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283
282화
-결전 준비(2)
“경배하라, 경배하라.”
“절대자의 아들, 우리의 어버이 벌레 신을 경배하라.”
“벌레 신의 으뜸가는 자식이자 우리를 이끌어 주실 사도를 경배하라.”
“어버이 벌레 신과 사도의 이름으로 먹어 치워라. 사각사각.”
시청을 뚫고 나온 사도를 에워싼 권속 누에들의 찬송이 울려 퍼졌다.
말을 할 줄 아는 권속 누에들은 노래를 부르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배를 울려 기괴한 화음을 만들어냈다.
거대 누에나방은 날갯짓 소리까지 섞어가며 찬송에 동참했다.
소름 끼치는 내용의 가사와 기괴한 화음, 그리고 사방에 흩날리는 나방의 분진이 이뤄내는 앙상블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권속들의 찬송이 끔찍한 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으아아악!”
건물 잔해에 숨어 있었던 트롤 하나가 찬송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쳐 나왔다.
“커헉!”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바닥에 쓰러지며 전신의 구멍에서 피를 뿜어내더니 곧 움직임을 멈추었다.
권속 누에들의 찬송에 담긴 사기의 파동을 견디지 못한 결과였다.
존재만으로도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권속들의 사기가 찬송으로 더더욱 증폭되어 시청 일대에 퍼지고 있었다.
“경배하라, 경배하라.”
“입에 넣어 정화하라.”
벌레 무리의 합창은 점점 소리를 높여 인근을 뒤덮었고 반경 100m의 생명체는 모두 피를 토하며 절명했다.
“저게 대체 뭐야…….”
“끔찍해.”
벌레들의 찬송가가 미치는 범위에서 벗어난 건물의 지붕, 나진과 이아코스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끔찍한 현장을 관찰하고 있었다.
“격이 높아졌는데도 보고 있자니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껍네.”
찬송가의 범위에서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영향이 있었다.
나진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울렁거리는 속을 간신이 참고 있었다.
“고블린들을 미리 보내길 잘했어. 그치?”
“나진 아가씨 말대로야. 그 친구들은 여기 있었다간 모두 미쳐 버렸을걸.”
이아코스 역시 힘들긴 마찬가지였지만, 신격을 두 개나 가지고 있는 그는 나진보다는 나은 상태였다.
나진과 이아코스마저 그럴진대 권속 누에의 사기만으로도 힘든 평범한 고블린이었다면?
이아코스의 말대로 모두 정신이 오염되어 스팀건의 총구를 입에 넣고 방아쇠를 당겼을지도 몰랐다.
조금이나마 더 도움이 되겠다고 객기를 부리는 갱단원이 없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꼴을 보고 싶지는 않았던 나진과 이아코스가 강제로 그들을 돌려보냈다.
“우리도 조금 떨어지자. 나도 더는 버티기 힘들지도 모르겠어.”
나진이 창백해진 얼굴로 숨을 가쁘게 쉬었다.
단순한 공격이라면 장비와 내공의 힘으로 막아보겠지만, 감각기관을 통해 뇌와 정신에 영향을 주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그래. 어차피 우리가 처치할 괴물은 아니니까.”
이아코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진과 함께 자리를 뜨려던 찰나였다.
“미스 나진, 들리십니까?”
고블린 전용 골렘 하나가 근처까지 와 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돌려보낸 줄 알았던 갱단원 하나가 골렘을 믿고 따라왔다고 생각한 나진이 그에게 서둘러 떠나라고 손짓을 했다.
“여긴 위험해요, 어서 돌아가요!”
“그게 아닙니다! 보스 도이현의 전언을, 우웨에엑!”
다행히 객기에 넘쳐 그녀를 따라온 갱단원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까이 온 것만으로도 견디지 못하고 토악질을 할 정도로 이곳이 위험한 건 마찬가지였다.
나진이 서둘러 골렘의 곁으로 날아갔다.
“괜찮아요?”
“괘, 괜찮습, 우으윽.”
말로는 괜찮다고는 하지만, 평범한 고블린은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지경이었다.
걱정해주기보다는 차라리 빨리 전언을 듣고 되돌려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나진은 서둘러 물었다.
“전언이 뭐죠?”
