놀라워했다.
“총관님이 나를 봉인하고 도우미로 내려보낸 것도 이것 때문이었나?”
상관에게 불경한 태도를 고치고 낮은 곳에서부터 던전 보스를 모시는 마음을 되찾을 것.
그게 총관의 목적이었다면 이미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닐 거 같단 말이지.”
티타니아는 총관이 오늘 해주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이전 우주에서 함께 건너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자신의 옛 기억은 전혀 나지 않았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상관에게 어떤 불경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기억도 없다는 걸 오늘에야 깨달은 티타니아였다.
“봉인이 다 풀리면 알 수 있으려나?”
티타니아는 어깨를 으쓱이곤 이현이 사라진 던전 게이트를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니 저를 위해 힘내요, 주인님!”
* * *
콰르릉!
도시 뉴가텀의 중심이자, 상징인 시청 건물이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흙먼지가 걷히고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10층 빌딩보다 더 높은 키를 자랑하는 거대한 날개 달린 지네였다.
“퀴이이이잇!”
바로 1차 변태를 마치고 고치에서 몸을 드러낸 벌레 신의 사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