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326
325화
-폐허가 된 도시(5)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원주가 망해 버렸어…….”
티타니아가 데려온 캠핑장 사람들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린 원주의 모습을 목격하고 패닉에 빠져 버렸다.
몇몇은 원주에 남은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기세였다.
“멈춰요!”
티타니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리며, 거대화된 그녀의 손이 원주로 들어가는 입구를 막았다.
막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갔던 사람들이 티타니아의 손으로 가로막힌 길을 보고선 제자리에서 멈췄다.
“말리지 말아주십시오. 지금 저기에 가족들이 있단 말입니다!”
던전 도우미이자, 이현이 신뢰하는 부하인 티타니아의 말에 사람들은 멈추긴 했지만, 표정은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그들의 반항에도 티타니아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대신 엄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 뿐이었다.
“분명 제가 말했죠. 주인님이 여러분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고.”
티타니아의 냉랭한 목소리에 캠핑장 사람들이 목을 움츠렸다.
“이현 씨도 이해해 줄 겁니다!”
“주인님이 그래도 전 안 그래요.”
“윽…….”
누군가 소심하게 반항을 해 보았지만, 티타니아의 날카로운 눈빛이 그 사람을 향해 쏘아지자 곧 입을 다물었다.
티타니아는 당황해하는 캠핑장 사람들을 향해 날 선 어조로 다시 한번 경고했다.
“주인님은 분명 여러분을 데리고 오라고 했어요. 두 번 말 하지 않게 해줘요.”
티타니아의 지적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사실 그동안 티타니아가 이현 앞에서는 모자란 면을 자주 보여왔지만, 다른 이들에겐 깐깐한 편이었다.
그녀가 그동안 모두에게 상냥한 보스 대신 군기를 잡는 중간 관리자의 역할을 해왔기에 사람들은 더는 그녀의 말에 반항하지 않았다.
“여러분의 사정은 잘 알지만, 언제나 보스의 명령이 우선이라는 거 잊지 말아요.”
잠잠해진 사람들을 보며 티타니아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우리 주인님이 어떤 사람인지 다들 알잖아요? 이미 여러분이 걱정하는 것에 대해 대책을 마련했을 분이라구요.”
티타니아가 거기까지 말하자 캠핑장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지며 수긍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던전의 모두는 이현을 굳게 신뢰하고 있었다.
이현은 단 한 번도 그들을 실망하게 한 적이 없었으니까.
티타니아는 잠잠해진 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거대해진 손을 원상태로 되돌려 회수했다.
“일단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요. 제가 주인님한테 가서 다음 지시를 받아올 테니까요.”
티타니아는 그 말을 끝으로 날개를 펴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디 보자. 저쪽이네.”
허공에서 이현이 있는 위치를 파악한 티타니아는 곧장 그쪽으로 향해 날아갔다.
한편, 그 시각 이현은 다이어리를 탁, 소리 나게 덮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어.”
안의 내용을 전부 읽은 이현의 낯빛이 창백해져 있었다.
그만큼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현은 잠시 어지럼증을 느끼곤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책상에 몸을 기대었다.
“주인님!”
그때, 하늘에서 티타니아가 날개를 접고 지붕이 뚫려 있는 컨테이너 안으로 내려앉았다.
“왜 이런 곳에 있어요? 찾는 데 한참 걸렸잖….”
폐허 속에서 이현을 찾기 힘들었다고 투덜대던 티타니아가 그의 표정을 확인하더니 말을 멈췄다.
“주인님, 괜찮아요? 안색이 안 좋은데요?”
충격으로 창백해진 이현을 본 티타니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현은 그런 티타니아를 보며 씁쓸히 웃었다.
“아니, 안 괜찮아.”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높아진 격으로 정신적 충격에서 보호받는데도 불구하고 힘들어하는 이현을 보며 티타니아가 그의 손을 잡았다.
따스한 기운이 그녀의 손을 통해 이현에게로 전해졌다.
그 기운을 전해 받자마자 이현은 흔들렸던 마음이 차분히 진정되는 것을 느끼곤 놀라워했다.
“이건?”
“되찾은 제 능력 중에 하나에요. 보잘것없지만…….”
“아냐, 도움이 됐어. 이제야 진정이 좀 되네.”