“보스 도이현이 서둘러 게이트로 돌아오라고 해, 했습니다.”
고블린 갱단원의 말에 나진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피난도 대부분 끝났겠다, 아예 이곳을 뜨려는 거구나.’
이미 도시에 제대로 살아남은 이들은 거의 없었다.
시청을 중심으로 한 상류층 오거들의 거주지역은 이미 붕괴한 지 오래였고 오크들의 구역은 가장 먼저 권속 누에들이 퍼진 곳이었다.
트롤들의 거주 구역인 항만 쪽은 도시 외곽이라 그나마 사정이 좀 나은 편이었지만, 바다에 막혀 대부분이 피난을 가지 못하고 권속들의 희생양이 되었다.
암흑가 전쟁에서 밀리며 금방이라도 몰락할 것 같던 고블린들만이 이현과 손을 잡은 덕분에 소수만이라도 생존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알겠어요. 다른 말은요?”
“펴, 편지, 우웨에엑.”
나진이 잠깐 생각하는 사이에도 고블린 갱단원은 연신 구토를 계속하는 중이라,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나진은 간신히 토사물이 묻지 않은 편지를 받아들고는 서둘러 고블린 갱단원을 돌려보냈다.
“편지?”
이현이 보낸 편지라는 소리에 이아코스가 지붕에서 훌쩍 뛰어내려 나진의 곁으로 다가왔다.
“뭐라고 쓰여 있어?”
편지가 한글로 쓰여 있는 바람에 소통의 권능을 가진 이아코스도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진은 짧은 내용의 메모에 가까운 편지를 읽고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아코스에게 그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우리 저거랑 싸워야 한다는데?”
“뭐?”
편지의 내용을 들은 이아코스 역시 나진과 같은 표정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진 누나, 이아코스. 서둘러 돌아와요. 사정이 생겨서 벌레 신의 사도와 권속들을 물리쳐야 할 것 같아요.」
“대체 무슨 사정이 생기면 저거랑 싸워야 하는 거야.”
나진이 핼쑥하게 질린 얼굴로 찬송이 울려 퍼지는 시청을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곳이었지만, 거대한 나방의 날개를 펄럭이는 대형 건물만 한 지네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사도의 모습을 본 나진의 눈이 울상이 되었다.
“울고 싶다, 정말.”
* * *
이현의 병력은 게이트가 있는 언덕 밑의 공터에 집결한 상태였다.
“이현아!”
“나진 누나, 어서 와요. 이아코스는요?”
“남아서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대.”
나진과 이아코스는 사도와 싸우겠다는 이현의 편지에 울상을 지었지만, 자신들이 할 일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이현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할 일을 떠올려준 나진과 이아코스에게 감탄했다.
“안 그래도 정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고마워요.”
“뭘, 항상 네가 하던 일이잖아.”
적이 명확하게 정해진 이상, 적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나진의 말대로 전투에 들어가기 전, 항상 이현이 빼먹지 않고 거치는 단계이기도 했고.
나진은 우선 자신이 확인한 정보만이라도 이현에게 전달했다.
“그렇게나 사기가 강해요?”
“나도 견디기 어려울 만큼? 나보다는 이아코스가 좀 더 견딜 수 있어서 걔가 남았어.”
나진은 정신이 나갈 것만 같던 권속들의 찬송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조심해. 거기 사기가 장난이 아니야.”
“명심할게요.”
나진의 경고에 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확실한 방비가 필요해 보였다.
“리코스, 디르케!”
“이스메이아 중장보병, 준비 완료입니다!”
“옹케스토스 경보병 부대도 준비가 끝났습니다!”
전원이 구울로 이루어진 사우레노르 부대가 리코스와 디르케의 지휘하에 오와 열을 맞추어 서 있었다.
이스메이아 출신의 사우레노르 병사들은 청동 장비를 전신에 걸친 팔랑크스 중보병 부대.
옹케스토스 왕궁 경비병이었던 이들은 가벼운 장비와 투창을 장비한 경보병 부대로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물론, 경보병이라고는 하지만 구울이었기 때문에, 생전보다 몇 배는 강력했다.
이현은 만족스럽게 그들을 보고는 다음 병력을 호명했다.
“장민아!”
“준비됐어, 삼촌!”
이현의 부름에 대표인 민아가 귀여운 목소리로 고함쳐 대답했다.
목소리는 귀여웠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인간종 구울 부대였다.
이현은 사도와의 싸움이 결정되자마자 [워터게이트]로 정결의 섬에서 머무르던 그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UHS와 스팀건으로 그들을 무장시켰다.
“쉬게 해드린다고 했으면서 이렇게 전투에 불러서 미안합니다.”
“뭘요. 저 괴물들 물리치지 못하면 지구도 위험하다면서요?”
이현의 사과에 주 PD가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우리야 돌아가지 못할 몸이 되었다곤 하지만, 가족은 아직 지구에 살고 있어요. 가족은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달그락, 달그락.
민아 아버지 장민수도 턱뼈가 부딪힐 정도로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주 PD의 말에 동의했다.
소멸의 위험에도 달려와 준 그들의 의리에 감사를 표한 이현은 마지막 병력을 외쳐 불렀다.
“에이랜드 고블린!”
“호우!”
골렘들이 발을 구르고 갱단원들이 스팀건을 부딪치며 이현의 부름에 응했다.
비록 키는 작지만, 자신들의 도시를 지키겠다는 의욕은 다른 누구보다 강했다.
그들은 발을 구르며 전의를 끌어올리기 위해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에이랜드를 위하여!”
“뉴가텀을 위하여!”
“도이현을 위하여!”
전투에 나가기 전에 외치는 전투의 함성은 사우레노르들도 지지 않았다.
“에레레레레레레프!”
“에레레레레레레프!”
“도이현을 위하여!”
청동 창과 방패를 요란하게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전투의 함성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이렇게 되자 캠핑장 사람들도 피가 끓어오르긴 마찬가지였다.
“우리도 해야 하나?”
“박수라도 칠까?”
누군가가 월드컵 박수를 쳤지만, 별로 호응을 받지 못하고 금세 사그라들었다.
“그냥 이름을 외칩시다!”
“도이현! 도이현! 도이현!”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세 종류의 부대를 보며 이현은 멋쩍은 느낌도 있었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우리도 사기를 끌어올려야 해.’
운동선수들이 경기에 나가기 전 외치는 구호, 병사들이 전쟁에 나서기 전 부르는 군가 모두 그냥 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기를 고양시키고 정신을 무장하기 위한 일종의 의례였다.
‘그리고 전투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강한 감정은 사념 에너지를 불러일으키지.’
던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그들의 육체에는 사념 에너지가 배어 있었다.
전투의 함성과 이현의 이름을 외치는 그들의 감정이 방아쇠가 되어 그 사념 에너지가 새로운 변화를 일으켰다.
[고무]이현이 C급 던전 보스가 되면서 얻은 던전 스킬 중 하나였다.
「[고무]
– 던전의 몬스터의 능력을 일시적으로 상승시킨다.
– 전투에서 물러서지 않고 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스며든다.」
[고무] 스킬이 작동하자마자 분석의 안약을 쓴 이현의 눈에 새로운 것들이 보였다.마치 피처럼 붉은 기운이 병력들의 몸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거라면 권속들의 사기(邪氣)도 어느 정도 막아주겠지.’
그동안 대규모 전투가 없어서 쓸 일이 없었지만, 막상 써보니 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스킬이었다.
이현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던전 보스의 권한을 이용해 던전 게이트를 통해 사념 에너지를 뽑아냈다.
쿠르릉-.
마치 격류가 터져 나오듯 게이트에서 흘러나온 붉은 사념 에너지가 모든 이들을 감쌌고 전투의 함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
‘이 정도면 사기에 맞서서 싸울 수도 있어.’
이현은 사기가 충만한 던전의 병력을 향해 보스의 위엄을 한껏 담아 방점을 찍었다.
“전원 전투 준비!”
“와아아아!”
“도이현! 도이현!”
사우레노르 구울 부대와 인간종 구울 부대, 그리고 고블린 갱들의 연합 부대는 이현의 이름을 연호하며 도시로 진격을 시작했다.
던전의 몬스터가 게이트를 나서서 바깥을 공격하는 행위.
이현의 첫 던전 브레이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