이현은 티타니아의 손을 마주 잡으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러자 티타니아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뭘요. 헤헷.”
이현은 답지 않게 부끄러워하는 티타니아를 보며 살짝 웃었지만, 곧 표정이 심각해졌다.
“우리가 던전에 있는 동안 지구에 큰일이 생겼어.”
아버지의 다이어리에 있던 내용을 설명해 주자, 티타니아도 표정이 변했다.
“지구가 벌레 신의 권속들에게 공격을 받다니…….”
아버지의 기록에 따르면 해가 바뀌고 얼마 되지 않아서 돔 주변에서 기괴한 곤충 생명체가 등장했다고 한다.
거대한 풍뎅이, 나방, 날개 달린 지네의 형상을 띤 괴물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
가장 먼저 희생된 건 돔 주변에 피난을 와 있던 권력자들과 부자들이었다.
그러자 티타니아가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헹! 꼴좋다. 실종자 가족들 몰아내고 눌러앉더니 벌 받았네요.”
이현도 비슷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사람들이 전부 죽어 버려서 국가가 사실상 마비되었다는 점이야.”
정부 인사, 기업인 등 나라를 이끌고 가야 할 이들이 모두 권속들의 공격으로 죽어 버렸기에 사회가 멈춰 버렸다.
이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재앙이었다.
살아남은 방송인들과 인터넷을 통해 이현의 아버지가 확인한 사실이었다.
“인간이란 족속들은 한결같네요.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다니.”
“할 말이 없네.”
이현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 누구도 몰랐으리라. 권력자들의 이기심 때문에 이렇게 급격하게 아포칼립스가 도래하게 되리란 걸.
“불행 중 다행인 건, 군대가 권속들을 막아내기 시작했다는 거야.”
이현의 군세가 뉴가텀에서 스팀건과 골렘으로 권속들을 막아냈듯이, 지구 사람들도 현대 화기를 이용해 권속들과 싸웠다.
사실, 몇몇 특수한 개체를 제외하면 평범한 화기로도 대응할 수 있는 게 벌레 신의 권속들이었다.
“한동안은 잘 막아냈나 봐.”
“한동안이요? 설마…….”
티타니아가 말끝을 흐리자 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수가 문제였지. 그 징글징글한 놈들.”
권속에게 감염된 이들에게서 새로운 권속이 튀어나오길 반복하자 어느새 전 세계는 권속으로 뒤덮였다.
인구가 78억이나 되는 지구인의 반만 권속이 되어도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재앙이었다.
“점점 군대로도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 같아. 원주는 그래도 군부대가 많은 도시라서 다른 곳에 비하면 더 버틴 모양이지만.”
군부대가 도시를 최대한 방어하려고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정타는 새로운 권속이었어.”
이현은 아버지의 다이어리를 펴서 손으로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다.
펜 선으로 그린 거친 그림이었지만, 특징을 잘 묘사한 그림이었다.
티타니아는 그림을 보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권속 개미들이네요. 땅을 파고 무언가를 무너뜨리는 데 최적화된 권속들이에요.”
“이것들이 도시의 지하로 파고들었나 봐.”
권속 개미. 거대한 개미의 형태를 한 권속들이 도시의 지하를 파고들어 지반 채로 도시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결국, 군대도 도시를 포기하고 생존자들과 철수해야만 했다.
“아버지는 그때 군인들이랑 같이 피난하신 것 같아.”
이현이 돌아올 것을 대비해 끝까지 남으려고 했던 이현의 아버지였지만, 도시를 통째로 무너뜨리는 권속들 앞에서는 별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 도시가 이렇게 파괴된 건 이해가 안 가는데요?”
티타니아가 의아하다는 듯 의문을 제기했다.
그녀의 말대로 권속 개미들이 아무리 무언가를 파괴하는 것에 최적화된 괴물들이라지만, 원주시가 파괴된 정도는 그것을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방역 작전이 있었어.”
“방역요?”
“벌레들을 쓸어버릴 방역. 공군이 나서서 이곳을 폭격했다나 봐.”
이현은 아버지가 다이어리 마지막에 써놓은 내용을 펴서 보여주었다.
‘곧 원주에 폭격이 있을 것 같다. 그 괴물들을 방역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그렇게 되면 여기도 모두 사라지겠지. 작은놈이 이 다이어리라도 발견할 수 있게 금고를 하나 구해야겠다.’
폭격에도 버틸 수 있게 이현의 아버지는 단단한 금고에 다이어리를 보관해 둔 모양이었다.
폭격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금고는 파손되었지만, 다행히 다이어리는 멀쩡해서 이현이 무사히 발견할 수 있었다.
“아버님이 선견지명이 있으시네요. 주인님처럼.”
“그런 분이시지.”
이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눈매는 험악해도 사려가 깊고 신중하신 분이었다.
‘그런 분이 사라진 아들놈 기다리겠다고 이 위험한 곳에서 버티셨지.’
다이어리에 적힌 급박한 상황대로라면 언제 아버지가 목숨을 잃으셔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이현은 자신 때문에 목숨까지 걸었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이 다이어리를 이현이가 읽는다면, 아버지의 고향으로 오너라. 그곳 대피소에 일가족 모두가 모여 있다. 만약, 다른 이가 읽는다면 부탁건대 이 다이어리를 이 자리에 가만히 놔둬 주시기 바랍니다. 그 아이가 읽을 수 있도록. 2021년 6월 20일. 도봉대 씀.’
아버지의 다이어리는 여기서 끝이었다.
그 뒤로 가족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있었다.
“지구에 벌레 신의 권속이 들끓고 있어.”
이현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이 정도면 사도가 나타난 게 분명해. 그게 아니고선 전 지구적으로 권속이 들끓는다는 게 설명이 안 돼. 안 그래?”
티타니아에게 되묻는 이현의 눈매가 안 그래도 무서운데 더욱더 험악하게 변했다.
“분명 총관이 사도 샤이 규라흐를 물리칠 때 약속하기론 지구를 지켜준다고 했었지. 말이 다르잖아?”
이현의 물음에 티타니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총관님이 허언하실 분은 아니에요. 주인님도 잘 알잖아요. 그분이 어떤 분인지.”
절대자의 둘밖에 없는 자식이자 전 우주의 질서를 다스리는 우주적 존재.
그런 존재가 고작 작은 행성 하나의 처우를 가지고 이현과의 약속을 어길 리는 없었다.
“나도 알아. 날짜를 살펴보면 나와 약속하기 전에 이미 지구에 권속들이 나타난 것 같고.”
던전과 지구의 시간 흐름은 같았다.
그걸 고려하면 이현이 총관과 사도를 물리칠 계약을 하기 이전에 이미 지구에 권속들이 나타났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과연 그걸 총관이 몰랐을까?’
지구가 이미 권속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 뒤에 지구를 지켜주겠노라고 약속했다는 것은 이현을 농락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현은 이 일을 단단히 항의할 생각이었다.
“티타니아, 총관이랑 연락돼?”
“네, 봉인이 풀려서 연락할 방법이 생겼어요.”
던전 도우미에 불과했던 봉인된 티타니아는 불가능했지만, 총관의 총애받는 권속인 티타니아는 총관에게 연락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현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입꼬리만 살짝 올렸다.
“가서 총관에게 이 상황을 전해. 그리고 약속을 지킬 생각이 있는지 물어봐 줘.”
“주인님…….”
자신이 믿고 따르는 주인인 이현이 자신의 창조주인 총관에게 대립각을 보이자 티타니아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런 티타니아에게 이현이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누구 편을 들든지 상관없어. 내가 바라는 건 제대로 된 계약의 이행인 거야.”
만약 총관과의 계약이 정보가 단절된 이현의 상황을 이용한 사기라면 그는 가만히 있을 생각이 없었다.
이미 첫 번째 보상이 어그러졌다고 해도 세 번째 보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꼭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현이 총관에게 요구했던 세 번째 보상.
그건 던전의 모두가 던전에서 해방되는 것이었다.
이현의 단호한 표정을 본 티타니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겠어요. 그대로 전할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티타니아가 잠시 말을 끊더니 이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제가 비록 총관님의 자식이자 부하지만, 동시에 주인님의 도우미이기도 해요. 저를 좀 더 믿어줬으면 좋겠어요.”
진지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티타니아를 보며 이현이 굳은 표정을 풀고 부드럽게 웃었다.
“믿겠어.”